제가 작년 겨울에 pgr에 소개한 신문기사가 있습니다. 글도 하나 남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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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pt21.com/freedom/89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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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요약하자면, 고모/고모부와 같이 살던 지적장애 여성이 고모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었는데요.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던 고모는, 같은 빌라에 살던 이웃집 남성을 가해자라고 진술하라고 지적장애 조카에게 강요했었고,
조카는 아무 잘못도 없는 이웃집 주민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해서,
죄 없던 이웃 주민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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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르러... 억울하게 옥에 갇혔던 남성의 딸이,
임신하고 있었던 아이를 유산하면서까지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애쓴 끝에,지적장애 조카의 번복진술을 이끌어 내고,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는 기사였습니다.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08035400710681006&search=%B9%AB%B0%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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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건이 이처럼 흘러간 것에는
피의자의 억울함을 살피지 않은 채 유죄로 몰아갔던 수사기관의 과실이 결정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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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0821000071089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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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요... 경찰이 경찰한 거고.. 검찰이 검찰한 것이야 그렇다 치죠.
진짜 문제는.. 수사기관이 이딴 식으로 부실수사를 해 왔으면 무죄를 선고했어야 할 법원이
1심에서 그 빌어먹을 피해자 중심주의 때문에 '수사한게 다 맞겠지' 하면서
피고인이 제기했던 의문을 모두 씹어버리고 유죄판결을 해 버린 잘못이 가장 크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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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저는 또 다른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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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10619103232390
[이웃집 무고로 성폭행 누명쓰고 옥살이..法 "국가배상 안돼"].
기분이 참 더럽습니다.
그래요... 악의적으로 이웃집 남성을 무고한 고모와 고모부에게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맞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 B씨(이웃집 남성)는 5차례에 걸쳐 A양(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 집과 모텔 등에서 성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B씨는 A양과는 같은 빌라에 사는 것 외에는 사적 만남을 가진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사건 장소, 해당 장소 인근 건물과 마트 CCTV, 모텔 CCTV 등을 확인해달라는 가족들 요청은 철저히 묵살됐습니다.
- B씨가 범행 추정 일시, 직장으로 출퇴근한 기록 등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즉 알리바이의 확인)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아예 범행 현장조차 찾지 않았고요.
- 경찰이 사건 접수 뒤 3개월 이후 범행 현장인 모텔 CCTV 검색에 의미가 없다며 포기한 반면, 딸은 아버지 B씨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해당 모텔을 찾아 119일간의 CCTV 영상 보관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경찰이 갔을 때 없었던 CCTV가 돌연히 나타난 것이거나, 경찰이 거짓말 또는 부실수사를 했거나 둘 중 하나겠죠.
- 경찰과 검찰은 B씨가 A양 고모·고모부가 없는 틈을 타 A양 집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적시했지만 A양 집 열쇠는 고모와 고무부만 가지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확보했는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고 열쇠 복사를 한 데 따른 탐문조사도 전혀 진행하지 않았답니다. 이 이웃집 남성이 어떻게 침입했답니까. 스파이더 맨이라도 되나요?
-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2015년 12월께,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의 차량은 소형차, 내비게이션이 있다. 차량 종류나 로고 등은 모른다’고 했는데요. 수사기관은 B씨 소유 중대형차와 비슷한 중대형차 12대만 골라 A양에게 보여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B씨를 무고한 A양 등이 1년 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혐의로 엉뚱한 주민을 고소했다가 증거 불충분 등으로 불기소된 사건에 연관된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2심 재판부에서 밝혀졌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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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 이웃집 남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요.
[수사기관이 법령 및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한계를 위반해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수사를 했다거나 증거를 토대로 원고에게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객관적으로 경험칙·논리칙에 비춰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부족하다] 고 판결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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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r 회원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물론, 기록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사건에서, 국가(즉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책임이 단 한톨도 없다면서 청구를 기각한 법원의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소를 제기했던 그 죄 없는 이웃집 남성도 처음부터 청구 전액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 일부승소 정도는 충분히 기대할 만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이 기사를 보고 저는 아연실색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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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알리바이를 주장하는데, 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는 수사기관에 대하여,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수사를 했다고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하는 우리 법원에,
오늘 깊은 실망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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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글에 볼드 표시를 하느라 수정을 봤더니 링크가 클릭이 안 되네요. 링크만 따로 댓글로 달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