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난 pgr21이라는 사이트에 처음으로 접속하였다.
보통 게임 정보를 찾다가 이 사이트를 알게 되는 게 대다수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와 매우 달랐다.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한 학생이 생존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기억의 말단에 남아있다.
공부라도 못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공부만 잘하고 사회성은 없으니 말 그대로 '재수없는 새끼'였다.
흔히 "선생님, 오늘 숙제 검사 안했는데요?"라는 놈이 나였다.
왕따도 당해봤고 여러 명에게 밟혀도 봤다.
중학생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공부만 하며 살았다.
체육시간에 하라는 축구는 안하고 벤치에 앉아서 책보며 공부했다. 책이 없으면 머리 속의 내용을 복습했다.
수학여행 때도 숙소 방구석에서 두꺼운 물리학 교양서적을 읽었다.
인싸 담임 선생님이 수학여행때는 그만 좀 공부하라는 의미로 내 책을 찢어버리고 반 분위기를 띄워서 내가 아이들과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런 깊은 의미를 알리가 없는 중학생의 나는 울었다.
인생을 갈아넣은 덕에 성적은 좋았다. 전교 2등을 하면 조롱당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시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자가 되었다. 급식을 혼밥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혼자였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는 싶지만, 자살을 하면 누군가 비웃을까 무서워 실행하지는 못했다.
누군가 우연히 트럭으로 나를 치여죽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엇다.
'일진 입장에서 나를 패버리고 싶지만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보호해주니 어쩔 수 없이 못 건드는' 내 인생이 싫었다.
찐따들은 알 것이다. 과거의 나를 모두들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런 찐따에게 고등학교 입학은 기회였다.
하지만 찐따는 괜히 찐따가 아니다.
입학하자마자, 일진에게 맞는 애에게 맞고 살았다.
다행히 걔가 나를 때리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한 일진 한 명이 그 친구를 조져버려서 샌드백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샌드백에서 탈출했더라도 '중간만 가야지'하는 나의 계획은 무너졌고, 이미 학급의 최하층 인간이 되버렸다.
인싸나 평범한 사람들에겐 마음에 맞는 친구와 놀고, 안 맞는 친구는 적당히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것이 학교생활이다.
그 사람들은 계급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 해봤자 일진, 평민, 왕따 이정도 세 계급을 알 뿐이다.
밑바닥일수록 계급이 세분화되어있다.
찐따는 혼자 살 수 없다. 마음에 맞던 안 맞던 모여 무리를 만들어야한다.
찐따무리끼리도 급이 있으며, 무리 안에서도 급이 나뉜다. 찐따무리의 리더가 있고, 그 안에서의 찐따가 또 있다.
이 글을 읽다보면 '친구끼리 친하면 그만이지 뭐 저렇게 급을 나누고 사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찐따로 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찐따무리는 찐따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었는데, 나는 그 안에서도 하층민이었다.
각자의 학창시절을 기억해보면,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에 오는 찐따가 있었을 것이다.
반에 친구가 없어 다른 반까지 가야하는 지경이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찐따인지 감이 올 것이다.
나의 찐따무리 리더는 스타2를 좋아했다. 그 친구가 핸드폰으로 pgr21을 하는 것을 보았다.
무리 안에서 더이상 무시받지 않으려면 리더와 친해져야했다.
그때부터 pgr21에 접속하고 GSL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찐따 리더와 말이 통하기 시작했고, 무리 안에서 내 위치가 올라가며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몇 개월 후엔 내가 찐따무리의 리더가 되었다.
2학년 중반즈음엔 우연히 착한 친구 한 명이 나를 다른 일반인 무리로 데려가줘서 찐따무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 이후의 인생이 더 다이내믹하고 글로 쓸 거리가 많다.
대학생활동안 내 인생이 엄청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의 내가 꿈꾸던 평범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인생이 힘들지만, 암흑같던 과거를 떠올리면 현재에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풀도록하고, pgr21이라는 주제에 맞도록 조금만 글을 더 적고 글을 마치겠다.
pgr21은 게임커뮤니티로 많은 추억이 있다.
스타2 팬 입장으로 이정훈의 해병 컨트롤, 정종현과 박현우의 역대급 결승전, 로열로더 넥라 (주작범) 이승현 등 기억이 있다.
더지니어스 팬 입장으로는 시청자를 짜릿하게 하는 홍진호, 데스매치만 이기는 임요환, 전설적인 시즌2 6화, 밸런스 파괴범 장동민 등 기억이 있다.
LOL T1 팬 입장으로는 압도적 강함을 보여준 15/16skt, 원딜이 번아웃 와버린 17skt, 트할과 잼구의 암흑기 18skt, 슈퍼팀이지만 슈퍼팀이 되지 못한 19skt, 광고만 찍다가 용두사미 해버린 20 T1 등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그 때 찐따무리 리더가 pgr21을 하는 것을 몰랐다면 내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pg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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