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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1 05:04
한반도가 인구밀도가 낮았던 지역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허구헌날 까이는 조선도 임진왜란 터지니 박박 긁어서 17만 대군을 뽑아냈었죠. 농사지으러 가야되니 명군 들어오면서 확 줄어들지만
17/02/01 10:18
그 고려보다 작은 우리나라 군이 현역 60만이 넘으니....생산인력을 군으로 돌리는 방식이면 가능은 했을듯 합니다만 단기전을 노려야 하는 단점이 있겠네요
17/02/01 10:32
네 그래서 아마 대군을 운용하기 위한 출혈량은 상당했을겁니다 그 군을 1년 운용하는것도 버거울정도로요
마치 우리나라가 예비군 소집으로 400만을 끌어모은것과 비견될만한 출혈량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17/02/01 03:2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왜 북벌을 할 떄 저렇게 동해를 따라서 길쭉하게 올라갔을까요. 함경산맥같은 지형때문이라고해도 너무 길쭉하게 간게 아닌가 싶은데;;
17/02/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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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은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장상(將相)이 되자 비록 군중(軍中)에 있으면서도 항상 오경(五經)44)을 가지고 다녔으며, 어진 이를 좋아하고 착한 것을 즐겨 당대에 으뜸가는 명망을 얻었다. - 고려사 열전 ------------------------------------------------------------------ 나는 착한 것을 즐기는 고려남자 윤관, 하지만 여진족들에겐 잔혹하겠지. ------------------------------------------------------------------ 923년(태조(太祖) 6년) 마군장군(馬軍將軍)이 된 그는 개정군 3천명을 거느리고 골암진의 동산에 성을 쌓고 거처하며 북번의 추장 300명을 소집, 주연을 베풀었다. 그들이 모두 거나하게 취했을 때를 틈타 위협하니, 추장이 모두 복종하였다. ------------------------------------------------------------------ 고려의 개국공신 유금필도 똑같은 계책을 써서 북방을 제압한 적이 있었다고 하니, 이 '술먹이고 뒤치기'는 고려의 시그니처 전법(?)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이때는 굴복만 시킨 거라 살려줬다고...)
17/02/01 12:40
추장 학살 사건은 사실 윤관이 직접적으로 엮이진 않았습니다. 동북 9성 공략은 예종 무렵인데, 추장 학살 사건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숙종 무렵에 발생한 일이라서구요. 물론 전쟁 준비는 숙종 때부터 있었으니 북벌을 위한 포석이긴 했지만요.
최홍정(崔弘正)이라는 사람이 이를 주도했습니다. 본문에도 언급한 일이지만 마침 그때 척준경이 최홍정의 지시를 받고 밖에서 머물던 여진족을 죽이는 행동대장 역을 맡았고.
17/02/01 05:33
척준경이 석성 위로 올라가 여진족 추장 몇을 베어내자 고려군의 사기가 올라 결국 석성은 함락되고 맙니다. -> 진짜 소드 마스터네요 덜덜...
17/02/01 10:04
회전이야말로 지휘관의 능력을 잘 보여주죠.
고려말 이성계는 회전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위 윤관시기보다 약 90년전 여요전쟁에서 귀주대첩이야말로 자랑스러위해도 될정도의 회전 스케일입니다.
17/02/01 07:37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전쟁과는 별개로, 1학설이 왜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17만 대군을 투입하고도 고작 저 조그마한 땅을 빼앗았다가 지키지 못해 대패하고 돌려줬다라... 그냥 저 지역에 17만을 살게 해도 바글바글할텐데 말이죠. 개다가 9성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사서의 내용까지 있는데 겨우 저 영역을 가지고 9성이라 주장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인데 혹시 식민사관의 잔재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17만 군사에 고려 국력 정도면 3학설 정도 되어야 납득이 될까말까 하거든요.
17/02/01 12:13
저도 3학설이 맞는거 같은데
" 멀어서 관리하기 힘들다. " 는 언급 때문입니다. 개경에서 전라,경상도가 먼거리인지 함경남도 일대가 먼거리인건지 당장 말타고 달려봐도 거리감각이 나올텐데요 여진민족이 돌려달라고 할 좋은 평야라면 러시아/중국의 국경으로 갈라진 항카호인근의 흥개평야 일대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17/02/01 12:53
3설이나 혹은 그 비슷한 위치를 주장할때 제일 문제가 바로 해당 본문에 나온 전투입니다. 일단 동북 9성의 경계는 공험진이라 그 위치에 따라 9성이 달라지는데...
"길주를 구원하러 가다가 공험진에서 패배했다." 는 건데, 지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3설의 공험진 위치와 길주의 위치는 엄청난 거리 차이라 이게 뭔가 말이 잘 안맞거든요. 참고로 공험진이 회령 혹은 그 근처라는게 널리퍼진게 세종대왕 때부터인데,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공험진 공정' 주작을 시도 한게 아닌가 하는 말도;; 1학설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가지 이유가 앞서말한 "길주를 구원하러 가다가 공험진에서 패배했다." 는 것 떄문에, "그럼 당연히 공험진은 길주 이남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 는 겁니다. 순암 안정복이 그런 말을 했는데 앞서 말한 공험진이 회령에 있다는 설에 대해서는 세종에 주작했다고 은근히 돌려까기도... 그게 아니라면 성호 이익의 경우는 아예 "실제 동북 9성 위치는 이러저러하고, 저 북쪽에 공험진이 있다는건 실제로 거기에 뭘 설치했다기 보다는 가서 그냥 찍고 오고 거기에 뭐 하나 세워놓은거다." 라고 하는등... 여러모로 말이 많습니다.
17/02/01 08:13
좋은글이네요. 윤관의 동북9성 축조는 배울때마다 항상 두루뭉술하게(게다가 위치도 불분명하다는 말과 함께) 서술하고 또 힘들여 뺏은영토를 다시 어이없이 반환했다는점이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중세라고 할수있는 고려시대에 17만 병력이라면 정말 덜덜하네요. 유럽이었다면 한 국가의 십자군병력으로만쳐도 굉장히 많은 규모의 군대네요 크크 그리고 둘다 희대의 뻘짓이었다는것도 공통점일지도
17/02/01 10:26
하긴 인종이 즉위하고 금나라가 사대를 요구했을 때 다른 사람도 아닌 척준경이 사대에 찬성했던 것만 봐도 뭔가 있었던 거죠.
그 시절에 최전선 주력 7만이 전투 한 번에 날아갔으면 후덜덜덜;;;;
17/02/01 11:12
왕께서 죽으라 보낸 전장에서 살아돌아왔으니....
라는 도깨비의 무대는 저곳이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숙종은 강성해진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귀족자제들로 이루어진 별무반을 만들어 사지인 북방으로 몰아넣을 계획이었으니까요...
17/02/01 11:43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저 동여진 땅은 원래부터 여진족이 살던 터전이었던 건가요? 아니면 여진족이 고구려 멸망 등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이용하여 저쪽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인가요?
17/02/01 12:35
이 전투 이전에 강성해지는 여진족 완안부와 고려군이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다가, 본문에 나온 석적환의 군대를 임간이라는 장수가 공을 탐내 함부로 공격했다가 오히려 역공을 받아 군대 절반이 궤멸 당하는 대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이때 패배한 아군을 단신으로 구원하면서 등장한 사람이 척준경)
완안부가 영향력이 커지는것도 신경 쓰이는데, 마침 야만족 정도로 여겼던 여진족에게 당한 패배가 너무 충격적이라 당시 왕이었던 숙종이 먼저 선빵을 날려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별무반을 창성한게 원인입니다. 마침 수도를 천도하려다가 실패했던 숙종이 그 울분과 정력을 모조리 북벌 준비에 동원했고(기록에 따르면 아예 잠도 안 잘 정도로 여기에 몰두했다고..) 이렇게 말년의 숙종이 나라 전체의 힘을 기울여 준비하던 사업을 이어받은 예종은 선왕의 유지를 잇는 차원도 있어서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래도 전쟁이 1년이나 갈지는 상상을 못했고, 적당히 여진족 쫒아내고 성 지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후에 나라 살림도 말이 아니게 된 상태에서 대패를 당한 뒤, 여진족이 알아서 숙여오자 낼름 동북 9성을 돌려준 겁니다. 완안부가 위협적이기 전에 먼저 견제한다는 의도 자체는 확실히 좋았을 수 있으나, 문제는 과정에서 여러 만행으로 완안부 이외의 여진족들에게도 적대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동북 9성을 설치한 방어라인도 사전 정보 부족으로 엉망으로 축성했던게 패착이었습니다.
17/02/01 12:08
잘 읽었습니다.
다만 여진은 원래 함경도 일대에서 살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보면 언급하신 [당장 거기서 살고 있던 여진족 입장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내 집과 내 터전을 빼앗아간 침략자" 를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워 불굴의 의지로 항전한 끝에 마침내 승리를 거둔 일이었다] 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려울듯싶은데요 당장 고려 왕건이 정한 국시도 북방영토 회복 이었고 함경도 일대의 영토의 원래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 고구려시절에는 여진민족이 신라,백제와의 사이인 강원도 일대로 이주해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발해시절에는 대 일본 무역창구역할을 하였던 함흥,흥남인데 이 일대가 모조리 여진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것도 의문이고..
17/02/01 12:27
고구려, 발해는 수백년전의 이야기인데 못해도 수대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이 무렵 여진인들에게 "우리가 고토를 회복해야겠으니 우리 땅에서 나가라." 라는 건 당황스러운 이야기겠죠. 최소한 여진인의 입장에서 당시 양민 학살하고 마을에 불 지르던 고려군이 "내 땅을 뺏어간 적들" 이 아니라면, 거꾸로 생각해면 집이 사라진 여진인들이 이제 어디서 사는가 생각해보면 되는 일입니다.
다른걸 다 떠나서 그게 고려가 동북 9성 공략에 실패한 큰 원인 이유 입니다. 완안부는 그렇다치고, 고려에 우호적이었을 수 있는 갈라전의 여진족들을 불러서 암살하고 양민학살하고 불을 지르는 식으로 대응하니, 이들이 완안부에 적극협력해서 현지의 상황을 흡사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7년차 같은 상황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실제 갈라전의 여진족 중에서는 완완부의 공격 등에 몰려 고려로 귀순해오는 사람들이 있는등 반 완완부, 친고려파 등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장 암살과 양민학살 등으로 투항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던 여진족들도 전부 적을 돌린채 여진족이 옥쇄 각오하고 완안부에 협력해서 싸워 결국 전쟁이 실패하게 되었으니... 물론 고려 역시 이 땅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할 명분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있긴 할겁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갈라전의 여진족이 죽을 각오로 싸우게 된 '동기'인 "내 터전을 뺏어간다."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17/02/01 15:21
발해의 주요 민족 구성은 말갈족이였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수도 근처에 거주했지 그 나머지 지역대부분은 말갈족들이 살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조영 자체가 고구려화된 말갈인입니다.
17/02/01 15:44
발해문제 관련해서는 재일교포 역사학자 이성시의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발해시절 말갈족은 단순히 대씨 왕가의 신하가 아니고, 사실상 반독립세력 복속세력에 가까웠어요. 소수의 고구려 고위층과 다수의 말갈족 중하위층으로 구성된 나라가 발해였습니다.
17/02/01 14:21
솔직히 옛 고토 운운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게 요구한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거기에 현대적 영토개념이 나온게 백여년도 안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도둑놈 심보죠. 고려가 여진족을 사람 말 하는 짐승으로 생각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처럼 추한 역사인데 이걸 감추고 일본의 제국주의 미화를 비판하면 사실 다른나라에서 비웃을 일이죠. 우리부터 부끄러운 역사들도 숨기지 않고 가르쳐야합니다.
17/02/01 15:47
아무리 국력이 강하다고 그래도, 17만 대군의 원정은 무리였지 않았나 싶네요. 점령 후에 사민을 한 것도 아니고, 지역에 사는 토착민들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데다가, 토착민들에게 우호적인 외부의 적까지 있는 상태에서… 거기다가 지형조차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 아니라니?! 리스크가 크고, 또 중간에 그만두기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원정이 아닌가 싶네요.
17/02/01 19:47
잘 읽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1학설은 너무 터무니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거 먹으려고 중세시대에 17만을 보냈다는게 말인지 방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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