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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07 08:11
감사합니다 저도 다 정리되서 맞췄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사실 뜯어보면 뜯어볼 수록 엉성하고 모순덩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무언지 생각해 보려다 보려다 긁적여 본 겁니다
16/07/07 02:01
헐 한달전쯤 본것 같은데 벌써 올라오네요..
정글북 이후로 볼 영화가 없어서 영화관을 안 갔는데, 전 또 내부자들처럼 확장판 같은게 재개봉한 줄..흐흐
16/07/07 03:33
"맞아요 감독의 인터뷰를 제 입맛대로 해석해서 글을 쓴 것에 가깝습니다.
어떤 의심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영화 내용 전체를 그 의심에 맞춰서 제 멋대로 끼워맞추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내용이 바로 저 같은... 의심이 생기면 거기에 다른 모든 것을 끼워맞추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 것 같아요."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45613 전 위 리뷰에 달린 이 댓글이 곡성이라는 영화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 모를 효진의 귀신들림과 외지인, 무명, 일광에 대한 종구의 의심은, 비개연적인 서사와 이를 개연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감상자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성이 은유하는 알고리즘 자체가 곡성의 주제이고 영화적 체험을 영화 밖으로까지 넓히면서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게 이 영화의 이면에 숨겨진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쿠마도 니놈이 나를 악마라고 보기 때문에 지는 악마라고 말하죠
16/07/07 08:31
그렇습니다. 현혹하는 것에 의해서 미혹되는 이야기이고, 모두는 그런 존재이기에 부족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겨우 할 수 있는게 악해지지 않기 정도(부제) 인게 아닐까 말해보려 하는 것 같습니다.
16/07/07 04:48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저는 아주 표면적인 결론, 이른바 무명은 수호신, 외지인은 악마, 일광은 악마의 하수인, 나머지는 모두 피해자. 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두 가지 때문인데요. 하나는 종구가 외지인을 차량으로 치었고 절벽에서 굴렸다는 것이 '외지인을 살인했고 그 것은 죄' 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무명의 마지막 대사 '니 딸의 애비가', '효진이? 요만한 애?', '걔 아빠가 의심하고, 죽일 마음을 품고, 죽였다' 라는 겁니다. 이 것들은 이미 에버그린님이 소개한 분석글에 나온 내용입니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무명에 대해선 확실한 선, 외지인에 대해선 악이라고 확실히 대답하지 않았죠? 일광은 확실히 악의 하수인입니다. 처음부터요. 외지인은 처음엔 귀신을 쫓는 무당이었으나 후에 악의 하수인으로 변합니다. 바로 일광의 살에 의해서죠. 그 살굿에는 외지인, 무명, 효진이가 모두 대상입니다. 그 당시에 외지인은 자동차 안의 시체에게 귀신이 씌이지 않게 하는 중이었죠. 굿이 중단될 경우엔 부작용이 있죠? 그래서 시체는 좀비가 되었고, 외지인은 자동차에 치이고 절벽을 구른 후에 악의 하수인이 됩니다. 대장군에 못을 박을 때 외지인이 고통스러워 했잖습니까? 이 것을 그냥 교차편집일 뿐이며 관객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장치라는 것은...좀 시시합니다. 종구의 동료 오성복은 종구의 아내와 불륜에 있었으며 즉 효진의 친아빠입니다. 외지인의 집에서 그 죄가 기록된 사진들을 보았기 때문에 넋이 나갔으며, 효진이의 신발을 들고 나와서 외지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죠. 효진이를 오성복이 성폭행했다는 리뷰도 많지만..잘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오성복은 두려움에 떤 나머지 그 신발을 숨기거나 버리려 했을 것 같거든요. 외지인들의 그 사진들은 외지인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없어졌죠. 오성복이 두려움에 떤 나머지 일광을 접촉하게 되고, 오성복이 일광의 명령에 따라 그 사진들을 훔쳐오게 되며, 후에 정신이 나갔거나 씌였거나 해서 살인을 저지르죠. 결국 이 영화는 오성복의 죄가 큰 것입니다. 불륜 뿐만이 아니라, '의심 = 외지인이 사람들을 지키려 한 것을 의심' , '죽일 마음을 품고 = 외지인을 죽이고 싶었겠고' , '죽였다 = 집주인 할머니를 죽였죠'. 무명의 마지막 대사가 너무 이질적인데 여기에 의미가 없다면, 앞으로 저는 나홍진 감독을 믿을 수 없게 되겠다..이 말씀입니다. 정리하자면, 무명 = 수호신 외지인 = 처음엔 선한 무당, 후엔 일광과 악마에 의해서 악의 하수인으로 일광 = 악의 하수인 종구 = 효진이를 기른 아빠 오성복 = 종구 와이프와 불륜이었으며 효진이의 친부 제 생각에도 많은 헛점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이 영화의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완벽하진 않기때문에... 저도 어제 처음으로 봤고 리뷰들을 읽어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내일 쯤에 한 번 더 보려고요.
16/07/07 08:35
댓글 쓰신 분의 영화에 증거로 검증되지 않은 의혹은 오성복의 효진 아버지설이고, 저의 그러한 완벽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위에 쓴 바 몇개의 가정이구나 하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가장 상황을 판단하고픈 욕망에 사건을 접근해갑니다만, 하나의 정답이 없겠지요...
16/07/07 05:49
*강력스포*
1.외지인은 둘로 나눠야합니다. *하나는 귀신 하나는 사람입니다. *일본인 집을 찾아가서 종구가 만나는 일본인과 굿하는 일본인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그냥 사람은 아니고 예수(메씨아)같은 존재입니다. 죽은자를 부활시키려하고, 효진을 대신해서 정승(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죠. *나머지는 모두 귀신입니다. 곡성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만들어낸 망상입니다. 다시말해 일본인귀신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 인물은 의심을 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종구의 눈에 일본인(귀신)이 언제 등장하는지, 일본인(귀신)이 등장하고 종구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시면 아주 재밌습니다. 2.검은색(어둠)은 의심을 상징합니다. 개, 까마귀, 탄자국, 어두운 공간, 카메라등등 영화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검은색의 것들이 등장합니다. 정말 소름돋을정도로 감독은 이 검은색에 집착하는데 검은색은 의심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시커멓게 엉망이 되고나서 종구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3.카메라 검은색 카메라이니 의심과 관계가 있는 물건입니다. 마지막에 일본인이 부제에게 이야기하죠. "너는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의심은 확실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해서 객관적인 근거들이 뒷받침 될 때 그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하는사람은 의심을 먼저 사실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확신한 의심이 사실이라고 뒷받침하는 근거들'만' 찾지요.(타진요 친구들을 생각해보시면 딱입니다.) 카메라가 이를 상징합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신이 찍고 싶은 것들만 찍어내는 수단입니다. 카메라는 의심을 이미 확신하는 사람이 의심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찾는 수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4.다리를 저는 종구 무명이 이야기하죠 다리를 저는 일본인(귀신)이 귀신이라고. 종구가 일본인(사람)에게 악한 행동을 한 뒤에 다리를 저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종구가 귀신(일본인)의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해 귀신에 홀렸음을 암시하죠. 여기서 나아가 관점을 전환해야합니다. 효진이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니라 귀신에 홀린 종구가 멀쩡한 효진이 귀신에 홀린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이미 종구 눈에는 멀쩡한 일본인(사람)이 귀신으로 보입니다. 정상이 아니죠. 의심하는 사람 눈에는 의심되는사람이 의심하는 짓거리를 하고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내가 바람을 핀다고 의심하는 남편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아내의 행동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요. 집에 늦게 들어오면 다른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으면 다른남자와 전화하는 것으로 보이구요. 효진의 방을 수색하다가 딱걸린 종구에게 효진이가 말하죠. 쳐다보지말라고 씨x놈아 종구의 시선에 문제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5.효진이 멀쩡하다고? 그렇다면 왜 멀쩡한 효진이가 식구들을 다 죽여버릴까요? 사실 효진은 처음에 종구와 식구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만 후에 의심하게 되었고 귀신에 홀린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명이 효진을 정확히 구별해서 이야기하는게 이를 암시합니다. "요만한애?" 와 "효진이?"로요.(하나는 귀신, 하나는 그냥 효진이) 그렇다면 왜 효진의 눈에는 종구처럼 일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걸까요? 영화는 대부분 종구의 시선을 따릅니다. 효진의 눈에만 보이는 일본인이 종구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하지만 효진의 눈에 일본인이 나타났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종구와 효진이 끌어안는 병실장면입니다. 이때 효진의 시선은 카메라쪽 그러니깐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들을 향하고 있어서 효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카메라가 뒤로 서서히 물러나면서 병실밖의 어두운 공간으로 점차 이동하죠. 어둠이 의심을 상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때 일본인이 등장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죠. 기네요. 이 정도면 곡성의 진실을 대강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6/07/07 09:15
말씀하신 내용에 대부분 공감합니다. 5번은 조금 모르겠네요. 사진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신게 특히 공감가구요. 감독이 미끼를 던져서 뭐가 걸릴지 모른다고 일광은 말했지만, 사실 낚기 위한 대상에 따라서 미끼는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거대한 떡밥을 감독이 다양 다중한 물고기에 던져서 걸려 먹게 하고,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에게 너는 고래가 아닌 물고기니까 낚시에 걸린 걸 재수없다고 남들도 다 그렇다고 위안삼으렴 하는 듯 느껴집니다.
16/07/07 09:22
제 생각에는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해석과 관점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감독도 그렇게 의도하고 만들었구요..
그중에 한가지는 이 영화는 신에 대한 영화라는겁니다. 신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죠. 인간을 사랑하는 얼굴과 인간의 잘못에 엄중하게 벌을 내리는 얼굴. 천사와 악마도 시작은 모두 한몸이였습니다. 기독교의 야훼는 사실 구약성경만 보면 선한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서운 신 아닙니까. 제가 보는 관점은 이 영화는 계속해서 신의 두가지 얼굴을 대립시킨다는 것입니다. 우선 무명 vs. 일본인이 신의 두 가지 얼굴을 상징하죠. 무명은 토속신 같은 개념으로 마을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구약의 야훼가 유대민족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보호하듯이.. 사실 다른 민족도 야훼가 만드신건데 아주 무자비하시죠. 일본인은 악한신이 아니고 그냥 신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신일 뿐이고 마을의 부정함을 보고 벌을 주려고 합니다. 일본인과 피해자 여성중에 한명이 대화하는 씬을 잘 보시면, 유부녀인 그 여성이 일본인에게 먼저 교태를 부리죠. 그리고 일본인은 벌떡 일어나 그 여성에게 음탕한 xx같으니..라고 화를 냅니다. 일본인이 누구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유일한 장면이죠. 리플에 있는 오유 해석을 보면 종구 동료가 효진을 강간한 것으로 보시던데요.. 그렇든 아니듯 마을에 부정이 있고 그 부정에 벌을 줄려고 하는거죠. 하지만 이렇게 벌을 준다고 해서 일본인이 악마인건가요? 마지막에 동굴에서 일본인은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손바닥의 못자국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 또는 도깨비의 형상을 한 모습입니다. 손바닥의 못자국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이는 댓가없는 무한한 사랑, 신의 선한 얼굴을 상징하죠. 전 이장면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나를 악마로 생각하고, 그것을 확인하러 온 사람에게 알려주는거죠. 나는 선한 신이자 악마이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 너희들이 신을 선한 신으로 생각하면 그 모습으로 다가갈것이고 악마로 생각한다면 악마가 되는 것이다. 감독은 기독교 신자입니다. 외부의 항거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메르스 같은) 가까운 지인이 죽음을 당했고, 그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모든것이 신의 뜻이라면 왜 신은 그 지인을 보호해주시지 않았는가? 아니면 그 지인은 벌을 받은 것인가? 왜 신은 용서하지 않고 벌을 주신것인가? 신의 모습은 과연 어떤것인가?
16/07/07 10:05
말씀하신 내용이 대체로 제가 본 바와 비슷하십니다! 한가지 일본인과 동네아줌마 소문 속의 내용 부분만 빼구요.
중세 페스트를 피하러 교회에 다 함께 피신했다가 횡액에 만나거나, 애기들 더 건강하게 하겠다고 가습기 살균을 하다 횡액을 당하는 우리네 모습은 스스로를 지켜 나가기 참 힘겹게 하는 듯 합니다. 욥기의 욥이 당한 횡액 속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는게 말이 되는가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네요.
16/07/07 09:29
그리고 일광을 단순히 악마에게 씌어서 하수인 노릇을 한다고 보기에는
영화에서 일광의 모습(혹은 연기)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일광의 영화에서 모습은 정형적인 오컬트 영화에서의 퇴마사 모습입니다. 확신에 차있고 싸가지 없죠. 관객을 속이기 위해 굳이 이런 모습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꺼라고 추측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신이란 인간의 믿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마지막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믿음이 존재해야지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무명이 세번 닭이 울고 가야지만 구할수 있다고 애기하는것도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왜 닭이 세번 울고 가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죠.
16/07/07 10:13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번 배반할 것이다 라고 미리 예언해 놓고 거기에 빠져들게 되는게 성경구절 아닌가 합니다. 근데 영화는 세번을 참으라고 했으니, 조금 변주된 것 같긴 합니다.
종교의 핵심인 '도그마'는 이성을 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구촌에는 삶의 매우 큰 준거로 그것을 심히 삼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종교적 극단주의자 등) 문제가 끊일 수가 없겠지요...
16/07/07 11:39
이런 류의 영화(물음표 가득에 찜찜함 남는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지만, 올레티비 쿠폰 있는 김에 보태서 봤는데..
설마 완전 오컬트는 아니겠지, 오컬트로 밀고나는 척 하다가 뭔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끝~ 어후..;;; 이후 예전 개봉 시의 해석글이나 감독 인터뷰나 다 찾아봤는데도 '아.. 그랬던 거구나' 하는 느낌보다는 '왜?? 진짜??' 계속 의문점만 늘어가서 살짝 다른 의미의 불쾌함이 따라다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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