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은 두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다루지만 영화의 시선은 "일반인"에 더 가깝다. 로렐과 스테이시가 누구인지, 이들이 어떻게 연애를 하게 됐는지 소개를 마치면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들이 마주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초반부가 지난 후 이야기를 끌어가는 가장 큰 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렐이나 스테이시가 아닌 로렐의 동료, 데인이다. (저 험상궂은 마이클 섀넌이 저리도 나이스 가이를 연기하다니!) 영화는 그의 눈을 빌어 로렐 커플의 멜로드라마를 들려주고 현실의 투쟁을 겪게 한다. 때문에 영화는 두 커플의 실질적인 삶과 사랑의 문제가, 이 둘을 대표로 한 성소수자들의 싸움과 다소 이분되어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쩔 수 없다. 로렐과 스테이시는 정작 이 싸움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병실만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어야 할 두 인물의 삶은 정치적 당위를 위한 신파적 재료로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
<로렐>의 가장 큰 약점은 누구에게나 먹히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보편성을 너무나 열심히 강조한다는 점이다. 로렐과 스테이시는 자기들 입으로 말한다. 자기들은 게이 결혼의 법제화에 아무 관심도 없고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으려 경계한다. 이들을 돕는 게이이자 변호사인 스티븐은 다소 급진적이고 정치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게이의 스테레오 타입인 여성스러운 남성으로서 코메디 감초로 소비된다. 로렐은 끝까지 equality라는 단어에 고집한다. 스테이시는 자신의 무지를 강조하며 "그래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논거로 쓴다. 그리고 이 모두를 관찰하며 그 안에서 가장 적절한 주장을 펼치는 데인이 있다. 그는 레즈비언인 로렐을 이해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이들을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스티븐 일행의 단점을 지적할 줄 알고, 경찰로서 카운티 의원들을 압박하기도한다. 이들의 승리에 가장 큰 공을 세울 뿐 아니라 모두를 관망하고 이해하며 일침까지 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게 마땅히 게이스러워야 할 이 영화의 특수성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 라는 보편의 강조는 역설적으로 다름을 알고 나야 발견할 수 있는 다르지 않음의 지점을 뭉툭하게 만든다. 반대파들을 전형적인 소인으로 그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나, 첨예해야 할 갈등을 영화는 고리타분한 행정주의로 그리는 데 그친다. 이 영화는 대립하는 주장들의 도덕적 우열이 이미 정해져있을 정도로 반대파의 논거가 허약하고 현실적 고난과 이를 이겨내는 과정 역시 무난한 감성모금으로 흘러간다. 당신은 끝까지 냉혈한이자 차별주의자로 남을 겁니까? 라며 호소하는 방식의 인간승리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마냥 완성도만으로 따질 순 없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고, 김조광수 부부의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오늘의 현실에서 동성커플이 어떻게 법적 권리를 쟁취하게 되었는지 쉽고 따뜻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영화는 의미가 있다. 여자가 여자라서 더 낑낑대야 하는 현실 역시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아직 멈춰있는지, 어떻게 한 발자욱 더 나아가게 되었는지 <로렐>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형적이지만 가짜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화라는 배경이 이 영화를 충분히 극적으로 만든다.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로 영화의 밀도를 꽉꽉 채운다. 특히나 엘런 페이지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아마 이런 이야기에 익숙하거나 그 정체성을 겹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찰랑이는데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으로 차별당할 걱정을 할 필요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와닿을 이야기다. 모든 사랑이 <캐롤>이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처럼 특별하게 그려질 수는 없는 법이다. 선의와 책임감을 되새기길만큼 영화는 반짝이고 아프다. 무관심했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관심이 있었더라면 소소한 행동에 이어질 수 있게끔 입문서로서도 가치가 있는 영화다. 우리도 데인처럼, 혹은 데인이 호소했던 그 누군가의 입장에서 로렐과 스테이시를 닮은 누군가를 스쳐가며 살고 있다. <로렐>을 보고 잠깐이라도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들의 현실을 상상할수 있다면, 그걸로도 이 영화는 자기 일을 다 해낸 것이다. <로렐>을 보고나면 누군가를 더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아름다움이 다르지 않아서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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