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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11/13 03:07:13 |
Name |
몽땅패하는랜 |
Subject |
어떤 잡생각들-_-;;;; |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시작되는 하루를 설계하며,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어쩌면 어둠을 걷어내는 휘황함에 눈부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막 성적을 내고 이름을 얻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심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뭐야....저거....무서워"
이윤열 선수도, 최연성 선수도, 마재윤 선수도, 그리고 김택용, 송병구도 처음 등장할 때 이미 빛을 내기 시작했다.
중천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쳐다보는 마음은 어떨까.
한여름의 혹서를 더욱 강조하듯 이글거리는 태양빛. 사람들은 감히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늘 한복판에서 위용을 떨치는 태양은 모든 이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본좌 논쟁, 최강자 논쟁, 검증 검증....말은 많지만 대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겉으로는 인정을 못한다,
라고 주장해도 심정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둑 쪽으로 이야기하자면 조훈현은 분명 무리수, 공갈수, 협박수를 구사하면서도 세계최강이었고
이창호는 싸우지 않고 계산서를 뽑아내며 최강자로 군림했다. 이세돌 역시 현란한 감각으로 세계강자들을 떡실신-_-;;;
시켰다.
그렇다면
저물기 시작하는, 빛을 잃어가면서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는 감회는 어떨까.
서서히 물러서는 뒷모습을 보이는 거인의 등 뒤에서 그를 보내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며, 어떤 느낌을 가질까.
촛불은 꺼지기 직전 가장 밝은 빛을 낸다. 최윤 씨의 <회색 눈사람>의 감동적인 문장처럼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다(당연히 정확하진 않다;;;;)"
사실은 유창혁 사범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유창혁과 서봉수. 당대의 바둑영웅이었지만 또 다른 천재들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비운의 영웅들.
그런데 때를 놓쳤다,ㅜㅜ. OTL
삼성화재배 8강에서 유 사범님은 중국 강호 구리에게 석패했다.
응원했어야 했다. 적어도 대국일자는 알아놓고 전날 어설픈 응원글이건 구호건 남겼어야 했다.
승리와 패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유 사범님이, 유창혁 九段이 아직도 한칼을 가지고 있음을, 사람들이 그를 그저 "흘러간 강자(환상의 커플 등장인물 아님-_-;;;)"
로만 생각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이미 시효가 만료된 묵은 글을 굳이 다시 쓰는 이유는 말 많고 탈 많은 스타프로리그의 한 팀을 위해서이다.
공군 ACE. 그리고 ALL FOR ONE 가운데 유독 내가 좋아하는 THE ONE을 위해.
1. THE ONE
나는 저질 임빠다 -_-;;;;
아직도 질레트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준과의 최종전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때 박성준 선수는 정말 무서웠고 대단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무참하게 이겼지만 그 때문에 박성준 선수를 좋아하게 된 희한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오프는 막장을 탔다.(내가 오프 가면 지는구나 OTL.)
공군이 한참 연패에 빠질 때, 임요환 선수는 "연습할 시간과 상대가 정말 부족하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임요환 선수에게 24시간 딴거 말고 연습만 해! 상대는 얼마든지 붙여 줄께(최연성이건, 마재윤이건, 김택용이건!!!!)라는 식의 특전을 베풀어도
자신의 연습이,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승패를 떠나서, 임요환 선수는 역시 "연습이 부족해, 실력이 부족해"탓을 할 것이다.
사실, 임요환 선수만 그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모든 선수들이 적어도 승부를 내야하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카드.
하지만 내놓을 것이 그것밖에 없는 카드.
공군팀에서 임요환의 위치는 어쩌면 이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것이다.
모처럼 연승을, 그것도 1년에 한번 터지는 물량-_-;;;으로 이겼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나 혼자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流水不爭先(유수부쟁선)이라는 말이 있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늙거나, 쇠약해진다.
물이 흐름을 거부하고 머물러 있으면 탁해진다.
흘러갈 것은 흘러가고 밀려오는 것은 밀려와야 한다.
솔직히 임요환 선수가 한번 더 우승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난날처럼 경기를 지배하는 황제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들다. 마지막 불꽃의 장렬함이 거기엔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글쎄.....만약 임요환 선수의 마지막 경기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결승전이 아닌, 챌린지 예선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처럼 응원할 수 있을까.
패배로 끝난다면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웃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말 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마웠어요.....정말 고마웠어요....그리고 게이머가 아니더라도 꼭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그러나 그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다.
요기 베라의 말처럼 "끝나기 전에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저 임요환 선수가 마지막까지"THE ONE"으로 남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2. HEART & SOUL
한빛 스타즈는 정말 매력적인 팀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승부사의 면모를 가진 이재균 감독과 묘한 개성을 지닌 선수들이 모여있던, 모여있는 팀이다.
(같은 무표정이지만 서지훈 선수와 변길섭 선수의 -_-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슬램덩크의 북산은 개성파 집단이다.
그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개성을 팀으로 묶어주는 것이 밖에서는 KFC 안감독님이고 코트내에서는 고릴라 채치수다.
산왕과의 시합에서 신현철을 의식하고 고전하는 채치수에게 라이벌이었던 변덕규는 말한다.
"북산의 혼은 채치수 너다!"
"너에게 화려함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강도경 선수는 한빛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거만 저그니, 연예 스타 게이머니, 스타실력보다 말빨이 앞선다느니 말은 많았지만
강도경 선수가 있을 때 한빛은 강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공군에서의 강도경 선수에게도 감히 그것을 바라고 싶다.
또 슬램덩크 이야기 하나.
정대만과 채치수는 농구부 입단 동기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묘한 경쟁관계로 굳어 있었다. 두 사람 다 팀을 지배하는 것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묘하게 껄끄럽던 정대만과 채치수.
그러나 산왕전에서 둘은 채치수의 스크린에 이은 불꽃 3점슛 콤보로 시합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그때 둘을 바라만보던 권준호는 생각한다.
"3년....3년만이다. 둘이 하나로 뛰는 모습, 저것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임요환 선수와 강도경 선수가 한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두 선수의 팀플을 보자는 것은 아니다 OTL
대외적인 공군의 얼굴이 임요환 선수라면, 팀내의 심장과 영혼은 강도경 선수가 되어야 한다.
코치역할이 아닌, 질때 지더라도 승부사 특유의 독기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게이머 강도경 선수가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은 언어유희에 가깝다.
패배는 정말 아프고 쓰라린 고통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패자는 분명 존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홍진호 선수의 눈물이 있었기에 서지훈 선수의 "엄마 사랑해요"는 더욱 돋보였다.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심장은 뛰고 영혼은 살아있다.
강도경 선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멋진 경기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3.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재훈 선수.
당신의 눈에선 항상 슬픔이 묻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이들에겐 졸린 눈, 한량토스라고 이야기되는 조금은 흐릿한 눈빛.
그 눈빛에 묻어있는 이슬의 느낌을 뭐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만의 오바감정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어쩐지 당신의 눈빛에선 항상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것도 슬픔이라는 어두움으로 다가옵니다.
입대하자마자 얼마 안되어 겪은 큰 가족사적인 불행탓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 말씀만 드리고자 합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잘라내고 당신에게 따라붙는 "샤이닝 토스"의 휘황한 빛을 다시 한번 보여주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프로게이머는 1년이 10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최연성의 독재도, 마재윤의 화려한 독창도 1년여를 넘기지 못했다.
절정이 끝나면 남는 것은 내리막길.
그러나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그들의 삶이, 게이머로의 삶과 더욱 중요한 그 개인의 삶이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패배를 불러올 수 있듯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로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공식경기에서 패배를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는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프로게이머로 등록되어 공식 첫경기를 가지는 신예도
은퇴를 마음먹고 마지막 경기를 갖는 노장도
마음속엔 "승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경기를 할 것이다.
다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다.
게임은 끝나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저무는 해의 쓸쓸함보다는 마지막까지 하늘을 물들이는 아름다움으로 그들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군팀을 비롯한 모든 프로게이머들에게 행운을 기원합니다.
*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는 홍기선 감독 조재현 주연의 92년 영화제목입니다
** 평어체와 경어체 섞어찌개가 되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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