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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15 02:38:36
Name 잉크부스
Subject [일반]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들이 태어나던날.
난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직 얼굴조차 본일이 없는 생면부지 남 아닌가?"
라며 애써 이상하리 만치 냉정한 자신을 달래 보았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에도 난 아들보다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다.
지치고 충혈된 눈빛으로 와이프는 말했다.
"내 배 누르던 X 어딨어.."

그랬다. 조금전 분만실문에 있던 작은 창으로 봤던 풍경은 간호사가 아내의 배에 올라타 CPR을 하듯이 온힘을 다해 배를 밀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라고 해당 간호사를 찾고 있는데
의사가 불쑥 양수에 퉁퉁 불어 외계샘명체 같은 아이를 건내며
"탯줄 자르세요.." 라고 말했다.

아들을 처음본 순간 나는 왠지 인사를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제가 하윤씨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미친놈으로 몰리는것이 두려워 마음속으로 건넨 인사말이었지만
정말 마음속으론 인사를 해야되지 않을까. 그런생각을 했다.
나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몇시간이 지나 하윤씨는 붓기가 빠져 제법 사람꼴을 하고 유리너머에 다른 아이들과 누워 있었다.
뱃속에서의 인연인지 본능인지 아내의 아들에 대한 애착은 이미 생성되어 있었고
나는 스스로 왜 나에게는 피붙이에 대한 애착이 생성되지 않는 가를 불안한 마음으로 곱씹고 있었다.

그렇게 육아가 시작되었고.
하윤씨는 좀처럼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나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배가고픈건지.. 어디가 아픈지..
그냥 울기만 함으로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다고 나름의 프로토콜을 만들어 순서대로 점검하며
아들님의 비위를 맞추고..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여 순조롭게 불편함을 제거했을때는 꽤나 큰 성취를 느끼기도 했다.

어떤날을 너무 심하게 울어서
"어쩌라고~!" 하며 거칠게 포데기에 내려논 일화를 가지고
아내는 내가 아들을 던졌다고 우리부모님에게 투고를 하여 나를 미친 폭력 아버지로 만들기도 했었다.

잔병치레 없이 커가며 옹알이를 시작한 하윤씨는
어느덧 나와 친구가 되어 있었고. .
아내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프레디라는 프랜드 데디의 준말을 듣고
"뭔 아빠가 슈퍼맨인줄 아나봐?" 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어느덧 프레디가 되어가고 있었나보다.

미운 내살이 되던해 하윤씨는 부모의 모든 권유와 요구를 거절하는 비행청소년이 되어있었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인간의 첫 사춘기는 4살에 온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어머니 무덤을 강가에 만든 청개구리는 4살이었음이 분명하다.

아내는 그런 아들과 엄마의 자존심을건 감정 싸움을 시작 하였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끝까지 말을 안듣는 하윤씨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그래 남자는 자존심이지.."

"너는 훈육을 해야지 왜 애랑 자존심 싸움을 하냐?"
"아들한테 키베 이기면 행복하냐?"
라고 했다가 그날 밥을 굶을뻔하기도 했지만.
왠일인지 나는 하윤씨의 힘겨운 자존심 지키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아빠가 편을 들어주면 하윤씨는 아빠에게 안겨서 눈물을 훌쩍거리곤 했지만
졸려움이 밀려오면 아빠를 발로 차버리고 엄마에게 달려가버리는게 일상이었고.

속좁은 아빠는 왠지모를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냥 엔조이 였구나..."

이제 5살이된 하윤씨는
훈육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가끔 혼이날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를 이렇게 쳐다본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어?"

저녁 노을이 지던 어느날 저녁 하윤씨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던 나에게
하윤씨는 먼 하늘을 응시하면서 우수에 잠긴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화를 안냈으면 좋겠어.."

아.. 응? 어?
나는 다급하게 변명조로 말했다.
"어.. 그 그건 말이지 아빠가 화를 냈어?"
하윤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 화냈어.."

"어.. 아빠가 화낸건.. 그러니까.. 음.. 실수로 그런거야."
"아빠가 하윤이가 잘못해도 화를 내면 안되는데.."
"실수로 그런거야.. 이제 화안낼께"

그랬더니 5살이 막된 하윤씨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난 아빠가 화를 안내면 더 좋을거 같아."

"어.. 어 그렇지.. 화 안낼거야."
당황스럽기도 하고 드디어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라는 당혹스러움과
이놈은 나의 행실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이 머리를 스쳤다.

태어났을때 처음 본 그 하윤씨는 이제 나와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로 발전했고.
아내는 나에게 아들 바보 호구 아빠라고 부른다.
나는 사실 하윤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엄한 아빠가 될줄 짐작하고 있었었다.
정말 그럴줄 알았다.

아직 나는 하윤씨의 모든걸 알지는 못한다.
다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생의 남은 날 동안(담배를 끊으면 아직 4~5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윤씨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될것이고 즐거운 일과 슬픈일을 함께하게 될것이다.

요즘들어 혹시 가능하다면 다만 하루라도 더 하윤씨와 함께할수 있기를 바란다.
(담배를... 끊어야......되는데....)
피붙이로서의 애정도 중요하겠지만.
함께한 시간의 무게로서의 정을 조금이라도 더 쌓아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윤씨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아빠가 왜 하윤이 좋아하는줄 알아?"

그럼 아들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이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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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16/08/15 02:44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하시네요..

3살4살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데 항상 생각합니다.

내가 얘네들을 하루라도 더 웃게 해줘야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cafferain
16/08/15 03:02
수정 아이콘
좋은 아빠시네요. 아드님이 벌써 아는가보네요.
돌아온 개장수
16/08/15 03:36
수정 아이콘
이런거보면 전 역시 좋은 부모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잉크부스
16/08/15 10:22
수정 아이콘
경험상 좋은 아빠가 되려는 강박은 오히려 해가되는거 같구요
아들을 미지의 생명체로 대하고 조심스럽게 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한결 편하고 쉽더군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언제나 한번은 처음이자나요
그러지말자
16/08/15 06:51
수정 아이콘
인류의 존속이 위험한것도 아닌데 왜 굳이 나까지 번식에 참여해야 하는가..하는 회의는 조카의 재롱에 쉽게 허물어지곤 하지요. 다만 내게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는 여자가 없을 뿐..
평화왕
16/08/15 08: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Faker Senpai
16/08/15 09:11
수정 아이콘
프레디란 표현이 있군요.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애 하나만 키우는 상황이면 아빠는 근엄한 아버지보단 같이 즐겁게 놀아주는 아빠가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올해 8살인 우리아들도 아빠가 화내면 싫다라는 표현을 했었고 그말을 들었을때 미안했었어요. 근데 어쩔때는 잘 안되요.
아들이 부탁해서 대신 전설의 포켓몬 잡아주다가 인내심을 한계로 엄청 징징냈더니 그래도 아빠가 잡아주겠지 하는 마음에 옆에서 참다참다...나중엔 그냥 나가버리더군요. 뭐 결국 잡아주긴 했습니다만 같이 놀다보면 왜 저도 애같아 지는지...
잉크부스
16/08/15 10:25
수정 아이콘
같이 애처럼 놀아주는게 더 좋을거 같아요
때론 아버지 처럼 때론 친구처럼
16/08/15 11:31
수정 아이콘
최근에 아버지와 나 라는 프로그램을 주욱 봤는데 느껴지는게 많더라구요.
때리면서 키웠던 추성훈 아버지도, 하도 밝아서 아버지와 사이가 무작정 좋았겠구나 했던 에릭남네 아버지도 한결 같이 후회를 하고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것을 보면,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깝다는 이유로 얼마나 폭력을 정당화했던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추가로 해당 시리즈에서 가장 신기하고+부러운 커플은 바비와 아빠였는데, 성인이 된 아들과 어떻게 하면 여전히 재밌고 진지한 얘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더군요. 제가 판단한 이유는 철저하게 서로를 타인으로서 존중하고 친구처럼 여기는 겁니다. 상대방의 의견과 감정을 친구들은 존중하고 이해하지 어떤 방향으로도 한 쪽이 경험이 많다 혹은 나이가 많다라는 이유로 강요하지 않으니깐요.
식탁에서 숟가락을 들고 춤추는 아들을 마주하며 밥을 먹으며 웃음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6/08/15 18:36
수정 아이콘
유쾌하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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