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야 거창하지만 12월 초에 시작한 PT는 이제 내일이 겨우, 고작 10회째이다.
원래 어릴 때부터 운동을 너무나 싫어했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나를 산으로 끌고 가셨고, 그래서 주말이 너무 싫었다. 먹는 건 또 좋아해서 10대때 돼지였고, 군대 시절 운동으로 살을 좀 뺐었다.(고 믿었지만, 알고 보니 그냥 굶어서 빠진 거였다) 그리고 제대 후 꾸준히 쪘다.
그렇게 살다가 운동을 하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 서너시쯤 되면 그렇게 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사무실 의자를 살짝 기울여서 꼭 20분 정도라도 자야 퇴근 시간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빡센 하루라면, 집에 가서 맥주라도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심각함을 느낀 건 만성피로란 게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을 받았을 무렵이었다. 푹 잤는데도 계속 피로하고, 이상하게 밤에는 불면증으로 시달릴 때가 많고, 수면이 부족해서 다시 일과 중 졸고... 악순환의 악순환이었다.
뭔가,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러다가 정말 어디 고장나겠다 싶었다. 운동을 하는 법은 모르기에, 예전부터 PT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단지 돈이 조금 부담스러웠지.
정말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화보를 찍기 위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였다. 큰 마음 먹고 PT를 등록했다. 집 근처에 있던 모교의 헬스장이 10회에 50만원으로 싼 축에 속했다. 다만 당장 마음 먹은 김에 하려면, 아침 이른 시간에 해야 했다. 이참에 잘됐다 싶어서 건강하게 살아보자 싶어서 질렀다.
두어 번 하고, 운동에 큰 감명(?)을 받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받는 PT날 외에도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헬스장을 무려 1년치를 끊어버렸다. PT하는 헬스장은 학교로 들어가야했고, 우리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PT를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PT평이 괜찮았고, 저렴해서였다. 그리고 시설도 좋고 환경도 쾌적한데, 그에 따라 헬스 등록비가 비쌌다. 현재 1년치 끊은 헬스장의 두 배 정도.
어쨌든, 일주일에 이틀은 아침 일찍 학교 헬스장에서 PT, 나머지날은 비슷한 시간대에 집근처 헬스장에서 PT에서 배운 거 복습.
그러기를 한 달.
요즘 내 하루에서 가장 설레는, 기다려지는 시간은 운동하는 시간이다. PT에서는 분명 적은 중량에, 50분 남짓한다고 느끼는데, 혼자 빡세게 1시간 반 하는 것보다 PT 후가 더 몸이 쑤신다. 자세가 안 잡혔으니 아마 강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분명 동료는 농담조로, '왜 돈을 써가며 고문을 받냐'고 하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고문이 즐겁다. 고문 후 몸이 쑤시는 것이 좋다. PT 날 외에도 혼자 꾸준히 다녀서 이제 슬슬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배기는데, 굳은 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을 때 그 느낌이 좋다. 변탠가.
스쿼트, 데드리프트, 풀업, 런지, 벤치프레스.. 뭐 이런 것들을 세트별로 한 바퀴만 해도 1시간이 넘어간다. 워낙 근육, 운동과 멀었던 사람이라, 한 달 남짓했는데도, 아 내 몸에 근육이란 게 있긴 하구나. 하체에 힘을 주니 뭔가 아주 미세하게 예전과 다른 굴곡이 생기는구나... 싶다.
사실 그렇다고 식단관리도 철저하진 못하다. 연말에 힘든 일도 있고 해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러나 운동을 빼먹진 않았다. 술냄새를 풍기면서라도, 트레이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침 7시에 피티는 꼭 나가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한 달임에도 불구하고 체감하는 정도는 컸다. 사무실에서 졸리지 않았고, 숙취가 별로 없어졌다. 무엇보다... 불면증이 사라졌다. 이젠 그냥 누우면 잔다.
요즘은 즐겁다. 앞서 말한 연말의 힘든 일도 어느 정도 지나갔다.
사실 큰 욕심은 없다. PT 강사 말마따나, 많은 사람들이 PT에 많은 기대를 한다고 한다. 10회 받으면서 살도 빠지고, 근육도 생기길 원한다. 그런데 살은 결국 운동보다 먹는 게 90이고, 근육은 10회 받고 근육 생기면 그건 뭐 ... 그 트레이너는 노벨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별 욕심은 없었다.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뭔가 꼬인 일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로잡고 싶었다.
한 번씩 의욕을 부릴 때면 트레이너는 트레이너답지 않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가며 내 의욕을 잠재워주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의욕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 같은 냄비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는 것도 잘 안다. 트레이너는 건강에 대해서만 얘기를 한다.
처음부터 그랬다. 난 육체적인 만족감보다 사실 정서적인 것이 컸다. 뭘 하든 한 시간 끙끙대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하루가 달라진다. 출근길 2호선에서 간신히 나도 간신히 올라탄 상황에서 어떻게든 타려고 하는 뒷 사람이 예전에는 미운 적도 있었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적어도 그런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한 번은 어서 타라고 내가 몸을 구겨가며 자리를 내어 가며 타라고 한 적도 잇었다. 예전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변화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출산률도 줄어들고, 독신남도 늘어간다. 30대 중반인데, 주변에 결혼한 친구는 결혼하지 않는 친구보다 적다. 나 역시 혼자 산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예전에 있었지만, 너무 어렸고 잘 안 되었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있어 베스트 파트너라고 당시에도 생각했고,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결혼을 했다. 이후 연애를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 잘못도 있었을 것이고, 상대도 잘못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쌍방과실이다.
마지막 연애를 2년 전에 정리하고, 예전만큼 연애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사람 관계에 적극성도 잃어가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했다. 나이가 들고 일상의 동선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정되고, 삶의 방향성이 조금씩 달라지니 자연스레 관계도 줄어들었다.
주말도 늘 한가했고, 무료했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사람들에 대한 적극성을 잃어가니 자연스레 자존감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삶이 힘들 뿐이었는데, 이젠 어렵다. 힘든 건 견디면 그만이지만 어려운 건 견딘다고 해서 쉬워지지 않으니까.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그랬을 뿐인데 벌써 3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뭔가 이룬 것도 없다. 주말 내내 집에 있다보면, 특히 금요일이나 월요일이 휴일인 경우 한 3일 내내 말을 안 하고 있다가 출근해서 일 얘기를 할 때 문장이 이상한 경우가 많아졌다.
외롭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기 위해 뭔가 다른 노력을 한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말 한 번씩, 내일에 대한 별 미련도 안 느껴질 때가 생기더라. 만약 내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술 한 잔 마시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정말 위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평일에 출근을 하고, 퇴근하고 남은 학위논문 작성을 위해 소논문을 쓰고, 공부를 하고, 뭔가 나름대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허함, 허전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지.
요즘은 그 허전함, 공허함이 없다. 그 자리에 운동이 들어왔다.
하루에 한 시간만, 러닝 10분, 스쿼트 50회 데드리프트 50회 풀다운 힘닿는 대로, 벤치프레스 힘닿는 대로, 마무리로 러닝 10분 또는 플랭크 견딜 수 있는 데까지. (물론 이렇게 다 하면 1시간 넘어가더라.) 이렇게만 하면 뭔가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그랬다.
물론 트레이너는 늘 주의를 준다. 그것도 한 때라고. 자신도 왕년엔(?) 운동이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당연한 이치일 터이다. 습관이 될 순 있지만 영원한 즐거움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면서도 계속 트레이너는 자세가 좋다고, 체력이 좋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트레이너가 맘에 들어서라도 10회를 더 연장하는 것을 언급했는데, 솔직히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했다. 지금 9회까지 한 것을 자세 제대로 해가며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내일 오게 되면 마지막으로 그간 한 자세를 한 번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고 했다. 물론 학교 헬스장을 계속 이용한다면, 자신한테 조언을 구해도 좋다고 했다.
4주 동안 식단 관리를 딱히 하진 않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가 3킬로가 빠졌다고 했다. 트레이너는, 한 주에 700~800 그램 정도 빠지는 게 제일 좋다고 했고, 그걸 목표로 계속 하라고 했다.
이게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늘 근시안적인 사람으로서, 그냥 일단 내일만 보고 가기로 한다.
내일 마지막 PT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