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들이 꽤나 활개친 이번 유로 2016에서 안타깝게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나라기는 합니다만 선수들이 귀국한 후에 카퍼레이드를 한 걸 보면 확실히 망외의 성과이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그 알바니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제가 붙인 게 아니라, 한 신문사의 기사에서 따 온 겁니다. 꽤나 역사가 오랜 편인(1958년 창설) 여행 전문 신문인 트래블 위클리(Travel Weekly)에서 이 알바니아를 소개하면서 "유럽 최후의 비밀"(Europe's Last Secre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거든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알바니아가 그렇게 조명받았던 적은 많지 않고, 알바니아가 현대의 모습을 갖춘 시기에도 북한과 동급의, 아니 때로는 북한보다 더하다고 평가받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는 그닥 달갑지는 않은 타이틀을 달던 시기가 꽤나 길었거든요. 뒤에서 차차 이야기하겠습니다.
여하간 이러다 보니 "뭐 알바니아? 지금 나 알바하냐고 물어봤냐?"(...) 하는 사람도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폐쇄적이라는 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외국인들의 손을 덜 탔다"는 이야기도 되는지라... 괜히 "유럽 최후의 비밀"이라고 이름이 붙은 게 아니죠. 영문 기사기는 한데 나중에 한 번 읽어보심이 어떨까 하여 링크도 남깁니다.
http://www.travelweekly.com/Europe-Travel/Albania-Europe-s-last-secret
일단 지도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중앙 하단에 붉은색, 그리스 북서쪽에 붙은, 세로로 길게 바다와 접한 나라가 알바니아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주변국들이 웬만큼 한 가닥씩은 하는 나라들이다 보니 묻힌 감이 없잖아 있어요. 왜, 남아프리카 하면 제일 먼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올리고 그 다음에 다른 나라가 어느 나라가 있냐고 물어보면 잠깐 머뭇거리게 되지 않습니까. (레소토, 스와질란드, 보츠와나, 나미비아, 모잠비크, 바다 건너는 마다가스카르 등이 있죠) 같은 이치입니다.
일단 인지도면에서 넘사벽인 그리스라는 나라가 바로 아래에 딱 달라붙어 있고, 옆을 보자니 마케도니아군요. 지금도 마케도니아가 있냐고 물어볼 분은 있겠습니다만 설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겠죠. 동북쪽의 코소보는 (물론 미승인국 신세라고는 합니다만) 코소보 내전 등으로 방송에서 보도한 적이 있어서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테구요. 그나마 몬테네그로 정도가 생소할 텐데 이 나라는 한때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라고 하면 들어본 것 같다는 분들이 분명 나올 겁니다. 결국 주변국들에게 모두 인지도에서 밀리고 들어가는 셈이죠. 특히나 그리스와 딱 붙어 있다 보니 여행계획을 짤 때 "에이 차라리 그리스를 가면 갔지 알바니아에 뭐 볼 게 있어서 거기를 들어가냐" 정도의 심산이 될 공산이 아주 높죠. 그리스 여행 유경험자가 아닌 한.
뭐 이런 꼴이다 보니 알바니아가 관심을 그닥 못 받는 것도 딱히 무리는 아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나라가 큰 편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면적 28,748 ㎢로 대충 영남권 정도의 크기입니다. 인구는 3백만 명 가량. 아이슬란드의 10배라지만 그래도 많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이러니 더욱 관심을 못 받을 수밖에요.
관심에 대한 다소 안습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접어두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짚어볼까 하는데... 솔직히 어느 나라고 깊이 파면 안 복잡할 역사 없다지만 알바니아도 복잡하기로는 만만치 않은 나라입니다.
일단 로마 시대에 세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로마에 편입이 된 속주입니다. 당시 이 일대를 일리리아라 불러 일리리아 전쟁(Illyrian War)으로 통하는데, 무려 6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세 차례를 싸웠습니다. 결국 편입이 되기는 했죠. 다소 재미있는 건 전쟁이 치러진 기간인데 기원전 229년부터 기원전 168년간의 전쟁입니다. 이게 왜 재미있냐면, 한니발이 로마를 털고 다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기 때문이죠. 정확히 하면 1차 포에니 전쟁 - 1차 일리리아 전쟁 - 2차 일리리아 전쟁 - 한니발 전쟁 - 3차 일리리아 전쟁 - 카르타고 공방전 순입니다.
이 2차 일리리아 전쟁에서 투입된 사령관이 훗날 칸나에에서 전사하고 스키피오 가에 양자를 남기는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Aemilius Paulus)입니다. 1남 1녀를 두었는데, 이 딸이 그 유명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와 결혼한 아이밀리아이고, 1남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우스의 아들이 스키피오 가에 입적해서 양 명문가의 가문명을 모두 쓰게 되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죠. 이름들이 하도 길어서 헷갈리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음, 대충 설명하면 이 정도 될까요? 이 일리리아 전쟁에 투입된 게 로마 수중에 있는 최고의 4성 장군 중 하나였고, 장군의 사위는 훗날 합참의장의 자리에 오르며, 손자는 합참의장의 양자로 들어가 훗날 얘도 합참의장의 자리에 오르는?
뭐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로마에 편입된 이후 별 탈 없이 지냅니다. 현재의 알바니아는 황제 관할 구역인 달마티아 속주와 원로원 관할 구역인 마케도니아 속주, 에피루스 속주의 일부입니다. 아, 특기할 만한 사건이 이 알바니아 땅에서 벌어지기는 해요. 위 지도를 다시 보시면, 이탈리아의 장화 발끝에서 알바니아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죠? 그래서 이 지역은 이탈리아에서 배 타고 통통대며 넘어가기 딱 좋은 곳이었는데, 카이사르의 내전기에 이 항구를 놓고 공방전이 한 차례 벌어집니다. 바로 그 유명한 디라키움 공방전(Battle of Dyrrachium)이죠. 카이사르가 여기서 한 차례 깨졌구요. 나중에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제대로 엎어버리지만. 아, 이 디라키움이 바로 현재 알바니아 제2의 도시 두러스(Durrës)입니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극장이 여기에 있죠.
그 뒤로는 별로 특기할 일도 없이, 로마 - 비잔틴 제국 -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결정적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때문에 오늘날 알바니아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의 대다수는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거든요. (이슬람 58.79%, 기독교 17.06%) 그러다가 오스만 제국이 발칸 전쟁에서 대판 깨진 이후, 발칸 반도에서 물러나는 틈에 1912년에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 발칸 전쟁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적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이걸 제대로 파려면 정말 끔찍하게 많은 문서들을 읽어야 할 판이라서(...) 여기서는 대충 그게 계기가 되었다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그래도 이 이야기는 해야겠네요. 사실 주변의 세르비아(당시는 코소보가 세르비아 영토였으니), 몬테네그로나 그리스 등이 호시탐탐 이 알바니아를 노리기는 했는데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알바니아의 뒤를 화끈하게 밀어 준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속내가 있었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의 아드리아 해 진출을 저지하고 싶어했고, 이탈리아는 언젠가 자기가 집어먹을 흑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게 그 런던 조약(Treaty of London)입니다. 물론 안 그래도 보스니아 건으로 웬수지간이었던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고 세르비아는 아주 그냥 칼을 득득 갈게 되었습니다만...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집니다. 유럽만의 전쟁인데 왜 세계대전이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시던데 전쟁터가 유럽뿐 아니라 저 남쪽 아프리카의 나미비아나 잔지바르 등지에서도 벌어졌기 때문에 딱히 세계대전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해요. 뭐가 어찌되었건 주 전쟁터는 유럽이었는데, 용케도 알바니아는 포화를 얻어맞는 건 면했습니다...만 내부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알바니아를 홀랑 집어삼키고자 하는 그리스의 공작으로 내부에서 독립선언이 일어나지 않나, 농민들이 못 살겠다고 들고일어나지를 않나...
하여간에 독립 이후로 1928년까지 약 16년간 대혼란 속에 빠져 있다가 조그 1세(Zog I)라는 사람이 왕정을 선언하게 되죠. 전제 정치가 선언되고 인프라를 깔기 시작하면서 그런대로 모양새를 만들어가나 했더니만... 아 글쎄 이번에는 뒤를 봐 주어 왔던 이탈리아가 뒤통수를 치지 뭡니까? 1939년 4월,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 달 전에, 이미 에티오피아 건으로 국제적인 왕따나 다름없게 된 무솔리니가 알바니아를 홀랑 집어삼킨 거죠. 물론 전투가 안 벌어졌을 리가 없었고, 이탈리아군은 여기서 12명의 손실만 입었다고 떠들어댔습니다만 실제로는 전사자만 700명 가량은 나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알바니아 측의 인명 손실은 전사자 최소 1천 명 가량.
그렇게 이탈리아가 낼름 먹고 있다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쫓겨나고 바돌리오가 수상이 되면서 연합군과 협상이 시작되었죠.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가 추축국에서 이탈할 낌새를 보이자 독일에서는 알라리크 작전(Operation Alarich) - 작전명이 실제로 발동될 때는 추축국 작전(Fall Achse)이었습니다 - 을 발동, 즉각 이탈리아 및 발칸 반도를 점령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알바니아도 작전지역에 포함되어 있었죠.
이 작전의 수뇌부는 나름대로 독일군에서 이름있는 장군들이었는데, 그 사막의 여우 로멜을 위시하여 "미소짓는 케셀링"이라 불리던 공군장성 알베르트 케셀링(Albert Kesselring), 독일군의 최고참 중 한 명이었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 그리고 원수로 진급한 이유가 좀 불분명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명망있는 장군 중 한 명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Maximilian von Weichs) 등등이었죠. 이 때가 1943년 9월이었으니까, 서쪽(프랑스를 위시한 대서양)은 아직 잠잠할 때였고, 동쪽은 쿠르스크에서 잘라먹기 시도가 돈좌된 이후 쭉쭉 밀리던 시기였으며, 만슈타인, 모델, 호트 등은 동쪽의 뚫린 방어선을 메꾸기 바쁠 때였으니 대충 손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최고의 패를 썼다고 봐야죠. 이탈리아는 충분히 그런 수중에 남아 있는 최고의 카드를 쓸 만한 가치가 있었고.
아 근데, 여기서 골때리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탈리아군 밑에서는 게릴라전을 벌이던 발리 콤버타르(Balli Kombëtar, 대충 번역하면 애국전선쯤 됩니다)가, 하라는 추축국 상대로 게릴라전은 안 하고
독일군에게 협력해서(!!!) 공산당 파르티잔과 전쟁을 벌이는, 후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로 정신나간 짓을 한 거죠.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우리를 점령한 주적, 그런 이탈리아를 몰아냈으니 독일은 우리의 친구, 그리고 난 공산당원이 정말 싫어." 뭐 대충 이런 심리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정신나간 짓이라는 건 변함없죠. 애초에 그 이탈리아와 짝짜꿍 쎄쎄쎄하던 게 누군데...
더 황당한 것은 비슷한 일이 알바니아뿐 아니라 세르비아에서도 벌어졌다는 겁니다. 바로 체트니크(Cetnik)죠. 이쪽은 독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다 유고슬라비아 망명 정부와 연합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자 독일군의 지원을 얻어 공산당원을 소탕하려고 한, 더욱 정신나간 짓을 벌였지만요. 하여간 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발칸 반도를 보면 그야말로 미쳐돌아갔다는 표현이 딱일 정도로 기가 찹니다.
어찌 되었건간에 독일군은 졌고, 독일군에 부역하던 발리 콤버타르도 당연히 소탕되었고 그 때까지 알바니아의 저항을 이끌고 있었던 공산당원들이 득세합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와 마찬가지로 알바니아의 공산당 지도자 역시 알바니아를 통솔하는 지위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게 그 장기 독재 집권을 했던
엔베르 호자(Enver Hoxha)입니다. 1908년생으로, 독일의 패망 당시 불과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알바니아 공산당 서기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때부터 그가 무려 40년간의 독재 정치를 시작하죠. 그 결과 알바니아는 가장 폐쇄적이고 낙후된 국가가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업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을 존경해 마지않던 그는 우선 사회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문맹 퇴치에 앞장섰으며,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나름대로의 성과도 보였습니다. 특히나 문맹률은 지역에 따라서는 무려 95%에 달하던 것이 엔베르 호자가 집권한 이후 30% 미만으로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냈죠. 현재 알바니아의 문맹률은 2.4%에 불과합니다. 1인당 PPP가 비슷한 나미비아나 튀니지의 문맹률이 약 20%에 달하는 걸 보면 확실히 차이가 있죠. 모 국가의 대통령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엔베르 호자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도 크게 엇갈린다는군요. 마치 소련 시절을 일부 러시아 국민들이 그리워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무려 40년에 걸친(죽을 때까지 해먹었는데 스탈린과는 달리 장수해서 1985년까지 해먹었습니다. 당시 나이 만 76세) 독재의 결과는 알바니아에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엄청나게 나쁜 쪽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준비 없이 무리하게 시장 경제를 도입한 결과, 이 과정에서 정말로 나라 전체가 피라미드 다단계에 걸려버리는 상황까지 몰렸고, 이 과정에서 시위와 폭력이 발생하면서 1997년에 기록적인 내전으로 대폭발하고 맙니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 나라에서 내전을 치르는 통에 사회 기반 시설이고 뭐고 크게 망가졌고, 이걸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데만 10년은 넘게 걸렸죠. 하여간 이런 탓에, 알바니아는 여전히 유럽 내에서 최빈국의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어째 역사 이야기를 너무 길게 쓴 것 같으니 이제 관광 이야기를 하고 끝내겠습니다.
일단, 알바니아 사람들에게 "알바니아"라고 해도 97.6%의 사람들은 알아듣겠습니다만,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 코리아라고 안 하고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 하듯이, 알바니아 사람들도 자기 나라를 가리켜서 슈치퍼리아(Shqipëria)라 합니다. "독수리의 땅"이라는 뜻이라는군요. 다만 슈치퍼리아라는 말도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니고, 본래는 아르버리(Arbëri) 또는 아르버니(Arbëni)라 부르던 걸 17세기 무렵부터 슈치퍼리아라는 말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합니다.
나라가 워낙 작은지라 수도 역시 특별시로 떨어져나가지 않고 알바니아를 이루는 12개의 주 중 하나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각 주는 대략 우리 나라의 시골의 군 두셋 정도의 크기를 가지죠.
어느 정도는 짐작하셨겠습니다만 인구도 우리 나라의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인프라가 좀 열악한 편입니다. 이상하게 공산권 양반들이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일성이처럼 엔베르 호자도 사회 기반시설을 까는 과정에서 철도에 주력했었고, 엔베르 호자 사후 민주화가 되면서 자동차의 수요가 크게 늘자 가뜩이나 경쟁력 문제로 오늘내일 하던 철도 수송은 거의 사망선고를 받았는데 도로 상태도 엉망인지라 손쉽게 여행할 편은 못 됩니다. 철도가 싼 편이기는 한데, 평균 시속이 50 km/h에 불과하고(국내 경부선 고속철 말고 무궁화호의 평균속도가 85 km/h 가량) 그나마도 비전철이라 털털털털대면서 가는 꼴에 진배없죠. 게다가 그 철도도 주요 관광지에 다 깔린 게 아니라서... 그래서 이래저래 자동차가 낫긴 합니다.
특이하다면 특이하게도 알바니아는 서쪽의 해안가를 떠나면 그야말로 동쪽에 엄청난 산지가 펼쳐진 터라, 취향에 따라 루트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해변에서 느긋하게 즐길 것인지, 호연지기를 보일 것인지... 주로 서쪽은 해안관광, 북동쪽은 산지 하이킹 관광, 남동쪽은 옛 성이나 마을 관광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예외로 옛 성 중 하나가 있는 슈코더르는 북서부에 있지만.
위키트래블 및 위키피디아에서 주요 관광지로 꼽는 몇 군데에 대한 설명과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짓겠습니다.
북부 및 북동부의 산지 일대는 일명 알바니안 알프스(Albanian Alps, 인근의 세르비아 어로는 프로클레티예(Prokletije)로 통합니다)라 하여 위키트래블에서 강추하더군요. 단, 그 일대가 봄철까지 눈이 엄청 쏟아지기로 유명한 곳(몬테네그로) 인근이라 웬만하면 가을이 낫겠더군요. 하여간 산지이고 경치도 끝내주는 터라 하이킹하러 많이들 간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북동부의 발보너 계곡 국립공원(Valbonë Valley National Park)이라는 곳입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역시 가을인 9월 사진이라는군요.
발보너 인근인 슈코더르(Shkodër)와 슈코더르 남쪽의 크루저(Krujë)의 경우는 옛 유적지, 특히 오래된 성이 볼 만하다 합니다. 슈코더르에 있는 성은 로자파 성(Rozafa Castle)이라 하여 고대 일리리아 전쟁 시기부터 중요한 전쟁터였다는군요. 아래 사진은 슈코더르에서 바라본 부나 강(Buna, 또는 Bojana)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슈코더르에는 성만 있는 게 아니라 성당이나 모스크 등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더 좋구요.
알바니아 최남단에는 지붕을 납작한 돌로 만들었다 하여 "돌의 도시"라 하는, 지로카스터르(Gjirokastër)라는 곳이 있습니다. 역시 성이 있고, 도시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로카스터르 성에서 본 도시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아, 여기에 그 엔베르 호자의 집도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이라는군요.
오스만 점령 시기의 건축 양식을 보려면 베라트(Berat)로 가면 됩니다. "천 개 하고도 하나의 창문을 가진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 도시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다른 알바니아의 관광지와 비슷하게 여기도 성이 있는데 보존 상태가 꽤 괜찮다 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베라트 성에서 본 도시 전경입니다. 역시 출처 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해안이 있는 국가인 이상 바닷가에서의 휴양을 빼놓을 수가 없죠. 이탈리아와 알바니아를 오가는 선박이 기항하기도 하는, 알바니아 제3의 도시 블로러(Vlorë)입니다. 여기 말고도 블로러를 시작으로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쭉쭉 내려가는 그 길이 일명 알바니안 리비에라(Albanian Riviera)입니다. 아래의 두 사진 중 위쪽이 블로러입니다. 사진출처 위키트래블. 아래쪽은 알바니아 최남단 지점 중 하나인 크사밀(Ksamil) 섬의 사진이구요. 출처 위키피디아.
참, 수도 티라나의 국제공항의 이름이 테레사 수녀 국제공항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계라서요. 태어난 곳은 현재의 FYROM(Former Yugoslavia Republic of Macedonia,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폐입니다. 공식 명칭은 Tirana International Airport Nënë Tere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