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업계 구력이 10년도 채 되지 않은 나부랭이의 사견이며, 귀차니즘으로 인해 인용된 내용 중 일부는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광고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2) 부제: 카피 앤 아트의 종말
#1. 전설의 레전드
스타판 태초에 신주영과 이기석이라는 전설의 레전드급 프로게이머가 있었듯이, 광고계에도 그런 두 분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와 빌 번벅(William Bill Bernbach)이 그 두 분이죠.
글로벌 광고회사인 오길비 앤 매더와 DDB의 설립자이기도 한 두 분이 광고계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전설의 레전드의 작품들을 잠깐 살펴볼까요?
오길비를 만나기 전 100여 년 간 그저 그런 브랜드였던 해서웨이 셔츠는 이 광고 한 방으로 매출을 세 배 가까이 올리며 미국인들의 국민셔츠로 자리 잡습니다.
원래는 다른 셔츠 광고처럼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오길비가 촬영 직전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모델에게 안대를 차게 했다고 하죠. 새하얀 셔츠와 대비되는 검은 안대를 한 모델이 등장하는 (여태까지 듣도 보도 못한)이 광고는 이후 해서웨이 셔츠의 상징이 됩니다.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는 전자시계 소리]
여러분은 방금 자동차 광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카피를 보셨습니다. 이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신형 롤스 로이스가 나왔는데 겁나 조용하구나!'라는 메시지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빌 번벅의 작품입니다. think small이라는 카피와 그에 걸맞는 작은 비틀의 이미지.
비틀은 이 광고 한 방으로 대형차를 선호하던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합니다.
[당신의 아내를 가져오십시오. 싼 가격에 새 여자를 드리겠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 충격적인 광고를 통해, 촌스러운 패션 가게 오박(Ohrbach's)은 저가격 고품질의 하이패션 부티끄로 거듭나게 됩니다.
#2. 퓨-전!!! 합!!
광고업에 계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실 듯한 전설의 레전드 두 분을 굳이 소환한 이유는, 콩 번째로 두 번째로 소개한 빌 번벅의 영향력을 논하기 위함입니다.
오길비가 [광고는 이성과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반해, 번벅은 [광고는 감성과 직관의 영역]으로 정의 했습니다.
광고의 핵심은 카피라이팅이라고 생각했던 시기이기에, 대부분의 광고는 이미 주어진 제품 이미지에 독창적인 카피를 넣는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죠.
그에 반해 번벅은 카피는 하나의 크리에이티브 요소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 카피라이터였으면서!!)
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갈망했던 번벅이 DDB를 설립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를 한 층에 몰아 넣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글자와 이미지의 시너지에 주목했고, 광고 기획 단계부터 이 둘이 함께 논의한다면 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수 년간의 작업을 통해 번벅은 광고업계 최초로 카피라이터 한 명과, 아트 디렉터 한 명이 페어를 이루며 작업을 하는 2인조 크리에이티브 팀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아트와 카피의 통합] 입니다. Integration between art & copy, 줄여서 아트 앤 카피라고도 하죠.
이 방식은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광고대행사 제작팀에서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탁월한 크리에이티브 발상을 이끌어 냈습니다.
#3. 불편한 삼각관계
신문과 잡지, TV를 거쳐 온라인으로 광고 영역이 확장된 다음에도, "아트 앤 카피" 방식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동영상 광고는 TV CF와 같은 방식으로 기획되었고, 배너 광고는 신문잡지 광고와 같은 방식으로 기획되었죠.
그저 매체가 달라진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광고 캠페인이 하나 나타납니다.
2004년, 버거킹은 치킨 샌드위치를 홍보하기 위해 기괴한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른바 '복종하는 닭(Subservient Chicken)' 캠페인이 그것입니다.
캠페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닭 코스튬을 한 사람이 하나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명령어를 입력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명령어와 어울리는 웃긴 행동을 닭 코스어 하는 것이죠.
어떤 명령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느 수위(?)까지 닭이 반응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캠페인 사이트가 오픈한지 3주가 되지 않아 무려 1억 5천 페이지뷰를 기록하게 됩니다.
[버거킹의 치킨 버거는 마음대로 내용물을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 캠페인의 기록적인 성공은 광고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킵니다.
척 보면 아시겠지만, 이 캠페인은 수 많은 명령어에 해당하는 영상을 미리 촬영한 후에 명령어가 입력되면 그 영상을 불러오는 간단한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백년 가까이 지속되던 "아트 앤 카피"의 달달한 로맨스에 "코딩"이란 놈이 나타난 것이죠.
이 캠페인 이후로, 광고업계는 고도로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더 이상 "아트 앤 카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4. 우리는 광고대행사가 아닙니다
2014 애드위크 선정 올해의 디지털 에이전시, 2015 애드 에이지 선정 올해의 에이전시로 선정된, 세계 최고의 디지털 에이전시로 불리는 R/GA의 CCO(Chief Creative Officer) 닉 로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R/GA는 이제 에이전시라고 소개하지 않아요. 이제 그냥 회사(Company)라고 소개하죠]
[우리의 지난 10년은 성공적이었어요. 그 비결은 R/GA가 한 쪽 발은 (기술 기반의) 실리콘 벨리에, 나머지 한 쪽은 (광고업 기반의) 메디슨 에비뉴에 걸쳤기 때문입니다.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양쪽에서 잘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해 왔어요. 특히 전통적인 광고업계가 놓치고 있던 걸 계속 해 왔던 게 빛을 발했죠]
광고업계에 길이 남을 나이키 플러스 캠페인은 이런 R/GA의 방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이튠즈와 연동되는 디지털 기기를 나이키 런닝화에 부착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달리기를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외로운 운동이었던 런닝이, 나이키 플러스 캠페인을 통해 비로소 놀이가 된 것이죠.
2013년, 구글은 자회사(?)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을 설립하며,
[Art, Copy & Code] 프로젝트를 선언합니다.
기존 광고대행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통해,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은 'Burberry Kisses' 캠페인을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