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죠. 저번에는 백두산을 얘기했으니 동해를 한 번 얘기해 볼까 합니다.
독도와 함께 동해에 대해서 알려진 게 많으니 이 글에서는 과연 일본해라는 명칭을 동해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서 다뤄보죠.
1. 대략적인 경과
한반도의 동쪽 바다는 한국에서는 당연히 동해로 많이 불렸습니다. 그 외에 청해, 창해로 불렸다고 하죠. 왠지 황해와 비교되는 푸른 바다란 뜻입니다.
17세기에 이르러 만들어진 많은 서양 지도에는 주로 Sea of Korea나 Oriental Sea가 다수를 이루었죠. 걸리버 여행기에 첨부된 지도를 보면 가상의 나라가 일본 동쪽에 있는데 정작 동해는 Sea of Korea로 돼 있습니다. 에 뭐 나라에 따라서 Coree라든가 Corea라든가 이랬죠. 한국해(조선해), 동양해 이런 식인 거죠.
재밌었던 게 대항해시대 온라인 동아시아 확장팩에서 나오는 지도에 Sea of Corea라고 돼 있었죠. 당연히 일본인들은 항의했고 한국에는 그걸 Sea of Japan으로 바꾼다는 떡밥이 돌았는데, 코에이가 한 선택은 아예 지도를 없애버리는 거였죠. ( ..) 한국팬도 일본팬도 침묵시키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어쨌든 고지도 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이 한국해입니다.
이랬던 게 19세기에 들면서 일본해에 한국해가 역전됩니다. Oriental Sea는 아예 없어지구요.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는 게 눈으로 보이는 거죠. 1929년 국제 수로국은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여 Sea of Japan으로 결정을 내 버립니다. 이렇게 모든 게 시작되는 거죠. 일본은 국제수로국의 창립 멤버였고, 당시 일본의 영토는 한반도부터 사할린까지 이르렀고, 이는 일본해와 맞닿는 해안선의 거의 전부였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이상하죠. -_-;
해방 후 한국은 57년 가입합니다. 그리고 (70년에 국제 수로 기구로 재출범합니다) 70년에 국제 수로 기구에 정식으로 명칭을 병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이 때마다 일본은 치열한 로비로 무산시키죠. 현재까지 그 바다의 공식 명칭은 일본해이며,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네티즌들의 노력, 특히 반크의 노력으로 각종 지도에서 동해의 병기가 퍼지게 되었죠.
문제는 이게 일본해 대신 동해가 공식 명칭이 될 수 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일본해와 동해가 병기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방침 때문이거든요.
국제수로기구 결의(1974년 채택)
2개국 이상이 공유하고 있는 지형에 대해 상이한 명칭이 사용되고 있을 경우에는 우선 당사국 간 동일 명칭에 합의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서로 다른 명칭을 병기할 것을 권고
유엔지명표준화회의 결의(1977년 채택)
2개국 이상의 주권 하에 있거나, 2개국 이상에 분할되어 있는 지형물에 대하여 당사국 간 단일 지명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각 당사국에 의해 사용되는 지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을 국제 지도 제작의 일반 원칙으로 권고
동해가 일본해와 병기되는 것은 동해가 맞다는 것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명칭이 각 국가끼리 합의되지 않아서입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논리에 모순이 있다는 거죠.
2. 동해의 모순
동해가 맞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모순점이 있습니다.
(1) 동해는 우리 민족이 계속 써 오던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보면 러시아에서는 남해이고 일본에는 서해죠. 실제 일본에서는 태평양 쪽을 향해 동해라는 명칭이 많습니다. 우리가 써 왔다고 러시아와 일본에게 동해를 강요할 수 있을까요?
(2) 고지도에 나오는 한국해 혹은 조선해
고지도에는 한국해가 많죠. 그런데 이게 "동해"라는 명칭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말한 게 아닌 남이 말했다는 것에서 객관성이 확보되는 한국해에 비해 동해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동쪽이라는 의미밖에 없으니까요. 이건 남해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그에 대해서는 밑에 다시 하도록 하죠.
북한에서는 애초에 조선동해라고 하고 있고 한국해로 밀자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걸 지지합니다. 한국해라고 불렸던 게 곧 동해가 되기에는 명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큰 자충수가 있죠.
우리가 일본해 표기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한국, 일본, 러시아와 접한 바다에 한 나라의 이름을 붙인다는 게 안 된다는 게 포함돼 있습니다. 결국 한국해를 주장할 명분을 스스로 버린 거죠.
(3) Oriental Sea
동해의 정당성에 대한 다른 이유로는 한국해 외에 오리엔탈 시, 즉 동양해라는 말을 썼다는 게 있습니다. 단지 한반도의 동쪽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다는 의미라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한국해니까 동해다라는 것과 충돌해 버립니다. 둘은 전혀 다르거든요. 이걸 주장한다는 건 한국해에 대한 명분을 모두 포기하는 거니까요. 오리엔탈 시는 전에는 한국해에, 후에는 일본해에 밀려 주로 쓰이지 않기도 했구요.
(4) 동해 = 남해
모순은 무시하고 위의 이유들로 동해가 정당한 표기라고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공식적인 일본해의 영역은 제주도 동쪽까지입니다. 동해에 밀려 신경을 안 쓰는 거지만 국제적으로 "남해"는 없습니다. 제주도 서쪽은 동중국해이고, 동쪽은 일본해인 거죠. 그런데 이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겠다고 하면 우리의 남해 역시 동해가 돼 버립니다.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단지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려는 것만 신경쓰다가 우리는 남해에 대해서는 아예 잊고 있습니다. 이 남해 역시 중국과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말이죠.
(5) 그 외의 문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역시 여러 나라와 맞닿아 있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중국이 원체 크기도 하고 국력도 있어서 그렇게 불리죠. 저로서는 황해나 동중국해에는 아무런 딴지를 안 거는 게 불만입니다.
아무튼 중국은 이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동해, 남해라 부르고 있습니다. 약칭이라 생각할 순 있겠습니다만... 베트남은 남중국해를 동해라고 합니다. 발트 해의 경우 독일에서는 동해라고, 에스토니아에서는 서해라고 하죠. 각 나라에서 동서남북에 있는 바다를 동해서해남해북해라고 부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표기를 할 때는 각기 이름이 있죠. 그렇다면 이렇게 방위를 뜻하는 명칭을 국제적으로 공식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걸립니다. 뭐 애초에 이런 것 때문에 Oriental sea를 내세운 거겠지만요.
이런 케이스는 유럽의 북해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로마시대부터 관습적으로 이어진 것이죠.
3. 단독 표기가 가능할 것인가
결국 명분상으로 더 좋은 건 한국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를 확실히 없애지 않으면 한국해를 주장할 수 없죠. 이런 점에서 정말 아쉽습니다. 해방 후 약소국이었을 때 한국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내세우긴 힘들고, 그래도 국권이 없을 때 일본이 일방적으로 정한 거였으니 반대는 해야겠기에 나온 게 동해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우익들에서도 처음부터 한국해로 밀었으면 될 것이다고 비웃는 놈들이 있다는군요. -_-;
위에서 낸 문제점들을 보면 너무 일본해에 대한 반대 위주로만 논리를 구성한 것 같습니다. 동해가 맞다는 것보다는 일본해가 아니다, 결국 동해 단독 표기보다는 병기에만 초점을 둔 느낌이죠. 이해는 갑니다. 병기조차도 수십년간 로비로 막은 게 일본이니까요. 하지만... 그 때문에 병기까지는 될 지 몰라도 단독 표기는 국력으로든 논리적으로든 힘들어 보입니다.
4. 중립 명칭
이런 점에서 양국에서 작은 목소리나마 나오고 있는 게 중립적인 명칭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청해, 창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평화의 바다를 제안했었죠. 이런 목소리는 양국에서 크게 비판 받고 묻히죠. 한국해를 주장할 수 없고, 병기 이상으로 나갈 수 없다면, 차라리 이렇게 중립적인 용어를 채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전 청해나 창해가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해랑 대응도 되니까요.
어찌됐건 국제 공용 표기가 일본해든 어디든 우리가 동해를 동해라 부르면 안 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동쪽에 있는 바다니까요. 국제 표기에서 남해, 서해가 없지만 우리는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죠. 대한해협, Korea Strait는 국제 공용이지만 일본에서는 쓰시마 해협이라 부르고 있죠. 하지만 이들도 국제적으로 얘기할 때는 대한해협이라고 합니다. 에 물론 조선해협이라고 하죠 - -; 이것도 보면 웃긴 게 한일 사이에 있는 해협을 일본이 우겨서 반으로 쪼개서 대마도에서 일본 쪽은 쓰시마 해협, 한국 쪽은 부산해협이라고 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공식 명칭은 누가 뭐래도 대한해협이죠. 다만 같은 논리로 일본해라는 명칭 자체를 없앨 순 없습니다. 중요한 건 공식 명칭이니까요.
여담으로 동해 문제에서 결국 빠질 수 없는 건 독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본해의 일본 땅 다케시마, 단순화 시키기가 너무 쉽죠. 박정희 때 맺어졌다는 독도 밀약 ( 둘 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해도 되고, 독도는 한국이 점거한 상태를 유지하되 건물을 새로 짓지는 않는다 ) 가 사실이라면 독도 문제와 그걸 넘어선 동해 문제는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꽤나 긴 기간 동안 미제로 남지 않을까요. 뭐 사실이더라도 김영삼 정부 때 깨졌지만요. 일본이 독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자존심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우리가 동해를 포기할 순 없을 겁니다.
과연 일본해라는 말을 없앨 수 있을지, 없앤다면 그 대안은 동해가 될 것인가, 한국해가 될 것인가 제 3의 중립적인 명칭이 될 것인가 여러 가지 고민이 드네요. 일단 이 글에서는 우리 측 주장의 모순점들을 좀 짚어 보았습니다. 어찌됐던 우리가 많이 밀립니다. 국력으로든 로비로든요. 100년 전에 정한 명칭은 잘못됐으니 수백 년 전에 쓰던 명칭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과연 국제 사회에서 알아줄 지 의문입니다. 어찌됐건 해안선에 가장 많이 접한 나라가 일본인 건 맞으니까요.
병기까지는 성공했습니다만, 그것과 동해가 맞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확실한 명칭을 정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됩니다. 동해라는 명칭이 단지 일본해를 없애는 의미가 아닌, 특히 남해와의 문제 등 모순점을 풀고 더 정확한 논리가 필요합니다.
저도 참 요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해라고 하기 참 뭐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말이죠
일본입장에서는 동해가 왼쪽에 있는 꼴이잖아요 (물론 일본해는 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보니 정말 남해는 더 어중간하네요
국제용어와 국내용어를 구분해서 써야 하는 게 맞나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중국 관련한 명칭은 참 불만입니다. 사실 중국 쪽이 더 문제인게, 이런 문제에서 일본하고는 사실상 자존심, 명분 싸움이 크지만 미래에는 중국은 북한과도 얽혀서 현실적으로 훨씬 큰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경제가 중국에 이렇게 의존하는 현실에서 말도 못 꺼낼 거 같네요. 결국은 힘이 세야... -_-;;;
우리에게는 동해라는 표현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주변국과의 명칭분쟁이 일어나는 현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객관적인 명칭이 쟁점화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특히 황해를 제외한 동해 남해는 우리가
지역의 패권을 갖고 중심화된 국가일때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지도에서 대륙과 섬사이에 있는 어느 바다를 보아도 섬으로 구성된 국가나 섬이름을 인용해
바다이름을 명명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육지와 섬사이에 접해있는 바다에 대해
서는 암묵적으로 대륙의 이름 또는 대륙에 존재하는 국가의 이름을 인용해서 명명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전례들을 볼때 섬나라 국가인 일본의 명칭을 대륙에 접해있는 바다에도 적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반증을 보여주는 것이니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국가간에도 힘의
논리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지금이라도 '동해' 라는 표현보다는, 동아시아대륙의 일부인 한반도와 일본섬사이에 존재하는
동해를 대륙 일부의 이름 또는 대륙에 존재하는 국가의 명칭을 사용한 한국해, 조선해 또는 동
아시아해 라는 명칭이 다른 나라들에게도 정당성을 갖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보지만 이제
와서 다시 바꾼다는 것이 가능할 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