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바시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아래에 또 다른 세계, 죽은 자들의 지하 세계가 있다는 상상은 세계 각지의 종교적 전통 및 신화 등지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지하세계는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일 것이다. 신화 속 영웅들은 신성한 갑주와 위대한 무구를 갖추고 지하 세계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것을 고대 그리스에서는 카타바시스(κατάβασις), 즉 '하강(下降)'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하강 신화소(Mytheme) 또한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영웅들은 제각기 다양한 성격의 임무를 갖고 지하 세계에 하강한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떤 이는 위대한 지식과 숨겨진 계시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이는 단순히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 지하로 간다. 죽은 자들의 영역인 지하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자들은 필시 비범한 자들일 것이며, 동시에 그러한 지하세계에서의 귀환이자 아나바시스(ἀνάβασις), 즉 상승은 늘상 인간 보편의 불사 추구 욕망과 맞닿아있다. 살아있는 인간이 죽음의 세계에 갔다가 기어이 부활하고야 만 것이다.
아가르타
Beasts, Men and Gods
폴란드의 탐험가이자 작가인 페르디난트 안토니 오센도프스키는 1922년, 자신의 저서 '짐승들, 사람들, 그리고 신들(Beasts, Men and Gods)'에서 지구 내부에 있는 지하의 왕국에 대해 언급했다. 이 지하의 왕국은 오센도프스키에 따르면,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라마승들이 '아가르티(Agarthi)'라고 부르던 전설적인 왕국이었는데, 훗날에는 아가르타(Agartha)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다.
오센도프스키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모험하는 도중 세상의 신비 중에서도 지극한 지경에 있는 '신비 중의 신비'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 신비의 이야기들은 초원과 고원 이곳 저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과 고귀한 혈통을 이은 왕자들의 입에서 나왔던 바, 점차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알아볼 수 있게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하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은 노인들의 지나가는 이야기였다. 어떤 몽골족 노인은 옛날옛적 어떤 몽골의 부족이 징기스칸의 군세를 피해 지하의 세계로 숨어 들어갔다는 전설을 일렀고, 어떤 소요트족 노인은 어떤 연기나는 동굴의 입구를 두고 '아가르티 왕국'으로 가는 길이라 말했다.
노인에게도 매한가지로 옛적에, 어떤 사냥꾼이 이 동굴을 통해 지하의 왕국에 갔다왔는데, 그가 여기저기서 지고의 신비를 떠벌리는 것을 보다못한 라마승들이 그의 혀를 잘랐다. 혀 잘린 사냥꾼이 늙어 노인이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그 동굴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류의 지하 세계 이야기는 여러 고명한 스님과 왕족들의 입에서도 나왔기에, 오센도프스키는 이내 더 자세히 조사하고자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뒤바뀐다. 민족, 과학, 종교, 법, 관습, 그리고 위대한 제국과 찬란한 문화는 모두 언젠가 멸망해서 사라진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성자가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땅 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지하 왕국에 갔고, 석가모니, 파스파, 운두르 게겐과 같은 일부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지하 왕국으로 가는 길이 인도에 있다고도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고도 말한다. 수백만에 이르는 지하인들은 지고의 지식에 도달했고, 과학은 발전했으며,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그 곳에는 세상의 왕이 있다. 그는 지상 세계의 8억명을 보이지 않게 통치하고 있고, 이 세상의 모든 힘과 인류의 운명을 손에 넣고 있다.
이 왕국의 이름은 아가르티이며, 전 세계 모든 지하 통로에 걸쳐 뻗어있다. 어느 라마승은 복드 칸에게 미국의 지하 동굴에 고대인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하 세계에는 특이한 광원이 존재하여 곡물과 채소의 성장을 돕고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없이 장수케한다.
어느 옛 선사는 징기스칸의 고대 왕국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는데, 어느 신비로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선사 일행은 서로 다른 언어를 따로 말하는 두 개의 혀를 지닌 이들을 만났다. 그는 16개의 발과 한 개의 눈을 지닌 거북이, 맛있는 뱀, 주인을 위해 물고기를 대신 잡아주는 이빨지닌 새들을 보여주었다. 두 혀의 사람들은 선사의 일행에게 자신들이 지하의 왕국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아가르티의 수도는 마치 라싸의 포탈라궁이 사원으로 뒤덮인 상 정상에 있듯, 고승과 과학자들의 도시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의 임금의 옥좌 또한 수백만 화신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궁성은 지상과 지하와 천상의 모든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며 그 힘의 세기는 만일 지상 세계의 인류가 그들에 대항한다면 지상 표면의 전부를 불태워 사막화시킬 수 있을 정도다.
아가르티의 통치자는 노인을 젊게하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초목을 자라게 할 수 있다. 아가르티의 위대한 고승(पण्डित)들은 이 세상의 모든 힘을 연구하는데 진력을 다하는데, 그들 중 가장 탁월한 자들은 이전까지 그 어떤 이도 가보지 못했던 곳에 특사로 길을 떠난다..."
사실 서구에서는 일찍이 19세기 이래로 여러 작가들에 의해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있다는 지하 세계 전설에 풍성한 살이 붙고 있었다. 일찍이 프랑스의 귀족이자 신비주의자였던 알렉상드르 생티브 달베이드르(Alexandre Saint-Yves d'Alveydre) 후작은 1885년, 동방의 밀교집단과 접촉하여 비밀스러운 동굴에서 아가르타의 승천 대사(Ascended Master)로부터 텔레파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의 세계정부가 기원전 3,200년경, 그러니까 오늘날의 시대이자 말세인 '칼리 유가(Kali Yuga)'가 시작될 즈음에 지구 공동 속 아가르타로 완전히 이전되었으며, 여전히 강력한 마법과 진보한 기술을 통해 단 한 명의 철인이 수 백만의 신민을 통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구 공동설
아가르타가 존재한다는 '지구 공동(Hollow Earth)'에 대한 개념은 이미 17세기 말, 핼리 혜성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에 의해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지구가 마트료시카 인형의 구조처럼 되어있는 네 겹의 구체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했는데, 내부의 또 다른 세계에는 우리 세계와 마찬가지로 빛나는 대기가 있으며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Symmes_Hole.jpg 전설의 지하왕국 아가르타와 지구 공동설을 알아보자](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4/20250208/8008775376_486263_625acbeeff87a9f367bdb224f79e6754.jpg)
"세계 만방에 고한다! 나는 지구가 비어있고, 그 속에 거주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나는 이 진리를 위하여 삶을 다 바칠 것이며 만일 이 과업을 세상이 돕는다면 언제든 '공동(空洞)'을 향해 탐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이와 같은 가설은 19세기 초, 다시 부활했다. 미국의 군인이자 무역상이었던 존 클레브스 심스 주니어(John Cleves Symmes Jr.)는 북극과 남극에 거대한 구멍이 있어 지구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는데, 그의 아이디어를 추종하는 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한 극지방 탐사를 계획하기도 했다.
존 퀸시 애덤스 미국 대통령은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지구 공동설 지지자였으며, 실제로 미정부 차원에서 탐험 원정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였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이를 취소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농담삼아 앤드류 잭슨이 지구가 평평하다 믿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19세기 내내 극지방, 그리고 극지방 어딘가에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 지구 공동 속 거주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러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쥘 베른은 그 유명한 '지구 속 여행'을 썼고, 에드거 앨런 포는 단편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를 썼으며, 보스턴 대학의 초대 총장이었던 윌리엄 페어필드 워렌은 인류가 극북의 휘페르보레아라는 사라진 대륙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휘페르보레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른 영상에서 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문화권의 전설과 신화 속에서 지구 내부의 지하세계 개념은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실의 여러 동굴들이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입구라고 여겼으며, 아일랜드의 옛 켈트인들 또한, '크루아찬(Cruachan)'이라는 이름의 동굴이 기괴하고 신비로운 생물들이 목격되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지하세계로의 유사한 전설은 수도없이 존재하나, 훗날에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과학적 지구 공동 가설과 결합하는 이야기는 티베트 불교도들의 것이었다...
(2) : 샴발라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