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 Date |
2021/06/16 20:10:13 |
| Name |
성야무인 |
| Subject |
[일반] [14] Pipette(피펫)을 손에 놓게 되었을때 |
|
의생명 분야를 전공하고 후에 연구직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무기가 있습니다.
군인으로 따지면 개인화기인 소총에 비견될 만한
피펫입니다.
학사과정에서 부터 시작해서 석사, 박사, 박사후, 교수 혹은 연구원이 되었을 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이 장비는 처음에 연구자 개인이 직접 사는 것이 아닌
랩실에서 제공되는 물건을 씁니다.
총기 관리 하듯 1ul 단위로 오차가 있는지 없는지 물방울 떨어뜨려 놓고 미세저울로 정확도를 판단한 다음
분해해서 수리하게 됩니다.
나중에 어느정도 여유가 되면 자신이 맞는 피펫을 구매하거나 본인 연구 책임자에게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죠.
연구자로써 피펫을 놓게 되었을 때는 두가지 경우입니다.
해당분야에서 아예 떠나거나
더이상 피펫을 잡기가 힘들어질때입니다.
어느쪽이나 되었던 연구자로써는 상당히 자괴감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특히나 20년에서 30년이 넘는 연구생활을 그만두고
피펫을 손에 놨을때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공허감에 드는건 매 한가리라고 합니다.
거기에 손에 힘이 빠져 피펫을 잡고 있을때 손이 지나치게 흔들리게 되면
연구자로써 현장에서 일하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사실 젊고 힘이 넘칠때는 피펫에 힘을 꽉쥐고
마이크로 튜브에 용액을 집어 넣을때
굳이 피펫팁의 위를 다른손으로 고정할 필요없이
정확하게 집어넣을 수 있지만
차츰차츰 나이가 들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한손으로 고정해도
피펫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이가 들었음을 통감하면서
더이상 연구실에서 뛰면서 움직이면 안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게 되죠.
다행히 연구 책임자나 교수로써 대학원에 제자가 있다면서
피펫을 놓게 되더라도
Dry lab 즉 자신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는 일들을
연구원들에게 맡기게 되지만
사실 이렇더라도 직접 연구를 하지 못하는 데는 아쉬움을 표현하긴 합니다.
과거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끝냈을 때 소원이 정년까지
연구실 붙어 있으면서
피펫질을 하고 싶다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과거 선배들이 겪었던 것처럼
몇년사이에 두손으로 피펫들기가 힘들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연구책임자라는 위치이기에 굳이
이런 작업을 하지 않고
연구원을 시키면 되지만
이제 저도 선택할 때가 온것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공허감이나 자책감이랄까요?
물론 여기에는 말도 안되는 변명이 있긴 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건강관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아마 제대로 몸관리만 했더라면
이렇게 빨리 힘에 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전성기가 지나 스텟이 팍팍 떨어지는 운동선수가 된것 같은 느낌입니다.
앞으로 얼마만큼 연구생활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연구 생활을 시작하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고
후회하는 연구생활없이
피펫을 놓게되는 시기를 늦출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