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내고 있는 외노자입니다.
여기는 지금이 딱 봄방학 시즌이라서 와이프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을 가있습니다.
저는 코로나로 인하여 몇달간 정말 거의 집밖에도 나가지 않는 재택근무 생활중입니다.
아니, 그러면 대체 이 기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겠습니까.
외로움과 쓸쓸함과 허전함을 달래지 못 하고 밥조차 혼자 지어먹어야 하는 이 서러움.
그 마음을 여러분들에게 공유드립니다.
첫째날 저녁은 김치볶음밥에 오뎅탕을 간단히 만들어봤습니다.
김치볶음밥에는 스팸도 잘게 썰어넣고, 오뎅탕에는 대파도 시원시원하게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매우 외롭지만 먹어야만 버티기에 눈물을 삼키며 꾸역꾸역 집어넣었습니다.
둘째날 저녁은 스팸에 계란후라이, 지난번에 고깃집 갔다가 서비스로 받아놓은 광천김, 김치, 그리고 자사이무침입니다.
국물은 냉장고를 뒤적거렸더니 쇼유라멘 스프가 하나 놀고 있는 것이 있어 파를 송송 썰어넣고 대충 뜨거운 물을 부었습니다.
흰쌀밥에 스팸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조차도 홀로 쓸쓸히 혼밥을 하는 아재의 마음속을 달래줄 수 없다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셋째날의 저녁입니다. 외로움과 쓸쓸함만으로도 힘들지만,
혼밥 이후의 설거지만큼이나 가슴시린 허전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부엌 가스렌지앞에 서서 대충 볶은 제육볶음과 그 위에 태워버린 계란후라이, 밥솥에서 바로 후라이팬에 투척한 밥,
이 조합이라면 무난하게 배고픔 정도야 이겨낼 수 있으며, 설거지의 양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역시나 쓸쓸한 가슴 부여잡고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했습니다.

넷째날의 저녁입니다. 일본에서는 우버이츠라는 배달어플로 배달음식을 주문합니다.
배달비가 만만치 않기에 자주 이용하지는 못 하지만, 이 쓸쓸함 하나 이겨내기 위해서 한번쯤은
시킬 수 도 있지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음식은 제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아부라소바 라는 일종의 볶음면입니다.
나중에 코로나 끝나고 일본여행 오실 일 있으시면 꼭 한번 드셔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여러 가게가 있지만 東京油組総本店이라는 가게가
아주 맛있습니다. 체인이니까 도쿄내에서는 여러 곳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사치를 부리고는 있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겨낼 길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날, 오늘 저녁입니다. 그래도 다시 정신차리고 차려먹어야지 라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냉동실을 보니 와이프가 얼마전에 장봐오면서 싸게 나왔다고 몇팩을 쟁겨두었던 호주산 소고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간장과 매실, 그리고 적당한 조미료들과 양파, 마늘을 잘게 썰어넣고 몇시간 재운뒤에 김치와 계란후라이라는 어디에도
안 어울릴 수 없는 친구들과 매칭시켜 불고기라는 느낌으로 한번 만들어 먹어봤습니다. 계란은 저래뵈도 2개입니다. 맛소금을 살짝 뿌렸지요.
그래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혼자 먹는 이 공허함은 포만감으로 이겨낼 수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가 될 뿐입니다.
앞으로 3일후면 와이프와 아이가 돌아옵니다.
어서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리도 시간은 안 가는지 정말 순간순간 눈물이 나도록 마음이 아픕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