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사람과 사람을 구분해주는 특성
차별: 합당한 이유없이 차이를 근거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
(이 정의에 의해서 이 글은 차별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설명이 빠져있는게 아닐까요? 도대체 무엇이 합당한 이유인걸까요? 합당한 이유라는게 과연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는 할까요?
저는 여기서 합당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 or '다양한 통계로 검증된 사실'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면,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다, 고령층에서 청년층보다 자살자의 비율이 높다, 같은 것들말이지요.
그리고, 제가 살면서 느껴지는 '특정 집단의 경향성'은 아예 인식 자체를 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예 특정집단에 대한 일반화 자체를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대체로 남자는 축구를 더 좋아하고 여자는 피구를 더 좋아해" 같은 중립적인 인식도 하면 안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학교 전체 전수조사를 해서 남자와 여자의 선호도를 파악한것도 아니고 남녀 DNA를 뽑아다가 축구나 피구를 좋아하게 만드는 유전자 여부를 조사한것도 아니니까 이런것도 하면 안되는건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새로 갖게 된 원칙은 "집단에 대한 일반화는 허용하지만, 인간이 포함된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화는 금지" 였습니다. 인간이 포함된 집단에만 예외를 두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으로 존엄성이 부여되어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아무리 안보려고 해도 특정 집단이 갖는 강한 부정적인 경향성도 존재하더군요. 저는 말하자면 열심히 마음을 수양해서 부정적인 경향성 자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인지과학-심리학을 배우면서 인간이 갖는 가장 중요한 능력중 하나는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더 고차원적인 특성을 이끌어내서 일반화를 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면서 다시 혼란스러워 지더군요. 인간이 갖는 중요한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려고 하는 내 생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보기>
- 아시아계 학생들은 서양학생들보다 공공예절의식을 알지 못한다.
- 비명문대 학생들은 명문대 학생보다 불성실하다.
- 일본인은 엽기적인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
- 중국인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자주 한다.
-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폭력적인 존재다.
- 남자는 여자보다 다혈질이다.
- 여자는 남자보다 시기,질투,뒷담을 많이한다.
- 기자들은 거짓말을 많이한다.
<보기>의 내용들은 제가 들어보았거나 스스로 생각해보았던 차별적인 인식들입니다. 다음의 인식들은 통계자료나 과학을 이용하여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어렵고, 통계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밖에서 꺼내면 차별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입니다. 쉽게말해 "합당한 인식"인지를 알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피지알 분들은 다음 3가지중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1. <보기>의 내용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부터 차별이며, 본능적으로 생각이 된다면 안하려고 노력해야한다.
2. <보기>의 내용과 같은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불이익을 가하지만 않으면 차별이 아니다.
3. <보기>의 생각을 하는것과, 생각을 근거로 이들에게 특정한 불이익을 주는 것 모두 차별이 아니다.
과거의 저는 1->2로 이동한 셈이지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지금의 저는 1,2,3 모두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신 <보기>와 같은 생각이 들어도 사람은 편향에 취약한 존재이고, 한번 어떤 명제를 생각하면 실제보다 과도하게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계속 염두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견을 갖고있습니다.
피지알 여러분은 차별에 대해서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차별이 아니며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아래는 이 글을 읽은 가상의 피지알인들의 대화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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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이 글은 질문 자체가 잘못됐어. 1,2,3번 설정을 잘못한거지. <보기>은 중립적인게 아니고, 사실과 사실이 아닌것이 정해져있는거야. 그리고 그건 과학적인 자료나 통계를 통해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거지. 그리고 그런 명확한 부정적인 경향성을 갖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거나 합리적인 선에서 불이익을 준다고 해도 그건 차별적인 대우가 아닌거야.
을: 나치가 처음에 범죄자를 문제삼았지만, 나중에는 노인, 동성애자, 유대인도 정당한 불이익이라고 주장했던 것 알지? 어떤 인식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건데?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두려움이 부정적인 인식을 낳고 이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합당해 보이는 자료로 서로 싸울 뿐인걸. 사람과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에 대한 사실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 또, 어떤 집단이 명백하게 부정적인 특성을 갖는게 판단된다고 해도 그 불이익의 정도를 어떻게 정할건데?
어떤 집단이 갖고있는 부정적인 특성이 사실인지를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불이익의 정도를 정하려는 시도를 할때 나치가 했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게 되는거야.
갑: 범죄자를 감옥에 가둔다고 생각해봐. 범죄자는 우리와 다른 특성을 갖는거아니야? 범죄를 저지른 경력의 유무라는. 근데 우리가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걸 차별적인 대우라고 이야기하니? 결국 우리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불이익에 대한 합당한 근거라고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판단내린 것 아니니?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부정적인 특성을 갖고있다는건 사실이야. 그리고 그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해서, 거기에 대해 논하는 것까지 막으면 안돼. 존재하는 사실을 없는 셈 취급하면 세계를 사실과 동떨어진 곳으로 이해하게 될거야. 우리는 존재하는 인식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끝없이 논하고, 사실이라면 무엇이 합당한 수준의 불이익인지 논해야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이 아닌 인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할 뿐이지.
을: 글쎄, 범죄자는 예외로 생각해야지. 왜냐하면 범죄자는 자기 의지로 범죄를 선택한거고 <보기>에 주어진 명제들은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타고난 정체성인걸.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타고난 정체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특성을 갖는다고 일반화 하는 일은 피해야해.
병: 그러면 비명문대와 명문대는? 그건 본인이 선택한거 아니야? 물론 어떤 학교에 입학했는지는 본인의 선택 뿐 아니라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만, 그건 범죄자도 마찬겠지. 네 말대로 하면 그럼 명문대생과 비명문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이를 근거로 불이익을 주는건 차별이 아닌거잖아. 그런데 왜 소위 "지잡대"라는 표현은 차별적인 말인건데? 또. '기레기'라든가, '폰팔이' 같은 표현도 모두 차별적인 표현인 데 네 말대로면 본인 의지로 선택한거니까 예외인거네?
내 생각에는 어떤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인식할때 차별은 부정적인 표현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포함된 표현인지 아닌지 차이일 뿐이야. '남자가 여자보다 강력범죄의 비율이 높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다라고 표현하는 것' 의도는 똑같을 수 있지만 후자가 전자보다 집단에 대해 예의가 부족한 표현인거지. 그리고 예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차별이라고 대중은 인식하는거야. 어떤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일반화를 하더라도 그 집단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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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제시한 틀에 갖힌 논의가 오가는 걸 원치 않아서, 글쓰면서 했던 여러 생각들을 대화에 녹이려고 했습니다. 대화문 중 일부는 제가 동의하는 생각이지만 일부는 글을 위해 창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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