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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15 20:03:45
Name Farce
Subject [일반] 우리가 요즘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몹쓸 상상들에 대하여 (수정됨)
안녕하십니까.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Farce입니다.
오늘은 영문학이란 어떤 것을 배우는 학문인지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문학 좋아하시나요? 저는 문학을 좋아합니다. 문학은 정말 강력한 도구이거든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 있어서, 문학은 정말 다양한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작품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존재하지도 않는 다양한 요정, 신, 영웅, 그리고 마왕의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국 드라마 (속칭 미드)는 어떻고요? 존재는 하지만 지구 건너편에 있어 쉽게 보기 힘든 세상을 알려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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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결말은, 영웅들이 세계관의 천국에 해당하는 '발리노르'로 떠나는 장면이었어요.]
물론 우리 관객들은 그곳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이 크레딧이 끝나지요.
발리노르는 설정이 그런 곳이니까요. 산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작품의 다른 배경이 되는 곳도 아닙니다.
결말 그 자체를 형상한 곳이라면 모르겠네요. 그 전에 우리는 이미 반지의 제왕의 배경인 '중간계'에 닿아보고 알아보고,
웃고 웃으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따라왔지요. 천국행으로 끝나는 서양식 판타지여도, 한국인에게도 재밌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사실을 지엽적으로 주워서 전달하는 뉴스보다도,
'작품'이란 날 것의 현실을 더 강렬하고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라고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감정, 다양한 사람과 세력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공해서 알려주지요.

우리는 그래서 다같이 문학을 좋아합니다. 종교적인 천국이 아니더라도, 작품 속에는 살만한 세상이 넘쳐 흐릅니다.
그래서 존 레논의 "이매진",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 같은 노래는 항상 명곡으로 인류의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세상을 치유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장소로 만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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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이 글의 제목을 읽어보시고 들어오셨겠지요. 저는 오늘 별로 희망찬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메리 셸리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영국 문학에 관심이 각별히 있지 않아도 들어보셨을 작품인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에 만들어진 작품 치고는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전기의 힘을 이용해서 시체를 되살리는 법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뒤섞여서 쓰이지만 원래 프랑켄슈타인은, 박사의 이름입니다.
괴물의 이름은 별도의 이름이 없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고요. 그리고 소설 내내 서로는 서로를 죽일 방법을 찾습니다.

1818년 당시 조선에서는 정조의 아들 순조가 왕위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선진적인 공상과학 작품이었지요.
그래서 영국의 독자와 작가들 마저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는 열광했습니다. 마치 웹툰처럼 가벼운 작품으로 말이지요.
그렇지만 셸리의 다른 작품들은 그런 가벼운 찬사도 받지 못하고 역사에 묻혀버렸지요.

시간이 꽤나 지난 1826년, 메리 셸리는 다른 '평범한' 주제의 작품들에 대한 냉담함 속에서 또 다른 'SF'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최후의 인간"이라는 작품입니다. 영어로 원래부터가 간단한 제목입니다. "더 라스트 맨 (The Last Man)"이요.
줄거리는... 어... "프랑켄슈타인"급 막장드라마입니다. 꽤나 흥미롭지요. 근데 왜 사람들이 안 좋아했는지도 감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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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 '리오넬'은 잉글랜드 북부에서 양치기로 살고 있었지만, 알고보니 중앙정치에서 쫓겨난 귀족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후대의 사면령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에이드리언'이라는 당시 영국 귀족계 쾌남의 후원 아래, 정치에 진출하게 되지요.

'에이드리언'과 '리오넬'은 가진건 즈언통과 핏줄 밖에 없는 영국 윈저 왕실을 정치적 논쟁에서 연속해서 굴복시키고,
마침내 크롬웰 이래 두번째로, 영국에 공화정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죠. 그랬더니 '아시아'에서 무시무시한 역병이 넘어와서,
유럽 대륙을 초토화시키고, 영국의 공화정 정부는 '에이드리언'을 가지고서도, "이러다가 왕정이 복고되고 우리는 다 역적으로 죽습니다."
라면서 영국인들에게 역병의 존재를 쉬쉬하다가 결국 영국을 붕괴시키지요.

영국이 답이 없어지자, 두 주인공은 사람이 전부 쓸려나가 안전해보이는(?) 프랑스로 추종자들을 이끌고 빠져나옵니다만,
이미 프랑스는 원시화되고, 괴상한 종교를 믿는, 인간(이었던 것)들로 가득차있었고, 사투 끝에 자신들의 가족만 챙겨 스위스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리오넬'을 제외한 모두, 그러니까 '에이드리언'까지 끝내, '역병'으로
(단순히 추운 스위스의 날씨로 인한 감기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허망하게 죽죠.

'리오넬'은 자신이 '최후의 인간'이며, 다른 사람이 없기에 병에 걸려죽을 수도 없으며,
'에이드리언'이 죽었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없이 이대로 살다가 죽어야한다며, 절망하면서 소설은 끝납니다.

음? 지금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도 꽤나 괜찮을 것 같은 줄거리 같지 않나요? 시대를 앞서나간 덕분인지,
이 작품은 "생각 없이 막 나가는 설정", "브로맨스를 장황하고 절박하게 만들려고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로맨스 소설을 쓰려고 했었는지, 후반부의 황폐화된 유럽의 묘사는 쓸때 없이 자극적이고 '그로테스크' 하다" 등등
온갖 비판, 비난, 비꼼, 모욕을 다른 작가, 비평가, 독자 리뷰란에게 넘치게 받고 다들 몇년 뒤엔 까먹어버렸습니다.

근데 저는 이 작품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아 대학원생이어서요? 그것도... 맞긴 합니다만...

때는 소설이 출판된지 백년이 지난 1965년 겨울, 네브라다스카 주립대학교에서 한 논문이 기고됩니다.
그 논문의 내용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사회가 순식간에, 그리고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최후의 인간'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그로테스크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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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최후의 인간"은 1960년대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진지한 '상상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20년,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 다시 한번, 학계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1960년은 핵에 휩싸이지 않았습니다.
2020년 역시, 코로나는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주고 있지만, 인류를 쓸어버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이것들을 상상할 수 있지요? 셸리의 작품은 묻혀있었고, 이제야 읽어보는 것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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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핸드폰 게임입니다. 비슷한 작품들이 그 자리를 먼저 채우고 있어도 되고요~]

냉전시대에 핵이 발사되지 않은 이유는, 미국 대통령, 소련 서기장이 아니고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 크다고,
냉전시대의 문화와 작품들을 다루는 학자들은 말하고는 합니다. 물론 '한번 해볼까? 까짓거?' 라는 상상도 가능하게 해줬지만요.

1970년대에는 이상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위자드"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국내에 수입이 된 것 같진 않습니다)



(작품 자체의 수위는 전반적으로 '만화적'입니다만, 70년대 트레일러여서 쓸때 없이 잔혹하고 야한 요소가 등장하니 시청전 주의바랍니다.)

디즈니 영화에 대한 패러디였지요. 인류가 핵전쟁으로 공멸한 이후, 지구는 다시 디즈니 영화에서나 볼 듯한 착한 생명체들이 더불어 사는,
그런 평화의 세계를 하나 만들어냅니다. 근데 나쁜 악당은 고대의 한 유물을 발견하니 '나치 선전영상' 필름뭉치와 영사기였지요.
그래서 평화롭던 세계는 갑자기 그림체와 어울리지도 않는 전쟁 속으로 내던져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피지알의 독자 분들 중에서, 나치의 선전영상을 챙겨보시는 취미가 있으신 분은 아마 몇분 안 될겁니다.
이 "위자드"라는 작품이 그렇듯이, 결국 나쁜 나치놈들은 패망한다는 그런 '희망찬' 작품들이나 많이 보고 있으니,
우리는 사실 한 때 세상을 뒤흔들고 갔던 몹쓸 상상들로부터 자유로운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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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러려면 나무위키부터 꺼야겠죠?]

아뇨 나무위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도 똑같은 종류의 문서들이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유고슬라비아 내전", "행정명령 9066호", "북한 정치범수용소"...

우리는 우리가 맘만 먹으면, 아니 아주 나쁜 마음이 아니라, 그냥 약간의 호기심만 있으면
다른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동사무소의 호구조사자료를 통해서 관료적인 수단으로 선별해가지고,
지역 단계별 할당량에 따라 일렬로 일가족을 기차에 태워서, 철조망과 경비병으로 둘러싼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고,
최소한의 음식과 최대한의 노역이 목숨을 앗아가기 전에 과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 독가스를 같은 추가적인 수단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인터넷에서 다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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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게임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정말로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요? 정말로요?

레딧에 샌드캐슬 (u/sandcastle_12345) 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이 분이 만든 한 지도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가상의 지도입니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요. 허구라는 측면에서는 2D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그린 그림 같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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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일본제국은 핵무기를 동원하여 중일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1980년대까지 한반도에선 한국인에 대한 인종청소가 일어났다.]
(엄청 큰 지도입니다. 4038 x 3634 해상도입니다.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붉은 네모는 황하 유역에 설치된 중국인-한국인 절멸수용소, 탁한 노란색의 네모는 강제노역장입니다.
태백산맥과 개마고원은 초토화작전으로 철저히 황폐화 된 다음 사람의 정착을 허락하지 않는 보호구역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은 중국인들이 똑같은 과정으로 인하여 '사라진' 북만주와
(중일전쟁으로 인하여) 방사능에 얼룩지고 중국인들이 대부분 '정리된' 황하로 강제이주 당했습니다.

한반도에 존재하던 기존의 모든 자산과 문화재는 일본 이주민들에게 분배되었으며,
'본토의 거지들'이 될 수 있던 존재들이 6.1의 평균출산/입양율(수용소 출신의 한국인 아기들)로 한반도를 '문명화' 시키는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 지도는 2003년 영국의 '자유 독일 지리협회'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지도는 시리즈 작품입니다. 독일과 폴란드 국경 지대에 대한 지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이 지도를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지도를 가지고 이런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요~~ 라고 문의를 보내보니
"실제로 2차대전 중에 계획되었던 일, 일어날 뻔 했던 일을 한번 표현해보고 싶었다."라고 밝혀주시더군요.
물론 이 지도의 정책은 실제 일본제국의 정책보다는 나치스 승전 지도의 일본판이라는 조금 섬세하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만...
다루는 내용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크게 중요치 않지요.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일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여기 그대로 있으니까요.

자, 2020년 11월 10일, 그러니까 며칠전에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전면전보다는 분쟁지역에 한정된 제한전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점령지에서의 퇴거'로
마무리가 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SNS를 통한 선전전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국가의 공식발표가 네티즌들의 키보드배틀과 구분이 가지 않는 진정한 '현대전'을 보여줬지요.

제가 이미지로는 차마 퍼오지 않았습니다만, 어떤 아제르인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다시 한번',
어떤 아르메니아인은 '케밥 제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기분 나쁘라고 다는 인터넷 코멘트에 너무 많은 목소리를 줘도 안되겠습니다만,
동시에 얼마나 인터넷 장삼이사에게도 참극이란 가볍게도 가까운 존재인지 생각해볼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는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의 모드 중에는 "더 뉴 오더" (The New Order, 줄여서 TNO)라는 게 있습니다.
추축국이 2차 대전에서 승리했고, 샌드캐슬님이 만드는 지도처럼 인종청소를 '거의' 마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요.
그런데 이런 세계에서 굳이 더 게임으로 즐길게 뭐가 남아 있을까요? "높은 성의 사나이"처럼 독일과 일본 사이의 3차대전이요?
아 그런 것도 가능하긴 합니다. 확실히 파쇼들은 스스로 멈추지 못하니까요. 설사 서로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자 이것이 TNO의 결말입니다. 승자로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을 애초에 키질 않는 것이지요.]

아도르노라는 어떤 독일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일인이라면 독일에서 살면서 학문을 해야했었겠지만, 조국이 그를 '유대인'이라고 불렀기에, 그는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나서야, 한번도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조국에 마침내 돌아온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우슈비츠 이후로 시를 짓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가 되었다."
이 짧은 문장은, 많은 짧은 문장이 그렇듯이 여러가지 해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 해석과 함께 이 글을 끝내고자 합니다.

우리가 콘서트에 가서 사람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람의 몸과 노력으로 어떤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보기 참으로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즐길 수 없다면
인간은 한정된 수명 안에서 충분히 삶을 만끽하지 못한 것이겠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재밌는 것들을 그냥 보내준다니 얼마나 아깝나요.
그래서 일찍 죽으면 안타깝고,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사람이 먼저 떠나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시를 짓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문제다'.
'나치 중에도 시인이 있었을 거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스테이크를 맛있게 썰어서 먹는 미식가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도장은 찍고 퇴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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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내꼬야
20/11/15 20:29
수정 아이콘
전하려는 의도와 상관없이 술술 잘 읽혀서 짧게나마 고단함을 잊었습니다. 추천드려요. ㅔ
20/11/15 20:45
수정 아이콘
사실 의도...는 항상 제 글이 그렇듯이, 사실 별거 없습니다. 그냥 "그러고보니 요즘 대량학살 같은건 작품 소재로 너무 쉽게 쓰이지 않아요? 와 이거 문제 아님? (사실 스스로도 그렇게 문제라고 생각한건 아니고, 그냥 재미있어서 써본 글...)" 정도의 가벼운 글이니까요 흐흐흐.

고단함을 풀어드리는 것에 그렇게 도움이 될 주제는 아닌데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밝은 걸로 찾아뵈죠!
잠이온다
20/11/15 20: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끔찍한 상상을 '역사'로나마 아는 것이 그나마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TV를 보는데 옥탑방에서 100명 중 4명은 싸이코패스라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하더군요. 하지만, 이 말은 96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은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저는 그 96명이 역사를 배우고 끔찍함을 이해할 수 있다면 디스토피아적 사회는 안올거라 믿어봅니다. 물론 많은 창작물처럼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친다면 알 수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올바른 역사 교육이 성립한다면요.

반지의 제왕에서 영화와 소설의 발리노르 묘사 차이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영화적 발리노르는 천국을 의미하는데, 천국같은 이상향을 생각해보는 것도 꽤 의미있을거라 생각이 드는군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중간의 TNO는 잘 모르겠지만 방사능 유출로 전 지구가 망하는 장면인 것같은데, 이건 그냥 특정 시점이 되면 자동으로 끝나면서 배드 엔딩이 뜨는건가요?
20/11/15 20:4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서 독재자가 되는 것과, 현실에서 수용소장이 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거라 저도 믿습니다! (다만 저는 자리가 주어졌을 때, 얼마나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해줄지에는 조금 회의적이긴 합니다...), 적어도 그 4명의 끔찍한 사람들이 그래도 끔찍하고 망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는 미래가 오길 저도 희망합니다.

발리노르는 그리스 신화의 "엘리시움"이나 기독교적 "천국"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더라고요. 특히 영화판에서요. "장소이긴 하지만, 정상적으로는 갈 수 없는 정말 좋은 곳". 거참.. 왜 신들은 좋은 장소를 이리 숨겨둘까요 흐흐흐. 사람들은 거기 밖에서 뭘하라고...

TNO는 HOI 4 기본 게임에 대한 패러디 요소가 강한 모드입니다. 원래는 다른 패러독스 (개발회사 이름입니다) 게임들이 그렇듯이, 지도에서 나라를 골라서 운영하고, 영토를 늘리고, 그런 게임인데요 (자매품으로 '하츠 오브 아이언'말고도 '크루세이더 킹즈',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등등이 있습니다. 전부 지도에서 땅따먹기 하는 게임들입니다.) TNO에서는 세상이 이미 막장인데도, 당연히(?) 그 세계 안의 독일과 일본으로 또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놓고도 막장이 되어버린 세계를 조금 고쳐보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파시즘의 광기가 흐르는 방향으로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끝끝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버리고, 지도에서 모든 국가들이 지워지고 배경음악이 죽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집니다... 이 게임을 많이 플레이해본 플레이어들에 대한 지독한 블랙 유머죠.
Misaki Mei
20/11/15 21:58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는 TNO의 엔딩이 세계 멸망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일본과 미국, 미국과 나치 독일 등 세계 핵무장 열강들이 3차 세계대전을 벌일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세계 열강이라면 전쟁 위기에서 먼저 물러난다거나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AI가 맡은 강대국들이 전쟁 위기에서 한 쪽이 양보하기를 순전히 운에 따라 빈다든지;; 해서 그걸 회피해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세계가 멸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만약 핵무기를 가진 두 국가가 끝내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둘 중 어느쪽이든간에 세계 각지로 무차별적으로 핵을 쏘고, 본문처럼 망합니다.
20/11/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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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킹에선 너도나도 패륜의 제왕(...)이 되는데, 근데 또 이게 현실 역사 고증이 잘된거라...
20/11/15 22:17
수정 아이콘
한국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게 그건 것 같아요. "위치가 바뀌면 그만이지"...라는 말. 흐흐흐 고증입니다!
20/11/15 21:0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니 대단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대량학살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최고봉은 "스티븐 킹"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스티븐킹의 능력도 뛰어나고, 그런 절망적 상황을 경험하는 개인들에 대한 묘사도 정말 디테일한 것 같습니다.
20/11/15 22:19
수정 아이콘
"스티븐 킹"을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수도 있군요! 생각해보면 진짜 작품 하나마다 세상이 망하는 그야말로 대단한 작가군요 흐흐흐.

사실 모두의 전체이용가(?) 메이플스토리도 스토리가 있으려면 갈등이 있어야하고, 갈등이 있으려면 나무 막대기로 달팽이를 때려야하니까, 결국 어느 정도 폭력성은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마냥 덮어놓고 안 넣을 그런 종류의 소재는 아니지요. 다만, 저는 아무래도 그 어느 인류시대보다 '상상력과 감수성과 이해도가 넘치시는 현대인들께서' 도대체 무슨 사고를 나중에 치실지 영 찝찝하단 말이지요... 20세기 수준의 사고도 이미 장난 아니었었고요.
20/11/15 21:10
수정 아이콘
와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1/15 22:19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꽤나 괴상한 주제를 골라서 저도 꽤나 고민 했어요!
20/11/15 21:17
수정 아이콘
나치 선전 영상 취미로 찾아보던 1인 여기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멋있었다는 건 아니고, 왜 재즈 듣다 보면 오래된 재즈로 조금씩 넘어가듯이, 정치 선전의 원류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뭐 종종 그렇듯이 이 취미도 조금 하나보니 별 거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뒀지만요.
20/11/15 22:22
수정 아이콘
별거 없다는 느낌이 드시는 OrBef님에게 동독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https://youtu.be/1Z3NFF17hgo 근데 저는 요즘엔 얘네도 별거 없는거 같아서 또 다른 별천지좀 찾아보려고요...
20/11/15 21:34
수정 아이콘
급침환...
낙찌 좀비 머리통 날리는 건 넘모 재밌는걸요

최근에 건프라 만드는 취미가 생겨서 기분이 묘해지네요(...)
20/11/15 22:27
수정 아이콘
건프라도 우주세기는 독가스 쓰고 콜로니 떨구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흐흐흐. 더블오의 ELS 같은 희망찬 SF도 멋지지만, 초기 로봇 애니메이션들은 확실히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세계관에 전쟁무기가 가득하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이야기였던 특징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전한 취미는 중요합니다! 불건전한 취미에 빠지는 것보다는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지요!
20/11/15 22:05
수정 아이콘
가끔 정말 가볍고 클리셰적인 상상을 하는데, 핵전쟁같은 인류의 잘못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은건, 미래에서 누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그 이벤트만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본문에 [심지어 게임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부분 위의 게임 스샷은 어떤 게임인가요?
20/11/1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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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가끔 비슷한 상상을 합니다. 우주에 생명체가 살만한 행성이 많아도 사실 인류보다 이른 시점에 끔찍한 결말을 맺고 돌덩어리가 되어버리거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 처해버린 땅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흐흐흐. 아니면 우리가 어떤 역사에 기반을 둔 시뮬레이션 우주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저 귀여운 도마뱀 친구들은 "스텔라리스"에서 나옵니다. 역시 패러독스 게임 중에서 하나이지요! 그리고 인간이 대상이 아니여서 그런지, 가장 인종청소가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행성을 점령했는데 이상한 종족(?)만 가득하면 식량으로 가공하고, 행성째로 먼지로 만들고, 노예로 삼고, DNA 개조를 하고, 세뇌 빔을 쏘는 인공위성을 지어주고 등등... 진짜 '몹쓸 상상'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1/1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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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역설사 게임이었군요 ㅠㅠ 언젠가 마음 크게 먹고 시간내서 한 번 해봐야겠네요.
20/11/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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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외계인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에는 말씀하신 변수가 들어가있죠.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된 문명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는 기간'
20/11/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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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드레이크 방정식의 '우리와 계속해서 교신할 수 있는 시간'에 그런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겨있었군요... 그렇게 보니 진짜 코스믹 호러네요. 하나 배워가는 덧글 감사합니다!
-안군-
20/11/1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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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남학생의 머리속에는 두가지 생각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세계정복"과 "세계멸망".
뭐, 한때는 저역시 슈퍼로봇을 만들어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죠. 마징가의 헬박사가 뭐가나빠?!! 개쩔어!! 겁나멋있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그렇게 현실에 적응해가고,
하바드 정도는 들어가야 인간이지!! 하다가 슬슬 서울대->인서울->아무데나 되겠지.. 로 바뀌기도 하고...

그랬던 중2적 상상력을 게임이나 영화, 소설 같은거로나마 해소(?) 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흐흐...
20/11/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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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하루를 지나고 다시 글을 읽어보니 중2병하고도 접점이 있는 이야기를 쓰긴했군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지금 대학원에 갇혀서(?) 연구비 루팡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현대 미국문학을 일종의 내지문학 (한국인에게 익숙한 그 '내지' 맞습니다. Metropole -> 식민제국의 본국)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고 그 발상의 연장선에서 써진 글입니다. 본문의 도입부가 의도와는 전혀 안 맞는 너무 전공자의 내부 이야기가 될까봐 메리 셸리의 이야기와 코로나 이야기로 대체하고 넘어가버렸지만요. (질병문학도 세계적인 사건을 내부와 외부로 나눠서 다루면서 '본국의 독자들'에게 제공해준다는 점에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지금 21세기 미국문학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먼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사람이 임자인 블루오션인 '이민자 문학'의 많은 작품들은 외부의 "세계적인 참극 (Atrocities)"에 대해 미국인 그리고 아직 '현지에 남아있는 동포들'에게 바치는 '생존자 소설'의 구조를 많이 띄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로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계 미국인의 이야기, 일본계 미국인이 행정명령 9066호로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이차대전 이후로 인종차별을 계속해서 받는다는 이야기, 9/11 이후 쏟아진 중동계 미국인들의 이야기 등등은 전부 이런 시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저도 거시적인 중2병 상상력의 제 스스로의 희생양이긴 했습니다만, 덕분에(?) 이런 쪽으로 나름대로 뭔가 주장하는 글들을 쌓아보고, 자료를 만들어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저 스스로 나름대로의 '해소'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흐흐흐흐. 하지만 워낙 '세계적인 참극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보라고 바치는 이야기' 속에서 살다보니 확실히 중2병의 영역을 걸어다니게 된것 같긴 합니다.

근데 저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남자답게(?) 철이 들어줄 생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히히!
-안군-
20/11/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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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게임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보니, 해외의 게임들에서 느껴지는 중2력이 우리나라 게임에는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종종 들거든요.
예를들어 완다와거상 같은 게임을 보면 게임 플레이는 거대괴물을 죽이는 내용이지만, 스토리는 세상이 망하든말든 난 내 여친 구할거야!! 거든요. 그밖에도 뭐.. 많죠. 세상의 운명을 손에 쥔 주인공의 모험... 크... 쩔잖아요??
그게 약간 디스토피아적으로 흐르면 꿈도 희망도 없엉! 다 죽는거야! 아포칼립스다! 희희희!! 가 되는거고...
암튼 흥미로운 주제의 글을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heLasid
20/11/17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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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뭘까요? 작품이란 대체 뭘까요? 대체 무엇이 좋은 글일까요?
요즘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최근 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은데, 문잘알 Farce님께서 관련 글을 자주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우리는 모두 starchild고, 죽으면 결국 별로 돌아갈 텐데,
멸망 그까이꺼, 좀 당하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악이란 인간을 인간 이하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 했던가요?(무척 인간적인 정의군요)
개인의 차원이든, 종의 차원이든, 제대로 멸망을 당하지도 못한 채,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는 인간 이하의 삶으로,
혹은 생존과 번식이 삶의 유이한 목표가 되는 원시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뭐랄까...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20/11/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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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뭐고 좋은 글이 뭔지 궁금하시다면 대학원에 오시면... 아아아아 죄송합니다!!! 흐흐흐 저도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걸 깨달을려고 길을 걷고 있는 걸요.

저에게도 있어서 인간의 발전이 결국 퇴보를 시작하는 우로보로스가 될 수가 있다는 아이러니가 가장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리셋 같은건 대중매체에서나 다룰 흥미위주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렇게 많은 폭탄들을 등에 이고 계속해서 "잘 될까봐", 그게 걱정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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