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일본인의 여행기를 읽다가, 저도 과거 여행했던 곳에 대한 인상을 다시 재정리해서 하나로 엮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 피지알에도 올린 적 있는데, 보다 체계적으로 재편집하여 한 번 글 써보겠습니다. 2017년에 이스탄불과 상트페테르부르크, 2018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다시 한 번 그 소감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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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탄불 (2017)
이스탄불은 과거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렸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내전에서 승리하여 로마제국을 다시 통일시킨 후, 당시 비잔티온이라 불리던 곳에 새로 수도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어 서로마 멸망 후에도 천년 넘게 번영을 누렸죠. 그래서 이스탄불에서는 과거 로마제국의 유적을 여럿 볼 수 있으며 그 정점이 바로 하기아 소피아 (거룩한 지혜) 대성당입니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서기 6세기 경에 지어진 건물로, 당대 세계 최대의 단일 건축물이었습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건축물로, 로마의 판테온을 능가하는 압도적이고 위압적인 돔을 자랑했으며 내부는 화려한 금박 모자이크가 천사와 예수 그리고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서유럽이 이와 같은 건물을 짓기까지 다시 천년이 흘러야했습니다. 수세기가 지날 때까지 당대 그 어느 나라도 이러한 규모의 건물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로마의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여 만든 건물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죠.
이 건물을 완성한 후 당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도다"
하기아 소피아를 실제로 보고, 그 내부에 들어가면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과거 키에프 대공국의 사절단이 하기아 소피아를 방문한 후에"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곳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신을 본 적이 없지만, 그가 만약 존재한다면 이곳에 거주하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하기아 소피아 맞은 편에는 오스만 제국이 건설한 "블루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하기아 소피아의 완벽한 데칼코마니입니다. 하기아 소피아 완공 이후 천백년 후에 지어진 건물인데, 이 건물 또한 이슬람의 위용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천장은 아름다운 푸른 색으로 되어 있고 바닥은 화려한 카펫으로 덮여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이곳에 입장하면 왠지 모를 평온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슬림인들이
기도를 할 때에는 방문이 허용되지 않는데,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어떨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한편 이스탄불에서 이색적인 대화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번화가의 한 펍에 들렸습니다. 다소 늦은 밤이었는데 은근 사람이 많더군요.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한 터키인과 수다를 떨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영어를 꽤 잘해서 한 시간 남짓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먼저 저한테 중국 일본 물어보더니 코리아라고 하니까 남한이냐 북한이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당연히 남한이라고 했죠. 그리고 북한사람들은 여행 못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북한이 김정은 있는 거기 맞냐고 물어보는데, 맞다고 해줬습니다.
저는 북한이 아주 나쁜 나라라고, 공산주의도 아니고 김정은을 신처럼 모신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터키도 똑같다고 했습니다
. 아니 터키 만주주의 국가 아니냐고 되받아쳤더니 그가 껄껄 웃으면서
"너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라며 에르도안이 술탄이 되어가고 있고 언론은 모두 거짓말만 하고 야당 정치인들은 감옥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
그래서 사람들이 에르도안 싫어하면 투표로 몰아낼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터키인들 절반 이상이 모두
"양떼
"와 같다
... 저 지나가는 사람 보이냐
.. 쟤도 양이고 저이도 양이다
...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류에 따라가는 존재들이라고 되받아쳤습니다
. 그러면서 앞에 지나가는 노인을 갑자기 붙잡고 터키말로 에르도안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니 노인이 뭐라고 쌸라쌸라하니까
...저한테 저 노인이 방금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 거 보라고
...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말걸면 꽉 막힌 사람들이 둘 중에 한명이라고 말하면서 근데 재미있게도 거리 순찰하는 군인들은 에르도안 싫어한다고 하더라구요
... 근데 쿠데타
(자작
?) 이후로 군대도 완전히 장악당했다고
(...)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 티비에서 학교에서 모두 에르도안 찬양하니까 다들 그런가보다 한다고
...
한국은 어떠냐고 물어보더군요...복잡하게 설명하기 그래서 그냥 대통령 탄핵됐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에르도안도 곧 그렇기 되길 빌어주면서 자리를 끝냈습니다.
사실 그는 쿠르드계 터키인이었고, 자신의 친척이 IS랑 싸우고 있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는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이 IS 상대로 고전하는데, 쿠르드인이 싸우기 시작하니가 전세가 역전됐다면서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더군요.
한편 다른 날, 다른 펍에서 맥주 마실 때 제 옆에 한 커플이 마주 앉더군요. 자리가 부족해서 그런지.
남자는 수염이 덥수룩했고 여자는 금발로 염색한 듯했습니다. 저한테 먼저 니하오라고 인사를 건내더니 저는 바로 코리아 낫 차이니즈라고
했죠. 자기는 레바논 사람이라고, 저와 마찬가지로 여행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그에게 무슬림(practicing
muslim)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아니 근데 여자친구분은 히잡 착용 안하셨는데요?"라고 되받아쳤더니 여자분께서 "무슬림이라고 히잡을 다 착용하는 건 아니다"고 하시더군요.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할 때만 착용하면 된다면서,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베이루트가 중동의 파리라고 들었다고, 꼭 가보고 싶다고, 시리아도 가보고 싶은데 거긴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말을 했더니... 그가 말하길 레바논이 시리아라고 말했습니다. 레바논에 현재 시리아 난민 200만명이 와있는데, 레바논 인구 절반 이상이다... 레바논이 지금 시리아다...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레바논 사람들보다 저임금으로 일해서 레바논도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하고 나라가 많이 어지럽다... 그런 얘기를 해주더군요. 시리아 난민이 레바논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마지막 날 다른 펍-카페에 가서 물담배를 주문했습니다. 그곳 서빙하는 남자가 십대 후반 내지 이십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역시... 자기는 21살이라고 했습니다. 가게에 손님은 저 하나밖에 없었고 왠 이상한 동양인이니 그도 호기심이 생겨서 같이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시리아 난민이더군요. 고향이 알레포라고.. 맞습니다 그 알레포. 전쟁으로 인해 현재 완전히 폐허로 변한 그 알레포. 자기 가족은 아직도 알레포에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무사하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 중에 다친 사람 있는지 물어봤는데 다행히 알라께 감사하게도 자기 친구들 중에는 없다고...그리고 짓궂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인 중에 IS 가담한 사람 있냐고 물어봤더니 약간 정색하면서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에쉬는 이슬람이 아니고 이들은 이슬람의 적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IS가 미국 CIA의 작품이라며 미국이 중동사람들을 계속 억압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이는 음모론이지만 그만큼 중동사람들의 반미감정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는 또 전 세계에 30개나 넘는 무슬림 국가들이 있는데 시리아인들을 도와주는 건 그나마 터키밖에 없다고 했습니가. So the turkish are brothers... That's good to hear이라고 해줬습니다. 사리아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반드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2) 상트페테르부르크 (2017)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철저하게 계획해서 세운 도시입니다. 야만(?)의 시대를 뒤로 하고 서구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건설한 도시이죠. "나타샤 댄스: 러시아 문화사"의 저자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야말로 "포템킨
마을potemkin village"의 원조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시.
그렇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기 위한" 도시입니다.
표트르 본인이 서유럽에서 보았던, 그리고 감탄했었던 많은 풍경을 그대로 러시아에 이식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특히 암스테르담을 좋아했는데, 이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암스테르담과 유사한 건축양식이 즐비하고 또 유사한 운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서유럽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모방한 카잔대성당, 서유럽의 바로크 양식을 모방한 성이삭대성당 등 서유럽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서유럽 짝퉁 도시들과는 당연 차원이 다릅니다. 미학적 감각을 중시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인들은
서유럽보다 더욱 서유럽 같은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고 이들은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종교적인 거 같습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 취급당하면서 박해받았는데, 러시아인들의 마음에 "정교회"는 결코 박멸할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카잔대성당은 누구나 무료로 입장 가능한 성당입니다. 러시아인들은 이곳에 입장할 때 무슬림처럼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입장하는데 노인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각종 성화 앞에서 삽자성호를 긋고 절을 하며 또 성화에 입을 맞춥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카잔성모성화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자신이 입을 맞출 수 있는 차례를 기다립니다. 사실 서유럽에서는 요즘 거의 찾아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프랑스나 독일 또는 영국에서 젊은 여인들이 스카프를 두르고 경건하게 예를 표하는 모습은 정말 희귀하니까요. 정교회는 역시 러시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모양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백인도시입니다. 여러 인종이 섞여서 사는 서유럽 대도시들과는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백인이 95퍼센트 이상인 거 같습니다. 그만큼 러시아가 "덜" 세계화 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다른 한편 서유럽 극우파가 왜 러시아를 부러워하는지 언뜻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인종차별적인 태도나 언행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관광객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서유럽에서 가끔 겪었던 기분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이미 관광상품입니다.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이 그려진 머그컵이나 티셔츠 등이 길거리 상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 등에도 즐비하더군요. 역시 푸짜르의 위엄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모든 러시아인이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현지 투어 가이드를 해주었던 러시아인 가이드(28세 러시아 여성인데 비정상회담 패널들만큼 한국어를 잘하더군요) 많은 이들이 푸틴을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 인구가 1억4천만인데 그 중 러시아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푸틴 한 명밖에 없는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현지 호스텔에서 같이 숙박했던 한 우크라이나인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의외였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최악인데, 어떻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 올 생각을 했던 것인가... 아무튼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꽤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키예프 출신인데, 유럽 여기저기 가봤는데 상트를 꽤 좋아한다고... 이번이 네번째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유로마이단(친러파
대통령을 몰아낸 우크라이나 1차 혁명)에 참가했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참가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열심히 참여하다가 나중에는 관망하게 되었다고. 그는 이어 처음에는 다들 좋은 뜻으로 혁명(?)을 시작했는데, 상황은 점점 안좋아졌고 무엇보다 경제가 폭망(...)해서 더욱 힘들어졌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 시위를 해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도 최악이고 크림반도까지 빼앗겨서 더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근데 그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크림반도를 무단점거한 것은 싫지만 러시아인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반감 같은 거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며 아시아는 태국밖에 안가봤는데 언젠가 일본이나 한국에도 여행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3) 모스크바 (2018)
2018년 5월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련의 심장. 공산주의 총본산. 그러나 마천루가 높이 솟아있으며, 스타벅스와 쉑섹버거도 들어와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곳곳에 스며들어있고 한때 국영백화점이었던 “굼” 백화점에는 루이뷔통, 프라다, 아르마니가 입점해서 일반인들은 감히 쇼핑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급 부티크로 변했습니다. 심지어 공산주의의 심장인 붉은 광장에서는 레닌이나 스탈린 분장을 한 사람들이 사진 찍으면서 돈을 요구하기도 하죠. (참 아이러니 하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소련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로 도시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지하철, 그리고 관공서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하철이 매우 인상적인데, 지하철 역 하나하나가 미술관이니 박물관을 연상케합니다. 웅장함과 화려함은 가히 루브르나 내셔널갤러리에 못지 않습니다. 과거 소련이 프로파간다 목적을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에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실용적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역을 돌아보면, 소련의 역사, 그리고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천장에는 어머니 러시아가 나치독일을 밟은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를 볼 수 있으며, 또한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벨라루스카야라는 역에는 벨라루스의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소련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또 지하철의 문양자체도 벨라루스의 전통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역시 모스크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제2차세계대전의 흔적입니다.
크렘린 궁 앞에는 이름모를 용사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데 이곳은 대통령 직속부대가 지키고 있습니다. 나치독일에 맞서 소련은 자그마치 2천만명 희생되었는데, 이들을 위해 공동묘지(?)를 마련한 것이죠. 그리고 그곳을 기준으로 나란히 주요 격전지를 기리는 비석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키에프, 스몰렌스크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헌화를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대조국전쟁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심지어 한 지하철의 문은 1941-1945라고 도색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러시아 현지인 가이드를 통해 도시투어를 했었는데, 그 가이드도 지하철역의 역사와 대조국전쟁에 대해 설명할 때 뭔가 숙연한 표정을
지었는데, 자기 조부의 가족들도 여럿 희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러시아인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합니다. 한편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자부심도 읽을 수 있는데, 지하철역 곳곳에 쇠낫과 망치 문양을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현재 러시아 외교부 건물에도 공산주의 문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자체가 사실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긴하죠.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와 하위호환이라고 해야할까...소위 말하는 스탈린의 7자매 (Stalin's Seven Sisters) 라고 불리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소련은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초강대국이었고, 그 영향력은 지대했으니 자부심을 가질만 합니다.
그런데 원래 지하철역 곳곳을 장식했던 스탈린의 동상이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는데 흥미롭게도 소련 붕괴한 후 제거한 게 아니라 스탈린 후임자 흐루쇼프가 제거했다고 합니다.
볼쇼이 극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이드가 말하길 최초 볼셰비키가 내전에서 승리하고 나서 볼쇼이 극장에서 소련의 건립을 선포했는데 그래서 때문일까..."소련의 탄생은 “희극(comedy)”이거니 “비극(tragedy)”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인 현지 가이드는 자기 부모님 세대 이야기, 또는 조부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의 소련 시대의 삶은 어땠는지에 대해 아주 생동감 있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특히 자기 조부는 “집단농장” 정책의 피해자였는데, 당시의 어려움을 정교회 신앙으로 극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독실하고 종교적인 러시아에서 무신론을 설파하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는 게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어쩌면 공산주의도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매김하여 러시아의 전통적인 종교관과 합쳐져 인간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부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서구화된 러시아의 상징이라면, 모스크바는 전통적 러시아의 본 모습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19세기 서구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들이 논쟁했을 때에도 슬라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영혼을 서구에 팔아버린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모스크바야말로 진정 러시아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생각납니다.
모스크바에서는 그들의 감정을 어렴풋이 나마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