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5세 남자 대학생입니다.
대학생 분들은 이제 슬슬 시험기간이시죠?
저도 이번주부터 다음주까지 시험기간입니다.
뜬금없지만.. 누군가가 이야기라도 들어줬으면 하네요.
최근의 제 이야기를 올립니다.
사실.. 24년 사는동안 저는 누군가에게 '사귀자'라고 사랑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백은 여러번 받아봐서 여자친구는 몇 번 사귀어봤습니다.
다만 그 고백 전부가 제가 여자친구의 필요성을 전혀 못느낄 때라서 항상 안좋게 사귀었고, 헤어졌지요.
왜냐면 저는 '내게 고백한 상대를 좋아하진 않고 단지 호감만 있을 뿐'인데, 고백을 거절못하고 '어쩌다보니' 사귀게 되었거든요.
친구들이 다들 착해빠졌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여기저기서 보증서달라고해도 넌 거절못하고 전부 보증서줄꺼라면서.. 그런 성격입니다.
좀 많이 나쁘게 말하면 찌질이, 호구라고 할 수 있죠. 요즘 세상에 무조건 착하기만 한건 좋은게 아니니..
뭐, 어쨌든 저는 누구에게 고백을 해본 경험이 없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고백을 거절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역하고 23세가 되어서, 이제야 여자에 눈을 뜨고, 단순한 호감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역시 이놈의 예비역 복학생은..)
작년 봄에 1명, 올해 봄에 1명.. 작년에는 고백할 타이밍을 놓쳐서 고백도 못하고 사랑이 끝났죠.
작년 봄의 그녀가 고백타이밍을 3번(제가 느끼기에는 3번이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었겠죠)줬는데도 저는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 괜히 고백했다가 이 행복이 깨지면 어떻게 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한 생각으로 고백을 미루고 미뤄왔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네요.
- 오빠.. 사랑은 참 힘든 거예요..
작년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두가지였습니다.
'고백은 타이밍이다'라는 것과,
'지금의 행복한 상황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고백을 안하려 하지마라. 행복한 그 상황에도 머지않아 끝이 오리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의 실패를 발판 삼아, 올해는 꼭 고백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나약한 정신때문에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작업 중에, 학교에서 그녀와 함께 밤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벤치에서 책을 한권 주웠습니다.
시간대를 보아하고 주위에 사람도 없는 걸 봐서 놓고간게 틀림 없더군요. 포스트잇으로 전화번호 벤치에 붙이고 그 책을 들고 왔었습니다.
그 때가 4월 중순으로, 중간고사 때였는데요. 잃어버리고 절망할 책주인에게 감정이입도 되고, 제가 듣는 강의의 교재이기도 해서 챙겨두었습니다.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는데 저보다 한살 어린 여학생이었습니다. 책 잃어버려서 울면서 집에 갔다고..
그래서 책을 돌려줬고, 저는 계속 제가 좋아하는 그녀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는데, 같이 밥먹을 사람 없다면서 자꾸 불러내더군요.
처음에는 고맙다고 커피사주고, 2번째, 3번째는 밥먹을 친구 없다고 학생식당, 4번째는 일요일인데 학식안열었다고 학교 앞 가서 먹고..
그런데 4번째 밥 같이 먹을 때 그 애가 말했습니다.
- 오빠.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요?
- 아니. 있을것같냐? 벌써 4년넘게 솔로다. 너도 남친 없다고 그랬던가?
- 네. 없어요. 오빠, 그럼 나랑 사귈래요?
그 애가 워낙 성격이 쾌활하고 당돌한데다가,
제게 고백한 상대 8~90%는 '날 좋아하고 있었다고?'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저는 엄청난 둔감남이라.. 눈치를 전혀 못채고 있었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그녀랑 한창 잘되어가고있었거든요.
머릿속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막 떠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녀, 좋아했던 작년의 그녀, 고백을 거절하지 못했던 철없었던 지난날의 나..
그러다가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발전도 없을 뿐더러, 상대나 나에게 안좋은 결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결론짓고, 과감히 거절했습니다.
- ....미안. 나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 아~
- 사실, 나 진지한 이야기 진짜 잘 못하는데..
거절 할 때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 고백했을 때, '사귀다 보면 좋아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걸 잘 알거든..
이건 말하기 쪽팔린 건데.. 나 이 나이 먹도록 고백 한번 못해봤다.
이번에도 고백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속앓이하고 있는데, 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너는 나같은 녀석한텐, 아깝다. 훨씬 더 좋은 사람 만날거야.
- 오빠는 그 사람한테 고백 안할거예요?
- 솔직히, '꼭 고백해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너로인해 자극받았어. 시험이 대충 끝나면 고백할까 해.
- 꼭 고백해요. 날 거절했으니 그 사람이랑 잘 되야죠. 오빠라면 잘 될거예요.
솔직히 그 당시 그 애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생각이 안납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진지한 자리였다보니.. 긴장해서..
그냥 대충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그 애는 몇번밖에 못만나봤지만 날씬하고 외모도 보통이상이었고 성격도 좋았습니다.
고백을 거절했어도 쿨하게 받아들이더군요. 나와는 다르구나..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간의 호감..은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애와 사귄다는 것은 저에게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좋아하는 그녀가 있었고, 이제는 연애에 신중해지리라 마음먹었기에..
09년 4월 25일. 전역일. 2년 후 11년 4월 24일.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백을 거절해본 날.
시험기간만 되면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물마시는 시간도 아끼며 공부하고,
새벽2시까지 공부 한 후 3시에 기숙사에서 취침. 6시에 기상해서 7시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는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그녀는 행복한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밤새는 것을 좋아했죠. 대학생의 로망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유일하게 같이 있을 수 있는게 저뿐이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털털하고 쿨하고 자기중심적인 그녀의 수발을 열심히 들었고,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죠.
그래서 제 공부는 뒷전이 되었지만, 공부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분위기도 매우 좋았구요.
4월 25일, 그 애의 고백을 받았던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저와 그녀는 각각 시험이 한개씩 남아서 이제 도서관에 짱박혀있을 필요가 없어졌죠.
돌려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답답한 것을 싫어하고, 지나치게 쿨하고, 오글거리는 말 싫어하고, 하고싶은 말 다하고, 자기가 받은건 거의 기억못하는, 문자보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그녀가 왠일로 문자를 먼저 보내왔습니다.
- 오늘 공강언제임?
- 나 좀따 12시부터 쭉 공강이여
- 그럼 두시쯤 밥먹으러 갑시다 나 시험끝나고
- 왠일이여 니가 먼저 밥먹자고 그러고
- 시험기간 동안 나 도와준 니가 기특혀서 밥이나 사줄라 그러지
어제 그 애의 고백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더이상 도서관에서 같이 지낼 일도 없습니다. 그녀가 먼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오늘은 천재일우의 기회. 반드시 고백을 하리라.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그녀와 만나서 학교 앞에서 밥을 먹고, 학교로 올라가려는 그녀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며 카페베네로 꼬드겼습니다.
- 그래서, 그 애랑 어떻게 됐는데? 빨리 말해봐.
- 연락오고서 내가 책 돌려줬더니 걔가 커피사준다고 그랬었잖아. 그래서 그거 듣고 니가 돈이나 뜯어내라고 그랬었지. 여기까지 말했던가?
- 어
- 근데 그 이후로 3번 더 만났는데, 4번째 만났을 때 나한테 고백하더라. 사귀자고...
- 헐. 그래서? 그래서?
- ....거절했어.
- 왜? 미쳤구나 니가.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차버리냐? 멍청하긴
- 아니, 거절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해. 나약한 마음으로 거절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줘.
- 에이구 니가 아직 정신을 못차렸네 솔로탈출 해야지 임마 뭐라고 거절했어?
- 사실 나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그사람 외에는 안될 것 같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웃으면서 잘되길 바란다더라. 나한텐 과분한 애였어.
- 와.. 근데 여자애가 먼저 고백하다니 걔도 참 대단하다. 근데 불쌍하다..
- 사실 이거 말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 뭔데?
- 나, 너 좋아해
대충 저런 내용으로 대화가 이어지다가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요..
"I was a car"
그녀는 항상 활기차 넘치던 보통 때와 달리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 ......야..... 난 안되......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말.
제가 방금 전에 말했던 '거절할 땐 확실히 해야한다'라면서,
그리고 자신과 제가 왜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들을 말해주더군요.
저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녀의 처음보는 진지한 모습과 이야기에 호응해주면서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 ....되게 쿨하게 받아들이네?
아아..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어차피 그녀와는 안될거라고 마음속 한구석에서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그게 현실이 되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첫 고백을 해봤다는 달성감으로 인해서 그런걸까요? 저는 마음이 편했고, 좋았습니다. 달관한 것처럼.
그녀의 거절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죠.
- 나중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겠다. ' 나 옛날에 이녀석한테 고백했다 차였어 젠장!'이라고
- 야, 뭔 '나중'이냐. 우리 계속 친구잖아.
그녀와 학교로 돌아가는 11년 4월 25일의 오후는 평소보다, 무척, 따뜻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인생 최초의 고백거절'과 '제 인생 최초의 고백 후 차임'이 이틀에 걸쳐 일어나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 뒷이야기를 쓸 차례네요.
2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