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기초적인 산수 문제를 하나 풀어 봅시다. 7을 나누고 곱하는 문제에요. 남자의 일생을 70세라 치면 10개 나누어 집니다. 옛날 그리스의 현명한 사람으로 유명한, 예, 7현인이라 불린 사람 중 단 3명만 고정 멤버였는데 그 중 한 명, 아테네의 정치가인 솔론이 산수 놀이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서정시라 칭해지는데, 그 중 엘레기라 불리는 쟝르로 노래합니다. 전부를 얘기할 수 없고, 지금 주제로 삼은 결혼 나이에 관한 부분만 읊습니다.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 1] 헤르만 프랭캘/김남우, 홍사현 역, 436쪽에서 인용
"다섯 번째 시기에 결혼을 생각해야 하며, 후세를 생산해야 한다."
(나중에 쓰일지 몰라서, 두 번째 시기는 "신은 다음 칠 년을 소년에게 채우게 하며, 이때 성별에 따른 성숙의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7 곱하기 5, 즉 35세에서 42세 시기에 행해야 하는 일이 결혼과 자식 낳기 입니다. 그리스 7현인에 속한 사람이 당시 시대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테고, 옛날 사람들은, 아니 그리스에 한정해서, 이렇게나 늦게 결혼했나 싶습니다. 솔론의 시 말고 다른 사람의 결혼 연령에 대해 언급을 들어봅시다. 솔론이 기원전 7세기, 6세기의 인물이라면 그보다 전 세대인 8세기로 추정되는 헤시오도스의 말입니다.
[일과 날] , 헤시오도스/천병희, 695행~699행
"그대는 적당한 나이에 아내를 집 안에 들이시라
서른 살에서 많이 모자라지도 많이 넘지도 않을 때 말이오
이때가 결혼 적령기라오.
여자는 4년 동안 꽃이 피다가 5년째에는 결혼해야 하오."(여자는 월경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는 해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뜻)
[신통기], 즉 신에 대한 계보를 노래한 헤시오도스는 서사시 시인으로 분류가 됩니다. 보통 신성한 이야기, 즉 신들의 이야기는 그에 걸맞는 위대한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서사시란 쟝르죠. 서양 최초의 문학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의 마스터피스였습니다. 맨처음은 쫌 모자랄 수밖에 없을텐데 그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가 있지? 라는 의문으로 호메로스's 문제가 등장했는데 이젠 너무 뻔한 주제이고, 위에 소개한 프랭캘의 저작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관심이 있다면 그 작품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신에 대한 서사시, 인간 개인 문제는 서정시로 다룹니다. 그리고 산문 형태인 역사가 나오죠. 역사 연구(히스토리아) 이전에 극 작품(비극, 희극, 사튀로스극-혹은 풍자극으로 번역되기도 하는)이 등장합니다. 역사라는 산문이 민속학, 지리학의 후행한 산문이라면 극작품과 비슷한 시기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문학의 쟝르의 변화가 인류(서양인이라 한정하기 힘들기도 합니다)의 정신의 발전-이것도 역사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으로 도식화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선 정말 훌륭한 저작들이 있는데, 단 하나만 소개하자면 "브루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입니다. 그거 읽으면 다른 작품들은 따라 올 겁니다. 에릭 도즈, 콘포드 등)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들]은 이복 형제간의 상속분쟁이 계기가 된 작품이고 형 혹은 동생에게 인생에 대해 훈수를 두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교훈시죠.-여기에서 인류 문학, 사상사의 떡밥 몇 개가 등장하죠. 판도라의 항아리(상자)와 인류 문명 시기를 metal로 구분한 신화, 금의 시대-은의시대-청동시대-영웅시대-철의시대
헤시오도스의 결혼 적령기에 대한 언급 중 특이한 건 여자의 적령기입니다. 월경이 시작한 지 5년째, 위의 프랭캘은 사춘기가 시작된지 5년째로 말합니다만,는 고전기 시대 아테네의 경우로 한정하자면 너무 늦은 나이라 보여집니다. 이건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자, 7현인에 언급되지만 고정 멤버는 아닌 리쿠르고스가 스타르타에 법제화했다는 여자 결혼적령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구체적인 나이는 제가 아직 모르지만, 출산의 고통완화나 산모의 건강을 위해 성적 성숙이 된 후 조금의 기간을 두고 결혼하게 합니다.-문제는 결혼 방식이 약탈혼입니다(참고, 플루타르코스의 [대비열전] 리쿠르고스 전) 아테네는 초경이 시작되면 바로 결혼시키는게 관례로 보입니다. 보통 14~15세가 여성의 결혼 적령기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기전 플라톤만 간략히 언급하자면, 아테네나 그리스 현실을 말한 건 아니고 이상(이데아적인) 국가에서 이상적 결혼적령기로 남자 나이 30에서 35세로 둡니다. [국가], [법률] 공히 같습니다. 플라톤 철학의 정수라 불리고 초-중-말기로 구분할 때 중기의 [국가]편이나 유고작인 [법률] 모두 같습니다. 헤시오도스에서 이어져온 고대 그리스의 결혼 적령기로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이쯤 결혼해야 한다고 본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결혼 적령기에 대한 다시 사람들의 사고관을 마무리 짓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결혼의 적령기를 감안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건강한 자식'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남녀의 가임기간을 고려하고, 양육기간을 상정하고 그리고 노년에 자식이 부모를 부양할 것까지 고려합니다. 그리고 '건강한'은 현대 인권의식에선 매우 불쾌한 감정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테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리스 폴리스에서는 여자 아이와 특히 불구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양육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영아살해가 빈번하고 처벌받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권장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는 대략 18세에 결혼해야 하며, 남자는 37세 혹은 그 언저리에서 결혼해야 한다."([정치학]7권16장)고 말합니다. 남녀 가임기가 남자는 70세까지, 여자는 50세까지라 대략 둘 간 20세정도 차이가 나야 하며, 여성의 성 성숙에 대한 배려로 현실의 15세를 3년 정도 늦춘 셈입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심지어, 아니 당연히 소크라테스) 모두 스파르타 성애자이니 리쿠르고스의 입장을 지지한 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영문 위키나 나무위키에도 고대 그리스의 결혼 적령기는 남성은 30~35세로, 여성은 15세 정도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요? 솔직히 어느 누구도 모를 겁니다. 이걸 대면조사할 수도 없으니 대략 당대 사람들의 감이나 심리적 압박 기제로 다가오는 결혼 나이일 가능성이 크고 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신문 등에서 기사로 나와줘야 알지 주변'도르'로만 data를 삼는다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습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상황은 더더욱 모를겁니다. 제가 어렸을 적 30년전 스물 언저리에서 '느낌도르' 결혼적령기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이 문제를 한 살 많은 누나와 얘기하다가 한 소리 들었습니다. 남자는 서른 정도였다고.. 제가 어렬을 적 일찍 결혼하고 싶었나 봅니다). 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아테네 한정 평균 결혼 연령이 40세라고 한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문구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된 거죠. 도저히 믿기 힘들어서...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남성들은 늦게 결혼을 했는가? 정확히는 '왜 나는 옛날 사람들은 다들 일찍 결혼했다고 믿고 있었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 봅시다. 저의 선입견은 구체적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현대인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자손번식에 국한되지 않고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감은 크고 개개인의 안락이 크게 중요하게 된 개인주의가 늦게 결혼한 이유이고, 가족주의이자 집단주의 특히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지금 정치사상 측면에서 보면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로 여겨지며 '시민=전사(군인)집단'이고 그게 폴리스 자체인데 늦게 결혼=자식(병력)생산이 늦어짐을 견딜 수 있다고...
너무 길어져서 이만 줄이고... 어쩌면 안 쓸 수 있어서... 대략 남성의 경우 군 문제 해결. 30세까지 병역의무를 졌음.(전시에서는 60세까지 전투에 투입됐음. 근데 얘네들은 전쟁이 없던 시기가 있었던가;;) 그리스 반도의 농업생산성이 매우 떨어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중해 전역으로 식민지를 건설해서 인구분산하고-델포이의 신탁도 이와 관련해 떡상함, 남자의 결혼을 늦추기 위해 동성애(소년애)를 퍼뜨림-이런 논문이 있습니다만, 이게 노혼의 원인이 되는지는 다르지만, 소년애는 결혼이 늦춰짐의 원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소년애가 인구부양력 감소로 인한 목적인지가 논란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소년애 자체는 노혼의 원인은 맞는 거 같습니다. 이 정도를 다룰 거 같습니다. 당시 여성의 결혼관과 연애관 등이 주가 될 거 같고... 소년애는 위험부담이 있어 겉핥기 식으로 넘어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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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대학교때 서양사 수업시간때였나.. 그리스 지도층은 젊을 때는 나이많으신 레이디나 동성의 지도층과 파트너를 맺다가 중장년이 되면 가임기의 어린 여성과 결혼해서 후계자 생산에 집중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요새같으면 ... 교수님이 말하기 어려운 주제였겠죠? )
소년애에 대해서는 일종의 매뉴얼이 있었죠. (19금) 권장된 체위도 있었구요. 그리스 도기 그림도 있는데... 굳이 찾아볼 필요 까지는...
플라톤 [향연]에 소크라테스의 소년애 상대로 알려진 알키비아데스의 말이 나오는데, 대충 소크라테스는 마치 우리 아빠처럼 같이 침대에 있어도 똥꼬가 안 아팠다로 얘기를 하는데, 이것이 권장된 육체적 접촉이었습니다. 즉, 본격적인 섹스는 하지 않는게 원칙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표현은 못 하겠네요. 소년애의 사회적 기능과 탄생의 경제적 배경 등은 나중에 쓰게 되면 쓰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내는 사랑의 상대방이 아니었습니다. 뭐, 실제로는 사랑의 유대감이 있는 관계가 꽤나 많았겠지만, 보통 사랑의 상대는 매춘부나 소년애 상대방이죠. 정확히는 문학에서는 저 둘이었고, 실제로는 남의 여자, 유부녀도 포함됐죠. 매우 빈번히 간통이 범해졌지만 '간통 소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죠.
그리스 사회는 철저하게 가부장제였고, 스파르타만이 여성의 발언권이 좀 셌고 나머지는 여성은 가정 내의 존재로 머물러서 남자 사회에서 관심 대상이 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유부녀의 이름이 알려진다면, (스파르타에선 유부녀의 이름이 좀 알려졌습니다만) 그 여성은 품행이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크산티페'로 알려졌는데, 그건 바로 품성이 나쁘다는 방증입니다. 가장 유명한 제자인 플라톤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감옥으로 마지막 면회 온 걸 지나가는 말로 언급만 하죠. 또 다른 제자인 크세노폰에 의해 이름과 거친 성정이 알려졌는데, 그가 아닌 다른 후대 사람이 최초 언급된 출처라면, 저라면 그 언급의 진위에 대해 의심했을 겁니다. 이런 분위기인데도 간통이 흔했다니 남성은 30대 중반, 여성은 10대 중반에 결혼한 나이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