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8/10 02:30:18
Name 식별
Subject [일반] 가난했던 합스부르크는 어떻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나

Das_Interregnum_Drei_Männer_am_Grab_eines_Kaisers.jpg

《합스부르크 가문 연대기》 (3) 태조, 루돌프 1세


 주후 1250년,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4세는 남쪽에서 날아온 소식을 듣고서는 까무러칠듯이 놀랐고, 이내 침통한 표정으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동시대 연대기 작가들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다리가 길고 큰 키, 창백한 안색에 허약한 체질, 길고 가는 손과 긴 코, 그리고 엄숙한 표정"를 지니고 있었다. 20세기에 발굴된 그의 유해는 연대기 묘사의 신빙성을 어느정도 뒷받침한다. 그는 정말로 웅장하고 기다란 체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Rudolf_von_Habsburg_Speyer.jpg


 그를 사색에 잠기게 한 불길한 소식은, 할아버지 대(代)인 친절공 루돌프 때부터 삼대를 걸쳐 일편단심으로 모셨던 프리드리히 2세 폐하께옵서 급작스러운 고열로 인해 훙서하고야 말았다는 비보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주군이기에 앞서 루돌프 4세의 대부였다. 그 얼마나 자주 황제 폐하의 궁정에 들락거렸던가. 정치적 걱정에 앞서 루돌프 4세는 개인적 비통에 잠겨있었다. 


1709px-Emailetafel_mit_Investiturdarstellung-WUS04477.jpg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가 호엔슈타우펜은 제국 내의 유력 선제후인 벨프 가문, 그리고 그들의 동맹인 교황과 지난한 권력 투쟁을 하고 있었다. 황제는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이탈리아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야만 했고, 교황과 의견을 조율해야만 했다. 교황 또한 주교와 수도원장을 서임하는 일정한 영적 권한을 황제에게 위임해야만 했다. 세속적 영역과 영적 영역은 모호한 경계를 사이를 두고 자주 충돌했고, 양자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권한을 휘둘러 상대를 복종시키려 최선을 다해왔다. 


Conrad_4_of_Germany.jpg
콘라트 4세


 황제가 급서한 지금, 교황과 벨프 가문의 동맹 세력은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루돌프 4세와는 막역한 사이이기도 했던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트 4세가 보헤미아 왕위와 슈바벤 공작위 등 아버지가 지녔던 대부분의 작위를 습작했다. 그러나 교황은 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콘라트는 강제로 폐위됐다. 전란의 시대가 열렸다. 제국의 귀족들은 제각기 다른 편에 서서 기치를 드높였고, 수없이 많은 수도원과 요새가 불타기 시작했다. 루돌프 4세 또한 호엔슈타우펜 가문 편에 서서 바젤의 주교와 맞서 싸우는 와중에 파문됐다. 

 주후 1254년, 콘라트 4세가 말라리아로 죽자 혼란상은 격화됐다. 절대 권력이 급작스럽게 사라진 지금, 공백기를 비집고 들어온 파편화된 권력의 시계추들이 제각기 요동치고 있었다. 바야흐로, 대공위시대(Great Interregnum)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루돌프 4세는 지금, 자신이 바라건 바라지 않건, 일정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동시에 대립로마왕으로 선출됐다. 홀란트의 빌렘 2세,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 콘월의 리처드 등... 복잡한 뇌물공세와 치열한 전투가 지속됐다. 


Villani_Benevento.jpg
베네벤토 전투


Battle_of_tagliacozzo.jpg
탈리아코초 전투


 홀란트의 빌렘 2세는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다 타고 있던 말을 잃고는 프리슬란트인들에게 살해당한 뒤 어느 집 바닥에 파묻혔다. 콘라트 4세의 이복동생 만프레디는 조카이자 호엔슈타우펜의 당주 콘라딘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시칠리아 왕위에 즉위했다. 그는 교황의 동맹인 앙주의 카를루 1세에게 베네벤토 전투에서 참패한 뒤 적에게 돌격하다 사망했다. 그의 조카이자 콘라트 4세의 적법한 계승자, 호엔슈타우펜의 마지막 당주였던 콘라딘이 탈리아코초에서 다시 카를루 1세를 맞닥뜨렸고, 마찬가지로 콘라딘 또한 포로로 잡힌 뒤 참수당했다.


Enthauptung_Konradins.jpg
콘라딘의 처형


 이렇듯 제국이 공위시대를 맞이해 혼란상에 빠지는 동안, 루돌프 4세는 여러모로 가문의 이익부터 챙겼다. 외삼촌의 영지를 몰수하고, 스트라스부르 주교와 바젤 주교가 불화하는 틈을 타 광대한 수도원 토지를 접수하는 등, 합스부르크 가문은 어느새 남서부 독일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독립 세력으로 거듭나 있었다. 

King_Přemysl_Otakar_II_of_Bohemia_-_Alfons_Mucha.jpg
철과 황금의 왕, 오타카르 2세


 1272년, 대립로마왕 중 하나였던 콘월의 리처드가 중풍으로 사망했다. 제국은 다시금 적법한 황위 계승 후보를 물색해야했다. '철과 황금의 왕' 이라는 별명을 지닌 보헤미아의 왕 오타카르 2세는 외가쪽으로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인척관계였으나 별명처럼 너무 막강해 보였기에 선제후들로부터 기피되었다. 

 결국 너무 막강하지도, 너무 한미하지도 않으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오랜 친구'인 루돌프 4세가 일곱 표의 만장일치로서 '로마인의 왕 루돌프 1세'로 선출되었다. 무엇보다도 루돌프 1세는 선거 과정에서 아주 능숙한 연륜을 보이며 자신의 딸들을 선제후들에게 시집보내고, 교황에게 십자군을 약속하는 등 잠재적 정적들을 구워 삶아보였다. 그의 나이, 이미 당시로서는 노년에 접어든지 오래였던, 55세를 지나고 있었다.


3220px-Leopold_Loeffler_-_Emperor_Rudolf_I_in_the_Battle_of_Marchfeld_-_MNK_II-a-252_-_National_Museum_Kraków.jpg


 로마왕으로 선출된 루돌프 1세는 신앙심이 깊다고 여겨졌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상징했던 키워드, '오스트리아의 경건함(Pietas Austriaca)'은 기실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실제 그의 삶은 무자비하고 잔혹한, 전형적인 봉건 영주의 계략과 음모로 점철돼있었으나, 후손들은 그를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이상적인 기독교 기사도를 지닌 이로 추숭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 선거게시판 오픈 안내 [29] jjohny=쿠마 25/03/16 29761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7] 오호 20/12/30 309283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62906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67469 4
104720 [일반] 가난했던 합스부르크는 어떻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나 식별709 25/08/10 709 3
104719 [정치] 값싼 전기 시대의 종말,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71] 깃털달린뱀4832 25/08/09 4832 0
104718 [일반] <발레리나> - 살짝의 변주, 호불호도 한스푼. (노스포) [8] aDayInTheLife3090 25/08/09 3090 1
104717 [일반] 조스의 등지느러미 출현 : 스티븐 미란이 연준 이사에 지명 [13] 스폰지뚱5619 25/08/09 5619 4
104716 [일반] [강스포] '발레리나' 후기 [7] 가위바위보5975 25/08/08 5975 3
104715 [정치] 김문수 "계엄으로 누가 죽거나 다쳤나" 다른 후보들 & 민주당 반응 [166] Davi4ever14488 25/08/08 14488 0
104714 [일반] [방산] 호주 호위함 사업은 일본이 가져갑니다. AUKUS & KGGB [26] 어강됴리7342 25/08/08 7342 3
104713 [정치] 尹 구치소 CCTV 공개되나.. 김계리 "모두 공개하고 마녀사냥 멈춰라" [62] 자칭법조인사당군8805 25/08/08 8805 0
104712 [정치] 방미 중 일본 각료 “미국, 관세 대통령령 적시 수정키로” [17] 시린비5237 25/08/08 5237 0
104711 [정치] 우파 포퓰리즘보다 엘리트 보수주의가 먼저 망했다 [33] 베라히5742 25/08/08 5742 0
104710 [일반] AI 활용에 대하여 : 분석, 평론, 질문, 이해, 연결 [7] 번개맞은씨앗1522 25/08/08 1522 4
104709 [정치] 광복절 특사 대상에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윤미향도 있다 [175] petrus8143 25/08/08 8143 0
104708 [일반] 미국 데이트 정보 앱 TEA 해킹 인것 같은 사건. [9] 카미트리아3438 25/08/08 3438 2
104707 [정치] 윤석열의 탄생은 문재인의 책임인가? [427] 딕시11020 25/08/08 11020 0
104706 [일반] 일본 결정사에 한국남성 급증.. 8000명이상.. [61] 타바스코8349 25/08/07 8349 1
104705 [정치] 도시재생의 실패, DDP에 대한 비판 [35] 깃털달린뱀4765 25/08/07 4765 0
104704 [일반] LLM을 통해 여러 인격의 통합으로서의 의식 생성에 대한 작은 실험 [5] 일반상대성이론3509 25/08/07 3509 3
104703 [일반] 연준은 9월에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까?(feat. 스테그플레이션의 딜레마) [32] Eternity4433 25/08/07 4433 2
104702 [일반] 화웨이의 소름돋는 정체: 기술 기업을 넘어선 '군산 복합체'의 실체 [9] 스폰지뚱5186 25/08/07 5186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