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웨이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자체 기술로 만든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국 기술의 발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함께, 그들의 불공정한 경쟁 방식에 대한 반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거대한 실체를 제대로파악할 수 없습니다. 『화웨이 쇼크』(에바 더우 저)는 바로 그 실체의 중심에 있는 화웨이를 심층적으로 파헤친 책이며,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와의 대담은 화웨이, 나아가 중국의 첨단 기술 전략을 이해하는중요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본 기고문은 해당 대담 내용을 바탕으로 화웨이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도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화웨이는 단순한 통신 장비 회사가 맞는가?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 문제점 분석: 화웨이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화웨이의 성공 신화는 창업자 런정페이 개인의 특성과 중국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치밀한 국가 전략이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이를 여러 층위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가. 창업자 런정페이의 '군대식 문화'와 '애국주의' 리더십
인민해방군 통신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는 창업 초기부터 회사에 군대 문화를 깊숙이 이식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대 전투를 즐겨 인용하며 "미국이 폭격하면 땅굴에 숨었다가, 다시 일어나 고지를 탈환하자"는 식의 강력한 정신 무장을 직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애국주의에 기반한 선동은 공산당원 직원들의 자발적 지지를 끌어냈고, 미국의 제재를 '성장의 명분'으로 삼아 내부 결속을 다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재가 없었다면 굳이 성능이 낮은 자국 기술을 쓸 이유가 없었겠지만, "미국의 폭격"이라는 외부의 위기는 오히려 모든 협력사를 단결시키는 최고의 명분이 된 것입니다.
나. '민관군(民官軍) 융합'이라는 국가적 비호
서구권이 중국을 비판하는 핵심 논리인 '민관군의 불분명한 경계'는 화웨이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화웨이는 단순히 군에 납품하는 것을 넘어, 인민해방군이 R&D 펀딩 주체로 참여하고 공병 장교가 파견되어 군용 스펙(밀스펙)의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군용 통신 암호화, 양자내성암호 같은 최첨단 기술 개발에 화웨이는 항상 '퍼스트 파트너'이며, 혹독한 군용 스펙을 통과한 기술력은 민간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다. 국가 펀드를 지렛대로 한 생태계 장악
중국의 반도체 빅펀드는 화웨이를 키운 결정적 자양분이었습니다. 1기펀드(2014년)에서 화웨이는 돈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2기(2019년)부터는 펀드에 돈을 '대는' 투자 주체로 변모했습니다. 3기 펀드에서는 특정 기술을 타겟으로 하는 소규모 펀드에 직접 매칭 펀드를 대거나, 펀딩을 받는 유망 기업에 별도의 민간 펀딩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산업 정책을 자신의 R&D 센터처럼 활용하며, 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지배하는 전략입니다.
라. '그림자 회사'와 '자체 팹'을 통한 제재 우회 및 기술 자립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자 화웨이는 지분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그림자 회사'를 통해 투자를 계속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대표적으로 파운드리 업체인 SMIC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화웨이는 자체적으로 9개의 R&D 팹을 비밀리에 운영하며 10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검증된 기술은 언제든 양산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비 국산화를 위해 '사이캐리어(Sikecy)' 같은 자국 장비 업체에 투자하여 28나노급 노광 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R&D 팹에서 안정화시킨 후 SMIC에 납품하는 등 반도체 설계-생산-장비에 이르는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제재라는 퍼즐 조각을 빼낼 때마다, 화웨이가 "그럼 그 퍼즐을 우리가 만들겠다"며 생태계의 빈틈을 완벽하게 채워나가는 모습입니다.
3. 대안 제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화웨이와 중국의 부상은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한국은 이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합니다.
가. '2등 전략'의 폐기: 중국의 '롱테일'을 직시하라
과거 우리는 일본이나 독일의 최상위 제품을 피하고, 그 아랫 등급의 '세컨드 티어' 시장을 공략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이 전략이 통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첨단 제조업(3차)과 일반 제조업(2차), 농업(1차)이 모두 거대한 규모로 공존하는 '롱테일'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2등'의 틈새시장은 이미 중국 내부에 존재하며, 규모의 경제에서 압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을 따라가는 전략은 필패입니다.
나. '산업의 근본적 전환(AX)'과 '새로운 개념'의 창출
결국 해답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 즉 '새로운 산업과 개념'을 창출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메모리 구독 서비스(Memory-as-a-Service)'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만들거나, 세계 최고 수준인 5천만 국민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바이오-헬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여기에 필요한 전용AI 칩과 모델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며, 플랫폼을 선점하여 세계에 수출하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다. 한국의 유일무이한 자산,'민주적 거버넌스'의 활용
중국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민주적 거버넌스'입니다. 투명성,공정성, 시민 참여, 절차적 타당성이 보장되는 민주적 시스템은 당장의 속도는 더딜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혁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일당 독재와 민관군 유착, 애국주의에 기댄 폐쇄적 시스템은 결국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체질을 개선했던 경험처럼, 이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소중한 자산을 산업 전환의 토대로 삼아야 합니다.
4. 결론
화웨이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창업자의 카리스마,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군사적 필요성, 그리고 치밀한 생태계 전략이 결합된 거대한 '군산 복합체'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제재는 화웨이를 파괴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술 자립의 명분을 주며 스스로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도록 단련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도전자 앞에서 우리가 과거의 성공 공식에 안주하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길입니다. 중국을 모방하거나 따라가는 '2등 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가진 고유의 강점, 즉 잘 훈련된 인력과 축적된 기술력,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사회적 자산을 기반으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생존의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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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검토
(전략의 본질) 교수님께서는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즐기고 있다'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이러한 외부의 압박을 내부 혁신과 결속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화웨이의 전략적 메커니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가질 수 있는 취약점이나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께서 강연에서 언급하신"화웨이가 제재를 즐긴다"는 표현은, 역설적이지만 화웨이의 위기 대응 전략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입니다. 외부의 압박을 내부 혁신과 결속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과 그에 따르는 장기적 취약점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습니다.
외부 압박을 동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메커니즘
화웨이의 전략은 단순히 방어에 그치지 않고, 제재라는 외부의 공격을 성장의 명분이자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공세적 방어'에 가깝습니다.
1. '전시상황' 선포를 통한 내부 결속 및 자원 총동원
미국의 제재는 런정페이 회장이 강조해 온 '군대 문화'와 '애국주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제재를 '미국의 기술 폭격'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는 것을 '고지 탈환을 위한 전투'로 비유함으로써, 화웨이는 강력한 내부 위기의식과 단결력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전시 내러티브'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효과를 낳습니다.
반대 의견 억제: 평시였다면 비효율적이거나 성능이 낮은 자국 기술, 혹은 무리한 R&D 투자에 대해 제기되었을 내부 비판이 '애국'과 '생존'이라는 대의 아래 묵살됩니다. 자원의 집중: 회사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제재 극복'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총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리더십에 부여됩니다. 이는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R&D 투자를 과감하게 집행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2. '공급망 국산화'라는 거대한 시장 창출
미국이 첨단 반도체, EDA 툴, 안드로이드 OS 등의 공급을 차단하자, 화웨이에게는 이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거나 자국 내에서 조달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생겼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화웨이가 주도하는 거대한 '국산화 시장'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강제적 혁신: 구글의 GMS를 쓸 수 없게 되자, 자체 운영체제인 '하모니OS'를 개발해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 웨어러블 기기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제재가 없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과감한 전환입니다. 자국 생태계 육성: 화웨이는 SMIC(파운드리), 사이캐리어(장비) 같은 자국 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공동 개발을 진행하며, 이들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부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중국 기술 생태계 전체의 체력을 키우는 효과를 낳습니다. 화웨이는 제재 덕분에 중국 내 모든 기술 기업들에게 '우리와 함께 성장하자'고 말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과 시장을 동시에 확보한 셈입니다.
3.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과감한 전환
가장 강력했던 스마트폰 사업이 직격탄을 맞자, 화웨이는 생존을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카 솔루션, 디지털 에너지, 항만·광산 자동화 등 제재의 영향이 덜한 B2B 분야로 신속하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도록 강제한 제재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취약점 및 한계
이처럼 제재를 동력으로 삼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몇 가지 구조적인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막대한 비용과 수익성 악화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성능이 떨어지는 초기 국산 부품을 사용하며 수율을 높여가는 과정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수반합니다.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할 때보다 R&D 비용, 생산 단가가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화웨이의 재무제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높은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압박받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의 동력이 고갈될 위험이 있습니다.
2. '갈라파고스화'와 최첨단 기술과의 격차 발생
가능성 글로벌 표준과 생태계에서 고립되어 독자적인 기술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전략은 자칫 '갈라파고스화(Galapagosization)'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ASML의 최신 EUV 노광장비 없이는 최선단 반도체 공정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기존 기술을 활용해 7나노 칩 등을 구현해냈지만, 3나노, 2나노 이하의 경쟁으로 접어들었을 때 글로벌 기술 발전 ㅠ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격차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화웨이 제품이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강력할지 몰라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매력은 점차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3. 시장의 한계와 성장 동력의 제약
화웨이의 부활은 애국 소비에 기댄 중국 내수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안보 우려와 제재가 지속되는 한, 화웨이가 과거처럼 글로벌 시장을 자유롭게 공략하기는 어렵습니다. 14억 내수 시장은 크지만, 성장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의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피드백과 성장 기회를 잃는 것은 장기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결론적으로 화웨이의 전략은 '고립된 요새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왕국을 건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요새를 방어하고 내부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성벽 밖의 더 넓은 세상과 교류하며 얻을 수 있는 혁신과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재가 길어질수록 비용 압박과 기술 격차라는 취약점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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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영상 봤는데 딴 것보다 '2등 전략'은 더이상 안통할 거란 게 제일 인상깊더군요.
제조업은 원해 캐파 문제 때문에 한 쪽에서 독식을 못하는 게 전통적인 상황이었는데 중국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찍어눌러서 그렇게 설 자리가 없을 수 있다고...
참 미래가 걱정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40분짜리 영상을 5분만에 이해하는 호사를 누렸네요.
한가지 측면에서의 장점만 나열한게 아니라 그에 대한 리스크도 같은 깊이로 분석해주니 더 좋았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일본의 갈라파고스화가 생각나더라고요.
일본은 80~90년대 기술리더로서 독자규격을 많이 만들었지만 결국 1억명 근처의 내수만으로는 활성화를 실패했는데 중국은 14억이니 조금 더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나중에 어쩌면 갈라파고스화보단 대륙화(!)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덜 읽긴 했는데용
나. 의 바이오 헬스 플랫폼도 중국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중국은 위에서 명령하면 개인정보고 뭐고 무시하고 일사천리일 테구요.
얼마전에 자게 글 중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 데이터는 환자/질병 정보는 의미없는 수준이라고 하더라구요. 보험적용을 할거냐 말거냐에 초점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