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지알 눈팅 전문으로 거진 10년 넘게 들락날락거리다가,
게임게시판에 댓글 몇 개, 자게에 글 하나 정도 썼던 피잘러 입니다.
벌써 24년이네요.
작년에 폭풍 같은 연애를 하고,
끝난 지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정리를 할 마음가짐을 먹었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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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작년 6~7월 경 질문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습니다.
여성 분의 연봉이 저보다 2배 정도 되는데
상대가 너무 좋긴 한데 부담이 된다, 경험담이나 조언 부탁드린다고요.
생각보다 많은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당시에는 이런 글을 질문게시판에 올렸다는 것을
상대가 알면 서운해할까 싶어(피지알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글을 금방 삭제해 버려,
댓글 달아주신 분들에게 죄송스러웠습니다.
네, 그랬던 연애가 끝났습니다.
제가 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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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객관적으로 절 봐도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치열하게 사는? 느낌의 사람은 아닙니다.
제 능력을 써주는 회사에서 밥벌이하면서 좋아하는 게임,
직장인밴드 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회생활 하시는 분들이 다 그렇듯 이직이나 커리어 고민,
개인의 능력향상과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일 할 때는 열심히 하며 살지만
철저히 본업 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 외 시간은 좋아하는 걸 하며
행복을 느끼는 데 주력하는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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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한참 어렸지만 참 열심히 사는 친구였어요.
본업 외에도 여러 부업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하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항상 멈춰있지 않고 달리는 사람.
왜, 그런 사람 주변에 한 명씩은 있잖아요?
능력이 뛰어나고 노력할 줄 알아서,
목표로 한 것을 늘 쟁취해 오는 삶을 사는.
설사 스스로 설정한 목표치가 높아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결국은 해내는 사람.
저랑은 성향이 완전 딴판이었죠. mbti도 거의 반대였어요.
저는 그런 성향의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었고,
그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레귤러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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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만날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어서, 였습니다.
갈등과 다툼을 싫어해 웬만하면 져주는 제 성격을
그 친구가 속 터져 답답해하면서도
제가 그의 이상형이었고
착하디 착하고 만나면 편한 성격이 좋았더랍니다.
저 역시 꼭지 돌면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하는 성격 때문에
그 친구에게 상처받아가면서도
얼굴만 보면 설움이 녹아내리고 연예인 뺨치는(제 기준)
미모에 홀려서 뭐든지 다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보통 만나는 동안에는 서로 불꽃이 튀고 꿀이 떨어졌지만,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싸우는 적이 많았어요.
사실 싸움이라고 하기도 뭐 한 게, 보통 그쪽에서 불만을 이야기하면
듣고 그랬구나 미안하다, 고치겠다. 하는 수순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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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환경에서 자란 능력 있는 친구고
외향적이어서 자기 계발, 부업, 독서토론 등 각종 모임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그 덕에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봐도 외모, 능력, 집안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었어요.
그런 걸 알면 알수록
그 친구가 왜 나를 만날까 하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꾸만 확인을 받고 싶어 했어요.
큰 것도 아니었어요.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요.
술 먹는다고 하는 날 연락이 잘 안 되면 전화를 해봤는데,
전화를 그냥 안 받는 게 아니라, 종료해서 끊어버리면
전화 건 사람이 듣는 멘트가 있잖아요.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그걸 몇 개월 만나는 동안 수십 번을 들어보니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려서
전 이제 앞으로 누굴 만나도 전화를 걸었을 때 그걸 들어버리면
감정이 팍 식을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자존감 바닥에
그 친구에게 볼멘소리 한 번을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꼴불견이 되어있었고,
역시 비슷한 이유로 다퉜던 며칠 뒤에
그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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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질문글에 어떤 분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어떤 좋은 부분이 제게 있으니,
그분이 절 만나는 거라고.
스스로 너무 위축되지 말고 만났으면 좋겠다
고 댓글을 달아주셨었는데
그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랑 거의 똑같았어요.
착한데, 착해 빠져서 좀 답답하긴 한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남자들이랑은 좀 다르다, 그래서 만난다.라고요.
저 역시 그 친구가 밝게 빛내는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 친구처럼 정진하고 발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 만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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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머리로는 알았어요.
성향이 안 맞고, 성격이 안 맞으니 오래 못 가겠구나.
그래서 더욱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걸 요구하다가, 포기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저에게 밥 먹을 때 소리 내지 말라고,
생각 좀 그만하고 말을 하라며 토로하다 포기했고
저는 나 만날 때 핸드폰 좀 하지 말라고,
싸울 때 말 좀 가려서 하라고 토로하다 포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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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뒤에도 연락은 간간이 왔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안 했으면 제가 했을 거예요.
몇 번의 만남 끝에 제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고,
그 친구는 대답을 흐렸어요.
대답을 흐린 상태에서 여행을 가자고도,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도 하더라고요.
둘 다 기쁜 마음에 덜컥 그러자 했지만,
사실 말 뿐인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약속들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매분 매초가 소중하고,
시간을 비롯해 각종 낭비를 싫어하는 사람이
헤어진 연인에게 공수표를 날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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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었어요.
평생 잠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없던 제가
불면증이 와서 고생을 했으니까요.
다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다를 수 있겠지만
살면서 이렇게 강한 사랑을 느낄 사람은
다시 못 만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까지 했던 사랑이 사랑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요.
(그런 의미에서 피지알은 비밀로 해야겠습니다)
서른 중반씩이나 되어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그 친구에게 고마워요.
너무 밉기도 하지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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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꿈을 꿨어요.
그 친구가 종이배를 저 멀리에서 흘려놓더니
이 강물을 매일매일 거슬러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떠다니던 종이배가 걸릴 거다,
그때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때라고.
제가 물었어요. 그걸 못 잡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아마 손에 다른 걸 쥐고 있을 테니,
그건 이번처럼 놓치지 말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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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근황이 궁금할 뿐이다, 라며
본인의 연락을 합리화(제가 볼 땐)하던 그 친구는
해가 바뀌고 나서야
연락을 그만하는 게 낫겠다, 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제서야 저도
연락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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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하면서 아마 대부분은 잊히겠지만
뭔가 남겨놓고 싶은 마음, 지난 연애에 대해 스스로 피드백을 하고자
긴 글을 썼습니다.
이제 이 글에 남은 것들을 묻어놓고,
이제 저도 새 삶을 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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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에는 좋은 인연 만나시고,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바라요.
저도 그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