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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06 20:55:4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5) 결단과 시간




 세계의 운명을 송두리째 쥐고 6월 15일 나폴레옹이 샤를루아에서 눈을 붙이고 있을 무렵, 30마일 떨어진 브뤼셀에는 웰링턴이 있었다. 그는 리치먼드 레녹스 공작 4세 부부가 초청한 무도회를 즐기고 있었다. 적을 눈 앞에 두고 연회에서 재미를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선으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지만, 웰링턴에게는 브뤼셀 시민들에게 (설사 그것이 허세에 가깝더라도) 나폴레옹은 문제도 아니며 모든 일은 평온하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전투 직전, 아니 차라리 전투와 함께 시작된 이 연회는 문학적인 느낌을 풍기며, 서서시의 서막을 알리는 듯한 무엇이 있다. 웰링턴의 발은 춤을 추고 있더라도 그의 귀는 쫑긋 열려 있었다. 연회가 시작될 무렵, 그에게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확실한' 정보가 전해졌다. 바이런의 말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인들과 용감한 남자들 위로 등불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프랑스군에 대한 이동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도회가 치루어진 장소의 본래 용도는 마차 제작자의 헛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존귀한 신분들이었다. 훗날의 네덜란드 국왕 빌럼 2세인 오라네 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포탈링턴 백작, 나사우 대공, 커닝엄 백작, 옥스브리지 백작, 마치 백작, 대령 스물두 명과 프랑스 백작 부부 열여섯 명, 상당히 만은 영국의 작위귀족 부부, 작위귀족의 자녀들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혹시 갑작스러운 작전으로 연회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웰링턴은 "공작부인, 부인께서는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안심하고 무도회를 여서도 됩니다." 라고 말했다. 일흔 두시간 뒤면 이 자리에 참석했던 장교들의 4할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화려하면서도 기만적인 연회의 중간 사이, 웰링턴의 귀에 놀랄만한 정보가 전해진다. 


 이 시점에서의 웰링턴은 나폴레옹의 전략에 말려들고 있었다. 몽스에 대한 불온한 움직임이 느껴졌기에 이 곳을 군 집결지로 결정하였고, 반대 정보가 점차 확실해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웰링턴의 성격 - 즉 배치와 보급 등에 꼼꼼한 그에 있어서, 서쪽에 있는 몽스가 보급에 유리하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프랑스군이 해안선을 타고 올 경우 영연합군의 보급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이에 '어쩌면 너무 과도하게 집착한' 웰링턴은 심지어 워털루 전투가 끝날 무렵까지도 상당한 숫자의 분견대를 몽스에 배치하고 있었고, 그들은 전투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몽스의 수비대장으로부터 중요하고 믿을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몽스에서는 "단 한명의 프랑스 군도 보이지 않았다!" 웰링턴은 그야말로 '속았다.' 반면 이제 카트르 브라 쪽에서는 불온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까진 웰링턴이 위대한 적수에게 한방을 얻어맞은 셈이지만, 웰링턴은 카운트가 3을 넘기기도 전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만회할 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앞서 내렸던 명령을 모두 취소하고, 부대를 니벨과 카트르 브라의 중간 사이로 밀어넣기로 결정했다. 니벨은 카트르 브라에서 서쪽에 있는 지명이지만 몽스만큼 서쪽은 아니었다. 일단 준비가 시작되자 몇몇 장교는 곧바로 연회에서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나머지는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투를 앞두고 무도회에서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만찬을 즐겼고, 덕분에 부대가 출발할때는 옷을 갈입을 시간조차 없어 연마복 차림으로 전투에 나서야 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한 끝에 6월 16일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5사단장 픽턴이 이끄는 예배대가 '하이랜드 래디' 연주에 맞쳐 남쪽으로 이동했다. 웰링턴과 여타 참모들도 곧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 운명의 결전을 치루려 하는 이 부대원들은 얼마나 믿을만할 것인가? 웰링턴은 자신이 이끌게 될 부대를 '불명예스러운' 부대라고 표현했다. 당시 워털루의 영연합군은 보통 영국 - 네덜란드 연합군으로도 일컫어지지만,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영국, 독일, 하노버 선제후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나사우, 네덜란드 - 벨기에 부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믿을만한 병사들도 있었지만, 실제 영국 최고의 전사들은 1814년의 공백으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에 파견된 상황이었다. 불만이 많은 웰링턴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경험을 함께한 베테랑 병사들은 신뢰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현재 훗날의 미국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1815년 1월이 되면 이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은 평화를 얻게 되었지만, 부대가 빠르게 돌아오기에는 대서양이 너무나 넒었다.







 웰링턴의 손에 쥐어진 병사들은 일부는 총구에서 성난 탄환이 발사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하노버 선제후 부대는 신규 징집병 수준이었다. 한달 전쯤 웰링턴은 조용히 불평했다. "형편없는 군대야. 허약하기 짝이 없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참모들의 경험도 일천하지." 무엇보다 부대의 4분의 1을 구성하는 네덜란드 벨기에 파견대는 작년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을 위해 싸우던 부대였다. 


 웰링턴이 믿고 있는 것은 역시 블뤼허였다. 그는 자신과 블뤼허가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나폴레옹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기 이전의 어느 날, 브뤼셀의 공원을 걷고 있던 웰링턴은 우연히 일지 기록원인 토머스 크리비를 만났다. 크리비는 영국 최고의 군사 지휘관에게 나폴레옹을 이길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맹세컨대 블뤼허와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걸세." 


 웰링턴은 그렇게 대답했다. 크리비는 다시 보나파르트의 군대에서 탈영병이 있을것인지 물었다. "단 한명도 없을 걸세. 연대장부터 사병까지 모두 말이야. 원수 한두 명쯤은 이쪽에 투항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놈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놈들이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눈 앞에, 한명의 영국군 사병이 보였다. 그 병사는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공원의 조각상들을 신기한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웰링턴은 그 병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리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는 말일세, 전부 저기 저놈에게 달려 있지. 저 병사만 해낼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네."


 영국군이 움직이고 있을 무렵, 블뤼허는 훨씬 단순하게 움직였다. 그는 프랑스군 우익의 압력이 느껴지자 전방에 있는 1군단의 뒤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한번 붙어보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재 전선의 움직임은 총 4곳으로 나눌 수 있다. 나폴레옹, 웰링턴, 블뤼허, 그리고 네이. 유럽의 운명이 단 네명의 사나이에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세 남자가 자신의 운명을 격렬하게 시험해 보고 있었다면, 네이는 1814년에 끝난 운명을 억지로 붙들어 매고 있는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전쟁은 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일을 망친 것도 바로 네이 자신이었다. 


 분명히 웰링턴은 6월 15일 저녁과 6월 16일 새벽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나 네이는 '훨씬 더 꾸물거렸다.' 이 한번의 밤 만큼 카트르 브라를 점령하기에 적절한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6월 15일 오후, 브뤼셀로 향하는 주도로를 타고 밀고 올라가던 네이는 잠시 고슬리 북쪽에서 멈춰 데를롱 군단의 2만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네이는 2,000명의 기병을 전진시켰는데, 그들은 곧 프라슨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영연합군의 포격을 받았다. 영연합군은 공격 직후 카트르 브라로 도주했고, 프랑스 기병대는 이를 쫒았지만 그곳에서 강력한 포격 및 소병기 사격을 받고 전진을 중단했다.


 이후 네이는 저녁 8시까지 소규모 정찰활동을 벌이다가 부대를 프라슨과 고슬리 사이에서 숙영시키고 본인은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샤를루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네이가 공격을 머뭇거린 그때, 카트르 브라에는 페르폰허 사단 소속 나사우 여단 단 하나만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숫자는 고작 8,000여명에 불과했고 포도 16문에 지나지 않았다. 기실 그 부대조차 본래 카트르 부대에서 약간 서쪽에 있는 니벨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현장의 지휘관들은 카트르 브라의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급박함을 생각하여 이동하지 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유럽을 구했다.' 그 당시 웰링턴은 무도회에 참석하고 있었으므로 현장의 판단이 카트르 브라를 지킨 것이었다.


 프랑스 군의 입장에서 카트르 브라를 방어하는 병력의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주변이 키가 큰 옥수수 밭이라 적진을 살펴보에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가 한번 쯤 공격을 시도했다면 일개 여단의 실체는 명명백백히 드러났을 것이며, 카트르 브라는 프랑스군에 점령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웰링턴이 허겁지겁 싸울 만한 전력을 불러들일 즈음에서 네이의 군단은 나폴레옹과 교전하고 있는 블뤼허의 측면을 여지없이 깨부셔 프로이센군을 전멸시켰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네이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나폴레옹의 주장으로서, 그는 네이에게 '새벽에 카트르 브라를 점령하라' 고 명령했다. 만일 그런 명령이 있음에도 네이가 머뭇거렸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남을 졸장이 될 것이다. 다만, 사람의 '회고' 가 늘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위대하다고 평가받은 인물들이 종종 그렇듯이 나폴레옹도 뻔뻔하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세인트헬레나에서 그는 진실만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주장은 이렇다. 워털루 전투 20년 후 네이의 아들은 당시의 명령서를 찾아 '새벽 무렵' 즉 15일 무렵에 나폴레옹이 카트르 브라를 '언급'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트르 브라' 라는 명확한 목표가 언급된것은 다음 날인 16일이었으므로 이 당시 네이의 움직임은 상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럴 경우 네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비난을 덜 받아도 되겠지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후대의 시선으로는 아쉬울 수 밖에는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명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쪽에 비해서 능동적으로 움직인 나사우 여단을 칭찬해야 할 것이다. 넬슨의 보이지 않는 한쪽 눈이 덴마크를 굴복시켰던 것처럼 조금만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면 일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워털루 전투 동안 네이 뿐만 아니라 여타 프랑스 군 지휘관들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될 이야기였다.





 * 코펜하겐 해전에서 영국은 호레이쇼 넬슨은 승리를 눈 앞에 둔 상태에서 사령관의 이해할 수 없는 공격 중지 명령을 받았으나, 일전의 전투로 눈 하나와 팔 하나를 상실하여 외눈, 외팔이었던 넬슨은 보이지 않는 눈에 망원경을 가져다 대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걸" 이라고 중얼거린 후 전투에 나서 승리했다.



 지나긴 일은 어쩔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이었다. 전성기의 나폴레옹은 엄청난 정력을 바탕으로 전장에서 수많은 일들을 했고, 새벽 2시 경에 그날의 작전 명령을 구술하여 싸움을 준비했다. 이 명령들은 오전 6시가 되면 해당 부대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아침 일찍 작전 준비를 하여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은 6월 16일의 나폴레옹은 전날의 격렬한 움직임에 지쳐 6시가 넘어서야 네이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구두로 지시할 수 있었다. 사령관의 업무가 늦어진다면 이를 돕는게 참모진의 역할이지만, 노련한 베르티에 대신 술트를 중심으로 새로 짜여진 새 참모진은 두 시간 동안이나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가 그 후에야 네이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이 당시 나폴레옹은 6월 16일의 싸움은 영국군을 공격하는것이 주가 될 것이라 말했다. 네이는 나폴레옹 휘하의 중앙부대가 카트르 브라에서 자신을 도울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늦은 아침이 되서야 나폴레옹은 블뤼허가 부대를 전방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직접 적진을 살펴 프로이센군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이 당시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그전까지는 그루시가 우익을 견제하는 정도로 멈추었지만, 이제 프랑스군의 주공이 영국이 아닌 프로이센군이 된 것이다. 


 네이가 카트르 브라를 그때쯤이면 점령했을 것이라 여긴 나폴레옹은 교전에 나서기에 앞서 네이에게 자신이 프로이센 군대를 물리칠 수 있도록 부대를 파견하여 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명령이 전해질 무렵이면 네이는 그런 지시를 도저히 이행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연합군과 교전하고 있던 탓이었다.


 네이의 프랑스군은 보병 2만 5,000명에 기병 3,000여명, 대포 30문의 압도적인 전력이었음에도 카트르 브라를 점령할 수 없었다. 모든 원인은 네이의 꾸물거림 탓이었다. 네이는 나폴레옹을 만나고 온 뒤에도 예하 부대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력이 약 25킬로미터에 걸쳐 분산되어 숙영하였던 만큼 빠르게 준비하기도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네이는 나폴레옹으로부터 직접 받은 구두지시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서면지시를 기다리며 작전을 시작하지 않았다. 카트르 브라를 치라는 명령서는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도착을 했는데, 서두를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네이는 11시가 넘어서야 레이유에게 군단을 카트르 브라에 집결시키라고 명령했다.



G
레이유




 엎친데 덮친격으로, 레이유는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작전 당시 웰링턴을 상대로 물을 먹은 적이 있었던 지휘관 중의 한 명이었다. 그 덕분에 레이유는 웰링턴이 지형을 이용하여 병력을 최후까지 숨기다가 기습하는 작전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알고 있는 것' 이 오히려 악으로 작용했다. 카트르 브라 주변은 지형에 굴곡이 많고 병력을 숨길 수 있는 키 큰 호밀밭이 넓겨 펼쳐져 있었고, 근처에 있는 숲은 프랑스군의 측면을 노리고 병력을 매복시키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였다. 웰링턴이 좋아할만한 장소였기에 레이유는 대단히 신중하게 전진했고, 덕분에 공세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영연합군의 병력은 속속 충원되고 있었다.






 아침무렵 카트르 브라에 도착한 웰링턴은 별다른 일은 커녕 프랑스군이 부산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것을 보고 당분간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직 영연합군의 병력은 충분히 집결하지 않아 이쪽에서 전투를 걸수도 없었고, 적군의 움직임 역시 오전 중에 교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는 재빨리 말을 달려 블뤼허를 만나러 갔다. 


 이 시간은 바로 11시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군을 요리하기로 결정한 시간, 네이의 명령에 따라 레이유가 꾸물거리며 움직이고 있던 시간도 11시다. 블뤼허는 자신이 공격 당하지 않는다면 웰링턴을 도우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들으며, 웰링턴은 망원경을 들어 프랑스군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 가 거기에 있었다.


 웰링턴은 망원경으로, 자신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다 줄 인물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폴레옹과 웰링턴. 웰링턴과 나폴레옹. 두 사람다 섬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어를 두번째로 배웠으며, 같은 해에 석달 차이로 태어나, 똑같이 지형학에 능숙하고, 한니발을 자신의 영웅으로 삼았다.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휘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아직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6월 16일에도 만날 운명은 아니었다. 웰링턴은 카트르 브라에서 시작된 공세에 대한 지휘를 해줄 것을 요청받았기에, 바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그는 블뤼허에게 충고를 했다.


 "나폴레옹의 눈 앞에, 즉 포대 앞에 병력을 포진시키는건 좋지 않습니다. 병력을 언덕 반대편 사면에 숨기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괜찮소." 용감하고 무모한 블뤼허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 병사들은 적이 눈 앞에 보이는걸 더 좋아할 테니 말이오." 


 



 그 무렵, 카트르 브라에서는 드디어 교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의 적군에 대비해서 카트르 브라를 지키던 영연합군은 부대를 거의 1.6킬로미터에 걸쳐 얆게 배치해서 맞섰다. 하지만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 막대했다. 프랑스 5사단은 강력하게 진군하여 적의 전초부대를 쫒아내었으며, 뒤이어 프랑스 6사단이 뒤를 이었고, 포병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병력의 압도적 우위를 앞세워 적의 전열을 무너뜨렸지만, 영연합군은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물러서며 결연하게 맞섰다.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 전선에 이상이 생겼다. 프랑스 기병대가 네덜란드 17경보병대대를 기습한 것이다. 이미 어느정도 분쇄되어있던 17경보병대대는 완전히 패퇴하여 후방으로 달아나거나 끝까지 저항하다 말발굽에 유린되었다. 본래 군대를 얆게 펼친 만큼 전선은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고, 창기병들은 기회를 놓칠새라 적의 중앙을 유린하면서 이를 저지하러 온 네덜란드 경기병들마저 몰아내었다.


 이 시점에서 카트르 브라의 영연합군은 2만 5천이 넘는 프랑스군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만약 레이유와 네이의 공격이 조금만 더 빨리 시작되었더라면, 카트르 브라 전투는 시작하자마자 끝났을 것이며 전역의 흐름은 급변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는 듯 했던 시점. 


 바로 결정적인 그 순간, 다수의 베테랑 부대원을 거느린 픽턴의 사단이, 바로 그 '웰링턴' 과 함께 도착했다. 갑자기 출현한 구원병의 힘으로 영연합군은 기적적으로 프랑스군의 돌파를 막아내었다.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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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fish
13/10/06 21:00
수정 아이콘
쓰레기라고 웰링턴이 한말은 카트르 브라 전투 전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반도 전쟁 당시 최후의 결전 빅토리아 전투에서
적을 추격하지 않고 스페인 왕실 재산을 약탈하는데 정신 팔린 병사들에 대해 열받아서 한 말이었죠.

애초 전형적인 귀족 아들이 평민을 보는 그대로의 평가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사나 지휘관 모두 서로를 싫어 하면서도
그 복종심이나 리더십은 정말 놀라운 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전역에서 병력은 표현하신데로 급조한 병력이었고 베테랑 들은 다 미국 가 있었는데 말이죠.
신불해
13/10/06 21:03
수정 아이콘
예. 워털루 전투 이전에 웰링턴이 한 불평은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쓰레기" 라는 언급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고 장비도 형편없다." 는 언급이었죠.

다만 텍스트만 이어지면 보기에 지루할 수도 있어서 사진은 영화 워털루 등에서 "쓰레기" 라고 언급하는 부분을 넣었습니다. 다큐에서 언급도 비슷하게 넣었는데 일단 이미지 용으로 넣기는 하는데 저 다큐가 좀 이상한게 많더군요.
Je ne sais quoi
13/10/06 21:3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3/10/06 21:57
수정 아이콘
하여간 소설과 드라마화로 인기를 끈 샤프 시리즈 때문에 안 장군인데, 웰링턴도 생각해보면 정말 여러군데 돌아 다녔습니다.
플랑드르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곧 형따라 인도가서 마라타 연합이랑 피터지게 싸우고,
덴마크도 한번 밟은 다음, 다시 이베리아 반도로와서 반도 전역, 영국 복귀, 다시 반도 전역,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
마지막으로 다시 플랑드르, 그리고 워털루까지..

나폴레옹이 유럽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피터지게 싸우면서 유럽 일주를 한데 비해 웰링턴은 밖으로만 돌아다녔네요.
여기에 아메리카까지 밟았으면 진짜로 대척점이었을 건데!
신불해
13/10/06 22:07
수정 아이콘
나폴레옹이 가기 전에 "세인트헬레나" 에도 들린 적이 있다니 말 다했죠.
Neuschwanstein
13/10/06 23:55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은 불펜에 글쓸때는 똑같은거 몇번이고 자꾸 반복해서 올리는게 좀 뜨악했는데... 뭐 이해는 합니다 많이 읽히고 피드백이 있어야 쓸맛이 나는데 거긴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니까
그런 의미에서 pgr이 참 신불해님한테는 제격인듯 글쓰기 버튼이 무겁다보니..
지금뭐하고있니
13/10/07 00:06
수정 아이콘
분명 수요가 있을텐데..불펜은 너무 빨리 넘어가니까요...

오늘 글도 참 좋네요...
낼 예비군이라 지겨울텐데...낼 중에 하나 더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크크
농담이고 계속 연재만 부탁드립니다..
신불해
13/10/07 10:38
수정 아이콘
엠팍에서 같은 글 올릴때는 보통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예전에 썻던 글 다시 올리면서 썰 풀고,

또 약간 내용이 보충되거나 하긴 합니다.
트레빌
13/10/07 00: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워털루의 패배는 인사의 실패 때문인 것 같아요.
다부같은 명장을 전장에 기용하지 않다니......
13/10/07 09: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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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00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7) - '모든 일은 소풍 나온 것처럼' [2] 신불해3890 13/10/16 3890 6
47048 [일반] 열 일곱살 부잣집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한 사마상여 [17] 신불해10593 13/10/14 10593 15
47019 [일반] "나라는 '사람' 이 여기에 있었다. 그대들은, '나' 를 기억해줄 것인가" [12] 신불해8483 13/10/12 8483 23
47011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6) - 전장의 불협화음 [5] 신불해4343 13/10/12 4343 6
46955 [일반]  아일라우 전투. 눈보라와 살육, 시체와 광기 속의 서사시 [8] 신불해8564 13/10/09 8564 8
46880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5) 결단과 시간 [10] 신불해5101 13/10/06 5101 5
46868 [일반] 한국전쟁의 장군 유재흥은 제주도의 잔혹한 학살마인가? [9] 신불해9347 13/10/06 9347 6
46864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4) 세계의 운명 [11] 신불해4754 13/10/05 4754 5
46819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3) [7] 신불해4953 13/10/03 4953 12
46792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2) [11] 신불해5562 13/10/02 5562 11
46786 [일반]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1) [9] 신불해8340 13/10/01 8340 12
46683 [일반]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스키피오 님이 최고시다! [130] 신불해14840 13/09/26 14840 16
46570 [일반] 전설의 일본 1군에 버금가는 전공 없는 전설의 장수, 김덕령 [23] 신불해15620 13/09/20 1562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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