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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14 17:04
공격이 편하니까요 뭐. 뒷돈받는 사람이 삶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면 그것도 나름 웃길 겁니다. 이미지가 일치하기를 바라는거고 그걸 배신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니까, 굳이 논리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차피 저것도 다 마케팅이라고 봐서.
11/07/14 17:11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 힘을 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몸소 실천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도덕"이란게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통하는 수준의 도덕성은 가지고 있어야 위의 예처럼 원색적인 흠집내기를 피할 수 있겠죠
11/07/14 17:12
그 사람이 불일치하는 점까지 노동자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괜찮죠.
하지만 그 순간 그 사람의 말빨은 죽겠죠. 그래서 숨겨야 되고 최소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알아서 오해하게 만들죠. 그리고 저는 그런사람을 위선자라고 부르죠.
11/07/14 17:14
뭐 어떤 주장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도덕을 주장하는 사람이 비도덕적인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죠. 다만 본문 글에 든 예시처럼 노동자를 위해 투쟁한다고 하는 사람이 일반 대학생과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한다는 게 과연 잘못된 것인지 전 모르겠네요. 모든 사람이 노동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그들의 삶이 나아져야 한다고 하는 건데요. 그걸 누구처럼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아서 봉사로 할수도 있고 누구처럼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여 주장해주고 공감해주는 걸로 할 수도 있죠. 그런 측면에서 폴리테이너 관련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걸 공격하는게 바로 연대를 깨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또한 그런게 꽤 잘 먹히기도 하니까요.
11/07/14 17:14
이상을 이야기 하고 이상에 따라 살며 그것이 죽을 때 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위인이겠죠.
문제는 이상을 이야기 하는건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을 따르는것은 결코 쉽지 않은일입니다. 편히 생각해서 현재보다 나은 상태는 현재보다 압도적인 기술발전이 없을경우 기득권의 포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기득권이 포기하거나 이상주의자들이 그들과 싸워서 얻어내야겠지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운동권이 기득권층이 아니고 요구하는 층에 있습니다. 그들은 포기한적이 없고, 요구하는 쪽입니다.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이들이 선두에 서 있었기 때문에 보통 새로운 규칙하에선 이들이 기득권층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굳이 절대권력이 아니더라도 권력은 속성상 부패하기 쉽습니다. 투쟁하거나 설득시켜 새로운 기득권층이 될 그들이 현재도 도덕적이지 않다면 그들이 기득권층이 되었을때 바람직한 결과가 과연 있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단한 인물이며 이전의 운동권이었으나, 도덕적으로 결코 깨끗하다고 보기는 힘들며, 그 결과가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사고와 조직을 구성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구성하는 만큼, 그 주장하는 개인이 도덕적이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1/07/14 17:14
이런 저런 예시를 떠나 주장하는 이상과 행동은 일치해야한다고 봅니다.
일치하지 않음을 보이는 순간 주장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다고 생각하거든요.
11/07/14 17:14
주장과 실천의 문제 말씀이군요. 그걸 일치시키는 사람들은 성인의 반열이라고 봅니다.
단 한마디 '열심히 살자'만으로도 벅찹니다.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제대로 할까요? 노력만 열심히 해도 장하다고 봅니다.
11/07/14 17:21
여러 댓글들 감사합니다.
뭔가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우, 가십거리로 흔히 이야기되는 것이 난잡한 성생활과 논문 표절입니다.(엔하위키를 참고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그가 주장한 흑인-백인 사이의 평등과는 그닥 반대되는 (교집합이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뭐 이를테면 그가 평등을 주장하면서 남몰래 KKK단에 연줄이 있었다거나 하는(이건 좀 말도 안되는 비유이긴 하네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그의 주장과 전혀 상관없는 결함. 흠집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그냥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과 그의 과실을 별개로 봐야 할까요?
11/07/14 17:28
다른 얘기로..
저도 00년 당시에 운동권 학생회의 임원이 되었었고, 5.18 특사, 부산 한총련 궐기 등등.. 굵직굵직한 자리에 어벙벙하게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운동권을 등지게 된 계기는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 무능,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질린 것 때문이었는데요.. 지금와서 생각을 해 보면, [정의로운 이상] 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마음속에서 타협은 됩니다만, 그래도 아직 타협하지 않은 부분이라면 "이율배반적인 언행" 만큼은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봅니다.
11/07/14 17:29
저도 일치해야 된다고 봐요,
가령 주장이란 것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 인데, 본인조차 일치 하지 않으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 집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에 대한 주장은, 주장이 아니라 만용이죠 그럴거면 마음속으로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고 나서지 말아야지, 남들 앞에서 누군가에게 가치관을 강요하고 변화시키자고 하는데 본인이 앞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네요
11/07/14 17:34
물론 일치해야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주로 하는 이들의 의도가 뻔하기 때문에 난감한 겁니다. 본문의 학생들은 글쓰신 분이 말씀하신대로 지극히 정상적인 또래 젊은 대학생의 생활을 한 것 뿐입니다. 운동권이면 무슨 고행을 해야된다는 건지 되묻고 싶네요. 주로 이런 주장으로 운동권을 타겟팅하는 의도는 뻔합니다. 너네도 다를 바 없다라는 거죠. 한마디로 겨묻은 거나 똥묻은 거나 어차피 묻은 건 다 같은 거 아니냐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겠지만(순수한 의도에서 글쓴분처럼 도덕성과 행위의 일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진짜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부터 시작하겠죠.) 만약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질문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앞뒤말 자르고 자기의 의도는 숨긴채 상대방을 난감하게 하고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도덕성과 행위의 일치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삶을 사는 이의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흠이 있지만 그 흠 앞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겸손해 질 수 있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도덕성의 타격을 입고도 멀쩡히 잘 살고 있고 혹자는 도덕성의 타격으로 목숨을 끊어야 될만큼 고민했습니다. 그까짓걸로 무슨 목숨까지 걸어.. 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물론 저 또한 그정도 죄 안짓고 어떻게 살아가냐라고 성의없이 투덜거릴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목숨까지 걸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거죠. 이제까지의 논의는 죄를 지었냐 안 지었냐의 이분법적이고 지극히 종교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면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거죠. 하지만 저는 여기에 반대합니다. 도덕성의 타격을 입었냐 안 입었냐보다 중요한 것은 타격 입은 도덕성으로 어떻게 살고 있냐가 중요한 겁니다. 누구는 살지못해 죽었고 누구는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혹자는 부끄러워 평생 숨어지낼 수도 있고 혹자는 평생 반성하며 눈물로 살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의 삶을 보면 그가 어떤 진정성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도덕성의 흠결이 낙인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11/07/14 17:40
최소한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동자 계층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 개인의 씀씀이는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씀씀이가 헤프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 계층을 배반하는 행위라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요? 도덕적 문제라고도 할 수 없고요. 하지만 남들한테 생명의 소중함을 주장하면서 자신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거나, 평등을 주장하면서 자신은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11/07/14 17:51
본문에서 말씀하신 운동권에 몸담은 평범한 학생들의 생활은 도덕성과 무관한 내용인 듯 싶습니다. 불필요한 듯..
헌데, 기득권을 비판하는 위치에서는 선명성을 내세우기 위해 도덕적 측면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물등의 비리로 얼룩진 기득권' 으로 설정하면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구성하기도 쉬우니까요. 이렇게 판을 짰는데 나중에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가 있었음이 드러나면 더 큰 책임을 지게 되곤 합니다. 대중은 윤리,도덕적 비판을 가하는 쪽에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 쪽에서는 이런 스캔들이 터지면 '왜 우리에게만 높은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냐' 라며 칼럼들이 하나씩 꼭꼭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다고 봅니다. 진보적 의식에 대해 그들의 강한 비판만큼이나 높은 윤리적 태도를 요하면서 개혁의 칼을 무디게 만들고, 그럼에도 무디어진 칼은 서서히 구성원이 감당할 만한 변화를 이루어 내는 과정이요.
11/07/14 18:12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맞겠죠...
예를 들어서, 혼전 순결을 늘 주장하던 사람이 문란하다거나, 청렴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거나... 한다면 비난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의 주장은 바로 힘을 잃을 겁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이나 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개인의 사생활 중에 비도덕적인 부분이 있다는건 별개라고 봅니다. 보통은, 기득권층이나 반대파 측에서 상대방의 흠결을 내보여서 양비론으로 몰고가는게 목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11/07/14 18:18
언행이 불일치하면 그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으나
본문의 예는 언행불일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거나 자본주의의 단점을 비판한다고 해서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죠. 노동자들 피 빨아먹으며 착취하는 악덕기업의 물건을 사주는 게 문제라면 몰라도;
11/07/14 18:51
위의 분들이 계속 말씀해 주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언행이 일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이 도박을 한다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도박자체를 비난하는 사람이 도박을 즐기면 신빙성이 떨어지죠.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여 그 돈으로 부를 누린다고 비난하면서 자기도 돈으로 삶을 누린다면 신빙성이 떨어지죠. 예전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똥 묻은 자가 겨자 묻은 사람 더럽다고 한다. 물론 더럽다고 말은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말을 믿기는 쉽지 않겠죠.
11/07/14 20:41
이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글이 읽어볼만한 내용이 아닌가 싶어요.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5631
11/07/14 22:14
최소한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있어서는 지켜야하고 최소한 노력은 해야겠죠. 치열하게.
배트맨 비긴즈에서 레이첼인가 하는 여주인공이 브루스웨인에게 하는 대사입니다. '사람은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NCIS시즌 4에서 나온 대사 같은데요, 해부하시는 박사님(이름이..)이 하신 대사입니다. 윤리와 도덕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인성검사 질문의 답으로 한말입니다. '윤리적인 사람은 바람을 피우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도덕적인 사람은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다.'
11/07/15 03:44
자격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운동권의 주장은 대체로 "정의"를 외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그런 건 보통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와 배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득권(권력자라기보다는 사회통념상의 대세)의 주장에 배치되는 경우도 많구요. 노동자들이여 일어나라. 일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돈버는거 때려치고 거리로 나가라니. 범죄자 인권보호.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나쁜 놈들을 내 세금으로 먹여살리라고? 환경보호. 그깟 이산화탄소 얼마나 많이나온다고 멀쩡한 내 차 냅두고 불편하게 걸어다녀야 되나? 이런 일반적인 통념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어느정도 자격을 갖춰야합니다. 우선 확고한 주장을 할만큼 합당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야할테고 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어느정도 실천으로 보일 수 있어야겠지요. 그게 안 되면, 기득권은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그런 소리를 하냐? 하고 쉽게 내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고결한데 비해 인간은 인간이니만큼 삐끗하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죠. 정의로운 외침보다는 자기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일 수 있는거고 나한테 해를 입힌 범죄자에게는 분노할 수 있는 거고 일회용품 석유연료 아예 안 쓰고 살 수도 없는 거고요. 하지만 최소한 현실을 이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해야겠지요. 그런게 없다면 빈 껍데기일 뿐이니까요. 어쨌든 결국 어느정도의 타협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주장에 대한 판단이 그걸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몫이니만큼, 그런 타협에 대한 판단도 개개인의 몫이 아닐까요? 분명한 건, 그 타협이 이상에서 멀어지는 만큼 일반인들에게 그 사람의 주장이 가지는 설득력도 신뢰를 잃어갈 거란 겁니다. 즉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는 거죠.
11/07/15 10:44
언행일치에 대한 사건의 범위가 너무 넓기때문에 일반화 시켜 얘기하기 힘든 점이 많습니다.
살인범이 자식한테 '살인을 하지 말아라' 이말 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논의를 한다면 자격은 없지만 그런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거 가지고 이상적인 말 자체를 하지 못하게 입을 막는다는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한테 효도 못하고 불효를 많이 한 사람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면 안될까요? 물론 이런 얘기를 친구들 사이에서 하다가 '너나 잘 해라'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나도 그러지 못해서 너무 괴롭다고 그래서 부모님게 잘해야한다' 최소한 이렇게 말 할 수 있다면 불행중 다행이고 최소한 좋은 지향점은 잃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상을 말하는건 남들이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점도 있지만 시작점은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점입니다. 성인군자도 시작부터 이상적 마음과 행동을 실천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이상적으로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해왔겠죠. 남들이 이상적인 말하는 것에 대하여 실제로 그러지 못한 행동에 비판할 수 있어도 이상적인 말 자체를 막고 부정하는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언행일치때문에 이상을 부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맞춰서 철학을 세운다면 어떤 무서운 철학이 나올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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