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향) 웹소설의 미덕을 이루는 두 축은 기대감과 전율입니다. 전율은 다른 말로 ‘뽕맛’이라고도 하죠.
권당결제에서 편당결제로 수익구조가 바뀌면서 기대감을 유발하는 기예가 많이 중요해졌지만, 그래도 (남성향) 장르소설의 백미는 여전히 [ 뽕맛 ]인 법이고, 이런 전통은 웹소설 시대 이전부터 시작하여 유구히 내려오고 있지요.
예컨대 『어스시의 마법사』에 나오는 [ “게드” ],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 “부위님 가신다” ], 『군림천하』에 나오는 [ “내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 등이 그 예시에 해당되고
대사도 한 요소지만, 문장 자체보다도 서사를 응축시켰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카타르시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고양감을 느끼는 것이 [ 전율 ]의 실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명장면 한 방이면 그 화에는 유독 많은 댓글이 (문피아라면 추천도 같이) 달리고, 이후에는 그 기억이 고구마가 좀 나오더라도 작가를 믿고 조금 더 따라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곤 하죠. 그리고 그 장면을 처음 느꼈던 순간의 심상으로 평가가 결정되기에 웹소설을 가리켜 [ “순간의 예술”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좀 쓴다 싶은 작가들은 이 부분에서 깊이가 뛰어나서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고요.
여기서 다룰 작품은 그중에서도 『세상의 끝에서 클리어를 외치다』, 일명 [ 세끝클 ]입니다.
다른 굵직한 소설도 많은데 왜 세끝클을 대표처럼 가져왔느냐 하면 첫째는 제가 방금 전에 세끝클 최신화를 읽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세끝클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율을 잘 뽑는데도 인지도가 낮다면 보통 셋 중 하나죠. 1. 정판이다. (반례: 별품소) 2. 초반 진입장벽이 있다. (반례: 내독나없) 3. 고유 설정이 많다. (반례: 약먹마)
하지만 그렇다고 세끝클이 반드시 정판이라거나, 초반 진입장벽이 있다거나, 고유 설정이 많다는 건 아닙니다. 이 소설은 게임판타지(게임빙의물 아님 주의)이며, 초반부터 필력이 좋으며, 익숙한 설정들을 참신하게 잘 버무린 작품입니다. 단지 그와 동시에 정판의 감성을 갖추고 있으며, 5화부터 봐도 초반 이해에 문제가 없으며, 설정을 파고들수록 심후함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기도 한 것뿐이죠.
이러한 세끝클의 가장 큰 특징은 내용이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인데, 하나는 현실 파트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 파트입니다. 물론 겜판이 대개 이렇습니다만, 중요한 점은 보통의 겜판과는 달리 현실 파트가 게임 파트 못지않게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전개될수록 두 세계 사이에 연관성이 선명해지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서사적 쾌감을 선사해 준다는 것입니다.
현실 파트는 1~3형 변종이라는 좀비물을 연상시키는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인데, 3형 변종의 경우에는 『스위트홈』에나 나올 법한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어 소설에 긴장감이 부여됩니다. 또한 핵전쟁으로 황무지가 된 세상에는 약탈자가 횡행하고, 군벌스러운 무력집단들은 총격전은 물론 폭탄과 근미래적 기술을 동원한 대규모 화력전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거대 세력들의 각축 사이에서 주인공은 무대포처럼 보이면서도 기발하고, 냉정한 듯하면서도 따스하고, 실없는 것 같지만 찬란한 심지를 잃지 않는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보여주며 점차 빛나는 존재로 떠오르게 되죠.
게임 파트는 제국과 왕국, 기사와 상인, 교단과 마법사, 이종족과 몬스터가 출몰하는 [ 중세랜드 ]인데, 정작 클리어 조건은 『스타크래프트』에나 나올 법한 군체의식 변종괴물 군단의 세계정복을 막아내는 것이라서 소설에 긴장감이 부여됩니다. 또한 봉건제로 분권화가 된 세상에는 귀족들이 득세하고, 교단(들)과 마탑(들)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정치싸움은 물론 방심과 음모로 인한 대규모 트롤링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헬난이도 망겜에서 주인공은 기괴해 보이면서도 번뜩이고, 덜렁대는 듯하면서도 치밀하고, 부조리에 한탄하면서도 독기를 잃지 않는 굉장히 비범한 캐릭터성을 보여주며 점차 세상의 구원자로 일어서게 되죠.
그래서 세끝클 독자들이 심정적으로 1부처럼 생각하곤 하는 16챕터(384화)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챕터 하나마다 전율 포인트가 있으며,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신기묘산과 짙은 여운을 남기는 감동적인 클로징(전체클로징 아님 주의)이 쟁쟁히 포진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담기 가득한 서술자와는 달리 정작 세계는 비극투성이라는 모순을 딛고, 건곤일척의 다이브 한 번으로 소중한 인연들을 피폐에서 건져내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그런 명장면이 16번(이라기보다는 더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의심부터 들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실제로 그러하며 이 때문에 가히 초신성처럼 재기발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게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요. (최근 폼도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 전율의 초신성 ]입니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필력이 성장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초반을 다시 봐도 첫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술술 읽히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전체 시놉시스는 작가 본인도 아직 모른다는 게 정설이기는 합니다만 그걸 감안해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한 번 빠져들면 적어도 385화(384화 아님 주의)까지는 안전하니까요.
그러니, 이로써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생기셨다면 한 번쯤 전율을 느끼러 가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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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에서 연재할 때 제목이 기억은 안 나는데 세끌끝은 봤다가 초반 보고 아 그거 편결로 옮겨서 연재하나? 하고 넘겼던 기억이 있는데 초기설정만 비슷하고 달라지나보네요. 근데 조아라 연재 전에 문피아에서 연재 했다가 또 조아라로 옮긴 거 였나요?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