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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11 01:11:24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전두환 노태우 장세동이 데려다가 화려한 휴가를 찍자
0

이 글은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감상입니다.  시놉시스가 그대로 전부인 영화입니다만 스포일러가 있다고 표기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1

인도네시아가 정말 상상 이상의 막장 국가라는 걸 알았습니다.
비유하자면, 한국이 50년 대에 서북청년단 등의 민병대 조직을 활용해 그야말로 좌파 완전 색출에 성공하였고, 이후 지금까지도 서북청년단이 떵떵거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부통령이나 각 부처 장관들이 해당 조직 행사에 참여하는 그런 수준.
친구 하나가 '전두환 노태우 장세동이 데려다가 화려한 휴가 찍는 영화'라고 표현했었는데, 사실 영화에 실질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실행조에 가까운 인물들입니다. 직접 사람 목 베고 교살하고 고문하던 작자들이죠. 굳이 말하자면 '안두희, 김창룡 이런 작자들 데려다가 야인시대 찍는 영화'라고 해야겠습니다.


2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잔인한 신은 없습니다. 이제는 나이 든 가해자들이 스스로 재연해 보여주고 진술하고 그걸 극중 영화화하고... 그런 작업들이 있을 뿐이죠. 사실 이 영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거대한 사기극에 가깝습니다. 남한 밑에서 벌어지던 비슷한 짓을 천명 단위에게 실행한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해온 일을 영화화하겠다고 제안하고 그들은 받아들입니다. 물론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보다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고 양심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훨씬 강한 이들이죠. 그네들은 자신들이 해온 일을 선전 영화화한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그리고 그 작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당장 부통령이라는 인간이 그런 민병대 행사에 와서 일체감을 뽐내고, TV 토크쇼에서 '어멋 공산주의자들을 전부 쳐죽였다니 넘 멋져여!' 하는 나라니까요.
그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했던 일들을 영화화하는 데에 있어 시나리오도 확인하고, 신도 건들고 아이디어도 내고 합니다. 그 와중에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은 나름의 의미들이 있으나 160분짜리 영화는 그걸 전부 분해해서 적기에 너무 길군요. 기억에 한계와 혼선이 올 지경이긴 합니다.


3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건 이러한 부분입니다. 그 가해자들이 자신의 딸, 손자에게는 너무나 자상한 인간들이고, 그 가해자들에게 일을 지시했던 작자들은 명품 쇼핑에 한정판 유리공예품을 모으고 집안에 자연사 박물관을 차리고 2억짜리 습지를 매입해 동물원으로 쓰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 작업을 통해 자신들이 무슨 끔찍한 짓을 했던 것인지 되돌려 보여주는 작업에 그 어마어마한 인력과 비용을 투자한 결과는, 겨우 한 사람의 가해자가 '내가 고문하고 죽인 사람들이 고통스러웠겠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는 거죠.
수십 년 간 쌓인 그 무수한 자기합리화와 재교육, 미래세대에 대한 세뇌 같은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되는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까 하는 상상에서 비롯하는 그 절망감과 끔찍함. 그 와중에 가장 값진 선물을 쥐여주는 후보에게 표 주는 것이 당연하고, 선거 유세하는 후보에게 대놓고 선물을 요구하는 그 시민들. 뭐 민정다이소와 비슷한 거겠죠.


4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4천만 가량. 세계 4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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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충달
14/11/11 01:18
수정 아이콘
"내가 철사로 여기서 이렇게 목졸라 죽였다능 헤헤"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이게 시방 뭐하자는 영화인가' 싶었다가

결말보고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와... 영화가 여기까지 가능하구나 싶더라구요.
헥스밤
14/11/11 04:43
수정 아이콘
개봉할 때부터 정말 보고싶었지만 무서워서 못 보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마 못 볼 거 같아요.
마스터충달
14/11/11 05:23
수정 아이콘
무섭지는 않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없어요.
무섭다기 보다는 좀 애처롭더군요.
구밀복검
14/11/11 05:43
수정 아이콘
흥미롭게 보긴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안와르 콩고가 고문 장면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구토를 일으키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요. 보기에 '저건 너무 <영화적>이잖아? 진심으로 저런 반응이 나온다고? 연출이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마스터충달
14/11/11 06:20
수정 아이콘
연출이었으면 감독은 사기꾼이죠.
highfive
14/11/12 14:21
수정 아이콘
저도 말씀하신것처럼 너무 극적이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인도네시아 사회분위기나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따져봐도 감독의 연출에 따라 연기를 할 이유가 없어보이더군요. 애초에 영화의 의도를 밝히면 촬영자체가 불가능한게 그쪽 동네 상황이니까요.
어쩌면 의도를 숨기고 사기극을 꾸미면서까지 촬영해야 하는 갑갑한 상황에 그런 극적인 반응을 생생하게 포착한 점이 영화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지않나 싶네요.
구밀복검
14/11/12 14:47
수정 아이콘
예. 그러니까 '진실이면 진짜 무지막지하게 대단한 거긴 한데 어째 좀 미심쩍다;'는 정도의 생각입니다.
보면서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는데, 만약 저게 진실이라고 한다면 안와르 콩고의 무의식적인 부채의식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광다운 자아도취 내지 자기연민일 수도 있지 않나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스스로 과장되이 받아들이면서 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양념반후라이
14/11/11 10:49
수정 아이콘
화교학살이 벌어진지도 그리 오래 안 됐죠. 인도네시아가 은근히 안 알려진 막장국가인듯.
14/11/11 23:2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극중극이라는 방식도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안와르 콩고의 내면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도 보였거든요. 다큐멘터리가 조용히 리얼리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담고, 리얼리즘 영화가 다큐멘터리에 담기는 이들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그 총체를 스크린 너머로 보죠. 이 삼중의 관계는, 물론 여러 번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장르로 가는 힌트가 담겨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한 편의 다큐멘터리 안에서 쓰이는 장치일 뿐이지만, 반복해서 보다보니 뭔가 간질간질한 게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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