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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6 18:51:29
Name Acecracker
Link #1 http://longlive.tistory.com/398
Subject [일반] 실패한 이념
서로 너무 다른 철학 사조 간에는 말이 안통해서 다툼도 되지 않는다.
신선도와 헤겔 철학이 만나면 말이 안통해서 '멍?' 하고 있는다.
멀리서 보면 그게 그거인 녀석들이 만나야 요만큼 다른 거 가지고 '그게 아니고 이게 맞다'고 다투고는 새로운 설을 내놓는다.
헤겔 철학이 깔아놓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다 배운 녀석이 "정해진 노선따라 달리는 닫힌 결말이 마음에 안들어! 자유의지란게 있는데 열린 결말이어야지!"라고 하면 키에르케고르 철학이 된다.
마찬가지로 헤겔 철학이 깔아놓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다 배운 녀석이 "노선과 목적지가 마음에 안들어! 다른 데로 가야지!"라고 하면 마르크스 철학이 된다.
변증법을 동력으로 정해진 길 따라 달리는 기차를 헤겔 철학에서 가져온 채로 철로를 새로 깔아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따라 달리는 마르크스 철학에서는 사회가 정해진 노선을 따라 발전하여 마르크스가 설정한 목적지인 공산주의 사회로 '반드시' 간다. 갈 수도 있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르고야 만다는 주장이 맑시즘이다. 이 철도가 어디를 거치고 어디에 이르느냐에 대해 마르크스는 구체적인 설명을 해 놓았다.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덕을 보는 자는 나날이 더 강자가 되며 따라서 강자는 부조리를 고치고 싶어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피해를 보는 자는 나날이 약자가 되며 강자에게 져서 부조리를 고칠 수가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부조리는 체제 내부에서 해소될 수 없다. 부조리가 누적되어 자본주의는 반드시 자멸한다. 사회는 부조리의 덕을 보는 자와 피해를 보는 자로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어(계급론) 유혈투쟁 폭력혁명만이 유일한 해법이 되며(투쟁론) 혁명을 거쳐 공산사회에 이른다.'
이념은 설계도 같은 거다. 철로가 바뀌는건 설계도가 바뀌는 거다.
변증법을 유지하면서 헤겔이 깔아놓은 철로를 고쳐 깔아놓음으로써 마르크스 버전 설계도가 되었다.
마르크스가 깔아놓은 철로를 고쳐 깔면 그건 사실 맑시즘은 아니고 새로운 이념이다.
하지만 철로 새로 깔은 후배가 맑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혹은 맑시즘의 추종자들을 계승하고 싶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자기 이름을 내걸기엔 너무 수줍어서, 그 새로운 이념을 '한국형 맑시즘' 내지는 '21세기 맑시즘'등으로 명명한다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비록 속을 까보면 '한국형 맑시즘은 정통 맑시즘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라는 코멘트가 달려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사회주의socialism는 본래는 단일 이념명이 아니라 다수 이념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노선의 목적지를 '생산수단이 사회공유화된 세상'으로 설정했던 19세기 수백개의 철학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던 것이
맑시즘이 강력해지면서 여타 사회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 맑시즘은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고
현재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맑시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다 현실에서 맑시즘이 대파했다.
수많은 분석이 있고 우연히 실험 실패한거지 이론이 틀린게 아니라는 변명까지도 있다.
하지만 맑시즘이 실패했다는 최대 증거는 자본주의 자멸론이 빗나갔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라는 건 투쟁과 혁명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 틀린 걸로 만들기 때문에 맑시즘의 논리를 근본부터 반증하는 것이다.
'아직일 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가 자멸하기 전까지는 맑시즘은 다시 돌아볼 여지가 없다.
논리적으로 자멸하게 되어있는데 어디가 틀렸을까,
이를 생각하려면 부조리는 누구의 손으로 고쳐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부조리에 덕을 보는 자는 부조리를 고치고 싶어하지 않고, 부조리에 피해를 보는 자는 강자에게 져서 부조리를 고칠 수가 없으므로 부조리는 누적된다.' 일단 이걸 받아들이면 그 다음엔 계급론도 투쟁론도 논리적 필연이 된다.
또한 이는 자본주의 부조리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부조리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부조리는 착취하는 가해자와 무력한 피해자,
다시 말해서 체제를 긍정하는 가해자와 체제를 부정하는 피해자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내가 보는 맑시즘의 최대 패착이다.
또한 맑시즘 이론과 달리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가 되어 자정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조리의 음지에 빠진 자,
부조리의 음지를 피해간 자,
부조리의 덕을 보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때 부조리를 피해간 자가 꼭 부조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운이 좋아서 피해간 것일 수도 있고
위험을 내다 봐서 피해간 것일 수도 있으나
부조리를 피해갔다고 덕보는 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미래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한번 피해갔다고 부조리를 남겨두고 싶어하지만도 않는다.
또한 부조리를 피해간 자는 무력한 사회적 약자로 남지도 않는다.
한데 그렇다고 이들이 체제를 부정하는 투쟁에 호응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체제를 긍정하지만 부조리를 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중간 계층으로 남아 체제를 유지한 채로 부조리를 개선하는 동력이 된다.
자본주의의 부조리는 자본주의의 음지에 푹 빠진 생활보호 대상자의 손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음지를 어느 정도 비껴가서 힘이 있고도 개선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체제를 뒤집지 않고서도 부조리를 고칠 힘을 발휘한다.

피해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계급투쟁론은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과정에서
체제를 긍정하는 사람을 가해자로 밀어넣고 협력을 거부한다.
맑시즘의 실패는, 부조리 개선을 위해선 협력을 선택해야지 배척과 단결을 선택하면 부조리를 고치는 데에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해 수많은 썰이 있다.
페미니즘이 뭘까?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페미니즘일까?
더 나아가 모든 소외된 것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페미니즘일까?
발생단계에서 페미니즘은 맑시즘이 설명하는 '세상이 이렇게 바뀔 수 밖에 없는 원리'를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회 부조리의 덕을 보는 자는 부조리를 바꿀 의지가 없고
사회 부조리의 피해를 보는 자는 약자라서 강자에게 밀려 부조리를 바꾸지 못하므로
사회는 부조리의 덕을 보는 자와 피해를 보는 자로 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부조리는 투쟁 없이 고쳐질 수 없다.
약자여 단결하라 투쟁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페미니즘을 임의로 '투쟁론적 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해보겠다. 이게 올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당장 구분에는 유용하다.

다음으로 이 계급투쟁필연론을 뺀채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 나아가 '모든 소외된 것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흔히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이거다.
이걸 '화해론적 페미니즘'이라고 임시 명명해보겠다. '진정한' 이라는 수식어로 구분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으니까.

투쟁론적 페미니즘은 맑시즘의 논리를 차용하는 탓에 맑시즘의 실패도 답습한다.
맑시즘은 '부조리는 누구의 손으로 고쳐지는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여 실패했다.
투쟁론적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주의의 부조리의 음지에 빠진 자,
가부장주의의 부조리의 음지를 피해간 자,
가부장주의의 부조리의 덕을 보는 자가 있다.
이때 가부장주의의 부조리를 피해간 자가 꼭 부조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앞서 자본주의 경우와 같은 이유로, 가부장주의를 긍정하는 자가 꼭 부조리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계급투쟁론은
(가부장주의) 체제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과정에서
(가부장주의) 체제를 긍정하는 사람을 가해자로 밀어넣고 협력을 거부한다.
부조리 개선을 위해 협력하려 하기보다 배척과 단결을 선택한 주장은 부조리를 고치는 데에 실패하기 때문에
투쟁적 페미니즘의 실패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투쟁논리로 남자vs여자의 프레임을 만든 것이 그 실패의 첫단추였고, 현재 만연한 여성혐오는 그 귀결점에 있다.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현실 활동가나 활동단체는 전원이 투쟁론적 페미니즘을 긍정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살펴보자.
당연한 얘기지만 한 페미니스트가 화해론적 페미니즘과 투쟁론적 페미니즘을 동시에 수행할 수는 없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이념이기 때문이다.
투쟁적 페미니즘은 기존재하는 이념으로서 오리지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 상태에서 노선을 새로 깔면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설계도면이 바뀌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리지널과 다른 새로운 이념이 된다.
이는 앞서 말했듯 페미니즘의 추종자들을 계승하고 싶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페미니즘이 원래 깔아놓은 길이 뭔지 몰라서
철로를 새로 깔고도 그 새로운 이념을 '(진정한) 페미니즘'으로 명명하는 격이다.
이러면 마르크스가 맑시즘에 '진정한 헤겔리즘'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나 똑같다.
다른 이념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이 작명법은 큰 혼란을 불러왔다.
가장 큰 문제는 투쟁론적 페미니즘이 여전히 오리지널의 자리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한 사회의 진화를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변증법을 통해 노선을 따라 진화한다는 개념을 가져오면서 노선과 종점을 자기 나름대로 바꿨다.
철학사에서 이런 일부 계승 일부 수정을 할때엔, 멀리서 보면 90% 비슷한 주제에 자기가 배워온 선대를 엄청나게 비판한다.
(헤겔이 진화하는 정신을 얘기했더니 이 부분을 유물론으로 바꾼 맑시즘 휘하 공산국가에선 종교나 정신을 전쟁 수준으로 비판했다.
이런 선대 비판은 철학사에 걸쳐 '쌍욕만 안하는구나' 정도로 일어난다.)
아류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만약 마르크스가 헤겔리즘을 수정하면서 '이것이 진정한 헤겔리즘'이라고 하고
기존 헤겔리즘에 대해 '그렇다고 헤겔께서 틀렸다는 건 아니고'라고 했다면
맑시즘은 헤겔철학의 아류로 남았을 것이다.
헤겔리즘을 수정한 이념을 아무리 '이게 진정한 헤겔리즘'이라고 주장해봤자, 오리지널 헤겔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물며 '이게 진정한 ~ism'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마추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경우엔 그냥 '아마추어들이 뭘 잘 모르네'가 되고 만다.

페미니즘 내부에서 페미니즘을 화해론적 페미니즘으로 바꾸려고 한 시도가 있었다. 실패했다.
투쟁론적 페미니즘을 몰아내지 않고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라고 하자고 한 시도가 있었다.
(사회주의라는 명칭에 착안한 발상이었다. 사회주의가 단일 이념명이 아니라 '생산재의 국유화를 이상사회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이념들을 통칭하는 명칭'이었다는 데에 착안하여 페미니즘도 단일 이념이 아니라 카테고리 명으로 하자고 한거다.
'여성을 위해 주는 모든 이념을 통칭하는 명칭',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부조리가 해소된 사회를 이상으로 하는 이념들을 통칭하는 명칭',
나아가 기왕 추상적이 되는 김에 '모든 약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자 하는 이념들을 통칭하는 명칭'등으로 페미니즘을 쓰려고 했다.)
그 결과가 현재다.
오리지널인 투쟁론적 페미니즘 입장에서는 저변을 확대하는데에 쓸모가 있다는 점에서 굳이 반대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추어들이 자기 멋대로 페미니즘을 해석해서 지지를 보내준다면 활동가 입장에서는 그게 다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카테고리명으로서 존재하는 중구난방이념이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투쟁론적 페미니즘도 여성을 위하는 이념이긴 하기 때문에 어떤 삽질을 하든 '저건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러면 잘못된 설계도가 잘못된 삽질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공사가 된다.
(그래서 '왜 자정을 못하느냐'는 비난을 받곤 했다. 욕먹는 부분 쪽이 명분상 우선권을 갖고 있으니 막을 수가 있나.)
패인을 막지 못하니 성공할 수가 없는데다가
현실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에서 보면 투쟁론적 페미니즘이 오리지널 페미니즘이라는 건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투쟁론적 페미니즘/화해론적 페미니즘이라고 임시로 명명했지만, 사실상 그런 것은 없다.
현실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단체들이 괜히 그렇게 투쟁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페미니스트고 그게 페미니즘이다.
현재 페미니즘은 맑시즘적인 초기 형태를 부정할 근거도, 그와 달리 해석될 어떤 근거도 획득하지 못했다.
페미니즘은 여전히 투쟁론을 골자로 하는 맑시즘의 다른 버전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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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초보
14/03/26 19: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념의 실패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이념이 같은 이름으로 혼재했기때문인게 요지 같습니다.
작명의 중요성에서 화합형이 조상격 사상을 배제하기가 참 어려운것 샅습니다. 다른 사상을 배척하면 그건 또 진정한 화합형이라고 말하기 모하니까요.
새정치민주연합이 생각나네요.
정말 새정치를 하려면 민주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민주라는 의미를 고수하고 싶음 세력은 어떻게 감싸야 하는지...
자본주의가 위기를 지금까지 잘 극복해 나가고 있지만 전체흐름으로 볼때 양극화를 개선하지는 못하고 있고 이 양극화의 끝이 지본주의의 실패가 될것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에 칼을 데려면 수정자본주의라는 말 대신 새로운 용어를 써야할런지 사회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불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Acecracker
14/03/26 21:58
수정 아이콘
퇴근길에 피지알 하다 생각난걸 올렸더니
글 올리고 시간 좀 지나고 나서 리플 달릴때쯤엔 전 이미 애랑 노느라 바빠서 피드백이 잘 안되네요.
담부턴 패턴을 바꿔야겠어요.

'맑시즘'과 '맑시즘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 이 두개의 이념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부조리는 어떻게 고쳐지는가?
이에 대한 헤겔의 대답이 변증법 입니다.
변증법은 대립과 투쟁이 발전의 동력이라는 생각이고,
그렇기에 변증법에서 유래한 맑시즘과 페미니즘은
투쟁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으며, 필연적 결과로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발전은 이원적인 정과 반의 투쟁을 동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인 가능성들을 늘어놓고 생존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투쟁은 다원적인 가능성들을 검토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발전을 왜곡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쟁의 당사자들은 이겨야만 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보다 집중된 큰 힘이 유리하여 다양성은 축소되며, 또한 승패는 반드시 정의롭게 이루어지지도 않기 때문이죠.

투쟁은 부조리를 해소 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 돌려막기로 다른 부조리를 양산하여 결국 전체적으로 부조리 해소에 실패합니다.
이게 '추구하는 가치 자체는 실현하는데 다른 데에서 부조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와 비교해보면 사회주의가 분배정의를 실현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 역효과로 신자유주의를 불러왔다는 것,
투쟁적 페미니즘이 오히려 역효과로 여성혐오의 시대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 등에서 추구하는 가치 그 자체도 성공시키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맑시즘은 무력혁명을 골자로 합니다.
여타 사회주의자들이 방법론으로 현실성 없는 방법들만 제시한데 비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왜 필연적으로 무력혁명으로 귀결되는지를 설명한 후 자본론의 유명한 말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선포했고 이게 먹혔습니다. 무력봉기가 일어나 피의 혁명이 행해졌지요.
맑시즘이 실패한 이유는 이념이 뭉뚱그려져서가 아니라, 투쟁을 동력으로 하는 이념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제 분석입니다.
Acecracker
14/03/26 22:51
수정 아이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생산시설을 국유화하고 자본가를 내쫓은 사회주의의 정반대 입장에서 공공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소련이 망할때 "사회주의는 역시 오답이었잖아"라는 생각과 함께 전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이런 일 흔히 일어나요. 잘해보려고 했는데 망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는 역효과나서 민폐가 되는...

어떤 프로젝트팀이 투자를 받아 재능을 쏟아부어서 성과를 냈습니다. 성과의 배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과의 공로가 투자자에게 있느냐, 근로자에게 있느냐 라는 논쟁에서 신자유주의는 투자자의 공을 높이 쳐주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걍 돈터치로 내비두면 소자본 망하고 거대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고 돈 꼬라넣으면 다 성과 나오더라 그러니 싼값에 일해," 라는 쪽으로 가더라고요.
자본이 돈으로 돈버는 금융수익이 근로 수익을 압도하여 빈부격차가 심화되는게 신자유주의의 한계이고 님이 말씀하신 지점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다음해 일어난 리만브라더스 사태때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오답이다'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여담으로 김대중, 노무현때 까지는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최신 정답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지지자들이 신자유주의 싫어하는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로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이명박도 (비리는 별개로) 뼈속까지 신자유주의의 사장님이고 이명박 당선때까지만도 서민들 못살겠다는 말은 많았지만 사실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정답인정 받던 시대에요. 그때 뽑힌 이명박이 신자유주의로 운영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미국은 리만사태 이후에 대통령을 뽑았고 신자유주의 탈출을 외치는 오바마가 당선되었으며 한국 진보진영이 자국 대통령보다 더 좋아하는 미쿡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활동중입니다.
한국은 하필 리만사태 직전에 신자유주의 사장님을 뽑아서 대응이 늦어진 걸로도 모자라서 다음 대통령도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규 세우고... 신자유주의를 요약한 영혼같은 말입니다)를 외치던 신자유주의 대통령으로 뽑는 사태를 맞이합니다. 당시 모든 후보가 "신자유주의 탈출하고, 경제민주화할 것이고 복지국가 만들거다"라고 말하긴 했는데 그중 제일 그 말과 거리를 둘 사람이 당선되었고, 박근혜가 인생관을 바꿀리 없으니 결과적으로 현 정부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정부로 불립니다. 국제적으로 오답처리 되었지만 노선 변경은 안하고 있는거죠.

항상 쉽게 풀어쓰고 싶은데 중언부언 길어지진 않았나 염려됩니다.
빈부격차가 자본주의를 망하게 할 것이냐 하면
자본주의는 유지하되 신자유주의 탈출하자는 노력은 열심히 진행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서와 같은 이유로 예외구요.
아직까지 확실히 정답판정을 받은 탈출 대안은 없는 걸로 알아요.

전 상당히 중증 안철수지지자 인데, 지지 이유가 도덕성이나 겸손한 인품 등이 아니라 제가 지지하는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이 달리 없어서 에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안철수는 나름의 대안 이념이 있습니다(정답 여부는 별개로). 전 그걸 '이해관계자 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수정자본주의' 정도로 생각하는데 명칭을 뭐라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안철수는 그 자신이 이념적인 사람입니다. 마치 자기는 이념적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념적이에요. 그 안철수의 이념은 민주당(중에서도 친노)의 이념과 다르고요. 민주당이랑 합작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너희 이념 못쓰겠고 내 이념 쓰자'라고 하자니 말이 안먹히겠어서 그냥 '탈 이념'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잘하는 건지는 의문입니다.
난멸치가싫다
14/03/26 20:00
수정 아이콘
글쌔. 지식의 부재로 여러 번 털린 경험이 있는 이런 말 하는 자신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글 같네요.
맑시즘이 소련 건설의 원동력, 최소한 그 기조라도 되었다고 가정해보면 맑시즘은 이론적 개념이, 이념적 순수를 가졌으며 국가 단위의 규모를 가진 사회집단을 만드는데까지 성공하여 실현의 기회를 가졌으나 실패한 거죠. 반면 페미니즘은 이론적 개념이 다수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도 못하였고, 지지자들이 영향 내 반대자를 억누르지도 못하였으며, 규모 또한 뭐...이념을 전파와 실현의 단계로 구분한다면, 전파 단계에서 실패한 거죠.
페미니즘을 맑시즘에 비교하느니 기독교 소수종파나, 자연주의자, 아니면 차라리 소아성애자에 비교하는 편이 유사성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노련한곰탱이
14/03/26 20:01
수정 아이콘
뭔 코멘트라도 달아보려고 열심히 글을 읽었는데 사실 요지파악이 힘드네요.
대충보자면 중간계층이 발생하는 것을 무시한 것으로 인해 '맑시즘'이 실패했고
페미니즘도 그 '맑시즘'의 전철을 밟아 실패했다라는 말씀이 하고싶으신거 같은데..

1. 일단 '맑시즘'을 실패했냐 성공했냐로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맞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말씀하신 어휘를 빌리자면 말마따나 철학사조라면 그게 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되고, 혹은 비판되고 계승되고 재창조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사장되는 경우가 있지 이걸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늠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막말로 철학을 접하다보면 자주 듣는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경우에도 현재 주류에서는 한참 비켜났지만 여전히 주요한 연구대상이고 이걸 실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맑시즘 또한 여전히 주요 연구대상이며, 그 분야 또한 단지 경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의 영역입니다.

2. 그렇다면 소위 '사회주의 경제체제(혹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로써의 사회주의)'라는 것으로 한정하여서 이걸 실패했다라고 이야기하시는건데, 이것도 맞지 않다고 봅니다. 뭔가를 실패했다라고 표현하고 싶으시다면 맑스-레닌주의 당이었던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건설한 소련이 실패했다 혹은 동구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나 지역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다만 한참이나 주류가 아닐뿐이지.

3. 마르크스 이후의 '맑시즘'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게 아니기 때문에 '맑시즘'이 아닌 새로운 이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를 직접 차용해보자면 모든 건 변화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변화가 거듭하다보면 질적전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거구요. 본질이 같다고 하여 현상까지 똑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자본주의도 18C의 자본주의와 같지 않으므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맑시즘'이라는건 단지 맑스가 직접 쓴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마르크스주의'라는 것 또한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니까요.

4.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잘 모르고, 아는 것 마저 가물가물합니다만 적어도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에 페미니즘을 완벽하게 등치시킬수는 없습니다. 일단 사상의 기원이나 운동의 출발지점부터가 다릅니다. 페미니즘 운동 진영에는 사회주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며, 실상 지금의 페미니즘의 개념을 구축한건 자유주의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사회주의의 실패전철을 밟고있다는건 본인의 입맛에 맞는 해석이실수는 있으나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이 '여권신장'에 초점을 맞춰온 것도, 그래서 사회 틀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에 집중해왔던 것도 다 그런 까닭입니다. 페미니즘이 사회주의의 전철을 따랐다면 그런걸 할리가 없죠.

그리고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는 호전적이고 갈등을 유발한다'고 생각하고, 그 근거로 '페미니스트'명함을 들고 방송등의 매체에 나와서 했던 여러 과격한 언행들을 드는데.. 뭐 잘못이야 그 사람들의 미스이고, 사실 초기 여성주의 운동노선이 갖고 있던 문제점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을 편집하여 악의적인 여성주의에 대한 확대재생산된 공격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마 소위 인터넷에서 '무개념'식으로 남성을 깔보는듯한 언행을 하는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건 뭐 오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체제는 남녀불문 고통을 줍니다. 결혼할때 집은 남자가 해야 하는 악습은 여성들이 만든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사회가 만들어온 것이죠. 결혼하면 집에서 애나 봐야하는건 남성들이 만든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겁니다. 물론 남성들이 사회의 권력을 쥐고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고 거기에 맞춰 가부장적인 체제가 만들어진것도 사실인것은 분명하고, 여기서 남녀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만.. 차치하고서라도 남성이라고 여성주의에 반대할 이유도 없고, 여성주의가 남성을 배제할 연유도 없습니다. 최소한 최근의 여성주의 내부의 논의는 그러한 조류를 반영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를 하기에는 저 또한 여성주의에 대한 밑천이 짧군요. 아무튼 여차의 이유로 페미니즘이 실패했다는 결론도 맞지 않다고 봅니다.
14/03/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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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읽어본 적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자본과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찰에 대해서는 몰라도 장래에 어떻게 될거라는 이야기까지 철학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한정하자면 마르크스 '철학'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부분에선 동의합니다.
3번은 음.. [모든 건 변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법칙의 대상이 그 법칙 자체가 된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들의 동의할 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법칙 또한 변화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마르크스의 주장 내부에서 법칙과 적용을 구별해내고 적용 부분만 다시 재구성해야할텐데, 그렇다면 원본이 갖고 있던 파급력도 사라지고 실패했다고 말하기 딱 좋죠.
14/03/2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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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처럼 [마르크스가 깔아놓은 철로를 고쳐 깔면 그건 사실 맑시즘은 아니고 새로운 이념이다.][맑시즘 이론과 달리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가 되어 자정을 수행]했다는 걸 동시에 주장한다면 [맑시즘이 실패했다는 최대 증거는 자본주의 자멸론이 빗나갔다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자멸하지 않고 수정가능한 것처럼 맑시즘 또한 철로를 고쳐 깔고 있으니 자멸하지 않았겠죠. 똑같이 계속 수정하는데 맑시즘은 실패고 자본주의는 수정이라고 말할 순 없을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직일 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가 자멸하기 전까지는 맑시즘은 다시 돌아볼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는 건 이중잣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맑시즘을 마르크스가 직접 주장한 것에 한정한다면 논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맑시즘vs자본주의가 아니라 맑시즘vs케인즈주의 정도로 비교해야될테고, 그렇다면 노련한곰탱이님이 쓰신 2번처럼 사회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될 일입니다.
Acecracker
14/03/2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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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의 대칭점이 자본주의는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한 이념의 통칭이고
카테고리명이며 맑시즘은 사회주의의 일부입니다.
그 대칭점엔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개별 이념이 자리해야지요.
맑시즘이 실패했다 하여 생산수단의 공유화가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모든 가능성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요.

다만 차이는 '사회주의'라고 말할때 그것이 통상 맑시즘을 의미할 정도로 유통중인 모든 사회주의들이 맑시즘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주의는 계속 연구중입니다.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섞어서 해법으로 삼으려는 흐름도 여전히 강력합니다. 그거 다 반대하려고 하는 말입니다. 실패한 이념에서 출발한 배리에이션들은 모두 실패에 이를 겁니다.
14/03/2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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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은 실패한 이념이 아니죠. 공산주의체제가 실패한거지. 맑시즘=공산주의 체제가 아닌것처럼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였던건 맞고요. 게다가 맑시즘도 전기와 후기가 다르고, 자본에서 맑스는 인격화된 피해자로서의 노동자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자가 누군가를 가해자로 몰고 편가르는 행동을 했을지는 몰라도 맑시즘 자체에서는 사회를 인격적 대립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으로 이해했죠. 그러니 본문은 이미 맑시즘의 실패 자체부터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14/03/2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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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념에서 출발한 배리에이션들은 모두 실패에 이를 겁니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고, 별론으로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섞어서 해법으로 삼으려는 흐름도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에서 설령 실패한다고 의미가 없어지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일 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가 자멸하기 전까지는 맑시즘은 다시 돌아볼 여지가 없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특히 ['사회주의'라고 말할때 그것이 통상 맑시즘을 의미할 정도]의 환경 하에서는요. (추가) 아.. 아래 덧글을 더 읽어보니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섞어서 해법으로 삼으려는 흐름]까지 반대하신다는 말씀이신 것 같네요. 제가 잘못 읽은 것 같습니다.
14/03/2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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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미 2,3,4,5 단락이 주장의 근거로서 힘을얻으려면(본문의) 적어도 그만한 근거가 될 레퍼런스를 넣으시거나(자의적 주장이 아닌 사회학적 근거가 있다는 증거로서) 그럴 수 없다면 맑스는 인격적 대립구도로 현상을 설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맑스가 실패했다는 논리인 자본주의는 실패 안했는데? 라는 주장은 [자본]에서 제시한 핵심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그에 따른 자본의 과잉과 인구의 과잉이라는 분석, 즉 자본축적의 거시성장궤도를 이론화한 '과학자 마르크스'의 논리는 반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무시한 채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죠. 물론 마르크스 주의가 '자본주의는 언젠가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대 전제 하에 현실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고,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교조화 되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게 맑스의 핵심이었던 자본주의 한계론과 자본축적의 거시성장궤도에 대한 실패의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2,3,4,5단락은 거짓이 되겠지요.
Acecracker
14/03/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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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닙니다.

극우-우-좌-극좌, 이런 식으로 일차원선상에서 정도의 차이로 이념을 구분할때, 소위 '진보'는 얼마만큼 섞느냐의 차이일 뿐 항상 '맑시즘에 근본을 두고 성장시킨 사회주의'를 솔루션으로 모셔둡니다.
그런데 그 솔루션이 얼마를 넣든지가 문제가 아니라 통째로 오답이면 어떻게 될까요?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구도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표하는 핵심 가치는 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의 주인공은 누구냐? 재산이냐, 재주냐?"
이때 '재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념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미련이 남는 오답의 존재로 인해 다른 정답이 들어서는데에 방해가 됩니다.
14/03/2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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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솔루션이 오답이라고 주장하시는 그 패기가 '근거없음'의 상황인데, 모든 맑스의 유산들이 실패한 솔루션이라고 말하시려면 그만한 근거와 레퍼런스가 있어야합니다. 자의적으로 말할게 아니라요. 그러면 주장이 아니라 믿음이 되는거고요. 당연히 그건 개인신념으로 존중은 받을지언정 가치는 없겠지요. 사회/경제학적으로 맑스의 유산이 여기저기서 연구에 쓰이고 재 반박되고 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실패한 솔루션이 시작이니 무의미'라는것만큼 황당한 주장도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반박은 있을 수 있고 그만한 근거도 대시면 되지만 그걸 맑시즘의 실패로 주장하는 것과는 아예 다른 이야기입니다. 맑시즘이 공산주의 혁명의 도구였고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였지만, 그게 맑시즘과 공산주의의 일원화는 아닌거니까요.
Acecracker
14/03/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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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쓴 리플을 일부 옮겨올께요.
솔루션 오답이라는 주장이 인문학적 관점에서 근거없음^^;맞습니다.
솔루션 오답이다, 라는 근거로 제시하는 게 딱 이문장이 전부잖아요.
[그러다 현실에서 맑시즘이 대파했다. 수많은 분석이 있고 우연히 실험 실패한거지 이론이 틀린게 아니라는 변명까지도 있다.]
이거 의견을 사실로 위장하려고 한건 아닌데.

현실 실험에서 대파했으면 이론를 수정해서 실험결과를 비껴가려 하는 건 오답을 끌고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방법론의 미비로 인해서 인문학에선 오답을 확실하게 킬하는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덕분에 오답이 완전히 죽는 일이 없어요. 그거 다 핏값입니다.
→ 실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답을 확실하게 킬하지 못하는게 객관적으로 인문학의 관점임은 주지의 사실이고 덕분에 오답이 명줄이 깁니다.
14/03/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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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이 답변에서 여쭙고싶은게 그럼 솔루션 오답(마르크스 주의의 실패)은 자의적 의견(사실이아님)인데 왜 이것을 현실의 실패라고 믿고 그것이 오답으로서 제거되어야 하며 그게 곧 모든이들에게 피해를 주고있다고 믿으시는거죠?;
Acecracker
14/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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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캇카님의 리플을 빌려오겠습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된 이념 혹은 체제라도 모든 역학상태의 균형이 맞는 현실보다 이성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 결함으로 인해 결국 사회는 굴러가지 못하고 붕괴된다.]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치뤄진 현실에서의 실험실패와 그로 인한 반작용으로 사회주의가 추구하려 했던 가치인 분배정의가 크게 후퇴했던 경험도 불구하고
발뺌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인문학적 수단의 미비로 인해
현재의 현실에서 여전히 사회주의는 '투여량을 조절하면 효과가 있는 치료제'인양하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진보세력이 그런 입장인데,
제가 지지하는 이념이 그로 인해 가로막히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지배는 길어집니다.
뭐 결국 이념 충돌이라는 얘기죠.
14/03/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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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런 '역학상태의 균형이 맞는 현실보다 이성적일수는 없는 것이고 그 결함으로..'이 주장 자체가... 왜 에대한 해답이 없잖아요. 그게 사실인가? 사실로서 기능했는가? 그 사실의 원인과 인과관계는 증명되었는가? 혹은 유의미한 경향이나 두드러진 증거가 존재하는가? 이런것들이 없으면 '사회학적 가설'로서 가치가 없단말이죠. 근데 어쨌거나 마르크스주의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검증에 대해 나름의 근거를 지속적으로 여기저기서 현상으로부터 분석하고 해석하여 주장을 사실화 한단 말이죠. 지금 말씀하시는건 그냥 완전히 관념론이에요. 근데 그런 관념론은 주장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 글은 주장을 하는 논설문이 아니라 에세이나 잡담 같은 일상이 되는건데, 문제는 이 글은 주장으로서 기능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건 문제잖아요? 그냥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념때문에 , 혹은 그 유산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안이나 이념이 밀려나서 싫어! 이건데, 그 본인의 이념이나 대안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주장도 없는데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둔 주장에 대해서도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시면서 주장을 하시면 반박을 할 수밖에없죠, '뭐 이념충돌이죠'같은말로 너도맞고 나도맞고 하자는게 아니거든요.
14/03/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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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본문에서 '계급투쟁은 실패의 길'이라는건 맑시즘에 대한 실패가 아니라, 갈등 해결 및 교섭에 있어서 계급및 단결에 의한투쟁 자체가 사회변혁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틀리다 라는 주장인데, 이에 대한 대안이 거의 없는 상황인 것도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성공한 이가 왕정처럼 사회를 선도적 변혁을 위해 이끈다 정도의 대안 말고는요. 실제로 그래서 노동자들의 노동3권에서 보장되는 교섭권과 결사권도 이러한 '단결투쟁'이 실질적인 사용자에 대한 교섭능력으로서 힘을 발휘한다는 현실때문에 유지되는 거구요. 이러한 계급 단결투쟁은 의미가없다, 실패한 솔루션이다 라고 주장하실 수 있겠지만, 귿쎄요. 그렇다면 국내에 한정해서라도 현대 노동사에서 발전되어온 노동자들의 권리가 투쟁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았고 다른 무엇인가에 대해 증진되었다 라는 점이 증명되어야겠죠. 그렇지 않다면 '계급투쟁은 실패의 방법론'이라는 주장 역시 힘을 잃습니다.
Acecracker
14/03/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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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인 것과
현실적 대안을 아직 잘 모른다는 건 맞습니다.
이때 '계급 투쟁은 실패의 방법론' 이라는 주장은 다른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됩니다.
'싸워서 발전하는 게 아니구나' 라고 느끼면 '그럼 어카지?'를 생각하는게 자연스럽잖아요?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14/03/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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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느낌을 주장화하신게 본 글인데, 그 느낌의 근거가 너무 개인화되어있고 근거가 불충분해서 주장으로서의 가치가 없다(신념이라면 존중하겠지만) 그러니 제목부터 글까지 '주장을 위한 글'을 쓰셔놓고 이건 개인신념이라고 하실것도 아니고, 주장에 대한 반박과 그 근거에 대해 명확한 부정과 근거가 없으시다면, 이 주장은 '주장으로서의 힘이 없으니 개인적 신념일 뿐입니다'라고 하시는게 맞겠죠. 누군가는 이 주장이 설득력있어보일수도있고 누군가는 이러한 주장으로 자신이 공부하고있는 분야에 대한 폄하를 당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Acecracker
14/03/2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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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랑 닉쿄님이랑 관점이 제일 다른게 뭐냐면...
님은 맑시즘이 자본주의가 자멸한다라고 한게 맞았건 틀렸건은 따질 가치가 없다고 보신다는 거고
전 그걸 제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거네요.
님은 [맑시즘은 더 연구할 가치가 있느냐]는 관점에서 보고 계신거고 그래서 이건 맞았잖아 라는 대답을 하고 계신거고
[맑시즘을 대안 솔루션으로 투입할 가치가 있느냐] 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으니 다른 더 좋은 것 많다 거기서 발빼야 한다 라고 하고 있는 거고.
님의 관점에 대한 제 이해가 맞나요?
14/03/2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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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좀 다릅니다. 저는 맑시즘이 자본주의가 자멸한다고 본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건 지금만큼 자본주의가 발달한 시점에 안왔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틀렸다'는게 아니라고 봅니다. 이 맑시즘의 핵심인 자본주의 자멸론이 틀리려면, 그러한 근거였던 '이윤율 경향하락'과 '자본축적한계'에 대한 반박 근거가 있어야 하지 어떤 시점에서 '공산주의가 오지 않았어, 자본주의 안망했는데?'라는건 맑시즘의 주장에 대한 반박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냥 '안 왔을 뿐'이지요.

그리고 맑시즘을 대안 솔루션으로 투입할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맑시즘의 영향에서 아예 자유로운 대안들이 글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더 좋은 것에 대한 서술도 없으며 심지어 그 대안들이 있다한들 맑시즘 자체에 대한 무효용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실패의 근거도 되지 못하거든요. 제가 계속 반복하는것같은데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를 말씀하시면 모를까 '맑시즘의 실패'랑 '공산주의 실패' 를 일원화 하시면서 답을 하시니까 주장이 나아가질 않아요. 그 둘은 다른건데. 그러니까 결국 말씀하시는 핵심 주장에 대한 논거들이 없는데 주장을 맞다고 하시니까 전 계속 반박을 하는거죠. 실패하지 않은것을 실패했다고 하시고, 대안 솔루션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이 없다고 하시니까.
Acecracker
14/03/2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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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의문입니다.
혹자는 소련 붕괴는 역사적 우연 때문이다 라는 말도 합니다. 또 님은 '자본주의 붕괴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도 하고요.
대부분의 경우에 사실을 완전히 추려낼 수 없다보니 오답이 확실하게 킬되지 않고 살아남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환경에선,
역설적으로 완전히 반박한게 아닌 근거가 약한 주장도 설득력을 갖곤 합니다.
님이 (비록 예언의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뿐이므로) 사회주의가 반증된 증거가 없지 않느냐? 하시면, 제 대답은 이미 말씀드린대로 입니다.
님 말씀이 맞아요. 강력한 심증은 물증이 되지 못하듯이 사실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신념에 대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신념에 대한 주장은 보통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물증이 거의 존재하지 못하는 세계에서라면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을 속이지 않았으나 설득력을 유지하는 주장이라면 주장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제 글이 설득력을 계속 갖는다고 말하겠단건 아니고 그와 별개로요.
제가 앞서 '뭐 이념충돌이죠' 했던 건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이게 님이 앞서 말씀하신대로 단순히 (물증으로 말하는 세상에서의) '난 싫어!'와 동격이 되느냐 하면 아니지 않느냐는 거죠.
[자본주의 자멸은 아직 오지 않은 것 뿐일 가능성도 있는거야]라는 님의 반박에 전 수긍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게 주장의 설득력에 큰 의미가 있나... 싶네요.
14/03/2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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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려고 모바일로 마지막 확인을 한거라 이후 댓글이 어려운점 미리사과드리면서... 물증이 존재하지않는세계가 인문학인가요? 혹은 관념론같은데.. 실패했다고 말씀하신 맑시즘자체는 유물론이거든요. 그러니까 설득력에는 큰 영향이 있죠. 세계자체에 대한 대립이념을 실패로규정지은것이 근거가되버리니까요. 설득력이 있다면 당연히 가치있는 주장이지만 이 근거로는 인문학, 관념론적 세계관에서도 근거가 될 수 없다..는게 제 요지구요. 글 자체가 현실을 기반으로 쓰셨으니 그에대해서도 답한것이고... 만약 인문학,혹은 관념으로 완성된 세계에 전제를 한정시킨 이야기셨다면 그건 곧 사회과학 자체는 과학이아니다. 와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은 답변을 드릴수가없습니다. 전 사회과학이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에서는 아니라고하는 주장도있거든요. 근데 제가 그부분은 잘 몰라서..
Acecracker
14/03/2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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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yo 님// 감사합니다.
안녕히주무세요. 저도 바로 자야죠.
14/03/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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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cracker 님// 기분 나쁘셨을지도 모르는 답변들에 끝까지 이성적으로 읽어주시고 피드백해주신점 저도 깊이감사드립니다.
SugarRay
14/03/2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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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리안이나 칸트, 맑시즘은 그래도 동일한 철학적 길 위에 서 있고, 서로 전제가 다르지는 않습니다. 즉 말은 통한다는 이야기죠. 서로 기대는 전제가 달라 말이 아예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걸 철학에서 통약 불가능성이라고 하던가... 잘 기억이 안 나는군요.

저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어떤 기초 위에 그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제학에서 자본은 나와도 자본주의라는 말은 통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정자본주의라는 용어,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말 역시, 저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케인지안은 케인지안이고, 새고전학파는 새고전학파입니다. 통화주의는 통화주의이지요.

경제학에서 중요한 경제학자들은 케인즈, 프리드먼, 루카스, 로머 등을 언급하지만 맑스는 아닙니다. 코즈는 등장할 수 있지만 맑스는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주장이 중요합니다. 주장이 실제를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이를 넘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프리드먼의 필립스 곡선 붕괴 예측처럼) 그것은 정설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맑시즘은 경제학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대상이 아닙니다. 애초에 맑시즘에서 말하는 자본, 노동 등이 경제학과 달라 말이 통하지 않을 뿐더러, 맑시즘은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가 필연적으로 공산사회로 이행할 것이라는 예측 역시 실패했습니다. 경제학은 그것이 전제가 잘못되어 틀린 것인지, 아니면 논리적으로 허점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전에 대한 응전 때문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일단 실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틀렸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이 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공황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있지만 왜 호황이 오는지는 모릅니다. 경제발전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모델이 있습니다. 하지만 왜 사회주의가 오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그 설명의 의무는 경제학의 영역이 아니죠.

맑시즘을 철학이라고 한다면 맑시즘은 왜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인지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해 주실 분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엔하위키도 저는 썩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4/03/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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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현상에 대한, 그리고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한 통괄적 용어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어떤 기초위에 쓰여지냐는 이야기는 오히려 말이 안되고, 자본주의가 어떤 현상에 대한 용어적 정리인가에 대한 논의는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공통된 부분들이 엮여져 자본주의라는 사회학적개념이 된거구요. 당연히, 경제학적 개념어랑은 달라야하고 다를 수 밖에 없겠죠. 그런면에서 경제학적으로 자본주의가 무슨 기초위에 있냐는 질문은 질문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는 그러한 현상을 위해 나온 또 다른 용어가 있거나, 그 현상의 세분적 방법으로서 여러 용어가 있겠죠. 말씀하신 통화주의라거나. 자본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백과사전에 나오는 각종 사회학자들이 주장한 자본주의의 정의 모두가 그리고 그 공통점들이 자본주의다 라고 여겨지고 있겠네요.


그리고 마르크스(혹은 마르크스주의)는 실제 현상을 설명하는데에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이론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해서 마르크스 주의가 말한 공산주의의 도래가 틀린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반경향이 있는 것 뿐입니다. 핵심은 자본의 축적단계였고, 이는 이론적이고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즉, 자본주의로 통칭되는 이윤을 위한 자본이 중심이 되는 시장경제사회의 '구조'는 이윤축적의 한계라는 부분을 어떤식으로든 극복해야만 하고, 이 극복의 지점이 끝나는 순간 자본주의는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붕괴한다는, 말하자면 기존 시장경제의 체제붕괴라는 점이 틀린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되려 경제학자들도 '구조적으로 시장실패가 오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있는 마당에, 마르크스 주의가 시장실패나 자본주의 붕괴의 현상시점을 예측하지 못했다 혹은 실제현상 설명에 실패했다는건 틀린 말입니다. 그 설명이 맞으려면, 정말로 시장이 붕괴했을 시점이 되어야 맞다 틀리다의 논의로 만들 수 있겠죠. 이는 경제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겁니다. 경제학 또한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가치를 증명하지만, 현상을 드러내는 구조에 대해서는 계속된 논쟁상태가 이어지고있죠. 시장실패에 대해서 경제학자도, 마르크스경제학 주의자들도 구조적인 필연을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적인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해서는, 애시당초 '자본,노동 혹은 공산사회로 이행에 대한 예측'이라는 역사이론적,사회학적 마르스크주의의 이론을 가져다 논박할 게 아닌거죠.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시장이 변이해가는 현상으로서의 상황이 왜 벌어지는가에 대한 '구조적 측면에서의 설명'은 경제학자들 또한 명확한 답을 못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맑시즘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건 그렇지 않은 경제학자건 그 과정에서의 모순들(시장실패등)의 현상 자체에 대한 분석만이 있을 뿐이죠. 그것을 통괄하는 쪽이 결국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남게될 테구요. 그러니, 맑시즘이 철학 혹은 사회학이나 역사이론 경제학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의 근거들은 곧 경제학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일이 될 겁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래서 경제학도 맑시즘도 유효한 이론으로 취급받고 있는 거겠죠, 그 결말까지 가기위한 도구적 용도로.
SugarRay
14/03/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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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nickyo님의 코멘트는 정말 제가 왜 말이 안통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군요.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는가, 를 묻고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말을 쓰지 않아요. 뭐 신제도주의나 이런 쪽에서 재산권을 강조하긴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계급을 구분하는 건데, 주류경제학에서 그런 식의 접근은 없어요.

=마르크스는 실제 현상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죠. 자본축적이 결국엔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마르크스가 대공황을 예측했나요? 맑시즘의 이론으로 1972년을 설명할 수 있나요? 최소한 케인지안이나 통화주의는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설명할 수 있었고, 예측에 성공했습니다. 레몬 마켓에 대한 분석 등은 현실 세상을 잘 설명하고 있어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렇지 못하고 있죠.

==주류경제학은 구조에 대한 집착이 크게 없습니다. 물론, 어떤 변수가 장기에 고정인가, 혹은 수식으로 논리를 더 깔끔하게 설명할 것인가는 있지요. 하지만 구조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아요. 경제학자들이 답을 못 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그런 쪽으로 접근했던 쪽은 역시 비주류였던 오스트리안 쪽이겠지요. 어느 경제학도가 IS-LM, AD-AS, 같은 것을 두고 사회구조부터 논하려고 하나요? 하지만 그런 논의 없이도 경제위기를 예측한 쪽도 있고, 어느 정도의 불황에 대해선 확실한 대처법이 있지요. 마르크스주의가 하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시간이 크게 없는지라 밑에 추가 답변이 있다면 내일 중으로 달 수 있을 것 같네요.
14/03/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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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경제학이 물은게 아니라 슈가레이님이 '어떤 기초위에 서 있길래 자본주의라는 말이 쓰이는가'에 대해서 '어떤 기초위에 단일하게 세워진 이론으로서의 용어가 아니다'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말이 안통했다고 생각합니다.

2. 마르크스는 개별적인 실제 현상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구조로서 이윤율의 하락경향과 그에 따른 자본축적의 한계성을 말했고, 이는 어떠한 시점에 있어서 '설명한다 설명하지 못한다'의 논점에 세워지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현상으로서 그러한 경향과 한계성이 나타났고 그에대한 혁신 및 개선으로서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이에대해 누군가는 새로운 시장(제국주의)를 논하기도 하고 헤게모니 순환 같은 이야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제가 세세하게 정확한 레퍼런스를 달 만큼 알지는 못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예 궤도가 다른거죠. 그래서 제 답글에도 '경제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한계'를 말씀드린 것 같네요. 다만 경제학도 그러한 구조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없으니, 3번항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조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포기'한 상태임은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실용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주장에는,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라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현실에 대한 설명은 시점이 필요한데, 마르크스주의에서 핵심이 된 것은 경향으로서의 구조고, 따라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현상의 설명과는 아예 전제가 다릅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은 이러한 현상의 설명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제가 듣기로는 명확한 설명이 되지 못해 계속 같은 수준의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답습하고 있다 정도입니다. 그러니 마르크스주의는 왜 소멸하지 않는가, 자본주의는 대체 무슨용어인가 에 대해 '경제학으로서'라는 전제자체는 애시당초 없는것을 없애라는 주장과 같은 것 같아 말이 안통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14/03/2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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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경제학자의 어떤 논문에서(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 되도록 국문이면 더 좋겠네요) 현재의 시장경제가 갖는 자본중심주의의 체제로서 금융경제/실물경제에 있어서의 순환과 실패, 이윤율의 혁신(공황극복과 호황기같은) 등에 대한 구조적 해답을 내린 논문이 있다면 (말하자면 현대 경제에 대한 구조적 통찰과 그에대한 일관성 있는 설명) 알려주시면 공부하겠습니다. 경제학 전공이 아니다보니 정보에 느릴 수 있어서요.
14/03/2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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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대결과는 별개로 스스로의 생존에 실패했기에 저는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헤겔의 말인 이성적인 것이 곧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곧 이성적이다. 라는 말이 부각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된 이념 혹은 체제라도 모든 역학상태의 균형이 맞는 현실보다 이성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 결함으로 인해 결국 사회는 굴러가지 못하고 붕괴된다 보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인 생각도 결국은 수많은 계급들의 역학관계의 재조정을 몇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Acecracker
14/03/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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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다 현실에서 맑시즘이 대파했다. 수많은 분석이 있고 우연히 실험 실패한거지 이론이 틀린게 아니라는 변명까지도 있다.]
현실 실험에서 대파했으면 이론를 수정해서 실험결과를 비껴가려 하는 건 오답을 끌고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방법론의 미비로 인해서 인문학에선 오답을 확실하게 킬하는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덕분에 오답이 완전히 죽는 일이 없어요. 그거 다 핏값입니다.
14/03/2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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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슨 이념에 대해서 글을 쓰시기에는 내공이 부족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맑시즘과 페미니즘이라니요. 두 ism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다종다기한 변형을 가지고 있는데 '적당히 퉁 쳐서 대충 비스무리하니까 둘다 망했다'? 게다가 이념이 설계도라는 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누가 이념을 설계도라고 표현하던가요? 이념이 뭘 설계하는 설계도인가요?

사상사적 개념이 빈곤하신 것도 글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지만 글 자체의 논지도 빈 데가 너무 많아서 글 전체적으로 읽을만한 꺼리가 별로 없네요. 어제 인문학을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세태에 대한 글이 올라왔었는데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요약하고 중요한 것들 다 빼놓은 내용들이 아마도 그렇게 팔리고 있는 인문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것에, 모르고 있다는 것에 밝아지는 것이 인문학적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글은 조금 실망스럽네요.

어떤 일로 페미니즘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으셨는지는 몰라도 '선언' 자체가 실패하신 듯 합니다. 애써 맑시즘은 왜 끌어다 붙이셨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렇게 실패를 선언하고 싶은 욕심이 사고의 빈약함을 볼 수 없게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이념은 누가 실패했다고 열심히 선언한다 해서 실패하고 마는 그런 존재는 아닙니다.
1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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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글쓴 분의 맑시즘, 엥겔스의 견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경제학, 정치경제학 이론과 개념에 대한 정립이 부족해 보입니다. 몇몇 분들은 맑시즘이 현실을 설명할 수 없고 예측이 틀렸기 때문에 맑시즘은 실패했다고 얘기합니다만, 경제학이 아닌 "정치경제학"적 관점으로 대학시절에 배운 그 이론들만큼 제가 사는 세상의 현재의 현상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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