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랑 주제가 다르잖아?'라고 하셔도 별 수 없어요. 달리 더 좋은 제목이 생각나질 않아요.;;
두 해 전, 사정상 몇 달 동안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어느 날이였어요.
할머니께서 노환 탓에 부쩍 힘들어하시던 무렵이여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잘 하는 재활병원을 찾게 되어 모시고 가기로 했죠. 거동이 불편하신 지라 가까운 동네 의원만 다니셨었는데, 재활병원으로 옮긴 후 역시 전문분야여서 그런지 불과 며칠 사이에 꽤 호전을 보이셨고, 수 십년 만에 손자 노릇을 한다는 생각에 보람찼어요.
금세 나을 병환이 아닌 탓에 제가 서울로 돌아오고 나면 멀리 있는 병원에 계속 다니실 수 없을테니 한 달 이라도 열심히 모시고 다니자 생각 했죠.
마침 저도 그 해 초(당시는 여름이었어요.) 계단에서 잘못 넘어지며 다친 왼쪽 어깨를 방치한 탓에 올리면 많이 아팠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던 이틀 째에 오른쪽 어깨마저 기지개를 켜다 어이 없이 다치는 바람에(기지개를 하다 말고 '어엇!!! 어깨가 움직이질 않아... '라는 몸개그 상황이었어요.;;) 겸사겸사 같이 진료를 받았죠.
왼쪽 어깨를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병원에 다녔었는데 쉽게 치료가 안되더니 재활병원에서 무지 아픈 주사 한 방과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음... 역시 재활병원 답군.'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족들에게 칭찬을 해댔죠.
얘기가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죠? 드디어 사건이 발생합니다.
전 흡연자입니다. 게다가 꽤 심각한 헤비스모커죠.
할머니 보다 진료 순서가 빠른 덕분에 날렵하게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는 생각에 문으로 향했어요. 이 병원은 자동문이랍니다. 게다가 전 이미 대여섯 번이나 왔었으니 아무 의심 없이 문으로 돌진합니다. 할머니를 기다리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바람 처럼 움직였죠.
"빡!!!"
자동문 앞에서 평소 처럼 0.3초 정도 멈춘 후 그대로 움직였는데 열려야 할 문이 닫혀있었죠. 헐... 알고 보니 그냥 유리벽이였어요. 자동문은 바로 오른쪽...;;
안경이 눌리면서 코에 상처가 났어요. 만져보니 별로 아프지도 않고 피도 많이 나지 않기에 흡연욕구가 충만한 저는 몸개그의 부끄러움을 버프삼아 더욱 날렵하게 밖으로 나갔죠.
'어? 생각보다 피가 더 많이 나네?'
만져보니 약간 패였지 뭐예요. 미남주인의 얼굴에 무슨 짓을 한 건가... 흑흑.
하지만, 요즘엔 새 살이 솔솔~ 돋는 약도 있고, 흉터가 안생기는 밴드도 있으니까 안심했죠.
다음 날, 얼굴의 흉터가 걱정되셨던 어머니의 성화에 가까운 병원을 찾았어요. 벽에 부딪혀서 상처가 났다며 흉이 안지도록 진료를 받을 생각이였죠. 그런데 대뜸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소심한 저로서는 그냥 의사 선생님의 지시대로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지만, 내심 속으로 '아프지도 않은데 엑스레이는 어째서!!! 가난한데...ㅠ.ㅠ'라며 원망했어요.
그런데, 코뼈가 부러져 있네요. 거울을 봐도 전혀 표가 안나는데 말이죠. 더구나 아프지도 않아요.
"큰 병원에 가셔서 치료하셔야겠네요. 소개장 써드릴테니까 00대학병원으로 가보세요."
어어? 이게 아닌데.
00대학병원에 갔더니 뭔가 사진을 하나 더 찍고, 다음 날 입원수속을 하고 수술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가족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몸개그 작렬이라며 놀려대고. 흑흑.
어쩐지 한동안 아프지 않다 했죠. 병에 걸리던 다치던 한 해도 무사히 넘기기 힘들었던 인생인데... 매 년 몇 번이고 찾아오던 감기 조차 지난 겨울 사이 한 번도 오지 않더니만 이러려고 그런 것이더냐!
코수술을 해보신 분은 아실거예요. 차라리 팔을 다쳤을 때가 나았어요. 입원해있던 불과 일주일 사이에 극도의 짜증을 경험했답니다. 이건 뭐... 아프지도 않고, 큰 병도 아닌데다, 몸개그로 인한 사고인지라 동정도 못받고, 입으로만 숨을 쉬니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등등.
수술은 잘 되었어요. 콧잔등이 유전으로 인해 꽤 올라온 스타일이었는데 더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아아~ 이렇게 난 성형미남이 되고 마는 건가.' 생각하며 우울했지만, 뭐 그건 그냥 농담 같은 거였고 여전히 '미남주인'의 지위는 유지하겠노라 생각했죠.
저의 어이 없는 사고(?)로 인해 할머니의 신경통 치료와 저의 양어깨 치료는 그 상태로 종료. 할머니와 두 해가 지나도록 방치되어 여전히 불편한 저의 어깨에게 죄스럴 따름이네요.
그 해 가을.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 갑작스레 오한과 발열이 시작됩니다.
'날씨도 좋은데 이게 뭐람?'
심한 감기라고 생각했기에 명절 동안 격리수용 되었어요. 조카가 아직 아기여서 조심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차례를 지내자 마자 서울로 귀환.
점점 고열이 심해졌어요. 발진 마저 생기기 시작. 동네 병원들은 모두 문이 닫혀있었고, 그냥저냥 넘기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밤에는 이마에 계란 후라이를 해도 될 지경이 되지 뭐예요. 야간 당직병원을 찾아서 누나와 함께 방문.
40도 가까운 고열과 여기저기 열꽃 같은 것들이 피어오르고 있었죠. 병명은 성인수두.
수두는 어릴 때 다들 앓는 거 아니였나? 이게 뭐임.
다음 날 부터 중앙대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사나흘이 지나자 몸에는 수두꽃이 대략 천 개쯤 피어올랐던 것 같아요.(대충 세어볼까 생각했는데 배와 가슴에서만 이백개 정도 세다가 포기.) 가려운데 긁으면 흉진다는 말에 온몸을 비비꼬며 괴로워했죠. 특히 밤이면 더 가려워서 잠들기 조차 힘들었죠.
어느 날 밤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누워서 괴로워하다가는 수두 녀석들 하나하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넌 언제 생겼니?', '내가 어제는 블라블라~.', '언제쯤 갈거야?' 등등 이런저런 소리를 지껄이다 보니 수두들이 대답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시간 쯤 지났을까요? 신기하게도 이제 가렵지 않게 되어서 잠들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으윽. 수두들의 재잘거림이 멈추질 않는 거예요. 그렇게 전 어쩔 수 없이 두어 시간을 더 수두들과 대화를 나누다 잠이 깨어서는 다시 가려움에 시달렸다죠. 대화가 재미는 있었는데 뭐하는 짓인지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게 열흘 남짓 고생을 하다 딱지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열심히 참아왔기 때문에 모두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줄 거라 믿었는데... 약도 열심히 발랐건만 얼굴에 수두자국이 대여섯개 남더라구요. 지금도 사라지질 않아요.
'이렇게 맑고 고운 나의 얼굴은 스러져가는구나...' 느끼며 성형미남의 지위마저 놓기로 했죠.
이상이 저의 다난한 미남주인 포기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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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운하고 이상한 질병과 사고를 달고 산 것 같아요. 게다가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생각난 김에 주절주절 떠들어보기로 했어요.
1.7세(음주로 병원에 실려감)
동네에 잔치가 있었어요.
아주머니들이 낼름낼름 받아먹는 제가 귀여웠는지 동동주를 작은 잔에 따라 주셨어요. 기억나는 건 대여섯잔 쯤? 아마 그 이후에도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얻어먹었나봐요.
마치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처럼 방안에 널부러져서 뒹굴러다니며 괴로워하던 모습이 선명해요. 직후에 바로 병원으로 고고싱.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누나는 제가 그 때 죽는 줄 알았대요.
2. 10세 전후(땅벌에 쏘여 병원행)
동네에 몹쓸 형이 있었어요. 애들을 몰고다니며 사건사고를 만들곤 하던 사람인데 너댓살 위였어요.
하루는 상수리를 주우러 가자고 해서 예닐곱이서 산에 올랐죠. 한참을 땅바닥을 보며 상수리 채집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그 형이 땅을 쑤시더니 산 아래로 냅다 뛰는 거예요. 벌의 윙윙대는 소리에 이미 모두들 패닉상태.
다들 아래로 뛰고 있다가 한참 어린 나이이던 동생이 생각나서 위를 보니 누워서 굴러다니고 있지 뭐예요. 다시 뛰어올라가 업고 뛰었어요. 그러고는 한참을 뛰다 동생을 내려놓고도 계속 도망다녔어요.
미끄럼틀을 타면 빨리 내려가니까 벌이 못쫓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오르내리길 반복하다가 실신.;;
그 이후의 상황은 잘 모르겠는데 병원행.
그래도 덕분에 어린 시절 동생을 때리기도 하고 못된 형이였는데 생명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동생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하늘의 안배는 아니였을지... 쿨럭.
3. 10세 전후(독초를 먹고 병원행)
예의 그 동네 나쁜형이 저를 죽일(?)심산으로 독초를 먹였어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꽤 맛있어 보였어요. 그대로 구토를 하며 정신을 잃고 신음. 병원으로 고고싱.
4. 13세 추석 직후(옻)
시골에 살았던 지라 가을이면 밤을 주우러 산에 가곤 했어요. 추석때 성묘를 하고 밤을 줍다가 못내 아쉬워서 동갑내기 당고모와 동생을 이끌고 한참을 걸어 밤골에 도착했죠.
즐거운 수확을 만끽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어요. 알고보니 밤나무 주변에 옻나무가 있었대요. 이틀을 꼬박 물을 끼얹어대고 벽에 몸을 부비고 미쳐가다가 살았더랬죠.
5. 18세(손목부상)
언덕을 오르는데 포니2가 힘들게 그르렁대더니 멈췄어요. 아저씨께서 조금만 밀어달라고 하셔서 얼마 남지 않은 언덕을 낑낑대며 행인1,2와 함께 밀고 있는데 순간 덜컹 하더니 뒤로 밀렸어요.
"뿌득!!!"
그냥 삐끗했겠거니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한 달 동안 생활을 하게 되었네요.
학창시절 제일 재미있어하고 잘하던 과목이 수학이였는데 당시 미적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어요. 수업을 들으면 눈으로는 다 알 것 같았는데 팔이 불편해서 이해만 하고 풀어보지는 않았더니 한 달 사이에 구멍이 되었어요. 미적분을 놓치고 나니 수학은 점점 미궁으로...ㅠ.ㅠ
선행이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아요.
6. 21세 추석(신장결석)
어떤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신장결석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하시더군요. 출산과 신장결석을 모두 겪어보신 분들은 간혹 출산은 비교할 게 아니라는 말씀까지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다 명절을 쇠러 시골에 가던 직행버스 차 안에서 갑자기 배가 아팠어요. 설사가 심각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땀이 삐질삐질. 어느 순간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두시간을 근근히 참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려 끙끙대며 기사님 옆으로 가서 구급차를 불러줄 수 없냐고 했지만 딜 실패.
집에 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거기 내려주시기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30분만 더 가면 도착한다고 내리면 바로 병원에 가라고 하더군요. 그로부터 두 시간. 헐...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식은땀으로 몸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에서 신음을 하며 간신히 내렸어요. 앞에 타고 계시던 부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움직여서 터미널 전화기에 도착.
집에 전화를 걸어 너무 아프다고 바로 병원으로 간다고 연락.
병원에 도착하자 어찌된 일인지 전혀 안아픈거예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드려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지옥을 경험하기 시작.
수면제가 들어있는 링거를 맞으며 몇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졌어요. 수술을 해도 되긴 하는데 약물 치료로도 괜찮다는 말에 귀가했어요.
그런데 추석 전 날. 완전히 괜찮더니 밤에 다시 통증 시작. 너무 힘들어서 당직병원에 갔어요. 근데 다시 괜찮은거예요. 다시 귀가. 새벽에 다시 극심한 통증. 아침을 맞이.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다 괜찮아졌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결석이 나왔나보다 생각했죠.
그 후 2개월.
교류가 있던 타학교 동아리 창립제에 갔어요. 뒷풀이 1차로 호프집에 갔는데 당시 버릇처럼 맥주 500을 원샷해댔죠. 여섯잔쯤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도중 뱃속이 이상하더니 뭔가 요도를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딱 멈춤. 결석이 요도를 타고 나오다 마지막 순간에 소변 부족으로 걸린거죠. 그 찝찝함과 아스트랄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민망해요.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서 순식간에 맥주 500을 열 잔 가까이 원샷으로 비워낸 것 같아요.
'어서 이녀석을 내보내야해!!!'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
지저분하지만, 어찌나 신기하던지 소변기에서 꺼내 만져봤어요. 결석이 돌이라지만 설마 진짜 돌 같을 줄이야. 커다란 모래알 같더라구요. 완전 날카롭고 단단.
출산의 기쁨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희열을 맛봤어요.
7. 23-25세 군생활중(편도선염, 요추부염좌, 낫 끝에 정강이 찍힘 등)
a.편도선염
여름 입대였는데 헌병교육 후 9월에 자대 배치가 되었어요. 첫 겨울을 맞이하여 보람차게 눈을 쓸어대던 어느 날, 심한 감기에 걸리게 되었죠.
특히 목감기가 심했는데 짬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외래진료를 매일 갈 정도의 상태가 되었죠. 편도선염이 생긴거였는데 고참과 동기들이 목구멍에 멍게가 있다며 즐거워했어요.;;
b.요추부염좌
게이트 헌병의 특성 상 총을 메거나 들고 하루 8시간 정도 서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생겼어요. 저와 요추부염좌의 첫 만남은 어이 없게 찾아왔죠.
작업을 좋아하기도 하고 힘도 좋아서 이쁨(?)을 받고 있었는데 절 잘 챙겨주던 고참이 대민지원에 같이 가겠냐고 묻기에 당연히 가고 싶다고 대답했죠. 허리를 굽히고 군화끈을 묶고 있었는데 대답을 하며 일어서는 순간
"어, 허리야!!!"
하면서 주저앉았어요. 저를 바라보던 고참의 눈빛은 참 오묘했습니다;;
그 때 부터 시작된 허리통증은 몇 달 지속되다 괜찮아지곤 했는데 덕분에 제일 활발히 작업활동을 하던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수진을 다녀야 했고, 제대 후에도 5년 넘게 치료를 해야만 했답니다.
c.작업중 부상
어느 부대나 풀이 우거지는 시즌에는 제초기와 낫, 삽 등을 들고 숲을 헤매이게 되죠. 그 해에는 그 무렵 검열이나 시찰 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장님의 깔끔한 성격 덕분에 모든 병력이 제초작업에 투입되었어요.
보름 계획으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제 덕분에 상당부분 취소되는 일이 생기게 되죠.
작업 이틀째. 촌동네 출신 답게 후임들을 진두지휘하며 앞장서 나가며 낫질을 해대다 실수로 낫의 끝부분이 정강이를 찍게 되었어요. 꽤 세게 찍었는데 상처는 2~3mm정도의 작은 구멍 뿐. 잠깐 상처부위가 하얗게 보이더니 피도 안나더라구요. 별로 아프지도 않았구요.
걷는 데에도 전혀 지장이 없고 멀쩡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가지 동작을 할 때면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고 주저앉게 되거나 통증이 극심했죠.
행보관님이 걱정스레 살펴보셨는데 괜찮은 것 같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 계속 증상이 반복되고 호전이 안되자 중대장님과 행보관임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위험하니 최소한의 작업만 하기로 했죠. 3일만에 작업 끝~!!! 룰루랄라~
그러나... 그 이후로 반 년 가까이 아무렇지도 않게 걷다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않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별 일 없던데 어디가 어떻게 다친 거였을까요?
8. 26세(요추부염좌)
군시절 얻은 허리 통증이 일년 내내 따라다니며 괴롭혔어요.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병원에 다니러 왔는데 점심이나 같이 먹자."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반갑게도 서울에 올라오셨다는 말씀에 늦잠에서 깨어나 병원에 가기로 했어요.
꾸물럭꾸물럭 일어나려는데 '어헉!!! 움직이질 않아!!!'
몸을 옆으로 돌리는 일 조차 힘들어서 간신히 엎드려 앉는 데에만 반시간 가까이 걸렸나봐요. 통화 직후 책상위에 던져둔 핸드폰으로 다시 접근하는 데에만 다시 반시간...;;
전화를 드리자 왜 아직 안오나 전화를 해보려고 하셨다네요.
"아버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나가기 힘들 것 같아요."
"기다릴테니까 천천히 나와서 검사 한 번 받아봐라. 제대로 치료해야지."
"네..."
그 때 부터 꼬박 한시간을 움찔거리며 나갈 준비를 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았어요. 택시를 잡고 나서 문을 열고 타서 앉기까지 5분은 걸렸나봐요. 기사님도 어쩔줄 몰라 하시며 측은한 눈빛만을 날릴 뿐 정적의 시간...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으러 가는 사이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졌어요.;; 엑스레이 결과 이상 무.
헐...
맛나게 점심을 먹으며 오랜만에 아버지와 좋은 시간(?)이 되었네요.
9. 26세(말귀를 못알아들음???)
어릴적부터 아버지께 넌 왜이리 말귀를 못알아듣냐는 말씀을 많이 들었었어요. 미묘하게 잘못 알아듣는 바람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많았었구요. 마치 사오정 같달까요?
그저 듣고나서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익숙한 말로 치환해서 듣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예의 진료때문에 아버지께서 다시 서울을 방문하셨을 때예요. 병원 로비에서 만났는데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 제가 잘 못알아듣고 몇 번 되물었더니 아버지 왈.
"넌 왜이렇게 말귀를 못알아듣냐. 병원에 온 김에 귀 검사좀 받고 와라."
"..."
그냥 말귀가 어둡다는 핀잔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어엇. 아버지는 접수대로 향하고 계셨고 엉겁결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게 되었어요.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꼭 그것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귀 안쪽에 작은 혹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쪽 귀에 울림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귓구멍 지름의 반 정도 크기였던지라 귀막혀서(?) 안들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여전히 그것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사오정 생활은 그걸로 종지부가 찍혔답니다.
10. 31세(통풍)
신장결석과 허리통증에 이은 미칠듯한 새로운 경험... 두두두 통풍입니다.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식습관, 만성피로 등 때문에 건강이 아주 안좋던 때예요. 겸사겸사 난생 처음 종합검진을 받았어요.
이상소견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내내 좀 민망했는데(예쁜 여선생님이었어요.ㅠ.ㅠ) 역류성 식도염과 통풍이 의심된다고 하시더군요.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이후 확인된 심각한 질환은 두 가지였어요.
어쩐지... 이상하게 다리(발목과 발등뼈 부근 등)가 아프다 했더니만.
에혀~ 점점 아파가던 중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찌나 통증이 심하던지.
통풍도 신장결석과 더불어 출산의 고통에 비견되는 몇 안되는 통증을 수반한다죠? 이건 뭐...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괴롭혀대니.
겉으로 보기엔 딱히 어디가 아파 보이지도 않는데 한 달 동안이나 할머니 지팡이(등산 지팡이라 별로 창피하진 않았어요.;;)를 짚고 다녀야만 했죠.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던 건, 우리 사회가 아직 살 만 하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거예요. 절뚝절뚝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면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나 자리를 양보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 때 느낀건데 젊은 사람들 보다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 자리를 양보해주시더군요. 자식 생각이 나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젊고 건강한 분들이 힐끗거리기만 하는 것과는 달리 인정이 넘치시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노약자를 보호합시다~
11. 23~? (역류성식도염, 위염 등)
군시절 불규칙한 생활(게이트 및 초소 근무가 주 업무였던지라 2~5.5시간씩 계속 교대근무를 했어요. 덕분에 저희부대 헌병들은 제대때까지 아침을 먹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였답니다. 하루 두 끼, 그것도 매일 다른 시각에 먹다보니...)과 과도한 스트레스(물론 누구나 그렇듯이 일병때 적응하느라 힘겨웠던 정도)로 인해 생전 처음 위에 탈이 났었네요. 잠들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려서 속이 쓰리면 물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로 잠시 달래고 한 두시간 정도 자고, 다시 깨어서는 무한 반복...ㅠ.ㅠ
그렇게 생겨버린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은 꽤 오래 드문드문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최근엔 매우 건전한 식생활을 해서인지 찾아오질 않네요. ^^*
12. 31세(어깨부상)
눈이 많이 쌓인 날 계단에서 미끄덩.
그 때 치료를 제대로 받았어야 하는데 방치했더니 여전히 불편하네요. 부상 즉시 병원으로 고고싱~은 진리.
13. 32세(알코홀릭)
이런저런 풍파가 심하던 해였어요.
전에 잠깐 직장을 다니던 시절, 같은 기숙사에 있던 과장님과 얼음에 소주를 채워서 한 잔씩 하곤 했는데 반 병 정도 마셔도 술냄새도 안나고 안주도 필요 없어서 간단히 얼음을 채운 잔에 소주를 따라서 홀짝거리는 주법(?)을 배웠답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서 심적으로 고생이 심해지니 그 기억이 나더군요. 첫 시작은 그렇게 되었지요.
그러던게 점점 양이 늘어서 매일 두 병의 소주를 마시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어요.
소주를 두어병 마셔도 술기운이 돌지 않아요. 점점 정신이 맑아지죠. 다음 날 아침에도 여느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구요. 그런데... 이튿날 저녁이면 어김 없이 술기운이 도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술이 몹시 땡기구요. 그래서 다시 소주를 두어병 마시면 술을 안마신 것 처럼 멀쩡.
이렇게 반복이 되다보니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게 되더군요.
어릴 때 한창 마시던 걸 생각하면 그리 많이 마신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이후에 중독에서 벗어난 후 가끔 술을 마셔보니 소주 두어병이면 딱 알딸딸하게 취하는 정도가 제 주량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무렵에는 주량 이상을 마셔야 안마신 듯 멀쩡해지는 상태라니..;;
중독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은 잘 모르고 있더라도 비정상적으로 꽤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상태라는 건 알코올 중독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하더라구요.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소주 너댓병을 마시고도 별 일 없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때가 알코올 중독의 첫 경험이었나봐요. 물론 체력도 좋았을테니 중독 따위를 걱정할 입장은 아니였겠지만요.
14. 34세(코뼈 골절)
본문 참조.
15. 34세(성인 수두)
본문 참조.
우어엇~ 이건 마치 제가 심각한 병자로 세월을 다 보낸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글이 되어 버렸네요.;;
정리를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실은 무지 건강해요.하핫.
혹시 미남주인이던 시절 쓴 대한민국 1%글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https://ppt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3&sn=on&ss=off&sc=off&keyword=미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961
이런 이상한 짓(?)들과 화려한 병력 덕분에 겉만 멀쩡하지 정상인게 뭐냐는 소리를 듣곤 했답니다.
무엇하나 유쾌할 이유가 없는 글인데 쓰다보니 신나요~
일기에 가까운(도대체 누가 일기를 이따위로 쓴다더냐!!!)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꾸벅!!!
ps) 메모장에 쓰고 옮기는 글은 처음인데 정상적으로 잘 쓴건지 모르겠어요. 오기나 혹은 편집 중 잘못된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보는대로 다다닥 수정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