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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0/25 13:31:13
Name happyend
Subject 자객으로 돌아오다
1.

진나라 왕인 정(후에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끝장내며 승승장구할 무렵,북방의 연나라 태자 단은 함양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인질로 삼는 댓가로 연나라는 진나라에 붙어 그 고물을 좀 얻어먹을 생각이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꼬드겨 오히려 두나라가 연합하여 연나라를 치도록 하는데 성공하였고,연나라는 순식간에 기울어버렸습니다.

태자단은 헌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검댕이칠을 하여 가난뱅이로 변장했습니다. 그리고는 남의 심부름을 하는 척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함양의 외곽지대로 뒷걸음을 치다가 재빨리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태자 단은 자신이 받은 수모와 연나라가 처한 뼈아픈 현실모두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마 다른 춘추전국시대의 영리한 제후였다면 그는 좀더 병사를 조련하고,백성을 정돈하고,외교력을 강화해서 동맹을 넓히며 힘을 길렀을 것입니다. 물론,그것도 다 부질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이미 중국 통일의 밑그림을 다 그렸고, 그만한 힘까지 갖춘 진나라앞에 다른 제후국들은 그저 진나라에 빌붙어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는 쥐새-끼들로 변해버린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태자단은 복수를 꿈꿉니다.그는 실력있는 검객 형가를 청했습니다.

"이미 한나라도 망했고,조나라도 끝장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도 진나라에게 항복하다시피했거나 너무 멀리 있습니다.연합은 불가능하고,진나라의 군대는 너무 강합니다.오로지 나라를 구하는 것은 진나라 왕을 찔러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형가는 태자단의 말에 동의하고,스스로 자객이 되겠다고 했습니다.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그를 진나라 왕이 받아줄리는 만무했습니다. 진나라 왕이 갖고 싶어 안달이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그것이 '지도'였습니다. 그 지도만 있다면 통일전쟁을 앞당기게 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니 보물중의 보물이면서도 진나라 왕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조금 더 진나라 왕의 곁에 다가가기 위해 형가는 번어기를 찾아갔습니다.
"장군의 부모와 가족을 죽인 진나라 왕이 당신의 목에 상금을 걸었습니다.복수할 생각이 있습니까?"
번어기의 눈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곧 고개를 숙였습니다.
"진나라 왕이 원하는 것이 제 목이라면 그걸 가져가십시요."
번어기는 말을 마치자 마자 자신의 보검을 꺼내 자신을 찔렀습니다.

지도와 번어기의 목을 들고 형가는 진나라 왕을 찾아갔습니다.물론 그 뒤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형가의 실패와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2.

송병구선수가 도재욱 선수를 만났을 때, 프프전의 정석대로 승부해선 절대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프로토스선수들이 도재욱의 칼날에 제압당했습니다. 이미 프로토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그는 매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습니다.그 앞에선 날빌도 소용없었고,물량전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송병구선수는 도재욱을 제압할 유일한 방법에 대해 그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만,쉽사리 답이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연습때 이기는 것만으로 도재욱을 물리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프로토스 동료들의 도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외통수'였습니다.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도재욱과 맞선다면 승부의 향방은 단지 '운'에 의해 결정이 되거나 아니면 기세가 더 좋은 도재욱의 쪽으로 기울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밤을 꼬박새면서 찾아낸 방법은 무엇일까요?경기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지만 그것은 '형가의 방법'이었습니다.

프로토스대 프로토스 전에서 상대방의 견제가 떨어졌을 때 가장 달콤한 것은 셔틀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도재욱에게 속업셔틀을 내주고 도재욱의 힘의 원천인 '프로브'를 잡는 것. 순한 모범생이 악마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승부의 아침에 송병구 선수가 깨달은 것일까요? 그는 초반에 가스에 프로브를 네기 붙여 속업비용을 미리 뽑아두었고, 상대의 적진으로 들어가 셔틀을 잃어주었습니다.그리고 그 댓가로 프로브를 취했습니다.

도재욱 선수는 스스로도 밝혔고, 송병수 선수도 밝혔듯이 프로토스의 힘의 원천은 프로브입니다. 드론이나 SCV처럼 공사다망할 필요없이 유일하게 자원만 뚜벅뚜벅 먹어대는 프로브. 이 프로브가 모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 전에 벌어진 프로리그 안기효선수의 경기를 보신분이라면 아실 것입니다.프로브는 업그레이드의 원천이고,유닛의 회전력을 좌우하며 전투의 승부와 전쟁의 명암을 가리는 원천입니다.

도재욱 선수를 무너뜨릴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이무시무시한 괴물의 유일한 약점.그러나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도재욱선수를 무너뜨리기 위해 번어기의 머리를 내놓아야 했던 형가처럼 송병구선수는 속업셔틀을 제물로 바치고,질럿과 게이트를 제물로 바칩니다.형가는 실팼으나 송병구는 성공하였습니다.

3.

경기가 끝나고, 승부의 운명을 갈랐던 2경기에 대한 송병구선수의 인터뷰는 요근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게임게시판으로 저를 돌아오게 하고,스타커뮤니티를 들끓게 하고, 경기가 끝난 뒤 굵은 목소리의 남성팬들이 감격에 겨워 '송병구!송병구!'를 연호하게 한 것.

그 모든 것들의 이유를 말해주는 인터뷰.

"경기 메두사에서는 SK텔레콤이 프프전을 많이 했는데 VOD를 찾아봤는데 한 빌드만 쓰더라. 그래서 4게이트웨이만 몇 십번 정도해서 최적화를 시켜 오늘 새벽에 완성시켰다. "

4게이트 빌드에 대해 도재욱은 말도 안되는 리버타이밍과 드라군콘트롤로 극복해낸 적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빌드에 대해 도재욱선수는 말도 안되는 승부를 펼쳐왔습니다.그것이 프프전 14연승이 가능한 이유였습니다.전투가 끝나면 언제나 도재욱선수의 유닛들이 한부대 이상은 고스란히 남아버렸던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 승부들.

송병구선수는 '외통수'외엔 답이 없었겠지요. 절대빌드로 도재욱선수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조금만 장기전으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3,4경기의 후반에 보여주었습니다.차이는 순식간에 극복이 됩니다.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역전경기가 나왔을지도 몰랐을 만큼.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완전히 심리적으로 무너진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2경기후였습니다.도재욱선수는 그 승부의 결과를 통해 연승이 멈춰버렸다는 사실이 불쾌했던 것일까요?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패배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 것입니다.그렇게 허무하게...외통수에 걸려 ....

송병구선수가 밝혔듯이,그 전략은 단순한 날빌이 아니라 '절대빌드'였습니다. 엄청난 연구와 연습의 결과 만들어진....한치의 빈틈도 허용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뒷언덕 위에 숨어있는 상대방의 프로브를 질럿이 찾아 없애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형가가 진나라로 떠날 때 태자단에게 조금만 더 '절대빌드'를 연구하자고 했지만 초조한 태자단에게 등떠밀려 떠날 때,그 실패를 예감했습니다만, 송병구선수는 태자 단 보다 더 치밀하고 더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송병구선수는 도재욱선수와의 준결승 모든 경기에서 초반 프로브를 공략하는 일관된 전략과 더불어, (1경기를 제외하고)상대의 핵심유닛이 나오기 정확하게 바로직전에 공략하는 수준높은 타이밍을 보여줬습니다.2경기에서는 도재욱 선수의 리버가 나오기 직전이었고,3경기에서는 자신의 피해가 유닛으로 드러나기 직전이었고,4경기에서는 도재욱선수의 하이템플러가 스톰을 뿌릴 수 있기 직전이었습니다.

이 세타이밍을 놓쳤다면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런점에서 송병구선수의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기였습니다. 그에 의해 스타판은 다시 끓고 있지만 "나는 단지 첫 우승을 향해 도전을 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나이.

어쩌면 그것이 박카스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릴 때, 만년 준우승자라며 콩라인으로 조롱거리가 될 때,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강펀치를 수도 없이 맞았으면서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를 보며 '송병구!송병구!'를 외치던 팬들의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대학입시,취업경쟁,경제위기 등등...수많은 강펀치를 맞고도 '송병구선수'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함께....

오랫만에 드라마를 보는 것같아 굉장히 흥분이 됩니다만,다시는 설레발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새로운 도전을 멋지게 성공시키길 바랍니다.
하나 둘 셋
송병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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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5 14:01
수정 아이콘
태자 단은 옛날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고,진시황(정)의 아버지 역시 볼모로 조나라에 잡혀있었죠.거기에서 그 둘은 친구가 되었고.단은 태자 정이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진나라에 볼모로 가는 것을 자청했었구요,그러나 정은 그따위 기대감은 싹지워버리고 그를 냉정하게 대하죠.뭐 상관없는 얘기이긴합니다만;;;;히히

오늘경기는 송병구선수의 다전제 판짜기를 볼수 있었던 한판이었던 것같고,4경기 플라즈마는 정말 맵을 완벽히 이해했던것 같더라구요.
하나 둘 셋
송병구화이팅!!(2)
08/10/25 14: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누가 그랬나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진다고 하던데..

누가 더 간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송병구 선수보다 더, 정명훈 선수보다 더~

비록 팬이라는 이름도 부끄러울정도로 만년 눈팅 유저지만

제가...제가 더 간절합니다. 그의 타이틀, 그의 영광 보다 마지막 대전의 승리.

송병구화이팅!!(3)
TOR[RES]
08/10/25 14:59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어요.
역시 귀결은 우승으로 끝맺어야겠죠?!
08/10/25 16:52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좀 다른거 같네요
송병구 선수가 물량전을 피했다고 생각 들지는 않습니다
인터뷰때도 1경기는 운영을 노렸다고 했고요 경기를 살펴보면
1경기는 도재욱 선수의 날빌,2경기는 송병구 선수의 날빌,4경기는 송병구 선수의 극강의 맵 이해도의 따른 완승이고
3경기는 워낙 리버가 잘 통했으니 어제의 경기만으로만 송병구 선수가 물량전을 피했다는건 조금은 억측인거 같네요

타이밍 부분에서 말씀하신 부분도
3경기는 피해가 유닛 차이로 들어나기 전에 들어갔다기보단 리버탄 셔틀을 잡은뒤 앞마당 미는 정석수준의 공격 타이밍이었고
4경기도 러쉬는 타이밍을 재서 갔다기 보단 도재욱 선수가 먼서 싸움을 걸었고 그싸움에서 이긴뒤 들어간거죠


도재욱 선수의 어머어마한 물량이 송병구 선수의 그것보단 뛰어날 것은 예측 가능하지만
송병구 선수의 별명이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듯이 딱히 물량에도 약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고 때문에
단순 물량 차이로만으로도 승부가 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제의 경기는 물량보단 상대의 파악(2경기)과 적절한 리버 드랍위치(3경기), 맵의 이해도(4경기)의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위 3가지로써는 송병구 선수가 타이밍만 계산했다고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은 송병구 선수는 물량에서 안되니깐 타이밍에 승부를 걸었다는 명제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신거 아닌가 합니다
연탄맛초콜릿
08/10/25 17:3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냥 제가 예전에 알던 거랑 깅거이 사못 달라서 질문 좀 드릴 것이 있어요. 형가가 실제로 뛰어난 검술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글쓴이가 왜 태자 단은 형가의 무술실력도 알아보지 않고 보냈는지를 의아하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거 같으면서도 책에 그렇게 써넣으니까 어렵네요 하하;;;
오소리감투
08/10/25 17:49
수정 아이콘
어제 전율이었습니다.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콩라인 탈출에 있어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적포스로 시원하게 우승하길 바랍니다.
happyend
08/10/25 19:02
수정 아이콘
연탄맛초콜릿 님//죄송합니다.저는 중국역사에 대해 거의 모릅니다. 이글도 그저 별거 없는 지식쪼가리로 포장한 것일 뿐입니다. 중국 역사에 해해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형가가 진짜 뛰어난 검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형가를 만나게 되면 한번 겨뤄보겠습니다.(응?)
초무님//이 글은 송병구선수가 물량전을 피했거나 물량전에서 밀렸다는 글이 아닙니다. 도재욱선수는 충분히 강하고,여전히 강하고,그가 세운 14연승 기록은 아마 깨지기 힘든 기록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송병구선수가 정공법으로 정면승부를 해선 아마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물론 저도 송병구선수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는 알지만,현재 도재욱 선수는 프프전에서는 거의 독보적입니다.
권투경기에서 빠르고 강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은 당장은 나타나지 않지만 후반부에 그 효과가 나타나는 복부공격입니다.프로브의 피해는 특정타이밍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이때가 송곳같은 도재욱선수의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공략한것,이것이 송병구선수의 승인이라고 봅니다.
정공법으로도 송병구선수가 이겼을 지도 모르고,그럴 가능성도 많습니다만,송병구 선수는 제 글에서도 썼듯이 반드시 이기는 법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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