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선수의 뒤에는 그를 도와주는 선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전성기 마재윤 선수 뒤에 연습 상대로는 분명, 서지훈, 변형태, 김성기 선수가 있었고, 우승 경력이 있는 서지훈 선수를 제외하고, 뒤의 두 선수는 마재윤 선수 이후에 자신의 재능을 터뜨리는데 성공합니다. 데뷔한지는 제법 된 선수들이지만, 특정한 뛰어난 선수와의 연습을 통해, 서로 강해진 것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수들 간의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겠죠.
이제동 선수와 박지수 선수의 결승전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른바 '흥행'의 논리를 많이 언급을 하셨는데, '흥행'과 상관없이 실력있는 선수들의 경기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대 최고의 저그이자, 유일한 저그격인 이제동 선수와 그의 오랜 연습 상대이기도 한 박지수 선수와의 대결. 바꿔 말하면, 이제동 선수를 너무 잘 아는 선수가 박지수 선수이며, 박지수를 너무 잘 아는 선수도 이제동 선수인 것이죠.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면, 아주 쉽게 허를 찌르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타이밍을 재는 것이 쉽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승이 타이밍 싸움으로 몰리게 되자, 이제동 선수가 무너진 것은 어쩌면, 박지수 선수의 최대의 재능을 살릴 공간을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박지수 선수와 손주흥 선수의 성장, 그리고 비록 개인리그에서는 다소 불운하지만, 프로리그 최고의 숨은 강자 중 하나인 구성훈 선수를 보면, 비록 이름값은 떨어져도 르까프의 탄탄한 테란 라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강한 테란 라인을 상대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이제동 선수가 진영수 선수를 누르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진영수가 못한 것이 아니라, 르까프가 너무 강한 그런 상황이 나타난 것이겠죠. 그리고 동시에 이제동을 가장 잘 아는 선수들은 바로 그들이 됩니다. 마치 듀얼에서 손찬웅 선수가 기습적으로 이제동 선수를 누를 수 있던 것도, 이제동 선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박지수 선수의 우승은 요사이 많이 나오는 논란인 본좌 논란과는 다소 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리그를 제패하는 절대 강자의 존재와 그에 도전하는 선수의 구도는 언제나 흥미를 일으키는 법입니다. 하지만, 절대강자라도, 그 뒤에는 실력이라는 요소가 있어서이겠지요. 맵이 어떻든 간에, 박지수라는 선수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제압한 선수들을 보면, 자신보다 이름값이 적었던 선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간 실력에 비해 저평가받았다면,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의 패배나,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적이 많아서라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사실, 곰TV MSL 시즌3에서 강민과의 경기 때, 어이없는 실격패가 아니었다면, 그런 가정을 해 보는 것도 재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그는 실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부순 것이고, 다만 그 한계를 넘어선 다음의 허망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그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동 선수는 매 시즌 개인리그 결승에 오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시즌에는 OSL 우승을, 겨울 시즌에는 MSL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봄/여름 시즌에는 현재 MSL 준우승과 곰TV리그 결승을 달성한 상태입니다. 저그가 많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이 번에 우승을 했다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이상의 위업을 달성했을텐데, 파괴 이후의 새로운 건설에는 아쉽게 실패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저그의 'Special One'이라면, 이제동의 이름이 당연히 먼저 거론이 될 수 밖에요. 그가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유지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정상에 오래 남아 있는 선수도 드뭅니다. 그 단단하던 이영호 선수도 박찬수, 박지수 선수의 공략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작년에 최고의 모습을 보였던 송병구, 김택용 선수가 개인리그에서 4강에 오르지 못한 것이 이변이 아니라고 치부될 정도입니다. 오래도록 정상에 서는 것이 그토록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즌도 비슷할 것입니다. 정상을 노리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 박지수 선수가 과연 지켜낼 수 있을지, 어쩌면 박지수 선수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지배했던 그가, 과연 시대를 지배할 수 있을지,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며, 함께하는 동료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동이 없었다면, 박지수도 없었을 것이고, 박지수가 없었다면, 이제동도 없었을 것입니다. 팀 체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잘 알려준 경기였습니다. 비록 극적인 맛은 좀 떨어졌을지라도, 경기력 자체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오히려, 약간의 스토리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겠죠. 결국 함께 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쳐주는 그런 결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지수 선수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 시대를 지배하는 선수가 되도록 더욱 성장했으면 합니다.
이제동 선수의 준우승도 역시 축하합니다. 지금과 같은 꾸준함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