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브컬쳐 톡방에 계신 pgr회원분들께서 웹툰 물 위의 우리와 위아더좀비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만화와 애니, 소설은 자주 챙겨보는 편이지만 웹툰은 덴마 이후로 안본지 오래되서 한 번 봐볼까 하고 마음이 끌리더군요. 사실 그동안 웹툰을 보지 않았던 이유엔 그닥 볼만한 작품이 없다하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평소 창작물 장르에 급을 나누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은연중에 웹툰의 재미가 떨어진다 생각했으니 바람직한 독자의 자세는 아니겠지요.
몇 년만에 본 웹툰은 참 재밌었습니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나니 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군요. 아집에 사로잡혀서 이 좋은 작품들을 보지 못했구나란 후회가 들었습니다. 앞으론 가리지말고 골고루 챙겨보도록 해야겠어요. 기왕 웹툰을 본 김에 아직 해당 작품을 안보신 분들껜 소개 할 겸, 보신 분들과는 작품 이야기를 나눌겸 해서 감상을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1. 물 위의 우리
물 위의 우리는 일상 치유, 미스테리 스릴러, 아포칼립스가 합쳐진 복합 장르 만화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국토 대부분이 소실된 한국을 배경으로 과학 문명을 보존한 섬 도시 잠실 출신의 주인공 부녀가 고향 마을에 귀향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무료 연재분까지 봤는데 전체 스토리의 1/3은 도시 소녀가 시골 아이들과 어울리며 보여주는 훈훈한 일상 이야기를, 나머지 2/3은 주인공이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테리극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중간에 서로 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세력들을 보여주면서 대립과 투쟁을 벌이는 아포칼립스 생존물까지 스케일을 부풀리죠.
일상물과 스릴러라는 물과 기름 같이 절대 섞이지 않을 두가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일본 만화 중에 학교생활이라고 여고생들의 발랄한 일상물을 그리는 듯 하더니 사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시궁창스러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였습니다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죠. 하지만 물 위의 우리는 초반부터 마냥 일상물은 아니다하고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떡밥을 슬쩍 보여줍니다. 반전을 노린 작품은 아니다란거죠.
아이들이 귀엽게 노는 모습들이 반전을 노린 장치가 아니기에 물 위에 기름이 둥둥 뜬 것처럼 서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아무래도 스릴러가 네이버 웹툰 전체 독차층에선 비주류에 속하는 장르이기에 일상물을 도입하여 무거운 작품 분위기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스릴러와 서스펜스는 긴장감으로 독자의 숨통을 서서히 죄어오면서 의도하지 못한 순간에 깜짝 놀라게 하는 쫄깃한 재미가 생명인데, 애기들 일상
스토리도 담아야지, 마을의 비밀과 주인공의 과거 떡밥도 뿌려야지, 세력들의 구도도 설명해야지, 작가가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전개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할 시간도 부족한데 극 흐름이 분산되기에 스릴러로썬 흡입력이 부족하단 소리죠.
청소년 남성독자들이 좋아하는 학원일진물, 여성들이 좋아하는 로맨스물, 웹소설 원작 웹툰 등 트랜드를 따라가기만해도 최소한의 성공치는 보장됐을텐데, 편한 길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담아 그려내는 작가가 약간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그 도전정신을 높게 사고 싶었습니다.
주관적인 감상을 늘어놓다보니 어째 혹평일색인데 작품 퀄리티는 준수함 그 이상입니다. 우선 배경 작화 퀄리티가 어마어마해요. 웹툰에서 이런 고품질 작화를 보게 되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거기다 주인공 딸 별이와 시골 아이들의 재롱도 귀엽고, 작중에서 간간히 나오는 섬찟한 연출 실력이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왜이리 힘든 길을 선택했나 싶습니다. 덜어낼 건 덜어내고, 집중할 곳을 잘 선택했더라면 보다 짜임새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네요. 작가가 한정된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내려하니 스토리 전개가 느린데, 천천히라도 풀어 놓았던 떡밥을 전부 매듭짓는다면 오히려 제가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끄럽더라도 몹시 반가운 일이 될 것 같네요.
2. 역대급 영지 설계사
개인적으로 한국 개그 만화 중에서 키드갱과 질풍기획을 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질풍기획 작가 이현민의 개그 스타일은 불꽃의 전학생, 호에로 펜의 시마모토 카즈히코에게서 영향을 받았기에 특유의 하이텐션으로 오버하는 연출이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한텐 딱 취형 저격이었죠.
참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한 쪽 팔 신경 불균형 증세로 은퇴 소식을 들었을 땐 서글퍼지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다가 얼마전에 pgr에서 영지물 웹툰 각색가로 복귀했단 소식을 들었는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천하의 질풍기획 작가가 고작 웹소설 원작 만화 각색가로 전락했나 싶어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작품을 보지도 않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건 지양할 태도이기에 일단 만화를 봤는데 이게 웬 걸!? 단숨에 마지막화 까지 본 것 도 모자라 미리보기까지 질러서 다 읽고 말았네요. 다 보고 나서 첫 소감은 클라스는 영원하다였습니다. 질풍기획에서 보았던 재치넘치는 대사와 개그, 액션 연출이 고스란히 살아있더군요. 비록 원작이 따로 있고 그림작가도 달랐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질풍기획 이현민 작가의 스타일이란게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우선 작품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자면 제목만 봐선 영지물인가 싶겠지만 한때 웹소설에서 유행했던 망나니물에 더 가깝습니다. 주인공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귀족집안 망나니 아들에게 빙의해서, 소설 내용을 알고있다는 정보를 무기 삼아 승승장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죠. 우리 개차반 같던 망나니 도련님이 달라졌어요 하는 조역들의 리액션도 소소한 재미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주인공이 토목공학과를 나온 대학생이다란 설정이기에 주요 능력이 삽질과 건설에 치중되어 있긴 합니다. 주요 관계 인물의 신뢰를 얻어 획득한 포인트로 능력을 개방하고, 사건을 해결 과정에서 완성한 건축물로 업적을 획득하는 부분이 달빛조각사도 연상되더군요.
원작을 따로 보지 못해서 섯불리 말하는 감은 있지만 스토리 자체는 흔한 웹소설과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소설 속 세계이기에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정보를 모두 줄줄 꿰고 있고, 더불어 얻은 치트 능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익숙한 웹소설 클리셰가 나올 뿐이죠. 하지만 질풍기획 작가가 노련한 솜씨로 각색한 연출이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아울러 주인공 로이드의 성격도 매력있습니다.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의 자전거공장 만화처럼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그가 벌인 행위들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전개가 살며시 미소지어지게 만들더군요. 거기다 매사에 직접 솔선수범해서 나서고 사건 도중 난관이 닥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 넘치는 모습이 로이드라는 캐릭터에게 자연스레 호감이 갔습니다. 겉모습이 수전노에 잔머리 굴리며 사악한 표정을 짓는게 속물적인 캐릭터로 비추어지지만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불굴의 의지와 선한 본성이 갭차이로 작용하여 더욱 매력을 느끼게 하는 거죠. 로이드 이 녀석은 작중 등장인물도 호감작하지만 보는 저마저도 호감도를 올리더군요, 과연 마성의 남자입니다.
각색을 맡은 질풍기획 작가가 개그에 탁월하지만 액션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챕터마다 보스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위기고조의 완급조절이 또 일품입니다. 액션 부분도 수준급이어서 흡족하더군요. 질풍기획 작가의 각색한 스토리를 훌륭히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작가의 실력도 제법 훌륭합니다.
허나 마냥 칭찬할 부분만 있는 건 아닌데 서두에도 말했지만 질풍기획 작가 연출 스타일은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립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스타일은 아니죠. 더구나 그림작가 취향인지 네이버 웹툰 편집부의 의향이 반영됐는진 모르겠는데 bl 같은 여성향 작품 스멜도 풍깁니다. 작중엔 연재분 후반에 등장하는 여왕님 빼고는 여성 캐릭이 전무한데 주인공과 맞먹는 비중을 가진 조역 하비엘 아스라한이 묘하게 히로인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남캐면서 요염한 표정도 짓고 주인공 로이드와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감정선 빌드업까지 쌓는게 어이구야 이거 노렸네, 노렸어 이런 말이 안나올 수가 없겠더군요. 뭔, 오크도 미형에 빤스만 입은 알몸으로 나오질 않나 여성향 독자를 의식한 부분이 약간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큰 단점이 되리라 보진 않습니다. 그냥 bl물스러운 분위기가 약간 풍길 뿐 개그와 액션이 듬뿍 가미된 스토리를 즐기는대에 아무 지장이 없어요.
비록 부상 때문에 본인의 만화를 그리진 못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질풍기획 작가의 만화를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팔 부상을 완쾌하시고 질풍기획 3부로 다시 만나게 될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3. 위아더좀비
어떤이에겐 지옥 같은 공간이 다른 어떤이들에겐 낙원 같은 휴식처가 되기도 합니다.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과에 지쳐버린 사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쳐져 낙오된 사람, 조직 내 부품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모난 톱늬바퀴 같이 튕겨져 나온 사람. 작게는 사회 부적응자에서, 크게는 음주운전, 탈영, 살인 같은 범죄자들까지 좀비들이 산을 이룬 서울 타워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혔습니다.
좀비들이 배회하는 어둡고 제한된 서울 타워라는 공간에서 여기에 모인 불청객들은 미드 워킹데드처럼 생존자들끼리 갈등하고 대립하며 싸움을 벌일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이곳은 사회에서 뒤쳐진 자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지상낙원. 외부와 고립되고 생필품이 풍족한 서울 타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입니다. 언제 좀비에게 물려 죽을지도 모르지만, 직장도, 학교도, 고약한 상사도, 괴롭히는 일진도 없는 마음의 안식처, 그곳이 바로 위아더좀비의 무대입니다.
저는 위아더좀비를 한 줄로 표현하라면 좀비 컨셉으로 할로윈 축제가 벌어지는 관광지의 '게스트 하우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저 좀비가 나올 뿐 작중 주요 등장인물들은 평화롭게 욜로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죠. 시트콤 같이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주인공 김인종과 그 일행들의 일상을 즐기면 어느새 고단한 일과도 말끔히 풀리는 느낌입니다. 좀비물의 탈을 쓴 치유물인 작품이죠.
허나 위아더좀비는 마냥 밝지만은 않습니다. 작중 주요 등장인물들이 밝고 명랑하게 지낼 수록 그들이 간직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것이죠. 동생을 괴롭히는 양아치에게서 구하겠다고 누나가 살인자가 되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다른 그룹의 생존자를 죽이기도 하고, 철부지 꼬마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성숙해지기도 하는 등 밝아보이기만 하는 이 장소에도 아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작가가 치유물에 비중을 더 두었기에 일부러 연출하지 않을 뿐 가슴 섬찟해지는 스릴러 요소도 능숙하게 다룰 역량이 있어 보입니다. 예를들어 성격이 상극이라 맨날 다투는 임경업과 소현명이라거나, 임경업이 짝사랑하는 김소영이 주인공과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자 흑화하려는 조짐 같은 것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 보이지만, 작가는 진지한 분위기도 그저 농담이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밝은 분위기로 환기 시킵니다. 마치 내 만화가 시트콤 같지만 사실은 좀비 호러물인 걸 잊지말라고 상기시키듯이 말이죠.
위아더좀비를 보면서 작가가 어떤 인생 경험을 겪었기에 이렇게도 생생한 캐릭터들을 묘사해낼 수 있었나 부러움과 감탄의 심정이 듭니다. 과연 웰메이드라고 할 만한 웹툰이에요.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보고 싶을 정도로 기대가 들더군요.
간만에 재밌는 웹툰을 보니 좋았습니다. 작품을 추천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네요. 양질의 창작물을 보고 같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덕후에겐 큰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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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의 우리는 초반만 보다가 하차했는데 괜찮은가 보군요.
역대급 영지 설계사랑 위아더좀비는 진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위아더좀비는 갇힌 상태에서 좀비와의 사투를 아주 재밌게 풀고 있죠~~크크크
게다가 개노답 주인공과 그에 필적하는 주변인물과 또 그걸 해결하는 주변인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