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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5 14:15:12
Name SpaceCow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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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문화유산 ODA 여행 - 정글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 (수정됨)




안녕하세요.

0.
글쓰기 버튼을 찾으면서 최초가입일이 2002년이며, 제가 10레벨인 것을 알게 됐네요.
이곳에서의 글쓰기 버튼은 여전히 무겁군요. 그래서 더욱더 반가웠습니다^^


1.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저는 PGR에 올라오는 주옥같은 글들을 보며 댓글을 달거나, 그저 감탄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게임사이트지만,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정제된 '글'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피드백' 이었습니다.
필력이 뛰어난 분들의 글을 보며 작은 꿈을 키웠습니다.

'나도 언젠가 좋은 글을 써서, 책으로 내고 싶어'


2.
저의 직업에 대해 사람마다 부르는 호칭이 제각각입니다.
고고학자, 연구원, 건축가, 문화유산복원가, PM(Project Manager), 현장소장 등등...
아마도 제가 일하는 분야는 정말 오래됐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여전히 생소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저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3.

익산미륵사지석탑,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일명, 석가탑), 월성 해자,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국립연구소에 있으면서 복원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노가다도 했던 곳들입니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 문화재가 아닌,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ODA(공적개발원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4. '라오스'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꽃보다 청춘, 블루라군, 메콩강, 비어라오...
라오스로 한 번쯤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나 동남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분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지 않을까요.
대부분은 라오스에 대해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와보기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으니까요.


저는 라오스의 한 오지마을 정글에서 고대 유적을 복원 중입니다.



5. 데카메론
14세기 흑사병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흑사병을 피해 10인의 남녀가 피에솔레 언덕의 아름다운 별장에 모여 10일간 100개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올해 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피신을 왔었습니다.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세계유산 복원을 수행하던 동료들도 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죠.
우리는 각자의 무용담을 풀기 시작했고,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죠.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6.
가끔 제가 하는 일이 언론에 보도될 때가 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몇안되는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그 댓글을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문화재나 잘 할 것이지, 외국까지 나가서 저 xx을 하냐'
'저거 다 우리 세금 아냐?'
'우와, 인디아나 존스다, 코리아나 존스인가?;;'

이런 댓글 밑에 커서를 갖다대고 무슨 말을 할까...한참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창을 꺼버리기도 했네요.


7.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 - 문화유산 보존 복원에 헌신한 국가대표들이 동남아에서 보내온 '최초'의 이야기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의 '글'이 모여, 결국 '책'이 됐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댓글창에 댓글을 길게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말이죠.

PGR에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 계신 분들의 다양한 소감과 피드백이 듣고 싶었습니다.

저자에 배당되는 책을 다 나눠드리고 싶은데, 저도 아직 라오스에 있어서 책을 받아보진 못했네요^^;;
혹시 여유가 되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구요.
요즘은 건강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라오스에서
Spacecow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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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잘모모
20/12/25 14:31
수정 아이콘
세상에... 정말 멋진 일을 하시는군요! 저도 역사 유적에 대해 관심이 큰데, 수능 끝나고 읽을 책이 생긴 것 같아 기쁘네요 흐흐 꼭 읽어보겠습니다!
SpaceCowboy
20/12/25 15:15
수정 아이콘
관광객이 많이 오는 문화재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가끔 접하게 되는데요.
부모로 추정되는 분들로부터 들리는 말이 있어요.
"너 자꾸 말썽피우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 사람들처럼 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제 귀를 의심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자주 듣다보니 지금은 무덤덤하네요^^;;

동료들 각자 쓰고 싶은 내용들로 채웠지만,
공통된 부분은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였어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한권 보내드려도 될까요?
피잘모모
20/12/25 20:25
수정 아이콘
허헣 마음만 받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흐흐 제가 꼭 직접 사서 인증해드릴게요!!
깃털달린뱀
20/12/25 14:50
수정 아이콘
와 ODA가 문화재 보호 지원 사업도 하는건 처음 알았네요. 말 그대로 금융 지원이나 개발 위한 인프라, 교육 지원 등만 하는줄 알았는데.
ODA 쪽에 관심 있고 진로도 고민 중에 있는데 많이 배워갑니다.
SpaceCowboy
20/12/25 15:20
수정 아이콘
아...잘 알고 계시네요!
네, 맞아요. ODA의 거의 대부분은 인프라, 보건의료, 교육 지원 등이죠.
아무래도 예산이나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많은 원조를 받았던 적이 있어요.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최초의 나라에요. 그리고 개발도상국 시기에 많은 문화유산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문화유산 ODA를 하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죠.
달과별
20/12/25 14:52
수정 아이콘
문화유산 복원이라는 것이 참 긴 세월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신 모습 굉장히 멋집니다. 분명 복원일과 코리아나 존스라는 별명 사이에 괴리감이 큰건 사실이지만 신비롭게 들리고 포장에도 좋은걸요.
SpaceCowboy
20/12/25 15:24
수정 아이콘
네, 맞아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죠.
하지만, 긴 시간에 비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저희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에요.
20/12/25 15:46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e북으로도 나올까요? 요새 눈이 침침해서(ㅜㅜ) 종이책을 못보겠어요...
SpaceCowboy
20/12/25 16: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음...글쎄요. 저는 출판과 관련된 것은 잘 몰라서, e북으로도 나오는지는 모르겠네요^^;;
나중에 출판사측과 연락이 닿으면 님과 같은 분을 위해 e북을 고려해달라고 요청을 할게요!
cruithne
20/12/25 15:51
수정 아이콘
엇 아직 출간 안된건가요? 교보문고에서 주문하려니 30일 출고로 나오네요.
SpaceCowboy
20/12/25 16:21
수정 아이콘
엇, 출간은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바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30일에 받아볼 수 있다니, 너무 느리네요 ㅡㅡ
aDayInTheLife
20/12/25 17:24
수정 아이콘
멋있으십니다. 기회가 된다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SpaceCowboy
20/12/25 18:10
수정 아이콘
aDayInTheLife님의 영화 관련 글은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네,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3국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저도 동료분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네요.
기회되신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세인트루이스
20/12/26 03:11
수정 아이콘
1. ODA라는게 뭔지 이번에 알아가네요 - 세상에 참 많은 직업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디애나 존스!! 크크)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참여하신 것인지 궁금하네요.

2. 뻘질문인데, 혹시 석굴암 복원 사업에 대해서도 좀 아신다면, 짧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우리나라 문화재 중 가장 직접 관람하고 싶은 곳인데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ㅠ
SpaceCowboy
20/12/26 12:53
수정 아이콘
1. 책에 다 나와있어서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은 몇십년 전부터 개발도상국에 문화유산 분야에 지원을 했어요.
무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지만, 소위 'Bridge' 성격으로 각 국의 기업들이 진출하는 발판이 되곤 했었죠.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의 경우는,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는데도 한 몫을 했구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아주 늦게 참여를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이 분야가 국가의 뒷받침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보니 한국의 문화재를 복원하면서 계속 기다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2. 석굴암 복원은 '할많하않'
제가 참여하지 않은 프로젝트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애매하네요^^;;
석굴암에는 저희 같은 사람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만 말씀드릴게요.
세인트루이스
20/12/27 03:41
수정 아이콘
답변감사합니다.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크크 수많은 인생의 변곡점이 있을텐데, 이 사람은 어느 순간에 나와는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해서 지금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런게 궁금하네요.

꼭 개선이 이뤄져서 저같은 일반인도 석굴암 한바퀴 돌수 있는 날이 죽기전에 오면 좋겠네요. 화이팅입니다!
SpaceCowboy
21/01/07 15:21
수정 아이콘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마침 어제 네이버 책 소개란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해서요~
아마 책을 읽어보셨으면 개개인이 어떤 인생의 변곡점에서 이 일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인트루이스
21/01/07 15:39
수정 아이콘
제가 지금 한국에 없어서 책을 못 구했습니다 ㅠ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꼭 기억했다가 읽어보겠습니다.
언뜻 유재석
21/01/02 03:00
수정 아이콘
멋진 분이 멋진 일을 하고 계셨군요. 꼭 읽어 보겠습니다.!!
SpaceCowboy
21/01/07 15:22
수정 아이콘
과찬의 말씀을^^
읽어본 소감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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