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1/29 15:41:35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9세기 조선, 그리고 서양과의 비밀접촉 (수정됨)

1801년 황사영의 백서 사건은 아주 유명합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기 위해 그는 중국황제와 로마교황에 탄원하여 조선을 벌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조선을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나라라고 보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외세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발각되었고, 그는 곧 처형되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조선이 굉장히 문약하여 몇천명의 군사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점

둘째. 서양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고 인식했다는 점

 

첫번째 부분은 조선인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던 인식으로 보이는데, 둘째 부분은 그리 보편적인 상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19세기보다 더 이전, 18세기부터 조선연안에도 서양선박이 줄곧 출현하곤 했다던데, 그 위압적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황사영과 같은 맥락에서 1830년대 조선의 천주교 사회에서 교황청에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암브로시오라는 이름의 한 조선인이 조선신도를 대표하여 서양 선교사를 더 파견해달라고 쓴 편지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인은 새로운 것을 보면 신기해합니다. 서양의 지혜와 힘을 보여주면 우리는 서양인들을 마치 정령처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서양선박이 한 척 갑자기 나타난다면, 우리는 너무 놀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의 덕과 힘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감탄할 것이고, 기쁨으로 이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주제는 바로 "유럽선박"에 대한 두려움 또는 경외감입니다. 

 

이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오경석입니다. 

그는 역관출신 관료로, 당대 조선에서 아마 가장 견문이 넓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수차례 조공사절로 중국을 방문했는데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진행상황을 중국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보았습니다. 

 

제2차 아편전쟁 때에도 그는 중국에 있었고 그곳에서 병인양요 발발 직전 프랑스 정세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여 조선 정부에 보고 했습니다. 그가 보낸 정보는 병인양요를 준비하는 데 대단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2차 아편전쟁 당시 오경석은 베이징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조선 정부에 병인양요에 대비하라는 보고서를 보내면서 동시에 은밀히 영국과 접촉했습니다. 

 

그는 영국공사를 만나 아주 무서운 제안을 했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영국함대를 동원한 조선의 개항"

 

오경석은 조선정부가 스스로 개화할 수 없다고 보았고, 외부의 거대한 충격이 있어야만 정신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영국"이라고 보았는데,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목격하면서 영국의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 영국은 조선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의 제안은 그저 하나의 흥미로운 얘기로 끝났습니다. 

나중에 오경석은 박규수와 함께 김옥균 등 후일 개화파로 알려지는 인사들을 길렀고, 49세의 이른 나이에 병사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오경석과 친밀했던 승려 이동인이 오경석과 동일한 제안을 일본주재 영국 공사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황사영부터 오경석 그리고 이동인까지. 

 

서양과의 비밀접촉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LucasTorreira_11
20/01/29 16:16
수정 아이콘
아조시랑 비밀친구..할래?

왜 이게 떠오르죠;;
내 머리에서 나가!
겨울삼각형
20/01/29 18:22
수정 아이콘
현재 정권에서 밀려난 야심가들이 외세의 힘을 빌리는게 신선한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일본도 서양 증기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쿠로후네)

뭐 아편전쟁때 베이징에 있었으면 영국 동인도회사의 증기선 네메시스호의 위엄을 잘 알았겠죠.

청나라도 네메시스호에 탈탈털렸는데..
조선은..
롯데올해는다르다
20/01/29 19:05
수정 아이콘
제발 와달라면서 '너네가 오기만 하면 여기 미개한 사람들이 까무라칠 것이고 기독교도 전파되고 교역도 되고 다 된다니께~' 하고 약팔이하느라 쓰는 미사여구를
실제 그 사람들이 조선과 서양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안맞지 않을까요?
antidote
20/01/29 21:56
수정 아이콘
한국 천주교에서 언급 잘 안하다가 요새 성인으로 추서를 하니 마니 하는 얘기가 있지 않나요?
푸른등선
20/01/30 03: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한국에선 아직도 홍경래나 동학농민군 등 '내세'에 의한 체제전복을 하는 것은 받아들여도 '외세'가 하면 안된다는 민족주의적인 생각이 강하니까 황사영 같은 인물이 복권되기는 힘들겠죠....정치적인 의도 없이 순진하게 외세가 들어오면 정말로 본인이 원하던 신앙적인 구원이 올 거라고 단순하게 믿었던 사람이라면 천주교 내부적으로는 충분히 성인으로 추숭 가능하다고 보고요... 개인적으로 오경석의 생각처럼 정말 영국계 세력들이 19세기 초중반에 한반도에 상륙을 했다면 20세기 초반에 일본이 들어온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기는 합니다..
antidote
20/01/30 19:20
수정 아이콘
영국이 손댄 나라들 지금 꼬라지를 보면 그다지요. 중동에 이스라엘 만들어놓은 나라가 영국입니다. 쿠르드 먹버도 미국보다 먼저 해먹었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178 [일반] [역사] 19세기 조선, 그리고 서양과의 비밀접촉 [6] aurelius7258 20/01/29 7258 2
84177 [일반] 로이스 초콜릿이 한국에서 철수합니다 [88] 조말론15244 20/01/29 15244 2
84176 [정치] 안철수, 바른미래당 탈당 "어제 손학규 보며 재건 꿈 접었다" [122] 及時雨14833 20/01/29 14833 0
84174 [일반] [단상] 인격자의 길은 멀다. [9] 세인트6722 20/01/29 6722 2
84173 [일반] 광저우 지역 2월 예정 2개 박람회 무기한 연기 [3] 중년의 럴커6052 20/01/29 6052 1
84172 [일반] 환경의 중요성 [1] 성상우5987 20/01/29 5987 2
84171 [일반] 20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10가지 정보. FEAT 유튜브 [43] 김홍기13240 20/01/28 13240 11
84170 [일반] 클래식계와 공무원느님~~ [36] 표절작곡가9807 20/01/28 9807 18
84169 [일반] [단상]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정치적 나비효과? [58] aurelius12991 20/01/28 12991 17
84168 [일반] 중국인이 말하는 우한 폐렴관련 상황 [16] Aimyon11875 20/01/28 11875 0
84166 [정치] 민주당 영입인재 원종건씨 사건 [231] 맥스훼인32374 20/01/28 32374 0
84165 [일반] 교육에 대한 단상 [106] OrBef14657 20/01/27 14657 20
84164 [일반] 화상 채팅을 믿지 마십시요.txt [17] 삭제됨14330 20/01/27 14330 14
84162 [일반] 줄어드는 부산 인구...2년 마다 구(區) 하나가 사라진다 [140] 군디츠마라15186 20/01/27 15186 4
84160 [정치] 자유한국당의 청년실업 해결방안 [151] TTPP16280 20/01/27 16280 0
84159 [일반] 우한 폐렴에 대해 제가 보고 들은 것들. [49] 오클랜드에이스19878 20/01/27 19878 68
84157 [일반] 남산의 부장들 후기 - 스포? [46] aDayInTheLife8507 20/01/27 8507 6
84155 [일반] 드라마 '야인시대' 세계관의 최강자급의 싸움 실력 순위에 대해서 [57] 신불해39088 20/01/27 39088 124
84154 [일반] 과거에는 옷감이 왜 이렇게 비쌌나? (feat. 비단, 양모, 무명) [25] VictoryFood12593 20/01/26 12593 20
84153 [일반] 사도 바울과 복음서의 예수 [118] 삭제됨10170 20/01/26 10170 11
84152 [일반] [단상] 도를 넘어선 우리나라의 중국인 혐오 [260] aurelius23933 20/01/26 23933 45
84151 [정치] 우한 폐렴 사태 관련한 주옥같은 발언.jpg [112] 감별사23131 20/01/26 23131 0
84150 [일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동양인과 유전적으로 다릅니다. [70] 삭제됨17095 20/01/25 17095 1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