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11/30 20:34:32
Name CoMbI COLa
Subject [일반] 혈액형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2003년, 내가 중 3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원래 말썽꾸러기인데다 이전에는 크고 작은 문제도 많이 일으켰기에 교무실의 선생님들과 친분(?)도 꽤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은 좋아해서 시험은 곧잘 봤고, 덕분에 과학 선생님과는 서로 장난치고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그 날의 과학수업은 자신의 혈액형을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사람의 A,B,O 혈액형은 건강검진처럼 팔에 바늘 푹 찔러서 피를 뽑고 기계에 빙빙 돌리지 않고 혈청 2개에 반응을 하는가의 여부로 알 수 있기에 이것으로 수행평가(실기)를 대체했다. 선생님이 침으로 손가락을 따주면 피를 혈청에 묻혀서 확인하고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이다 라고 말하는게 전부였고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원래 이런 일(?)은 1번부터 차례대로 하는게 익스큐즈 된거지만, 선생님은 바늘로 손가락 찌르는게 안 아프다고 할 생각으로 나를 첫 타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바늘로 내 손가락을 찔러주고 나는 손가락이 잘린 것 마냥 오버를 하고 반 친구들은 웃고 선생님은 구라치지 말라고 등짝을 후려치고... 뭐 그 순간까지는 정말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이었다. 그리고나서 혈액형을 확인하니 A형이었다. 내가 봐도 A형, 선생님이 봐도 A형, 누가봐도 빼박 A형의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이거... A형이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수행평가라니까』
[「근데 저 B형인데요...」]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B형, 어머니는 O형이었다. 일반적인 경우 나와 내 형제들은 B형과 O형밖에는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혈액형을 물어보셨고, 손가락도 한 번 더 찔러서 내가 A형임을 확실시 했다. 그리고는 같이 온 다른 선생님(혈청과 알콜솜을 준비해주던)에게 혈액형 검사를 맡기고 나를 교무실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부모님께 확인전화를 하도록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당연히 "그래 아빠 B형이고 엄마는 O형이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학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과 내가 또 무슨 문제를 일으켰나 해서 모였던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몇 마디를 나누고 교무실을 나갔다. 잠시 웅성웅성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가라앉고 평상시의 무거운 교무실로 돌아왔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뭔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도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내가 친자식이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얼마 후에 과학 선생님을 따라 과학 준비실로 갔고 그곳에서 영어로 된, 지금 생각하면 대학교 원서였을 책을 보여주면서 B형과 O형의 부모에게서 드물게 A형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물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까지도 선생님들이 이렇게 기를 쓰고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하는지 몰랐으니까. 그렇게 아무 의심도 못한채 진실은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밝혀졌다.


『아들, 오늘 학교에서 혈액형 A형으로 나왔다매?』
「네, 선생님이 드물게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랬어요.」

[『아빠 병원가서 검사해보니까 A형이래』]
「!?!?!?!?!?!?」


그랬다... 아버지는 30년 전 입대하셨을 때 군대에서 한 혈액형 검사가 잘못되어 그 때 당시 50이 넘은 나이까지 자신의 혈액형을 A형이 아닌 B형으로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쟤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주워온 자식을 만드냐고 아버지를 타박했고, 아버지는 근데 얘 나왔을 때는 왜 몰랐지 하며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지난주에 했던 피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었다. 그리고 검사지를 봤는데 비고란에 [B]라고 적혀있었다.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저기 B라고 적힌건 제 혈액형인가요?」
『아뇨, Blood의 B인데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미카엘
16/11/30 20:38
수정 아이콘
크크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B형으로 알고 있다가 그 이후에 AB형인 것을 알게 되어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역시 그 똘끼는 AB형의 것이었구나 아들!
아 어머니ㅜㅜ
블루시안
16/11/30 20:50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ABO식 혈액형 수행평가 저번주에 저희도 했었는데요(고2)
이것과는 별개이지만 본인이 친자식 아니라는 생각에 집 나간 아들 이야기도 저희 학교 생물선생님이 해 주셨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크크크크크
동전산거
16/11/30 23:10
수정 아이콘
저번주에 생1 수행평가로 피 뽑은 고2 하나 추가요...
블루시안
16/12/01 00:5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 어찌 똑같은 수행평가로.....
피 뽑는거 너무 무섭더라구요...크헬헬
자루스
16/11/30 20:50
수정 아이콘
크억~!
16/11/30 21:10
수정 아이콘
저도 중학교때 저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행평가는 없을 시절이라 그냥 자기 혈액형 알아보는 의미로다 실험만 했었어요. 제가 알던 A형대로 실험약이 응고되는거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반전은 제가 대학교 가고나서, 저희 어머니가 병원 건강검진 받다가 A형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었다는거죠. 아버지는 B형이고 저와 동생 둘다 A형인데 어머니 혈액형을 AB형으로 알고계셨기 때문에 중학교때 유전과 혈액형에 대해 배우고 확인하면서도 전혀 누군가의 혈액형이 잘못됐을거란 예상을 하지 못했거든요. 어머니의 진짜 혈액형을 알고나서 "잘못 아는 경우가 있긴 있구나. 혈액형 잘못알아서 애먼 한 집안에 풍파가 날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글이 유쾌한 해프닝이어서 옛 생각하면서 즐겁게 읽었네요.
16/11/30 21:11
수정 아이콘
아버지가 정말 병원에 가보셨을까요
CoMbI COLa
16/11/30 22:35
수정 아이콘
!!! 거기까지는 생각을...
16/11/30 21:13
수정 아이콘
크크크 중간에 맘졸이면서 읽었어욬크크크
아점화한틱
16/11/30 22:53
수정 아이콘
저도 크크크크 뭔가 안타까운일이 벌어지려나 하고...크크크
솔로12년차
16/11/30 21:25
수정 아이콘
요즘 A형이 부럽더라구요. A+라고 적힌게... 한번도 못 받아봐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9083 [일반] NBA 올타임 드래프트 1순위 TOP25 [2] 김치찌개4748 16/12/01 4748 0
69082 [일반] NBA 역대 수비수 TOP25 [10] 김치찌개9895 16/12/01 9895 0
69081 [일반] [일상, 데이타] 미국 중학교에서 학부모회를 하다보니 듣게 되는 이야기들. [53] OrBef10122 16/12/01 10122 29
69080 [일반] 박지원이 문재인을 공격하는 이유가 이명박과의 관계 때문이었나보네요. [60] ArcanumToss13174 16/12/01 13174 0
69079 [일반] 한국에서 유일하게 연금을 받고 있는 대통령 [38] Leeka10890 16/12/01 10890 0
69078 [일반] 아랫집 이야기 [9] 삭제됨3791 16/12/01 3791 1
69077 [일반] Still fighting it [5] emonade3899 16/12/01 3899 6
69076 [일반] 아직 진행중인 카운트다운(MBC 선택 2012) [12] 6085 16/11/30 6085 3
69075 [일반] "박대통령, 내년 4월까진 퇴진 밝혀" [59] 스타듀밸리11261 16/11/30 11261 3
69074 [일반] 비관적으로 보시는 분들계신데요. 쉬울줄 아셨습니까? [33] 닭엘8023 16/11/30 8023 46
69073 [일반] 2년에 걸친 취업 수기.. [30] SmallTomato8628 16/11/30 8628 16
69072 [일반] 그냥 생각 [17] 절름발이이리5690 16/11/30 5690 23
69071 [일반] 지금 몇몇 분들 명단 작성 중입니다. [69] 스타듀밸리12197 16/11/30 12197 46
69070 [일반] 취준생이 직접 느끼는 낮아지는 취업의 질 이야기 [49] 달토끼17124 16/11/30 17124 2
69069 [일반] 박지원은 의외로 일관성이 있었네요. [43] tjsrnjsdlf10940 16/11/30 10940 0
69068 [일반] 혈액형 [11] CoMbI COLa4386 16/11/30 4386 9
69067 [일반] [정치] 평행이론으로 미래 예측하기. [4] kien4979 16/11/30 4979 0
69066 [일반] 현기환 전 정무수석 자해 [21] 그러지말자8160 16/11/30 8160 0
69065 [일반] 뻥카에 쫄지 맙시다. 우리 가슴 속의 분노는 진짜입니다. [43] ipa7066 16/11/30 7066 52
69064 [일반] '음악대장' 하현우 천안 콘서트 중간에 불끄고 촛불집회 동참 [15] 아사7048 16/11/30 7048 10
69063 [일반] [짤평] <잭 리처 : 네버 고 백> - 톰의 시간을 멈추어 다오... [25] 마스터충달4092 16/11/30 4092 7
69062 [일반] 12월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도올 김용옥 선생 출연(+김어준의 생각,내부자둘) [25] 인사이더6199 16/11/30 6199 0
69061 [일반]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feat 윤복희 [92] KOZE10467 16/11/30 10467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