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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27 02:19:10
Name 눈시
Subject [일반] 청일전쟁 - 떠오르는 태양


육지와 바다에서의 대패로 청군은 조선에서 쫓겨났고, 이제 본토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일본이 내세운 목표는 이루어졌고, 영국도 10월 6일, 청나라의 배상과 열강의 조선 독립 보증(=일본이 먹는 거 인정)을 조건으로 하는 강화의견을 내비칩니다.

한편 일본의 외상 무츠 무네미츠는 갑을병 세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총리 이토 히로부미에게 갑니다.

갑 - 배상 + 여순과 대련만을 할양 + 특혜협약체결
을 - 열강의 조선 독립 보증 + 갑에서 할양 대상을 대만으로 바꿈
병 - 먼저 조건 내지 않고 청에 선제시하게 하기

+) 의외로 일본도 계획을 세울 때 강경부터 온건까지 나눠놓고 세웠습니다. 조선에 대해서만 해도 독립시켜주자는(=우리가 먹자는) 것부터 중립국화까지 방안을 가지고 있었죠. 그 중에 가장 강경한 게 계속 선택된 건 아마도 우연일 겁니다 -_-

무츠는 외국의 간섭이 너무 커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땅을 먹어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걸 위해서 신속한 작전을 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이미 갑으로 정해진거죠.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에게 답하는 걸 여순, 대련 점령 후로 미루기로 했고, 23일에 가서 "조건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영국에 전달합니다. 이쯤했을 때 열강도 일본의 목적을 알았겠지만, 딱히 나서진 않습니다. 청도 아직 본토가 공격받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적극적이지 않았구요. 어차피 하려고 했어도 일본의 욕심에 찰 정도의 조건은 제시하지 못 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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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일본군의 보급상황이 아주 좋아진 건 아니었습니다. 보급선은 계속 길어졌고, 황해 해전에서 승리했다 해도 평양 이북까지 수송하는 건 모험이었으니까요. 거기에 투입하는 병력의 스케일도 달라졌죠. 압록강의 청군은 10월 중순이 되면서 3만을 넘고 있었습니다. 뭐 늘 하듯이 조선인 노무자들에게 맡기고 우마차를 강제로 징수하고 해야 했죠. 뭐 이런 건 대가는 줬다 하니 그러려니 합시다.

이러니 믿을 건 임진왜란 때부터 기본이었던 수륙협공뿐이었죠. 일본군의 주 목표는 요동반도였습니다. 이를 위해 1사단과 6사단 소속의 12여단을 합쳐 2군을 편성합니다. 조선에 있던 3, 5사단은 1군으로 묶었고, 압록강의 청군을 상대하게 합니다.

10월 24일, 1군은 2군의 상륙에 맞춰 공격을 개시합니다. 강을 건너야 했고 청군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죠. 이에 일본군은 24일 밤에 몰래 도하를 하게 됩니다. 청군은 이에 한 번 맞서 싸웠지만 패했죠. 그렇게 되자 또 다 도주해 버립니다. 일본군이 목표로 삼은 구련성을 지키던 청군부터 압록강 유역을 지키던 청군 모두 말이죠.

이쯤되면 패턴이죠? -_-; 1군은 신나서 11월까지 북으로 서로 신나게 진격합니다. 청군의 방어와 반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밀고 갔죠. 오히려 일본군의 발목을 잡은 건 다가오는 겨울이었습니다. 동상 환자가 급증했죠.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갑니다.


한편 2군은 10월 중순부터 상륙을 개시합니다. 청군이 방어하고 있는 대련(다롄), 여순(뤼순)보다 북쪽(지도의 금주(진저우) 쪽으로 상륙했죠. 청군의 저항은 없었고, 11월부터 남쪽으로 진군해 갑니다. 금주에서도, 대련에서도 청의 제대로 된 저항은 없었고, 11월 중순이 되면서 청군은 여순에 고립됩니다. 21일에 시작된 여순 공략전은 24일에 끝났죠.


일본군의 피해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여순 공략전에 가서야 40명의 전사자를 포함한 사상자 288명이 나옵니다. 참 쉽게 쉽게 전쟁하고 있었죠. 청군의 패인으로 꼽히는 점은 청군 만이천 중 구천이 새로 모병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청군은 여순보다는 봉천(펑톈)을 더 중시하고 있었다 합니다. 이 곳의 옛 이름은 심양(선양), 청나라가 일어난 곳이었죠. 현재 중국의 5번째 직할시를 노리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긴 했습니다. 근데 이럴거면 압록강 방어를 더 잘해야 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너무 북쪽에 있어서 일본군은 봉천까진 공격하지 못 합니다. 일본군의 주요 목표는 여순 등의 항구, 목표를 더 키우더라도 북경을 목표로 하는 게 더 나았으니까요. 물론 청에게는 어느 쪽이든 본토, 그것도 청이 시작된 만주가 하나하나 먹힌다는 게 충격이었겠지만요.


그리고 여순이 함락된 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여순 학살 사건"입니다.



여순의 인구는 약 육천여명, 후퇴한 청군은 만이천명 정도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일만이 넘는 피해를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1500~2000, 4000~5000 등의 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당연히 수를 줄이려 하고 중국에서는 늘리려 하죠. 어느 쪽이든, 일본도 학살을 은폐하지 못 합니다. 서양인들도 이걸 확실히 목격했거든요. 영국의 타임즈는 학살이 끝난 후 여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6명 뿐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학살은 도시에 진입, 소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진행됐습니다. 청군은 숨거나 도망갔죠. 일본이 댄 핑계, 피해가 는 이유에 대해서 적이 사복으로 갈아입어서 그랬다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집집마다 수색해서 항복을 애걸하는 청군이나 민간인까지 마구 죽였다는 거였죠.

네, 규모가 작을 뿐 그 난징 대학살과 똑같은 패턴입니다.


당시 1사단장 야마지 모토하루

일본군 내에서 사단장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조직적인 학살이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복수였다 합니다. 여순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코와 귀를 자른 일본군의 머리가 민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당시 청군은 일본군의 몸의 일부를 가지고 오면 전과로 인정해 주었고, 부분에 따라 현상금도 주었기 때문에 이런 시체 훼손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과 일본군에 대한 분노로 일으킨 것이겠죠.

네, 이게 이유라고 합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명 이상을 죽인 학살의 이유요. 이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군의 전사자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백을 넘지 않는데 말이죠. 애초에 더 소규모지만 여순에 가기 전 금주 전투에서도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전쟁기간 동안 계속 [문명 전쟁]을 강조해 왔습니다. 자신들은 국제법을 지킨다는 거였죠. 열강의 외교관이나 무관, 기자들을 배에 태워서 잘 대접해주고, 이런 걸 홍보했습니다. 육군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군기 잘 잡힌 군대라는 걸 강조했죠. 서양인들도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잘 홍보해줬구요. 애초에 청에서는 서양인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았으니, 일본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청은 야만, 우리는 문명 이런 걸 강조했습니다만... 첫 날 풍도 해전부터 바다에 빠진 청군을 구출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뭐 포로를 수치로 여기는, 동양에 퍼져 있던 마인드도 있겠습니다만, 이 때의 모습은 일본이 강조하던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죠. 탈아입구, 애초에 서양인들에게 잘 보이려던 것 뿐이구요.

+) 아 물론 그 문명국인 서양 열강들이 이 부분에서 떳떳하냐 하면 아니겠지만, 일단 여기선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열강들은 이걸 문제삼았고, 외교관들, 특히 무츠 외상은 고생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마침 미국과 조약 개정을 진행하고 있어서 더 그랬죠.

한편 청은 어떻게 나왔냐 하니... 애초에 이 사건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청 내부에서 여순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거든요 -_-; 계속 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인들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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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도 뚫리고 요동 반도가 일본군에 먹혀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청은 버티지 못하고 강화 협상을 제안합니다. 11월 22일이었죠. 하지만 아직 일본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조선은 확실히 가지게 되었고, 요동도 먹은 상황, 다음 작전은 청에게서 하나라도 더 뜯어내기 위한 작전이 됩니다.


잘 나온 지도는 역시 일본 쪽 거군요

작전은 이번에도 땅으로 바다로 두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첫째는 요동 반도의 평원, 요하 평원을 점령하는 것, 둘째는 산동 공격이었습니다. 북양함대를 확실히 없애는 거였죠.

육지에서의 진격은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가을에 이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상황이었던 거죠. 주공은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보급문제가 계속 있는 상황에서 이 추운 겨울에 육지로 대규모 작전을 벌일 수 있겠냐는 거였습니다. 본토의 대본영에서는 반대하거나 축소시키려고 했고, 1군은 더욱 더 진격하려 했습니다. 이후의 관동군처럼 말이죠. 해군에 밀리지 않으려는, 역시 나중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12월 8일에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총사령관을 그만두는데, 이게 얼마나 연관이 있을진 모르겠네요.

아무튼 성과야 있었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청군은 계속 밀리면서 1군의 진격에 기세와 명분을 더해줬지만, 역시 추위는 컸고, 중국 본토 깊숙히 갈수록 청군의 저항도 거세집니다. 일본군은 부족해도 그냥 돌격, 청군이 잘 싸우면 일본군도 피해가 커지게 되었죠. 이러니 상륙작전을 벌이던 병력도 빼게 되구요. 영구(잉커우) 근처의 해성, 개평까지 점령하는 동안 일본군의 피해는 갈수록 커집니다.
[중립]을 선언합니다. 다른 함대들도 참전하지 않았구요. 북양함대가 안 되는데 이들이라고 뭘 할 수 있었겠습니가만, 이것이 청일전쟁 때 청이 어땠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다 따로 논 것이죠. 자기들이 지원해 준 배가 나포되자 돌려달라고 일본군에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북양함대가 소멸한 후, 2월 말부터 일본군은 철수합니다. 남쪽이라고 해도 겨울이고 월동준비가 안 돼 동상환자가 발생했지만, 북쪽보다 빠르게 치고 빠져서 그나마 피해는 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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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까지 오면서 청은 강화협상 대표를 보냅니다. 1월 31일, 대표 소우렴과 장음환이 히로시마에 도착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무츠 무네미츠와 다음 날 만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권을 받고 오진 않았죠. 이토는 이런 이유로 이들을 쫓아보냅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청의 주화론자였던 공친왕 혁흔, 아니면 이홍장이었죠. 조약을 맺으면 그걸 실행할 능력이 있는 자를 원한 겁니다.

+) 공친왕은 아편전쟁, 태평천국난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열강의 힘을 알고 있었고 청의 개혁을 이끌었던 이였죠

이거야 일본이 거부할 이유가 되긴 했습니다만, 이유는 더 있었습니다. 청으로부터 더 뜯어내려면 더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거였죠.

2월 14일 러시아 공사가 일본의 강화조건을 물었을 때 일본은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 조선의 독립 : 처음부터 끝까지 이걸 최우선으로 하다니, 정말 조선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순수하군요
- 요동반도와 대만 할양
- 배상금 지불
- 통상 특권

열강에게 알려주진 않았지만요. 청이 받아들이기엔 과한 요구,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이 먹어야 했죠. 특히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노렸던, 대만을 뜯어내기 위한 작전이 필요했습니다.


시작은 대만 앞의 팽호(펑후) 열도, 3월 23일이었죠. 별 피해는 없었지만 큰 복병이 있었으니, 콜레라였습니다. 투입된 5500여명 중 1700여명이 걸렸고, 천여명이 죽었다 합니다. 그리고 3월 29일, 대만에 상륙했죠.

여기까지 본 청은 결국 굴복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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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이홍장이 시모노세키에 왔고, 20일에 이토 히로부미와 만납니다. 둘 다 영어를 잘 해서 통역이 필요없었다 합니다.

일본의 요구는 조선의 독립, 요동과 대만(+팽호 열도)의 할양, 최혜국 대우가 중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기에 천진(톈진)부터 산해관까지 일본군이 점령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합니다. 이홍장이 가혹하다는 말을 연발할 정도였다 하죠. 그러다 24일에 고야마 도요타로라는 극우 일본인에게 얼굴을 저격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고도 다음 날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고 하죠. (이후 대리를 보내지만요) 이런 일까지 일어난 상황이고 일본의 요구를 알게 된 열강이 언제 개입할 지 모르는 상황, 일본은 요구조건을 줄입니다.

천진이나 산해관까지 가는 건 포기하고, 고평은 3억냥을 받기로 한 걸 2억냥으로 줄였죠. 3월 30일, 대만을 제외한 협상이 이뤄졌고, 4월 17일, 모든 협상이 완료됩니다. 이것이 바로 시모노세키 조약입니다. 이렇게 청일전쟁은 끝이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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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청일전쟁의 일부로 다루기엔 아쉬운 얘기지만, 빼놓을 수 없는 얘기죠. 다음 편으로 청일전쟁 얘기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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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16/08/27 02:51
수정 아이콘
1빠!

잘 봤습니다. 이당시의 청은 뭐랄까... '안습' 했었죠. 훗...
16/08/27 18:43
수정 아이콘
크크크 감사합니다
그렇죠 뭐 -.-; 잠재력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최강이겠지만요
16/08/27 11:34
수정 아이콘
통일 중원국가들의 말년이 다 그렇지만
역시 망할 나라는 어떻게 해서든 망합니다(..)
저글링쫓는화염차
16/08/27 13:35
수정 아이콘
저기... 중원 이야기시죠? 왠지 자꾸 중국 동쪽의 어느 반도 나라가 떠올라서요
16/08/27 20:06
수정 아이콘
크크 사실 망조가 든 나라는 최후가 다 비스무리하죠
16/08/27 18:44
수정 아이콘
조선이 고려 까고 우리가 조선 까는 거 생각하면
어디든 마지막 모습은 추할수밖에 없죠 ㅠ
16/08/27 20:07
수정 아이콘
망국의 최후는 세계공통이긴 하죠 ㅠㅠ
Je ne sais quoi
16/08/27 14: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본 건 처음이예요.
16/08/27 18: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아무래도 자세히 다루는 건 찾기 힘들어요. 군사적으로 연구하자니 정치적인 쪽이 훨씬 더 중요하고, 군사적인 걸 생각하면 차라리 러일전쟁 같은 게 나으니... 일본쪽 자료는 참 자세하구요
구들장군
16/08/27 20:09
수정 아이콘
잘 배우고 갑니다.
저런 기억이 있으니 2차대전때 그런 측면도 있겠군요.
16/08/29 03:44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네. (안 하는 게 제일 낫지만) 일본의 국력상 언제나 힘든 전쟁을 일으켰고, 그런데 저런 성공이 있었으니... 핑계는 확실히 있었던거죠
지나가던선비
16/08/28 01:55
수정 아이콘
당나라 군대의 땅이라서 그런가요. 예전에 연재하셨던 병자호란때의 홍타이지의 샤우팅이 있던 그 나라가 저 나라라니 크크크
16/08/29 03:42
수정 아이콘
크크크 그래서 당나라쪽 브금 까려다가 말았어요
참 그때와 지금이 다르죠? '-' 결국 망할때는 다를 게 없나봅니다. 큰 나라인만큼 그게 더욱 잘 보일거구요
그러고보니 병자호란 쓴것도 진짜 오래됐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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