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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23 00:34
"경복궁 담장 보세요. 얼마나 인간적이에요? 사람들 홀랑 넘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민비(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한 거 아닙니까?"
일본인이고 뭐고 저말자체는 막말맞죠..
11/07/23 00:37
뭐 굳이 민비를 명성황후로 불러야 할 필요성은 못느끼겠는데...
기사 내용 그대로 발언했다면 문화관련 고위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품격을 많이 해치는군요. 역사스페셜도 하셨으면서... 흐흐흐
11/07/23 00:39
민비라는 호칭 자체는 문제가 없죠. 그나마 저 자리라서 민자영이라고 안 부른게 다행이라고 봅니다.
저도 윗분들처럼 차라리 경복궁 담벼락 가지고 뭐라고 한게 문제 있다고 생각합니다.
11/07/23 00:41
우리나라 지금 상황에서 민비라는 표현을 보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못되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의 품격이 참... 이런 인사를 회전시켜서 써야 할 정도로 이명박 정권의 인재풀이 그렇게 바닥이었는지... 알면서도 새삼 또 놀라게 되네요.
11/07/23 00:41
절름발이이리 님 댓글의 링크를 보면 민비는 별 문제 없네요.
근데 "경복궁 담장 보세요. 얼마나 인간적이에요? 사람들 홀랑 넘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민비(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한 거 아닙니까?" 이게 할말인가요? 문화특보란 사람이?
11/07/23 00:42
민비라는 표현은 그렇다치고..(저는 많은 사람이 기분 나쁘게 여긴다면 설사 그 의미가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대중적 정서를 고려해서 어휘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기자가 잘못 쓴 건지 유인촌특보가 잘못 말한건지 모르겠는데 맥락이 앞뒤가 안 맞네요. "우리나라 문화가 인간적이다,그에 비해 일본성은 위압적이다. -> 그래서 궁궐 담도 낮다 -> 그래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다." 이건 무슨 논리전개인가요?
그와는 별개로 진짜 우리나라 궁궐은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많이 특이하죠. 자객이 두려워서 자객이 숨어들어올만한 틈을 안 만들기위해 돌로 둘러싸인 자금성이나 기사에 언급된 높고 위압적인 오사카궁에 비해 조선의 궁궐은 흙, 돌, 나무, 연못등 자연 그 자체입니다.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11/07/23 00:43
다른 발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절때 용납 못하겠네요
에서 용납 해야될게 바뀐 것 같습니다. "이건"을 받아들이고 "다른 발언"을 용납 못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비난을 해야된다면 민비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내용을 까야되는거죠.
11/07/23 00:45
'명성황후'는 시해후 2년만에 민비에게 내려진 시호지요.
'승질뻗쳐~신발' 전장관의 발언에서 촛점이 "민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궁궐의 낮은 담장이 인간적이라며 시해를 예로 드는 참... 무뇌아수준의 논리전개가 촛점이겠죠. 저 강연들은 소방관들도 뭥미? 했을 듯....
11/07/23 00:50
민비는 문제있습니다. 저는 민자영 XXX이라는 입장이지만 그건 그거고 공식 호칭은 공식 호칭이지요. 예를들어서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라고 하지 요. 누구나 선조를 욕하지만 호칭은 '선조'입니다. 서태후가 중국을 말아 먹었지만 어쨌던 호칭은 서태후입니다. 망국의 근원 명성황후라고 하는게 옳은 방법이지요.
11/07/23 01:07
트위터에서 누가 그러더라구요..
담장이 낮아서 살해되었다는 말 = 옷을 야하게 입어서 성폭행당했다는 말 공통점은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못된 습성이라구요..
11/07/23 01:08
저도 민비라는 단어사용에는 이질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민비가 주로 사용되는 호칭이었고, 명성황후는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 호칭인데 유인촌씨가 나이가 나이니만큼 민비가 더 익숙했겠죠. 다만 낮은 담장 드립은 할 말이 아닌 듯 합니다.
11/07/23 01:59
민비라는 표현이야 예전에 비빈들에게 많이 붙이던 호칭이니 별 문제될 건 없죠. 왠지 요 몇년간 명성황후라는 시호를 미는 움직임은 꽤 있었지만 말이죠. 근데 참 맥락이 없는 발언이기는 하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이 나온 건지 궁금해지네요.
11/07/23 02:02
역사스페셜 하던 그 아저씨 맞나 싶네요.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천박한 표현을... 담이 낮아서 시해되었다니... 제 정신인 겁니까???
11/07/23 02:20
민비 외에 성과 비를 합쳐 칭하는 왕후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민비는 공식 칭호는 아닙니다. 왕후 민씨가 죽은 뒤 시호로 명성왕후가 되었고 이후 명성황후가 되었죠.. [m]
11/07/23 02:59
그냥... 어느 미x놈이 대중의 '관심' 을 받고 싶어서 주둥이를 나불 거린겁니다.
신경쓰지들 마세요. 관심받고 싶어하는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더 심해집니다.
11/07/23 04:07
"그러니까 민비가 시해를 당한 거 아닙니까?"
말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총체적 난국이네요 저급하고 고약한 인격의 냄새가 여기까지납니다 저런XX를 저런자리에 앉혀놓고 하는 말마다 저수준인데 안끌어내리다니 참 여러모로 수준을 알수있는 대목이네요
11/07/23 10:00
뻔뻔하신 역시 친일파의 후손 답네요!
사고방식이 자신의 조부이자 시인 희곡작가 유치진의 영향을 그대로 받으셨네요! 저 유인촌 전 장관 집안내력을 보면 더 말조심 몸조심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주둥이 제대로 놀리셨네요! 유치진 위키백과 설명 ---유치진(柳致眞, 1905년 11월 19일 ~ 1974년 2월 10일)은 한국의 연극인, 극작가이다. 아호는 동랑(東朗)이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예를 들어 1942년 발표한 〈북진대〉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생애를 찬양한 작품이다. 관제 연극 공연을 위한 현대극장을 주도했고, 현대극장 창립 작품으로 일본의 만주 침략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흑룡강〉의 희곡을 썼으며, 함세덕, 조천석 등의 친일 작품을 연출하고 친일 수필도 발표한 기록이 있다. 조선연극협회, 조선문인협회의 간부를 지냈고, 1944년에는 어용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다. 광복 후 우익 연극계에서 활동하며 반공 작품을 공연했고, 대한민국 연극계의 기초를 닦았다. 해방기의 대표 희곡으로는 좌익 측에 대한 비판 의식이 포함된 〈조국〉(1946), 〈자명고〉(1946), 〈별〉(1948), 〈흔들리는 지축〉(1949)이 있다. 한국 전쟁 이후로는 우파적 경향성은 희석되고 영화, 음악, 무용 등 인접 장르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실험적 기법을 시도했다. 1958년에는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이 되는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였고,1960년대 이후로는 희곡 창작보다 드라마 센터 건립 등 연극 교육에 몰두했다. 국립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회장,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역임했다. 유치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현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다른 이념이나 논리에 앞서던 1950년대에 극예술연구회 시절부터의 동료인 김광섭과 희곡 〈왜 싸워〉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이미 연극계 친일 논란의 중심이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1],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시인 유치환의 친형이며, 자녀들은 모두 연극계에서 활동했다.[2] 맏딸 유인형은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를 지냈고, 맏아들 유덕형은 서울예대 학장과 이사장을 역임했다.
11/07/23 10:44
민비 자체도 문제인 것 같은데요..
당시의 역사적 기록에서나 당시 백성들이 민비라고 호칭 했더라도, 현 시대에 공적인 자리에서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봅니다. 당시에 고종이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며,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추대한 후 민비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명성황후라고 부르려 했던 것은 당시 국가를 빼앗길 수 있는 위기감에서 나온 역사적인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지를 현 시대에 다시 되새겨보는 의미도 있고.. 또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된 왕비의 넋을 기리고 그 아픔을 잊지 말자는 묵시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있기 때문에.. 지금껏 시해 당시에 호칭되었던 민비라는 호칭은 부르지 말자는 분위기였다고 봅니다. 굳이 당시의 호칭이 민비라서 비하가 아니라는 등의 논의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나 이를 바라보는 현재의 국민적인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해석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11/07/23 11:06
명성황후-민비 논쟁을 보다 보면 아웅산 테러에서 전두환이 죽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끔찍하네요. 그렇게 막장 짓을 하고도 죽을 자리를 정말 잘 골라서 이렇게 미화되니까요. 아마 전두환도 누구도 까지 못 하는 절대적인 업적을 가진 대통령으로 칭송됐을 것 같습니다.
11/07/23 12:36
유인촌씨 발언은 민비보다 담벼락 얘기가 더 어이가 없네요 크크
호칭에대한 이야기는 첫리플 링크도 보고 여러가지 생각해 보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오해로 많이 싸우기도 하고요. 댓글 다신 분들 얘기는 어떤 입장이시든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에서 어떻게 쓰는게 더 좋을까 생각한다면 특정 단어를 싫어하는 집단이 있고(원래 그런의미가 없더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다른 단어를 쓰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식적인 자리나 정치인이라면 말이죠.
11/07/23 18:38
유인촌과 별개로 민비 미화를 보면서 전두환도 100년이나 200년 후 쯤 미화한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민비가 미화할 꺼리나 있는지.... 박정희와 함께 죽음으로 인해 가장 빛 본 케이스죠. 루크레티아님 말대로 백성들은 굶어죽는데 금강산에 뻘짓하고, 만날 궁에 무당 불러 굿하고, 사치부리고, 외세 끌여들여 자국민 학살하고, 외척들은 부정 부패에 찌들어서 오죽했으면 임오군란 때 맞아죽고... 전두환보다 더 하면 더했지요. 하기사 친한 외국인한테 당시 시가로 몇천만이나 되는 금광을 떡하니 선물로 준 고종 와이프니 그럴만도....
11/07/23 18:44
참 고종이 갑이네요.도대체 마누라 그러는 동안 머하고 있었답니까
사극 잠깐 보니깐 무슨 첩도 있어서 총애하는 여자도 따로 있던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왕중에 왕의 교육을 못받고 급짝스럽게 왕이 된 인물들은 휘둘리기도 잘하고 별볼일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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