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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7/10 13:41:03
Name 밥과글
Subject 중국사의 재미난 인간 군상들 - 위청


위청은 본래 중국사의 위인들을 거론할 때 높이 쳐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난 인물입니다.

위청은 한나라 무제 시절의 인물입니다. 위청의 어머니 위온은 평양후(초한쟁패의 공신 조참과 그 후손들이 받았던 작위) 집안의 시녀로 본래도 낮은 신분에 속했지만, 정계라는 관리와 떳떳치 못한 관계를 통해 위청을 낳음으로서 위청의 신분은 더더욱 천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정계를 따라 정씨 집안에 들어갔으나 자식은 커녕 평범한 종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학대 당했고,  소년기에 이르러 어머니가 있는 평양후 집안에 다시 들어가 말을 끄는 종노릇을 했습니다.

아버지 밑에 있던 시절 정말 사람 취급을 못 받았는지 위청은 이후로 평생동안 스스로를 '별 거 아닌 존재' '천한 신분' 으로 여기게 됩니다.  어릴 때 받은 모진 취급과 학대가 자기 자신을 낮게 보도록 만든 거죠

실제로 아버지에게 외면받은 사생아에, 어머니가 종 노릇을 하고 있는 집안으로 쫓기듯 돌아가 함께 종 생활을 했으니 더 없이 낮은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기에 접어든 위청에게 마치 만화나 드라마처럼 출세의 기연이 닿으니 귀인은 바로 자신의 누나 위자부였습니다.  한무제의 여동생이자 평양후의 부인인 평양공주는 위자부를 노래 부르는 가수로 거느리고 있었는데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수란 지금처럼 대접 받는 예인이 아니라 평양후 집안의 종이었습니다)  

평양공주의 남동생이자 일국의 황제인 한무제가 누나의 집에 들락거리다 위자부와 눈이 맞아 그녀를 대뜸 후궁으로 들인 것 이었습니다. . 본래도 황후 진아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무제는 위자부에게 총애를 쏟아부어 곧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고,  천한 종이었던 위청과 그의 누이 위자부는 황실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황후 진아교는 한무제의 분노를 살까 두려워 위자부를 직접 건드리지 못하고,  궁에서 일하게 된 위청을 대신 죽이려 했습니다.  궁에서 알게된 기랑(황제를 따르는 무인의 벼슬) 공손오가 이를 막아내어 구사일생했으니 이 또한 치정이 얽힌 사극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한 대목입니다.

이 때 위청이 올라선 벼슬은 시중(侍中)으로서 황제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직위이자 녹봉 이천석의 위치였는데 이미 그 자체로도 천한 신분에 비하면 놀라우리만치 출세를 한 것이지만, 위청 일생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뒤에 펼쳐집니다.

한무제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인 흉노 정벌,  대흉노전쟁의 선봉 장군으로 위청을 발탁한 것입니다.  한무제는 위청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요? 어떻게 칼 한 번 안 잡아본 종놈 출신의 시중(侍中)에게 장군직을 맡길 수가 있습니까?  

당시 한무제의 의중은 좀체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위청 혼자만 낙하산이어도 황당한데, 당시 흉노 토벌을 위해 출진한 지휘관들 중에는  위자부와 위청의 매형인 공손하가 한 자리를 차지했고,  위청의 친구 공손오도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명장으로 이름이 알려져있던 이광이 나머지 자리를 메꾸고 있었으므로 내심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위청은 그저 낙하산으로 공적을 나눠주기 위한 얼굴마담이었을까요?  당시 나누어 인솔한 병력의 수나 지휘의 전권을 보았을 때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무제는 위청과 공손하, 공손오를 이광과 더불어 진짜 장군으로 삼았습니다.

더군다나 흉노와의 전투는 만만한 싸움이 아닙니다.  한무제 이전까지 한나라는 흉노족에게 쉽게 위협 당해 자존심을 굽히고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무제 시대 이르러 한나라의 국력이 꽃피우고 흉노족을 이겨먹을만한 체급이 갖추어졌다고는 하나, 역사적으로 흉노를 제대로 격파해 본 적이 없는 막중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한무제가 미치지 않은 이상 도저히 공적 나눠먹기용으로 대충대충 낙하산을 꽂을만한 전쟁이 아니었죠.  결국 한나라군은 개박살이 났습니다.

[위청만 빼고 말입니다]

당시 한나라의 대표 무장이었던 이광마저 병력을 모두 잃고 패배했지만, 위청의 군세만은 홀로 흉노족의 영역에 침입하여 소소한 전과를 이루고 귀환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흉노족에 대한 승리에 목말라 있던 한나라 황실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공훈으로 삼고 위청을 관내후로 승진시켰습니다.

포로를 700명 정도 사로잡은 규모의 공훈이었다고 하니 위청의 첫 출진은 그야말로 미흡했고,  동료들의 실패 위에서 빛난 행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후 위청 장군의 앞길은 그야말로 창대했습니다.

첫 공훈을 명분 삼아 흉노 전쟁의 전문가가 된 위청은 흉노와의 전투가 있을 때마다 출격해 연전연승을 이뤄냈습니다. 흉노의 왕들을 여러번 격퇴하고 박살낸 끝에 대장군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낙하산으로 시작했던 첫 출진과는 다르게 명실상부 한나라를 상징하는 명장으로서 이뤄낸 무훈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세가 등등해지자 위청에게 뜻 밖의 일이 일어나는데 한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가 평양후와 이혼한 채로 홀로 지내다가 재혼 상대를 물색한 끝에 '대장군' 위청이 간택된 것입니다.  

평양후 집안에서 종놈으로 살면서 마님으로 모시던 평양공주가 마누라가 된 것이지요.

일대기 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 아닙니까?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운 존재도 드라마틱합니다.  어떤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라 그의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나 장군으로서의 공훈을 대신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사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곽거병이 바로 위청의 조카였습니다.

위청의 대 흉노전 공적은 흉노의 땅을 하늘 끝까지 꿰뚫어버린 미친놈 곽거병이 의해 말끔히 덮어 씌워집니다.  한무제의 총애는 곽거병에게로 향했고,  하늘의 별도 떨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위청은 곧장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위청이 이토록 쉽게 권세에서 밀려난 것은 곽거병의 대두가 물론 크지만 독특한 그의 성격도 한 몫 했습니다.   본인이 전혀 욕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위청이 한참 권세를 누릴 무렵 주변에서 사람 모으기를 권유했지만 위청은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천거를 통해 중앙에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벼슬 통로였던 당시 사회구조를 떠올려 보았을 때,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한 계파를 이루고 벼슬직의 일부를 자기 사람으로 심어두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청은 진심으로 스스로를 별 거 아닌 인물로 여겼고, 또한 진심으로 자신의 복된 모든 것이 황제 한무제의 덕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서와 사학자들의 견해에서는 위청이 비굴하고 아첨하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위청이라는 인물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갖은 학대를 받으며 자라난 위청은 마치 충직한 하인의 그것처럼 자신을 구해준 황제 앞에서 진실되게 겸손한 인물이었고,  감히 주제넘는 간언을 하며 황제의 뜻을 거스르거나,  자기 권세를 누리기 위해 사대부를 모으는 것 따위의 불충한 일은 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대부들의 미움을 샀던 탓인지 실제로 역사는 그를 상당히 비굴한 모습으로 그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청이 자신의 보신을 위해 크게 악랄한 행동을 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경우는 기록에 없습니다.  

또한 그는 천했던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선하고 어진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전쟁의 공훈을 혼자 챙기는 법이 없었고, 병사들을 세심하게 챙겼으며,  큰 권세를 가지고도 다른 사람을 흉 보거나 욕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나라의 이름난 장군 이광은 몇 번의 흉노 원정 실패로 한무제에게 밉보였는지 전쟁 수행 도중에도 대놓고 불이익을 당했는데,  황제의 명을 받은 위청이 이광을 질책하다 이광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자살하자 그의 아들 이감이 쳐들어와 위청을 두들겨팬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위청은 황후가 된 위자부의 동생이자 한나라를 군대를 책임지는 대장군으로,  이감을 당장 처형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만 불문에 부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감은 결국 위청의 조카 곽거병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위청을 음험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청이 온화하고 선한 성격의 소유자 였다는 것은 사마천의 기록을 비롯 시대의 공통된 평가였기 때문에 저는 믿지 않습니다.  

황제에게 간언하며 꼬장꼬장하게 자기 뜻을 펼치는 것이 사대부의 미덕이었던 시대,  자기 사람을 챙기고 세력을 일구는 것이 일종의 덕목이었던 시대. 어떤 간언도 하지 않고 어떤 사대부도 발탁하지 않아 위청은 미움 받았습니다. 크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랬던가요. 살다보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상황을 너무도 많이 봅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조금만 잘해주면 기어오르고 잘해준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 많죠.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비참하고 잔인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한 소년이,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게 평생 감사하며 곁을 지키다 갔노라고.  그는 윗 사람도 아랫사람도,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았노라고.

한 편으로는 무시무시한 흉노 전사들을 갈아엎으면서 말입니다.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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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13:57
수정 아이콘
위청도 인물이죠 곽거병이라는 희대의 괴물에 가려져서 그렇지
곽거병 질투하는 인물로 많이 그리는데 항상 천재 옆에 선자들의 숙명인거 같습니다 모짜르트 살리에르 처럼
밥과글
23/07/10 14:01
수정 아이콘
그렇죠. 곽거병이 격분해서 이감을 죽여버린거 보면 정작 조카랑은 잘 지냈는데..
위청은 조카 질투 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호인이라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23/07/10 14:03
수정 아이콘
곽거병 임펙트가 너무 커서 동양의 폭주기관차죠 지금 어디까지 가고 있는거죠 장군님의 원조 사나이의 로망 그 자체라서
곽거병 전공과 지도에서 진격로 보면 믿기지가 않을 정도니까요 크크
밥과글
23/07/10 14:06
수정 아이콘
그러고 갑작스러운 최후까지 로망 그자체 크크
어느새아재
23/07/10 14:03
수정 아이콘
와 재미있습니다. 드라마 몇시즌은 뚝딱이겠네요.
남한인
23/07/10 14:06
수정 아이콘
저 시절이면 아직 등자가 발명되기 전인데, 흉노에게 승리하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Liberalist
23/07/10 14:13
수정 아이콘
위청이 여러모로 저평가 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적으로 곽거병이 알렉산드로스마냥 워낙 화려하게 불타 없어지기도 했고... 출신이나 군문에 든 경위가 진경지와 비슷해서, 개인적으로는 위청을 성공한 진경지로 보기도 합니다.
밥과글
23/07/10 14:26
수정 아이콘
둘의 차이가 있다면 국가의 체급 아닐까 싶네요. 당시 한나라는 흉노를 발라버릴 만한 국력를 이미 갖추었는데 양무제는 북위나 이주영을 압도하지 못했으니..
계층방정
23/07/10 14:26
수정 아이콘
기원전 119년의 원정에서는 평양공후 조양을 부하로 거느렸는데, 이 사람은 바로 위청이 옛날 섬기던 주인집 아들이면서 전 마나님이시자 위청의 아내가 된 평양공주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위청의 벼락출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무제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부인으로 바뀌면서 흉노와 서방 원정도 위청이 아니라 이부인의 오빠 이광리가 수행하는데, 이 이광리는 위청이나 곽거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였죠. 위청은 서서히 잊혀갔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여동생과 자기 가문이 결딴나는 무고의 옥 이전에 죽어서 험한 꼴은 보지 않았네요.
밥과글
23/07/10 14:33
수정 아이콘
위청의 매형인 공손하의 집안도 작살나고..결국 다 한무제의 업인지 이광부터 공손하 위청까지 장군들 죄다 좋은 결말이 없네요.
계층방정
23/07/10 14:43
수정 아이콘
무제는 장군도 장군인데 승상도 줄줄이 사형을 내려서, 말씀하신 공손하는 승상이 된다니까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양했는데도 결국 승상이 됐고 죽었죠. 공손하 후임 승상인 유굴리도 저주 고발이 들어와서 사형되었고요. 무제 시기 승상이 12명이나 되는데 그 중 재임 중 자연사한 사람이 셋, 경질된 사람이 셋, 사형에 처해진 사람이 다섯, 무제가 죽을 때까지 산 사람이 하나죠. 비리나 궁정 음모를 이유로 중신들을 줄줄이 죽여버리는 정치 기술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고기반찬
23/07/10 14:46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위청이 상대적 저평가, 곽거병이 상대적 고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곽거병의 전과가 화려하긴 하지만 그때도 위청이 흉노 선우가 이끄는 군세와 빤스레슬링 하고 승리했는데, 위청의 지원 없이 곽거병이 폭주기관차처럼 달릴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곽거병의 전과를 보면 폭주하듯 과감한 전략적 움직임을 취해서 성공한건데 당대에야 본인 능력+한나라의 엄청난 국력+위청의 적절한 어그로로 성공했지만, 곽거병 본인이 항우처럼 기존 병법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데다, 그런 움직임을 반복하다보면 언제 한번 크게 터지지 않았을지...
마음속의빛
23/07/11 09:3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동의합니다. 과감한 전술도 주변에 정공법으로 활약하는 아군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프랑스의 잔다르크 라던가...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고기반찬
23/07/11 13:04
수정 아이콘
잔다르크도 결국 콩피에뉴에서 과감하게 공세적으로 행동했다가 사로잡혔죠...
알빠노
23/07/12 11:10
수정 아이콘
이것을 보고 연상되는게 스포츠에서 소위 말하는 화려한 공격력을 지닌 에이스와 그를 받쳐주는 가자미형 롤플레이어인데
궂은 일을 묵묵히 하는 롤플레이어 없이는 에이스도 빛나기 어려운건 사실이나, 결국 연봉고과평가에서 에이스가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가자미는 대체하기 쉬워도 에이스는 대체하기 어려워요
곽거병처럼 무모한 돌파를 시도한 인물 자체가 별로 없는데 그걸 심지어 매번 대성공시킨거는 이례 그 자체고 뭐 매우 높은 평가 받는게 맞다 봐요
그런 관점에서 곽거병과 위청은 각자 가치에 맞는 평가를 받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곽거병이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계속 하던대로 무모한 공격을 했다면 언젠가는 큰코 다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If에는 동의합니다. 영원히 운좋은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담배상품권
23/07/10 15:32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역사를 평가하는 사람이 사대부여서 그런지 완전히 황제편인 위청을 깎아내렸죠.
화씨100도
23/07/10 15:36
수정 아이콘
평양공주는 한무제 여동생이 아니라 누나
귀여운호랑이
23/07/10 16:33
수정 아이콘
그래서 위청수가 효과가 좋은거군요.
23/07/10 17:28
수정 아이콘
위청이 곽거병을 질투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냥 우리 조카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흐뭇했을듯.

곽거병이 삼촌이 맞았다고 빡쳐서 대신 복수한 것을 보면 실제로도 둘은 라이벌 관계 같은게 아니고 사이가 매우 좋았을 것 같네요
23/07/10 18:10
수정 아이콘
크 황제입장에선 든든한 심복같았겠네요
이미등록된닉네임
23/07/10 19:01
수정 아이콘
아 이런 글 좋네요. 자주 부탁드려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23/07/10 19:10
수정 아이콘
모시던 마님과 이어지다니 한편 뚝딱 캬
23/07/10 19:27
수정 아이콘
오래된 클리셰죠 크크. 저도 좋아합니다
마음속의빛
23/07/11 09:29
수정 아이콘
삼국지 게임을 하다보면 능력있는 장수들이 많이 필요한데

곽거병이 두각을 나타냈다고 곧바로 위청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았다니.. 안타깝네요.
계층방정
23/07/11 13:24
수정 아이콘
세간의 대우가 곽거병에 밀려서 그렇지 무제는 곽거병과 위청을 같이 기용했습니다. 위청이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곽거병도 죽었고 그냥 흉노 원정 자체를 일시적으로 중단했고요.
이시하라사토미
23/07/12 14:37
수정 아이콘
원래라면 위청이 아니고 정청 아닌가요.. 크크

어 황정민!??!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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