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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5/07/05 23:55:52
Name Eternity
Subject 의미부여의 제왕
의미부여의 제왕



그날은 발렌타인 데이 전날 밤이었다. 내가 들고 있던 검은색 플립 휴대폰 너머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한데.. 영원이 너한테는 내일 초콜릿 안 줄 거야. 오히려 동현이한텐 줄 수 있어도, 너한테는 못줘."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녀는 머뭇거리면서도 확고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당시 그녀의 이 말 뜻은 "니가 날 좋아하는 걸 아니까, 다른 편한 친구한테면 몰라도 너한테는 초콜릿을 줄 수가 없어." 정도의 의미에 불과했다. 다른 남자가 좋다는 뜬금 고백이 아니라, 일방적인 나의 구애에 대한 완곡한 거절이자 부담의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러한 속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동현이한테는 줄 수 있어도", "동현이한텐 줄 수 있어도", "동현이한텐 줄 수 있어도" 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되뇌었다. 이 말에 꽂혀버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 김동현 좋아하냐..?"]

​(....)

이날의 대화가, 첫사랑 그녀와 나의 마지막 통화였으니, 어쩌면 그 순간이 바로 '의미부여의 제왕'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서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되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좋았다. 아니 좋다고 스스로 믿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그들과 얽힌 과거의 소소한 추억들을 꺼내며 "그때 너가 이랬던 거 기억 안 나?"라고 얘길 꺼내면 대부분의 반응이 "내가 그랬었어?",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라는 식이었다. 뒤이어 답답한 표정의 내가 확신에 찬 어투로 당시의 정황을 최대한 자세히 풀어내면 그제서야 알 듯 모를 듯한 눈빛을 하곤 "흠..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라며 절반의 수긍을 하거나 "아 맞다, 생각난다. 그랬었지?"라며 무릎을 치기 일쑤였다. 결국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타인에 비해 유달리 뛰어난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되돌아보면 나는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았던 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도 남들보다 '더 많은 의미부여를 하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가령 예를 들어 어느 날 밤,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작스레 친구들로부터 술 마시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경우, 그냥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나가기 싫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보통은 가볍게 고민 후 승낙하거나 거절하면 끝날 일인데, 오히려 나의 고민은 승낙하거나 거절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승낙하면 승낙한 대로 '몸도 피곤하고 장소도 먼데 괜히 간다고 그랬나..?', '지금이라도 못간다고 다시 문자할까?'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고, 거절한 경우에는 '그래도 그놈이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한 걸텐데..'라는 생각에 전화를 끊기 직전까지 아쉬워 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남아 '그냥 간다고 할 걸 그랬나..'라고 혼자 고민하기 일쑤인 것. 그러다 결국 맘을 고쳐먹고 뒤늦게 옷을 걸쳐입고 술자리에 나가보면 이미 술자리는 어느새 파장 분위기인지 오래이거나 "어? 진짜 왔네? 그냥 한번 연락해본 건데", "늦었는데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을 접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 알고 보면 그냥 한번 가볍게 툭 찔러본 친구의 연락에 나 혼자 깊게 의미부여를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고민 저리고민했던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달려온 나의 노력이 허탈해지고 괜시리 억울해지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는 고민 끝에 상대방을 위해 맞춰주고 살짝 희생하고자 노력해보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그 상대방이 그닥 심각하게 원하던 일도 아니었고, 그 고민의 단초란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상대방의 태도에 대한 나의 과도한 의미부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참 많았다는 얘기.

이렇듯 정작 그 당사자에겐 별거 아닌, 무의미한 말과 행동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나름의 의미부여질(?)을 해가며 가슴 속에 조각해두는 나와 같은 이들을 나는 '의미부여의 제왕'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러한 제왕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의미부여질'이 습관화된 그들의 일상은 자기 자신을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보다는 스스로 피곤하고 외롭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회식 메뉴 좀 정해봐."라는 상사의 지나가는 말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저녁 회식장소와 메뉴를 하루 종일 고민하고 있다거나, "여행가서 내 선물 사오는 거지?"라는 친구의 가벼운 말에 여행 내내 무슨 선물을 살까 고민하고 신경쓰고 있다거나, 과거의 다툼에 대한 미안함에 뒤늦게 상대에게 큰 맘 먹고 사과를 해보니 그쪽은 아예 그때 일을 기억도 못하고 있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렇듯 의미부여의 제왕은 종종 쓸쓸하고 외롭다. 말 그대로 내겐 소중하고 의미있는 순간들이 그 사람에겐 별것도 아니라는 걸 확인한 순간 당사자가 느끼는 허탈함과 쓸쓸함은 제법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OO때문에 영원씨한테 실망했어요."라는 그녀의 차가운 한마디가 내 등을 지옥의 삼도천 물살 아래로 떠밀기도 하고, "우리 내일 밥 먹을래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나를 천국행 급행열차에 탑승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의미부여의 제왕들은 대체로 일희일비의 제왕인 경우가 많다.

결국 의미부여라는 게 때로는 일상에의 세심한 관찰로 그 섬세함이 빛을 발할 때도 있지만, 보다 많은 순간에 '쓸데없는 순간들에 대한 집착'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기 일쑤이다보니 처음엔 이런 내 맘을 몰라주고, 가볍게 여기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서운함과 야속함이 컸다. 이 서운함과 야속함의 정체는, 아무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순간들을 나 혼자 안간힘을 쓰며 부여잡고 있음을 느꼈을 때에 드는 혼자만의 서글픔이었을 게다. 따지고보면 이렇듯 의미부여의 제왕들이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이유는 사실 그 자신에게 있다. 즉, 살면서 스스로 한번도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아무런 의미 없이 가볍게 내뱉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 믿는 것. 생각으로 정의내리긴 이렇게 쉬워도, 막상 화를 내야하는 순간에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부터 무의식적으로 고민하는 내게, 그리고 무심하고 시크하게 툭툭 내뱉는 말도 자연스러운 척 의도적으로 꾸며내야만이 가능한 내게, 타인의 언행을 가볍게 치부하고 무시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무심한 듯 시크하고 쿨한' 사람들이었다. 그냥 신기했다.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사건과 장면들을 어쩜 저렇게 대수롭지 않고 쿨하게 넘기고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지. 살 수만 있다면 나도 한번쯤 그렇게 속편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일부러 무심한 척, 쿨한 척 그렇게 연습도 많이 했다. 괜히 생각 없는 척 가볍게 툭툭 말을 내뱉는 연습도 해보고 어떤 일에 마주했을 때,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주변사람들로부터 말과 태도가 가벼운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났고 때로는 냉정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한 척, 가볍게 말을 내뱉는 그 순간에도 그 자체를 계산하며 연기를 해야만 하는 내 안의 모습에서 나는 여전히 일종의 안쓰러움과 연민을 느꼈다.
  
'나는 왜 이럴까?'란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적지 않았고 쓸데없는 의미부여질로 왜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며 피곤하게 살아갈까에 대한 답답함과 짜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에의 세심한 관찰과 과도한 의미부여가 가져다 준 스트레스와 상처는 결국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나 스스로가 끌어안고 감당해야할 일종의 '성장기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는 어느 순간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미부여의 제왕이란 결국, 타인으로부터 잊혀지고 싶지 않은, 유독 잊혀짐을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닐까?'라는 생각. '잊혀진다는 두려움 속에서 누군가로부터 끝끝내 열심히 기억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에 맞서 '보다 더 열심히 무언가를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 말이다. 결국 타인을 기억하려는 이들의 행위는 어쩌면 나 자신을 기억하려는 몸부림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단순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 삶의 사소한 순간도, 어느 누군가에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자 꽃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무의미한 순간들을 한송이 꽃으로 기억하는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일 테니 어쩌면 의미부여의 제왕들은, 그저 남들보다 '마음의 꽃자리'가 더 많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때는 고등학교 시절의 대범하지 못한, 소심하고 나약한 과거의 내가 싫기도 많이 싫었다. 그 밤, 그 발렌타인 데이 전날 밤부터 내 연애의 실타래는 꼬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터미네이터의 아놀드가 되어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고딩 영원이 귀에 대고 있던 플립 핸드폰을 빼앗아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플립으로 양싸대기-_-를 날리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지금 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동안 이불킥하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내 모습이, 한 여자아이를 순수하게 좋아하며 다른 것들은 보지 못했던 열일곱짜리 고등학생이 바라보고 품을 수 있었던 세상의 전부였고 그 당시 그 녀석이 감당하고 헤쳐 나가야했던 연애라는 바다의 전부였다. 어떻게 그녀에게 그런 이불킥스런 멘트를 날릴 수 있냐며 어린 나를 평생 책망하며 탓하기 보다는, 설령 나의 성급한 의미부여로 인해 그 어떤 결과가 오든 위축되거나 자책하지 말고 그마저도 담담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내가 될 수 있게 이제라도 용기를 북돋아주고, 걷혀진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다. 첫사랑 그녀가 내게 소중한 의미였던 만큼 나 역시 그녀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로 남고 싶었던 고등학생 영원의 바람,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성급한 모습과 경솔한 실수들을 나라도 이해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이왕에 나 스스로 갈아엎을 수 없는, 자의든 타의든 평생을 안고 가야할 마음의 꽃자리라면 그 화원이 비실비실하게 풀죽어 고개 숙인 꽃들로 채워지기 보단, 화사하고 건강하게 잎을 펼친 꽃들로 풍성하게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0-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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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정
15/07/06 00:51
수정 아이콘
제 이야기인가 할 정도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와왕
15/07/06 01:18
수정 아이콘
저도 제 이야긴 줄 알았네요. 저에겐 의미있고 소중했던 순간들이, 남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일상이었단 걸 알았을때의 허망함과 허탈함을 정말 많이 느껴왔었거든요.

사소한 그말들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그저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거니 하고 생각해왔던 것까지도 공감됩니다.
15/07/06 04:23
수정 아이콘
이건.. 정말 엄청난 글이네요.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다른 것보다도, '의미부여의 제왕'들은 연애문제에서 철저하게 을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게 참 서글프죠.
더구나 자기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 만한 '의미없는 행동'으로 레이더를 자꾸 교란시키면 정말 환장합니다. 예컨대 세수하고 왔는데 이마에 남아있는 물기를 손으로 훔쳐준다던가, 집에서 혼자 요리해먹는데 '나중에 저도 해주세요'라고 카톡을 한다던가, 물끄러미 눈을 한참동안 쳐다본다던가, 하는 것들. 상대가 했던 사소한 말과 행동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건지 한참동안 고민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이런 '의미부여의 제왕'들에게는 '호감'이 '사랑'까지 발전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일단 어떤 행동이나 말을 자기한테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남녀간의 화학작용이 없어도 혼자서 하는 생각만으로도 점점 더 상대방이 특별해지니까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금사빠'일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보다 더 직관적으로 '사랑조루'라고 부릅...(아.. 아닙니다)
그나마도 나이가 더 어렸을 때는, 이런 성격을 귀엽게라도 봐줄 만 했는데, 점점 커갈수록 어째 부정적인 면만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성숙한 어른으로서 '적당히 능숙한 모습'도 분명하게 필요한 부분인데, 진심인 상대한테는 '능숙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니... 여러분 근데 위에 제가 적어놓은 행위들은 분명히 누가 봐도 의미있는 행동 아닌가요!?!?
댓글로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또 깊은 빡침이 올라와서, 내일 들이대러 갑니다.
스테비아
15/07/06 07:19
수정 아이콘
핵공감이네요....ㅡㅜ
Eternity
15/07/06 09:44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금사빠(?)라서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이 가네요. 근데 의미부여의 제왕들이 대부분 섬세한 면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이성을 보는 눈도 대체로 까다로운 편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나랑 사랑에 빠지진 않지만, 맘에 드는 적당한 상대를 만나면 금방 사랑에 빠진달까요? 암튼 근데 이런 면들이 경험상 별로 좋은 것 같진 않습니다. 연애하기 힘든 타입이죠.
15/07/06 11:46
수정 아이콘
이게 레알이죠.
금사빠는 맞는데 이게 또 사람은 엄청 가려요. 시야 밖의 상대가 조금이라도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거 같다 싶으면 칼같이 밀어냅니다. 또 이럴때는 엄청 냉정해서 상대한테 조금의 여지조차도 잘 안 주죠. 반대로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이 있으면, 다른 이성들은 여자로 잘 안 보여요. 신경이 온통 이 사람한테로 쏠려있으니..

그래서 적당히 좋은 관계의 이성 여럿을 두고 만나면서 가볍게 연애를 즐기기가 참 힘들죠. 다시 생각해도 정말로 연애하기 힘든 스타일이에요.
YORDLE ONE
15/07/06 10:10
수정 아이콘
핵공감...합니다... 암걸릴거같아요...
오도바리
15/07/06 05:14
수정 아이콘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을 이해하는 폭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15/07/06 06:24
수정 아이콘
저의 상위호환이시군요! 크크
비익조
15/07/06 06:29
수정 아이콘
저도 의미부여 전문가 입니다. 혹시 대도시에서 의미부여 수습 배우시려면 저에게 오세요. 경비병한테 물어보면 알려줄거에요.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15/07/06 06:33
수정 아이콘
공감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스터충달
15/07/06 08:09
수정 아이콘
이건.. 정말 엄청난 글이네요.(2)

오랜만에 글 보다가 소름돋았습니다;; 제 인생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공감이 되는 글이네요.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요. 의미부여의 제왕이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저런 순수함이 너무 없어져버린 것 같아서 살짝 슬프네요. 나이가 드니 이불킥을 부르는 찌질함은 사라지는데, 그 만큼 순수한 열정도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즐겁게삽시다
15/07/06 08:42
수정 아이콘
["너.. 김동현 좋아하냐..?"]

​(....)

이날의 대화가, 첫사랑 그녀와 나의 마지막 통화였으니, 어쩌면 그 순간이 바로 '의미부여의 제왕'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서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부분 너무 웃기네요 크크크크
회심의 인트로 같은 느낌이에요.
Eternity
15/07/06 09:46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회심의 인트로 흐흐
사실 의도하고 일부러 힘을 준(?) 도입부인데 이렇게 정확히 짚어주시니 괜히 기분이 좋네요~
파란아게하
15/07/06 09:14
수정 아이콘
지금 이미 그럴지도 모르지만,
작가 하는 게 천직이실 듯.
15/07/06 10:23
수정 아이콘
이것도 포장해서 의미부여의 제왕이지.
누군가에겐 (나쁘게 말하면) 소심남. 찌질남. 집착남. 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죠. 저도 딱 본문과 같이 그랬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나이가 들면서 저런게 어느순간 무뎌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한 무던남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노력이야 많이 했는데, 노력해서 된건지 아니면 나이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향이 아니었던건지 이제는 기억도 안나네요.
축생 밀수업자
15/07/06 10:26
수정 아이콘
막문단을 너무 빨리 깨달은 저는 염세주의에 비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15/07/06 12:18
수정 아이콘
섬세한 것인데 사회에서는 소심, 나약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댓글의 다른 분들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섬세함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들면 대부분 저절로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차라리 젊었을 때 섬세하고 나이들면서 조금씩 둔해지는 게 더 낫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둔하면 나이들수록 더 둔해지는데 어휴..
흔히 말하는 아저씨 타입으로 훅 들어섭니다.
*alchemist*
15/07/06 13:5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저랑 비슷하시네요 :)
arq.Gstar
15/07/06 13:59
수정 아이콘
글쓴님 피지알 하는동안 닉네임 기억해서 [너 김동현 좋아하냐!] 라고 댓글마다 놀릴까 생각중입니다.
Outstanding
15/07/07 00:11
수정 아이콘
정말 글 잘 쓰시네요.
Colorful
15/07/07 10:41
수정 아이콘
동감하는 댓글들이 많군요
저도 동감합니다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그니까 어쩌면 대부분 쿨하기보단 쿨하게 보이려하는 의미부여자들인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보면 나만 의미부여를 잘하는, 나만 이 세상에서 특별하다는 감정이 숨어 있는거 같기도 하네요
Eternity
15/07/07 11:31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내용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제 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신 분들만 댓글을 달았다고도 볼 수 있는 거니까요. 이 세상엔 의미부여의 제왕들이 많은 만큼, 반대로 별 생각 없이 말을 던지고, 주변 상황에 무감각한 이들도 생각보다 많은 게 사실이죠. MBTI 검사만 봐도 각양각색인 성격들이 다양하게 나오니까요.

그리고 사실 이 글의 작성의도는 '나만 의미부여를 잘하는, 나만 이 세상에서 특별하다는' 감정과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나 같은 이들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쓰게 된 글이에요. 음지에 숨어서 '나만 이런 거 아닐까?' 혹은 '난 왜 이럴까?'라고 혼자 자책하거나 힘들어 하는 이들을 향한 글에 가깝죠. 언뜻 보기엔 철저한 독백체에 가깝지만 이글은 제가 쓴 그 어느 글보다 강력한 방백인 셈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나'라는 표현못지 않게 '이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죠.)
Colorful
15/07/08 08:44
수정 아이콘
뭐 mbti까지....
아마 님 말처럼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그냥 한 번 만약 많다면 하고 재미로 생각을 전개해봤습니다

만약 내가 의미부여인들을 눈치 못채고 있다면
만약 내가 나와 상대방을 민감히 대하고있지만 실제로는 나 중심적인 사고만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난 이기적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사실 이런 생각은 관계에 트러블이 생겼을때 해봤습니다
평소에 윗 글처럼 생각하고 있다가 언제 한 번 다른 사람과 싸움이 났습니다
처음엔 나의 (이 글에 대입해보면) 의미부여를 몰라주는 상대에게 화가 나더군요
하지만 싸움은 한 쪽만 화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죠
그래서 반대로 내가 그 사람의 의미부여를 무시한게 있나하고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온거 같네요
피아노
15/07/07 13:00
수정 아이콘
기억력에 의미부여까지 완전 공감했네요. 게다가 청소년 시절 이사를 20번 넘게니면서 예민함과 섬세함의 극한을 맛보았죠. 항상 나를 궁금해하기보다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고민하다보니, 눈치가 당연히 빨라지고 배려심도 깊어졌죠. 의미부여라는게 외부의 아주 작은 자극을 가지고 내면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가며 풍부한 판타지를 펼치는 것이기에 어찌보면 예술적인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Eternity님이 글을 잘 쓰시는 것도 성격이 한 몫 하는 것 같네요. 저는 저런 과정속에서 억울함 혹은 이해받지 못함에대해 글쓴분처럼 일종의 포기나 체념으로 가져가질 못하고 '화'의 감정을 쌓아가며 정신적으로 굉장히 까칠한 상태로 한참을 살았었네요. 20중반부터는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했고 30넘어서는 가치관의 전환이 왔고 이제는 무던해졌네요. 잘읽었습니다.
다혜헤헿
15/10/14 20:59
수정 아이콘
동지들이 많아 참 기쁘군요.
저도 지금껏 의미부여만 하다가 가슴앓이만 한게 몇번인지 모르겠습니다.(같은 학교의 카사노바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의미부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남의 세세한 감정표현이나 행동도 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렵니다.
배고픕니다
15/10/15 02:18
수정 아이콘
정말 잘읽고갑니다. 요즘들어 정말 이런생각이 들어요.. 상대방이 그냥 해주는말에 저는 혼자 설레게되는것 같아서..
처음으로 가슴앓이 하는중인것같아요..
발라모굴리스
15/10/16 00:18
수정 아이콘
저는 의미부여의 세자 정도 될것같네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 두세명에게만 극도로 예민하고 나머지는 거의 무심하거든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제일 많이 괴롭히게 되더라구요 이것도 병인듯
어쨌든 본질은 같은거니까 저도 참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시네요
보로미어
15/10/16 13:48
수정 아이콘
와 이런 좋은 글을...
읽으면서 저랑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글이였습니다.

글 너무 잘 봤어요. 글솜씨가 부럽습니다
두부학개론
15/11/05 01:12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비슷했던 일을 겪고나서 한참동안 생각했던 것 이 '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가.' 랑,
'누구에게도 '호의'를 거부할 권리는 있다.' 라는 거였었죠.

뭐 튼, 지금은 그냥 수많은 의미들에 속상해하던게 질려버려서, 사람 그자체를 멀리하는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떄는 꽤나 반짝거렸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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