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7/02 19:00:40
Name aDayInTheLife
Subject [일반] 불안과 선택의 순간.
안녕하세요. 영화글로 종종 찾아뵙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우울하면서 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게시판에 종종 써왔던 터라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불안과, 우울을 약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담으로 따지면 거의 9년, 약물을 복용하면서 치료 받은 지는 거의 8년이 다되어 갑니다. 그러니까, 20대의 대다수를 우울과 불안을 가진 채로, 더 정확하게는 더 예전부터 잠재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그게 발현된 채로 20대를 보냈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취직을 준비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사람과의 접점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성격이고, 어떤 '결과물'을 요구받아야하는 사회인으로서 저는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또 제 성격 상 이러한 성과와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잘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을 했죠.



그리고, 작년 연말 취직을 어영부영 했고, 이제 7개월 차, 내지 8개월 차가 되면서 채용형 인턴을 거쳐 정식 채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공교롭게도 전환 확정 다음날) 공황으로 응급실을 갔다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뭔가 눌러왔던 것들이 폭발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어려움이 쉬이 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최악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대학교 2학년 즈음을 뽑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빴다던가, 뭐 무슨 일이 있었다던가 하는 일은 없긴 한데, 그냥 되게 복잡했고, 어지러웠고, 그래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저도 되게 희미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스냅샷 같은 장면만 몇 개 남아있고, 그 시간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나중에 알고보니, 우울이 좀 심한 경우에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저에겐 지난 2-3주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기쁜 순간, 즐거운 순간이 없던 건 아니에요. 공연도 가봤고, 영화도 봤고, 야구도 봤네요. 근데 그런 즐거움이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단발적으로 기쁘고, 그걸로 끝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힘들고 지쳐서 저는 병원 예약을 잡고 원래 진료 받던 간격보다 훨씬 빠르게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손에는 지금 진단서가 있습니다. 치료 및 휴식이 필요하다는 그런 내용의 진단서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걸 쓰고 싶으면서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해받고 싶고, 그래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하루 하루를 견뎌낼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에겐 무엇을 할지,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일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제가 막 시작한 일을 버리고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될까봐, 그리고,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어쩌면 누군가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면서 쓰는 것일수도, 어쩌면 누군가 제 얘길 그저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고민하고 있는 건 제 자신과 다른 사람들 간의 관계와 인식에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복잡한 머릿속을 붙잡고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럽기만 한 이 상황 속에서 저는 무슨 선택을 해야할까요. 그저, 어딘가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세인츠
23/07/02 19:33
수정 아이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고통을 텍스트 몇 줄로 지레 가늠할 수는 없다만,
지금 당장은 힘들지라도 지나고 나서는 나를 더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을 겪고 계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붙들고 살다보면 이것보다 더한 날이 올지, 더 좋은 날이 올지 섵불리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을 견디며 앞으로의 무의미하고 고통스런 나날들 속에서도 의미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같이 버텨봅시다. 화이팅입니다.
aDayInTheLife
23/07/02 19:4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안군-
23/07/02 20:19
수정 아이콘
저도 불안증 치료를 거의 10년째 지속하는 중입니다. 동지여 반갑습니다(?)
글애서 약간 느껴지는게, 혹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안좋은 일들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정서라서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지만, 자신의 통제 안에 있지 않은 일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무시하거나 하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나아가서 약간은 남탓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단 잘 받으시고 의사선생님의 처방을 신뢰하시고,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잘해봅시다. 화이팅!
aDayInTheLife
23/07/02 20:28
수정 아이콘
정곡을 찔린 느낌이네요. 흐흐흐흐
그러니까, 손을 떠난 공에 대해선 신경쓰지 말아야지, 항상 이러면서도 신경을 쓰게 되더라구요. 적당한 남탓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상담 받으면서, 찬찬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방구차야
23/07/02 20:51
수정 아이콘
어려운 상황에서 정식채용이 되신건 이미 1차적인 성공을 이뤄내신겁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고도 생각할수 있지만 전체 인생을 놓고봤을땐 기회를 놓쳐버리는게 아니라 한번의 도전과 자기 검증이 이미 실현된 것이죠. 이를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복기하면서 감당이 된다면 천천히 계속 이어가보고 휴식이 필요하다면 충분히쉬고 또 도전해볼수 있는 범위를 가늠해보면 어떨까합니다.
aDayInTheLife
23/07/02 20:51
수정 아이콘
조언 감사합니다.
사람되고싶다
23/07/02 21:28
수정 아이콘
딱 제 얘기네요. 근데 전 직장에서 반강제로 쫓겨난지라...
그래서 쉬고 있는데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사람 사는 기분 듭니다.
한 곳에 매몰돼 있으면 그게 인생의 전부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아요. 빠져나오면서 넓어지는 시야가 있는 법이라. 전 그렇게 다른 길 찾기로 마음 먹기도 했고요. 솔직히 확신은 없습니다만...

어떻게 됐든 화이팅입니다.
aDayInTheLife
23/07/02 21:3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화이팅 해볼게요.
23/07/02 21:36
수정 아이콘
비종교인에게 종종 호흡법을 추천하는데
고요한 환경에서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게 꽤 효과가 있을거 같습니다.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이게 제목이 좀 구리긴 한데 라이트하게 읽을만했고
도서관에서 호흡, 마인드풀니스로 검색해서 참고해보세요.
aDayInTheLife
23/07/02 21:38
수정 아이콘
호흡, 명상.. 항상 생각만 하고 옮기기 쉽지 않네요. 흐흐 그래도 감사합니다.
늘새로워
23/07/03 14:44
수정 아이콘
글이 참 정돈되어있고 잘 읽히네요.
저도 요즘 육아로 기쁘면서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잘 이겨냅시다. 화이팅입니다!
aDayInTheLife
23/07/03 15:4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3/07/03 18:56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계속 글을 한 번 써보시면 어떨까요. 보이기 위한 글이든, 단지 스스로 정리하고 돌아보기 위한 글이든요. 뭐든 즐거운 일 하나, 희박한 성취감이라도 느껴지는 일 하나, 하면서 조금이라도 몰입할 수 있는 일 하나가 있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런 사람도 한 명 있으면 좋을텐데요.

본인을 위해 사는 것. 하기 싫고 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나쁜 짓이 아닙니다. 취업은 축하할 일이지만 과연 직장생활이 정말 본인을 위한 것인지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혹시 너무나 하기 싫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세요. 지금 어데이님께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과 삶을 쓰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aDayInTheLife
23/07/03 20:05
수정 아이콘
예전에는 글쓰는 것도 참 힘들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 대신 글이 더 편해지더라구요. 칭찬 감사합니다.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명심하겠습니다. 항상 그러려고 하지만 참 쉽진 않더라구요.
nm막장
23/07/07 17:28
수정 아이콘
저의 20대랑 어떻게 보면 비슷한데 (제가 더 경증이긴 합니다)
일단은 좀 쉬시는게 어떨지 조심스레 말씀드려봅니다
이 결정은 온전히 자신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주변의 반대 압력따위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저는 종교생활을 했고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획기적 전격적 변화는 없었습니다)
종교생활 자체 보다 그에 따르는 친교관계가 그 땐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심리적으로는 너무 자기소모적으로 지쳐버려서 괴롭고 기도밖엔 못했는데 사건의 경중을 따지게 되면서 약간은 객관적 평가를 할수 있게되었습니다
즉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괴롭고 상처 받은 마음이 실제로 크기가 그만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것이죠

지옥같던 20대를 어쨌든 사고없이 마치고 30대가 되니 좀 나아지더리구요 저처럼 되실거라 꼭 믿으란말은 못하겠지만 변화의 긍정적 기회를 맞으려면 이것저것 경험과 시도가 있어야 하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인데 30대때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aDayInTheLife
23/07/07 17:30
수정 아이콘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도 결정은 조금 더… 신중하게 내려보려구요. 흐흐 긍정적으로 변하…겠죠?
nm막장
23/07/07 17:58
수정 아이콘
그럼요~!
어쨌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요소가 투입되어야 함다
그 중에서 본인이 편하게 느끼는 걸 찾으셔야 하구요
그것들은 윗댓글도 잘 참조하시고 탐색도 계속해보시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139 [정치] '윤석열차 영향?' 문체부, 학생만화공모전 후원 안한다 [108] Crochen15431 23/07/05 15431 0
99138 [정치] 통일교 교주: 기시다 총리는 교육받아야한다. [13] 기찻길10731 23/07/05 10731 0
99137 [정치] 美-中 '회계전쟁' 시작됐다…'넷제로 충당부채' 놓고 대격돌 [47] 크레토스13839 23/07/05 13839 0
99136 [일반] '아이돌'이 상품화된 성 아닌가요? [145] biangle15604 23/07/05 15604 2
99133 [일반] IPTV로 범죄도시3가 풀려서 보고 후기 작성합니다. [21] EZrock9600 23/07/05 9600 1
99132 [정치] ‘김건희 일가’ 고속도로 특혜 의혹…하남시 요청은 묵살했다 [34] 베라히11279 23/07/05 11279 0
99131 [정치] 선풍기 살인을 믿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나라에서 오염수 대처 [48] kurt13745 23/07/04 13745 0
99130 [일반] 뉴욕타임스 6.28. 일자 기사 번역(AI 탐지기는 AI 사진을 구별할 수 있을까?) [2] 오후2시7526 23/07/04 7526 1
99129 [일반] “왜 분홍색은 여자색인가요?” “남자는 예쁘면 안 되거든요.” [62] 계층방정12395 23/07/04 12395 12
99128 [정치] [속보]IAEA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IAEA 안전기준에 부합” [361] 기찻길17325 23/07/04 17325 0
99127 [일반] 980pro 최저가 외 [23] Lord Be Goja8234 23/07/04 8234 2
99126 [일반] 왜 십대 때 듣던 음악을 못 잊는가? [78] 두괴즐10979 23/07/04 10979 10
99125 [정치]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윤석열, 누가 전문가인지 구분할 능력은 있고? [92] 베라히13953 23/07/04 13953 0
99124 [일반] 삼성 반도체 핵심 직원 2년 이직 금지 조치 정당 [131] 굄성14774 23/07/04 14774 4
99123 [정치] 윤석열 "상식적 중도도 반대쪽에서 보면 극우" [81] 동훈15597 23/07/04 15597 0
99122 [일반] 한국에서 추방되었던 파키스탄 노만 근황의 근황 [120] 10222411 23/07/03 22411 8
99121 [일반] 지난 9년간 자동차보험 의료비 중 한방 비중 변화 [64] VictoryFood17345 23/07/02 17345 19
99120 [일반] 불안과 선택의 순간. [17] aDayInTheLife10513 23/07/02 10513 16
99119 [일반] 현행 벌점 부여 방식에 대한 잡설 [77] StayAway12022 23/07/02 12022 16
99118 [일반] 일뽕이 인터넷에서 문제시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121] 헤일로13105 23/07/02 13105 1
99117 [일반] 연년생 자매 육아, 요즘은 그래도 살만합니다. [48] 착한아이10993 23/07/02 10993 41
99116 [정치] 김건희 일가 땅 쪽으로 계획 튼 고속도로 종점…특혜 의혹 [87] 빼사스15875 23/07/02 15875 0
99115 [일반]  6월 무역수지, 16개월만에 흑자 전환, 한전 3분기 흑자전망 [28] dbq12312380 23/07/02 12380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