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몹시 재미있고 유익해서 간략하게 나마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제목은 Imperial Twilight: the Opium War and China's Last Golden Age 입니다.
아편전쟁을 부제로 달고 있지만, 사실 아편전쟁보다는 아편전쟁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책은 건륭제 말기 중국의 황금기를 묘사하면서 시작합니다.
"사상 최대로 팽창한 영토, 그리고 모든 반란의 토벌"
그리고 그 황금기 동안 많은 서양인들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 네덜란드인 등) 이 광동에 와서 무역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성공한 사람도 있었고, 실패한 사람도 있었고 또 무역이 아닌 모험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주 다양합니다.
동인도회사의 임원들, 동인도회사와는 별도로 독립해서 무역했던 상인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던 영국인과 미국인들,
기독교를 지구 끝까지 전파하고자 했던 선교사들,
서양인들과 무역을 하던 중국의 상인들, 그리고 이들을 규제하던 중국 관료들,
이야기는 각자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소설처럼 아주 쉽게 읽히고 또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배경묘사가 탁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역에는 별로 관심없고 중국어를 배워서 선교하거나 아니면 학문을 하려고 했던
동인도회사의 월급루팡(?)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한명이 중국어 자원(?)이어서 통역일만 하고
실제로는 본인 방에서 저술활동, 중국 고전이나 법전 번역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돈도 벌고 학문도 하고... 대학원생들에게 꿈의 직장 ㅠㅠ)
그리고 동인도회사를 아주 증오하던 상인들의 입장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과 유럽 간의 무역은 동인도회사의 독점무역이었고,
일반 상인들은 영국-인도 or 인도-중국 무역만 할 수 있었습니다.
악명높은 무역상사 Jardine & Matheson은 이 독점구조를 깨트리기 위해 본국에 엄청 로비했습니다.
그리고 굳이 빌런을 꼽자면 이 책의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중에 막부말기 일본 쿠데타 세력에 무기를 공급한 토마스 글로버가 이 회사 소속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아편전쟁 발발 직전까지 얼마나 많은 오해와 실수가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컨대 파머스턴 총리가 보통 악당처럼 그려지는데, 그도 막판까지는 최대한 전쟁을 피하고자 했고
아편전쟁 발발 당시 영국 측 책임자로 부임한 찰스 엘리엇도 반전파였는데,
현지 상황의 전개로 오히려 사건에 휘말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서의 이야기는 아편전쟁의 발발로 막이 내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정말 역동적이었고, 간단치 않았다는 것을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교차편집하면서 잘 보여줍니다.
뭐랄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장면이 휙휙 넘어가는데,
저자는 분명 역사학자인데, 그보다 베테랑 소설가 느낌입니다.
아무튼 좋은 번역가를 만나 국내에도 이른 시일 내 소개되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