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마라는 래퍼를 혹시 들어보신 분 있으신가요? 그럼 슬릭오도마라는 이름은요? 누군가는 아예 처음 들을 것이고 쇼미더머니를 봤던 분이라면 어 그런 이름 들어는 봤는데 무대는 기억이 안나네 하고 넘어가실겁니다.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래퍼들의 좋은 싱글 듣는데도 시간이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으면 해서에요.
앨범은 총 보너스트랙을 포함해서 총 10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앨범을 다 듣는데에는 약 40분정도 걸립니다. 곡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미밭 - 비정규직 - 홍등가 - 급 - 범인 - 모독 - 밭 - 상실의 시대 - 가시밭 - 가시가되어(bonus track)
사실 각 트랙별로 리뷰를 쓸까도 생각해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재밌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글쎄요.... 제가 피지알의 유명한 회원분들처럼 글을 맛깔나게 쓰는게 아니라서 오히려 역효과라 접었습니다. 대신 간략하게 앨범 설명을 하고 특징만 적을께요
이 앨범은 오도마라는 씬에서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래퍼가 음악을 시작하면서 이 앨범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곡입니다.
장미빛을 꿈꾸며 화려해보이는 삶과 돈 명예 좋은 곡을 꿈꾸며 한국 힙합이라는 판에 오리라 결심하죠(장미밭). 대부분의 지망생이 그렇듯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투잡에 가까운 생활을 하죠(비정규직). 이래서는 성공을 할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터뜨리는 시기를 앞당기고자 소신을 버리고, 쇼미더머니에 나갔지만 그에게 돌아오는건 몸을 파는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는것마냥 비참함과 자괴감뿐이죠(홍등가). 애매모호한 위치가 그를 흉내쟁이들과는 다르다는 급을 느끼게 하지만 반대로 본인도 유명한 래퍼들 사이에서는 급이 낮아서 을이 되고 맙니다(급). 나아지지 않는 위치와 생활+성장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그는 자기 자신이 평범한 재능으로 너무 힘든길을 가는건 아닐까 고민도 합니다(범인). 열심히는 살지만 나아지지 않는 본인과 가족들의 삶을 보며 신은 있는지 의심하기도 하구요(모독). 사색을 해보며 결국 그는 깨닫습니다. 나는 현실의 어려움에 못 이겨 초심과는 너무 먼 곳으로 왔구나. 신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하자라고.(밭) 하지만 내안의 작은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모를 찝찝함이 남았습니다(상실의 시대). 내안의 마음가짐을 정리하고 돌아보니 이제 다른 동료들과 세상이 보입니다. 화려해보이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겠구나라고.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장미밭이라고 보였던 붉은 장소는 사실 그 장미에 있는 가시들이 서로 찔러서 나온 피로 붉은것이었다는걸. 태생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날 선 가시같은 존재여서 경쟁은 어쩔수 없는것이지만 연대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자고. 조금은 덜 아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가시밭)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난후 마지막 트랙에서 그는 앨범을 만든 후일담을 말하죠(가시가되어)
제 의역이 조금 들어간 이 앨범의 흐름 요약입니다. 어떤 래퍼고 이 앨범이 어떤 마음가짐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이 앨범을 듣고 강렬하게 느겼던 몇가지를 말해볼까 합니다
1. 반복, 변형되는 주제의식
글로 쓰고 곡수가 적어서 앨범의 흐름이 빨라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느립니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정말 친절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어서인지 각 트랙마다 주제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거든요. 지망생으로서 느꼈던 이상향과 한국힙합의 괴리감 그 사이에 갈등하는 오도마라는 메인 주제는 거의 모든 곡에 걸쳐서 반복됩니다. 그리고 곡이 진행되가면서 조금씩 확장됩니다.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질리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 앨범은 지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2. 직관적인 비유 표현
100% 단순 진심 펀치로 주제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표현으로만 반복하면 지겨울 수도 있었거든요, 앨범 곳곳에 참 잘 썼다 싶은 표현들이 많아요. 이 앨범을 듣다보면 각자가 가지는 삶의 방식을 밭이라고 표현했다는건 당연하게 알 수있고, 그걸 이상향으로 치환한 장미밭이라던지, 그 장미밭에서 파생하여 이상향속의 경쟁이 넘치는 현실과 그로 인한 힘든 삶을 가시밭으로 변용하는건 들으면서 재밌었습니다. 홍등가라는 트랙은 성공하기 위해 소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사창가의 직업인으로 묘사하기도 했구요.
색의 상징성을 이용해서 만드는 비유들도 재밌어요. 이 앨범에서 메인 색은 붉은색입니다. 이상향인 장미밭을 상징하는 색. 그리고 홍등가 트랙에서 훅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허울이라는 화장이 번저져있고 처음봤던 붉은빛은 잊혀져있고 그의 모습은 결국 붉게 꾸며져있어. 즉 이상이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현실의 투영을 우리가 착각한게 아닐까라는걸 참 문학적으로 잘 표현했죠.
모독이라는 트랙에서 이상과 멀어진 나를 보면서 괴로워하며 오도마는 거울을 깼습니다. 그리고 다음 가사에서 거짓 파편에 둘러 쌓여 산다고 말하죠. 그렇죠 파편으로는 온전한 거울역할을 할수 없습니다. 즉 이상에 대한 자아를 산산조각내고 그런식으로 자기 위로하면서 괴로운 나를 달랜다는 은유죠. 감정을 정말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욕설로 대표되는 강한표현, 과장된 톤으로 하는 공격적인 플로우도 좋지만 이렇게 돌려서 표현하는것도 참 세련되고 좋더군요.
3. 적은 빈도의 욕설, 영어
우선 제 개인적으로 욕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표현에 큰 제약이 없는 장르기도 하거니와 평소 습관, 강조를 위해 쓸 수 있다고도 봐서. 하지만 그렇다고 욕설이 과다하게 들어간 음악을 듣는걸 더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죠. 이 앨범은 욕설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타이틀곡은 몰라도 수록곡들의 경우에는 욕설이 많은 경우들이 더러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욕설이라는 영역때문에 듣기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전 영어 쓰는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왜 많이 쓰는지는 알아요. 교포출신들은 한영 혼용이 분명 편할거고 그렇지 않은 래퍼들도 라임 맞추기에는 영어 제한이 없는게 편하니까. 다만 저는 청중이고 익숙치도 않은 영어 사용이 많아지는 순간 가사 파악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물론 가사의 의미 전달보다는 청각적 쾌감이 중시되는 장르들은 큰 상관없습니다. 그런 음악이 나쁜것도 아니구요. 이 앨범은 명백하게 가사의 의미전달이 굉장히 중요했던 앨범이고 그래서 그런지 영어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그 적은 영어비중도 맥락을 파악하기에 방해되지도 않구요. 의미도 모르겠는 단어를 쓰느것도 아니여서. 듣는동안 귀가 따갑지 않았습니다.
4.매우 적절한 멜로디
흔히 말하는 싱잉랩을 의미하는 멜로디가 아닙니다. 이 곡에는 몇몇곡에서 훅 부분에 노래가 들어갑니다. 들어보시면 느낄텐데 멜로디를 정말 잘썼습니다. 곡에 분위기에도 정말 어울리는 멜로디들이며 주제의식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멜로디도 많아요. 그 자체로도 듣기 좋기도 하고요. 프로듀서인지 래퍼인지 아니면 공동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곡에서 멜로디를 활용하는 방식 정말 끝내줍니다.
5.화자의 성장과 태도
앨범의 흐름 요약에는 분량의 문제로 인하여 굉장히 많은 곡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는데 한국힙합에 대한 날 선 비판이 많아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분명 메인주제중에 하나라고 했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망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도마라는 래퍼의 스탠스가 참 제 취향입니다. 두번쨰 트랙 비정규직에서 투잡을 뛰는 이야기라고 했죠? 이런식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구요. 보통 과거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다루는 많은 힙합곡들은 그게 그 상황을 극복한 자기자신을 띄우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띕니다. 자기를 몰아치는 가혹한 환경등으로만 씁니다. 나는 밑바닥 어쩌고 저쩌고 노력으로 극복 나는 성공 했고 그 때를 잊지않고 열심히해.아니면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했던 일들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지 미래를 위한 성장통, 보통 이런식으로요. 이 친구는 조금 달라요. 굉장히 인간적입니다. 그 환경안에서 적응하면서 순응하려고 하는 나약한 자신을 그대로 가사에 씁니다. 작업을 하기전에 게임한다는 가사나 그 후에 가사 쓰려다 어머니 전화를 받고 영감이 끊기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데자뷰를 느끼고 자기 자신이 나태하다고 하죠. 다른 동료들 작업물을 들으면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구요. 범인이라는 트랙은 이 열등감 혹은 능력 부족에 대한 의심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남들 다 승진하고 차 뽑을때 나는 변한게 없네 하면서요.
너무나도 인간적인 오도마는 한국 힙합에 대한 비판을 하는 부분에서 절대 자기 자신을 빼지 않습니다. 당장 홍등가가 그런 팔리기 위해 하는 행동에 대한 자아 비판적 성격의 곡이고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성공만을 위해 인맥을 만드려는 힙합인들을 비판하는 트랙인 급에서 2절 벌스는 자기도 똑같이 그 짓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급이라는 트랙은 1,2절 합쳐서 보면 블랙 코메디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자기자신과 집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했던 오도마가 앨범의 후반부인 밭이나 가시밭에서 보이는 성장은 이 앨범을 통으로 다시 듣게 만드는 큰 요인입니다. 앞의 스탠스와 서사를 이해했을때 밭과 가시밭에서 주는 강렬한 자극이 있거든요. 밭은 명백히 그간의 내적 갈등과 방황을 끝내겠다는 선언에 가깝고 가시밭은 그 선언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동시대에 또다른 나에게도 이어진다는 내용이거든요. 특히나 가시밭의 경우 앞의 트랙들에서 동료 래퍼들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본다면 상당한 감흥을 줍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으로 제가 느끼는 이 앨범이 강렬했던 이유였습니다. 아..... 10트랙도 솔직히 너무 많아 싶으시면 이 앨범의 밭이라는 트랙만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밭은 정말 잘 만든 트랙인게 동명의 앨범에 대한 정말 좋은 4분짜리 축약이거든요. 앞의 앨범 전개를 알고 들으면 훨씬 좋지만 모르시고 이 곡만 들으셔도 좋습니다. 앨범추천에 음악적인 소개는 거의 없죠? 제가 소스가 어떻고 플로우와 라임 배치는 어땠으며 이 곡은 어떤 샘플링을 썼는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아서 누구 오마쥬가 보인다든지를 몰라요. 그 정도 귀와 지식이 없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 앨범을 듣는데 있어서 그런 요소를 몰라도 큰 감흥을 얻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오도마가 래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삶의 다음 장에 들어갔을때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할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저에게 이 앨범은 그런 앨범이었어요. 작은 바램이 있다면 연말에 힙합 시상식에서 상이라도 하나 받았으면 좋겠네요.
p.s 저의 미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게에는 거의 글을 써본적이 없고 기준이 높은곳이라 기분이 오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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