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11/27 09:40:08
Name 오르골
Subject [일반] 똥을 밟았다.
오늘 똥을 밟았다. 아침 출근길이었다. 똥을 밟은 지 어림잡아 십수 년은 넘을 터인데, 밟자마자 진득한 그 느낌은 이건 볼 것도 없이 똥임을 직감하게 하였다.



다만 남아있던 조그마한 의구심은 사람이 똥을 밟았다는 원초적 사실이 아니라, 나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고 하필 그 똥을 내가 밟았다는데 오는 것이었다. 허나 일용할 양식을 먹으면 얼마간 내어줘야 하는 우리의 섭리에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어젯밤 무척 추웠던 밤에 지나가는 개는 헐떡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을 것이고 조그마한 온기에 안도하며 자기의 온기를 내어 놨을 것이다. 차디찬 똥 자국을 바라보며 나와 그 개와의 인연을 되짚어 보는 것은 약간은 흐뭇한 일이나 또 허망한 일이다.



조금 정신을 차리자 신발을 벗어 냄새를 확인해 본다. 역시 진흙이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곱게 발라져 있을 리는 없다. 냄새가 각오한 것보단 덜한 것 보니 어젯밤 개에게 다행이고 또 내 코에도 안심할 일이다. 그러나 이 신발을 신고 또 차에 오르기는 곤란하다. 막막한 정신을 거두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할 수밖에, 한 발은 총총거리며 뒤따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신발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불운한 인연에 새로운 신발을 함께해야 할 터이니 하루의 장사 걱정을 덜 신발 장수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이게 어찌할 수 없는 경제의 선순환인가 싶다. 어젯밤 개가 이어준 인연이 참 고약하다.



똥을 밟았다. 무엇하나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나 혼자 간직하고 있기엔 아쉬운 일이다. 십수 년 전 등굣길에 밟은 똥은 고약한 만큼 그래도 왁자지껄한 이야기거리로 나눌 만한 일이었는데 오늘 출근길의 똥은 그저 난처한 지각거리로 남을 일이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아예 지우지 못하고 문자를 찾는 것을 보니 아직은 글쟁이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찾아 신은 신발이 지금도 어색하지만 먹고 싸는 일만큼 인연은 이어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덕에 오랜만에 졸문도 하나 남겼으니 어젯밤 개를 너무 탓할 일은 아닐 게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11/27 09:41
수정 아이콘
똥이 들어갔으니 선추천 후감상합니다.
YORDLE ONE
15/11/27 09: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는데 저 진지하게 여러분들께 물어보고 싶습니다만 보통 똥을 밟은 후 냄새를 맡습니까? 저는 너무 궁금합니다 여러분.
15/11/27 09:50
수정 아이콘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맛을 볼게 아닌이상 냄새로 확인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토요일에만나요
15/11/27 09:50
수정 아이콘
구체적으로 똥을 밟아본 사실이 없어서 다른 경우를 보자면,,
코를 휴지에 풀고는 살짝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다든지, 용무를 마친 후 역시 살짝 열어 그 색깔, 점성, 이물질 등을 확인하곤 합니다. 내가 내어놓은 물질들로 내 건강을 가늠 해 볼 수 있는 좋은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오르골
15/11/27 09:54
수정 아이콘
그래도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확인하곤 합니다
빠독이
15/11/27 10:20
수정 아이콘
아뇨. 내 것도 아닌데 확인할 것도 없고 어서 떨어내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실론티매니아
15/11/27 10:25
수정 아이콘
일단 근처에 신발 밑창을 닦아낼만한 나뭇가지나 꼬챙이류가 있으면 소중히 챙겨서 사람없는 곳으로 이동 후 제거하며 냄새도 함께 맡아봅니다
언뜻 유재석
15/11/27 10:12
수정 아이콘
사람똥아닌게 어딥니까...
오르골
15/11/27 11:03
수정 아이콘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
3막1장
15/11/27 10:32
수정 아이콘
이제 약에 쓰시면 되겠...
똥 소재글은 무조건 추천이요~
15/11/27 11:51
수정 아이콘
로또 사러 가야겠어요 ~.~
그런데말입니다
15/11/27 12:11
수정 아이콘
냥이똥이 아니라 개똥이라 다행입니다..
냄세는 냥이똥이 직빵이에요
온 사무실에 향기가 아주그냥..
전 얼마전에 밟았거든요 하하
아 그 회사는 그만뒀습니다
15/11/27 14:38
수정 아이콘
아니 똥 때문에...?
오르골
15/11/27 12:2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멘붕에서 좀 벗어났네요.
문장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멀면 벙커링
15/11/27 17:36
수정 아이콘
똥글은 무조건 추천하라고 배웠습니다.
오마이러블리걸즈
15/11/27 20:20
수정 아이콘
이 글에서 냄새나네요. 추천을 부르는 냄새!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2228 [일반] 똥을 밟았다. [16] 오르골6680 15/11/27 6680 22
53167 [일반]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 김정현 Survival Game [1] 오르골3719 14/08/11 3719 1
52444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마지막, 크로노스위스 & 론진 [16] 오르골19720 14/06/29 19720 19
52344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명작의 이유, 모리스 라크로아  [15] 오르골26009 14/06/22 26009 10
52245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Fly Me To The Moon, 에포스 [23] 오르골32391 14/06/14 32391 21
52199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까르띠에, 내 손목 위의 파란 공 [29] 오르골16983 14/06/11 16983 10
52164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몽블랑, 반짝반짝 빛나는 [41] 오르골19593 14/06/09 19593 6
52127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Less is more, NOMOS [27] 오르골22461 14/06/07 22461 10
52118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론진 레전드 다이버 [29] 오르골26818 14/06/06 26818 10
52033 [일반] 내가 사고 싶은 시계: 해밀턴 네이비 파이오니어(H78465553) [29] 오르골25456 14/05/31 25456 10
47487 [일반] 시계 이야기: 추게특집, 무엇이든 물어보려면? [33] 오르골10907 13/11/04 10907 10
47253 [일반] 시계 이야기: 나의 드림 와치 & 파일럿 시계 [37] 오르골24118 13/10/23 24118 7
47129 [일반] 시계 이야기: 저렴이 시계 특집 [36] 오르골28096 13/10/17 28096 10
47053 [일반] 시계 이야기: 저렴이, 패션시계 특집 [67] 오르골17137 13/10/14 17137 19
46994 [일반] 시계 이야기: 월급의 반 (2) [51] 오르골20066 13/10/11 20066 10
46977 [일반] 시계 이야기: 월급의 반 (1) [87] 오르골22054 13/10/10 22054 11
46896 [일반] 시계 이야기: 50만원을 모았습니다. [83] 오르골19376 13/10/07 19376 15
46876 [일반] 시계 이야기: 20만원으로 시계를 사자! (2) [55] 오르골19696 13/10/06 19696 23
46856 [일반] 시계 이야기: 20만원으로 시계를 사자! (1) [50] 오르골20209 13/10/05 20209 12
46818 [일반] 시계 이야기: 나... 나도 가질거야!, 오마쥬 이야기 [43] 오르골30904 13/10/03 30904 6
46758 [일반] 시계 이야기: 시계를 즐기는 방법 [43] 오르골16500 13/09/30 16500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