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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7/07 12:50:36
Name V3_Giants
Subject [일반]  목성의 노래

2189년 실종된 비행사의 12년간의 기록.

렌겔 하츠는 이오 탐사 중 목성의 자기권에 들어가 그 인근에 좌초했다.

그는 자급자족형 부유 콜로니에서 식이체를 섭취하며 생존했다.

오랜 무중력 생활의 여파로 그는 골밀도와 근육의 수축력이 크게 감소했으며,

정상적인 지상 직립을 할 수 없었다.

화성 귀환 기지에 돌아온 이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그의 12년 간의 기록이다.

(전면에 부착된 숫자는 그의 기록 순서를 지칭한다.)


13.


시그널 데이터에 남겨진 전파 패턴이 신경쓰인다.

반복되는 시간은 2분내지 3분.


21.

마실 물까지 녀석들에게 줘버렸다.

어서 열매를 맺어주었으면 좋으련만.



33.

구조대에게 계속해서 통신을 보내고는 있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목성의 전자기파 뿐이다.



37. 이제 알았다. 목성의 플라즈마진동 때문에 구조 요청이 닿지못한다.

거대한 행성이 있는 한 나에게 구원의 여지란 없다.





44.

가니메데의 공전 궤도에 다달았다.

조금은 자기장의 영향에서 벗어날거라 생각한다.





88.

좋은 소식이 있다. 오랜만에 토마토를 먹을 수 있었다.

경작량을 늘릴 수 있을 것 같다.



189.

전송을 포기했다.


240.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목성에서 들려오는

저 에코보이스는 분명 무작위적인 자연 현상임이 당연할 텐데도,

그 중에 어느 정도 반복되는 부분이 있었다.




242.



유로파를 보았다. 얼음의 균열이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다.

얼음, 물, 기체로 만들어진 은색의 위성. 잊고 있던 향수를 느꼈다.



360.

전파 패턴을 복사했다.



404.

의미 없는 짓이란 것은 알고있다.

요즘은 시간을 보낼 것이 필요해져, 이런 것에 매달리고 있다.














음성 기록을 끝낸 후 식사를 했다. 메뉴는 교종 감자와 합성 단백질이다. 오트밀 같은 밍밍한 맛이 느껴진다. 오트밀, 아니 오트밀은

무슨 맛이었지. 이 짓도 벌써 2년 째다.






"5년이라구, 어이."






아무도 없는 우주에게 말을 건다.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저 멀리, 5.203Au 떨어진 곳에는 내 고향이 있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거기까지 닿을리는 없다. 말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끝없이 홀로 떠든다.


나는 방열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눈이 보인다. 목성의 눈, 대적반이다.







가공할 공전 속도에 생겨난 줄무늬나, 수성보다도 큰 소용돌이.


멀리서는 이렇게나 아름다운데도, 그 내부는 지옥이다.


구름 상층부는 영하 110도에, 대기 평균 온도도 영하 140도에 육박한다.


태양과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질량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아마 이것은 제 2의 태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태양계도 쌍성계가 되었을텐데.


도태된 행성, 태양이 되지못한 행성인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조용히 해줄 수 없을까."











의미없는 질문을 한다. 저 플라즈마 진동이 멈춘다는 것은,


목성의 폭발이 정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되면,


나는 화성의 구조대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답은 없다. 돌고래 소리와 비슷한 음파만 메아리 칠 뿐이다.


나는 요즘 이 전파를 분석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섞여들어온 혼합 전파들을 제거하고, 반복 패턴을 정리한다.




"가르쳐달라구, 어이."







미친 짓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나에게는 이것 뿐이다. 여흥거리가 없는 이 우주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검

은 하늘 속에서 재정신으로는 살아있을 수 없다. 나는 미쳤기에,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패턴 분석이 완료되었다. 예상과 달리, 이것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바꾸어 말하면 완벽하게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745.


나는 이것을 문자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788.


문자가 되어간다.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877.

나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 같다.








단어 사전을 완성했다. 이것은 목성의 언어이다.


전파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한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이제는 그것을 응용할 때가 왔다. 첫번째 패턴과 두번째 패턴을 조율해서


만들어낸 글자. 이것을 변환기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음성 모두를 모두 치환해서 결과를 만든다. 이렇게 한다면,


외계인의 목소리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인 것이다.





4년 가까이 나에게 말을 거는 저 거대한 행속의 목소리를,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행성에서 들려오는 잡음을 포착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게 정상적인 말이 될리가 없다.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억지로 끼워맞춘 것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짓이라도 하지않으면 견딜 수 없단말이다...!"








계속해서 구조 메시지를 분쇄시켜버리는 저 목성의 소리가 너무나 거슬린다. 그 정체를 이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시스템 가동

스위치를 누른다. 분석한 패턴을 음성으로 바꾼다.


[@%#%@#...]



처 음 부분의 목소리는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실패다.





완전히 실패했다. 아니, 당연한 결과다.


이렇게 되어버릴 것을 알고있었기에, 이 실패는 성공인 것이다.


아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제 무슨 낙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내일이 막막해져온다.









"...응?"









나 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패턴의 정보가,


평소라면 알아차릴 수 없는 그 부분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치환이 잘못된 것이다.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으니 안되는게 당연하다.


이것은 내 실수였다. 피식, 아직은 시간을 보낼 방법이 남아있는 것이다.





1124.


2차 수정을 완료했다.



"끝이다..."



이제 완성했다. 최대의 변수부터,



최소의 한도까지 완벽하게 보수했다. 만일 행성의 언어가 있다면,



그 하품소리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무섭다.


이미 실패는 당연한 것이고, 어떻게 될 것인지 뻔하다.


나는 순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로 끝이다.


4년의 걸친 내 헛짓도. 아마 이것이 끝나버리면


나는 삶의 의욕을 잃고서 자살할지 모른다. 호기심과 공포.


그 두 가지는 내 유년시절부터 끝없이 싸워왔다.



정글짐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궁금해,


나는 매번 고소공포증을 느끼면서도 위로 올랐다.


그래, 답은 이미 나와있다.


나는 아무리 무서웠어도 결국은 그것을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그렇기에 나는 우주 비행사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자신있게 스위치를 눌렀다. 약간의 잡음이 들려오며 번역기가 가동되었다.







[@#$@#...@!%^....]








이 전과 같다. 후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뭘 기대한 것일까?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웃음 밖에 나오질 않는다.


담배가 있었다면 한모금 크게 빨아당겼을 텐데. 그 때였다.


완전히 끝나버린 여흥에 허무감으로 웃고 있을 때,


번역기에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익숙한 음성이었다. 목소리였다. 노래였다.

내 언어, 그것은 인간의 말이었다.







[들려... ^%&%$...들려요? @%%...들리나요?]





"뭐..."



들리는가, 분명히 그렇게 물어오고 있다.


5년간 반복되던 패턴의 정체는 이것이다. 약간은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은 수정을 통해서 바꿀 수 있다. 자세히 보니,


그 부분의 전파만 휘어져있다. 다시 치환을 시작한다.


역시, 여기에 기초적인 오류를 범했다.


그것을 수정하고, 다시 번역기를 튼다.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서 그것을 기다린다. 가슴이 두근거리다.







[들려나요? 목소리가... 들리나요?]




나는 미친게 분명하다.


나는 지금, 목성과, 태양계에서 제일 큰 행성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자판을 입력한다.


그것을 목성의 전파로 수정해서 보낸다면,


나는 대화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라면 가능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들린다. 확실하게 들린다."



전파를 발신한다. 구조용 신호기를 행성과 이야기하는데에 쓰다니.


정말이지 어이없을 정도로 비싼 무전기가 아닐 수 없다.



위이잉, 갑자기 대기가 흔들렸다. 목성의 전자기장이,


거대하게 폭발한다. 옆에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흥분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곧 거대한 음파가 수신된다. 목성의 답장이다. 나는 바로 그것을 해독한다.







[누구, 누구입니까? 당신은 무엇입니까? 들리나요? 목소리가 들리나요?]





틀림없는 의문사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까 꺼내든 말을 다시 한 것을 보면, 얼마나 상대가,


아니 목성이 기뻐하는지를 알 수 있다.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답신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로 했다.


"나는 렌겔. 렌겔 하츠. 인간이다."


곧 목성은 답을 해왔다.







[렌겔, 렌겔, 렌겔. 인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제서야 삶의 의욕을 되찾고 있었다.

즐거운 이야기 상대가 생긴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3099.

나 렌겔 하츠가 인간이라는 생물의 개체 중 하나라는 것과,

우리가 그 쪽을 목성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3340.

일 주일간 쉬지 않고서 대화만을 했다.

나는 목성을 '녀석'이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화는 성립하지만,

녀석은 대부분의 단어를 모른다.

모르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항상 질문을 한다.

나는 나에게 수면이란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취하지 않으면

생물로서 죽게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3341.


확인하지 않은 음성만도 17개다.

내가 잠든 사이, 목성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대부분이 '잠이 들었습니까?' 와 '지금 수면이라는 것을 취하고 있습니까?'

였지만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제발 대답해주세요.'였다.




3460.

이 녀석은 고독하다. 만들어진 몇 십억년 동안 혼자였다.

고작 4년 정도로 이렇게나 미칠 것 같은 세월을,

목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견뎌온 것이다.

나는 밍밍한 음성보다도,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원했다.

프로그램을 수정한다. 내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도록,

목성의 감정을 수신할 수 있도록.



3560.

수정이 완료되었다. 이제 희노애락을 전달할 수 있다.

목성도 기뻐했다. 내 기분대로, 목소리의 패턴을 소녀의 것으로 바꾸었다.

귀여운 목소리다.




3605.







[렌겔과 다른 개체는 어디있습니까?]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목성은 그것을 물어온다.

"저 멀리, 태양이라는 거대한 항성 가까이에

위치한 푸른별에 내 동족들이 살고있어."

그간 알려준 지식들을 토대로라면,

목성은 이해할 것이다. 녀석은 습득이 빠르다.

너무 빨라서 놀라울 정도다. 한가지를 알려줌과

동시에 엄청난 정보를 습득한다. 마치 지식에 목이 마른 듯이.





[동족, 인간은 모두 렌겔과 같습니까?]


"아니, 달라. 인간이라는 생물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개체마다의 성질은 조금씩 다르다."


[어째서 입니까?]


글쌔, 어째서일까. 나는 처음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3783.



[렌겔도 죽습니까?]


"그래, 나도 죽게 되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말하자, 목성은 처음으로 질문이 아닌 대답을 했다.


[렌겔의 죽음은 슬픕니다.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3802.


목성은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수면이 생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게된 것이다.

처음 생물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녀석의 질문 공세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울 정도다.



3855.





[인간, 인간은 어째서 전쟁을 합니까?]


"그건 나도 대답할 수 없어. 다들 이유가 다르니까.

어쩌면 그래서 싸우는 걸지도 몰라."


[렌겔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까?]

녀석은 나를 만물박사로 알고있는 것 같다.

"나도 궁금한 게 많아. 모르는 것도 많지."


[당신도 나와 같군요. 매우 기쁩니다. 공통점입니다. 우리는 닮아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열창이 흔들릴 정도로

목성의 전자기파가 울렸다. 진정하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모르니

주의해달라고 말하자, 목성은 곧 그 진동을 멈추었다.




4087.


처음으로 녀석과 싸웠다.


[당신은 악마입니다. 잔인합니다.]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을 희생해야 한다고 설명하자,

목성은 화를 냈다.


[렌겔이 살기 위해 렌겔과 동등한 개체를 섭취하는 것은 싫습니다.]


생명은 평등하다. 분명 그렇게 말을 했기에, 나는 말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죽고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자, 목성은 한마디를 끝으로 침묵했다.


[...저도 렌겔의 죽음은 바라지 않습니다.]



4103.

목성이 침묵한 요인은 다른데에 있었다.

소행성이 낙하한 것이다. 열 세 개나 되는 요철 덩어리들이

목성의 대기로 떨어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불안함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4117.

목성이 말을 걸어왔다. 너무도 반가웠다.






[작은 아이들이 부딪혔습니다.]


운석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4118.

녀석은 운석의 궤도를 바꾸었다.

스스로 자신에게 유도한 것이다.

그 순간의 중력 그래프가 한없이 위를 향한 기록이 남아있다.

왜 그런 짓을 한거야, 왜 스스로 상처를 입힌거야? 라고 묻자, 녀석은 답했다.


[렌겔이 말해준 저 너머의 푸른 아이에게 닿게 하지 않겠습니다.]


푸른 아이는 지구를 말하는 것일까.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운석이 목성의 궤도로 끌려가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그것은 분명 지

구의 데인져러스 존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지킨 것이다. 저 멀리 나의 고향을, 지구를, 생명의 보고를.


"아프진 않아?"






[아프다, 아프다는 무엇입니까?]


아, 그랬었지. 녀석에게 통각과 같은 개념이 있을지는 나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4119.


[푸른 아이가 부럽습니다.]


요즘들어 목성은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자주 말한다.


"왜?"


[그 아이는 생명을 만들어냈습니다.]




4201.

녀석은 지구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그 질량과 구조, 형태까지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목성은 지구가 자신보다 몇 십배나 작다는 것을 듣고서는.

[귀여운 아이.]





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5.9736×1024kg의 질량을 가진

행성이 귀엽다고 한 것이다. 확실히 목성은 그와 비교하기 우스울 정도로 거대하다.

지구의 탄생과정 따위를 이야기 하는 사이에,

이오가 다가왔음을 확인했다.



4204.


물리지구학은 내 전공분야였다. 마치 제자가 하나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대단해, 대단합니다.]

생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부분에서,

녀석은 탄성을 질러댔다.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진동하는 대기가 여기까지 영향을 주었다. 진정하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4213.

녀 석이 침울하다.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구처럼 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작열하는 대기와 냉점에 가까운 기온, 더욱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죽음의 바다만으로 이루어진 기체의 행성에 생존 할 수 있는 생물은 없다.

게다가 지구에서 생명을 이끈 가장 큰 공로자는 태양이다.

광합성의 결과로서 바다에 산소가 스며들고,

그것을 시작으로 생물의 다양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목성과 태양의 거리는 멀었다. 생존을 중제로 삼는다면 절망적인 거리였다.



4215.

대기압 100kpa

질소 77%

산소 21%

아르곤 1%

이산화탄소 0.038%





이것이 지구의 대기 성질이다.

마치 생물체를 위해서 마련된 것 같이 완벽하다.

이 중 어느 농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생태계가 절반이상 바뀌어진다.

목성은 자신의 분석 결과도 궁금해했다.



대기압 70kpa

수소 ~86%

헬륨 ~14%

메탄 0.%

암모니아 0.02%...







거기서 목성은 그만해달라고 했다. 슬픈 어조였다.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생물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환경인지를.



4224.

목성은 자신을 궁금해했다. 대부분 내가 알고있는 지식을 전해주었지만,

끝없이 질문만을 이어낸다. 그 중에서는 약간 아이러니한 것도 있었다.





[저는 어떻게 보이나요?]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름다워, 무척이나."

목성은 침묵했다. 한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답신이 왔다.





[지구는, 푸른 아이는?]

나보다 더 아름다운가, 라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비교하기는 어려워. 지구에는 있고, 너에게는 없는 것이 있는 반면에,

너에게만 있고, 지구에게는 없는 것이 있으니까."


[그래도 제가 더 거대하니까.]


묘한 것에서 질투를 하는 것 같다.

정말 귀여운 것이 누구인지를 모르고서.



4227.

며칠간 뾰루퉁한 태도의 녀석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었다.


[형제, 제 동생이 있습니까?]

"그래, 셋이나 있지.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야."


목성형 행성으로 분류되는 그것들의 정보를 말해주자, 녀석은 유독 한 행성에게만 반응을 보였다.





[토성, 토성.]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며,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는다.

대기의 색깔이 자신과 같은 갈색이라는 것에 기쁜 것일까.


4228.

토성을 둘러싼 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목성은 호기심을 보였다.

언젠가 본 얼음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토성의 띠에 대해 그대로 설명했다.


[부러운 아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심술을 부린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잘못되었다.

"너에게도 있어, 예쁜 고리가."

[있습니까? 고리가 있습니까?]

"그래."

목성의 고리계(系)는 희미하다.

먼지와 네가지 주요 성분으로 구성된다. 할로 고리라고 하는 입자들의 두꺼운 내부 토러스를 만들고,

밝고 예외적으로 얇은 주 고리와 두 개의 넓고 두꺼운 희미한 외부의 고사머 고리들. 멀리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토성의 고리보다도 아름답다.






[기쁩니다. 저도,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너는 토성보다 아름다운 띠를 가지고 있는거야."

목성의 흔들림에, 나는 비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감정 전환이 빠른 것이 장점인 녀석이다.


4300.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는 스스로가 무엇이라 생각해?"

의외로, 답은 빨리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동문서답이었다.


[저는 주변의 아이들을 끌여들여 그것으로 유지합니다.

멀리서부터 흘러나오는 줄기에 잡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그것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당기는 것은, 아마 태양을 말하는 것이다.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태양계를 떠돌며,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 또한 중력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 우주는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오랫동안 잊고있던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너는 어떻게 만들어졌지?"

[가장 오래된 기억은 떨어져나온 때부터 시작됩니다.]

"떨어져 나와?"





[저는, 아니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우리?"

[렌겔이 태양계라 부르는 우리 전체와, 지금은 밖으로 떨어져나간 아이들. 우리는 모두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가벼운 것은 가벼운

것끼리, 무거운 것은 무거운 것끼리. 우리는 어느새 떠돌고 있었습니다.]


태양계 발생설의 일부는, 어느 거대한 항성이 충돌하여,

그것들이 흩어지며, 하나로 되돌아가기 위해 끌여들인

중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돌아가고 싶어?"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렌겔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4456.

이제 녀석과 대화가 힘들어진다.

지성의 차이가 이렇게나 벌어질 줄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가끔은 너무 어려운 말을 하기에, 내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요즘은 녀석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연상의 연인의 자리를 되잡아가는 것일까.


4460.

이제 12년이 흘렀다. 콜로니에서 지낸지 그만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목성과의 대화에 빠져, 너무도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

이런 생활이 편해지고 말았다. 눈을 뜨면 대적반이 아침을 반기고,

교대로 흘러가는 위성들은 인사를 건넨다.

그래, 나는 목성과의 생활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했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다만, 연애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기에. 안아줄수도, 키스할 수도 없다.

그저 멀리서 지구의 317.83배나 되는 거대한 아이를 지켜볼 뿐이다.



4679.





[이별입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일까? 이별이라니? 통역기가 잘못 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목성이 단어 이해를 잘못한 것일까?


[저는 이제 긴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째서, 라고 묻자, 녀석은 쓸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렌겔이 가르쳐 준 여러가지들에 대해서

고맙다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무리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지고 싶습니다.]


"가지고 싶다니, 뭘?"

[생명을. 푸른 아이도 분명 저와 같았을겁니다.

렌겔의 정보에 의하면, 원시의 환경도, 기본적인 베이스도 당시에는 생명이 태어날 환경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바뀌게 할 수 있습니다. 몸이 너무 거대하기에,

그것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생명을,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신진대사를 최소화하고 구조의 통일에만 충실히 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그런걸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거지?"

신진대사를 줄인다니, 스스로 동면에 들어간다는 것일까?

나는 목성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렌겔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인간과 같은 고등의 생물을 품는 것은 아직은 힘들지만,

아마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생명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할거라 생각합니다]


진심이다. 녀석은 정말로...

[하지만, 이제 렌겔과 대화할 수 없게됩니다.]

쓸쓸한 목소리와 함께 목성의 대적반이 분열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분명 목성 스스로가 온도를 높이며, 내부의 기체를 멈추는 징조이다.

[렌겔, 렌겔. 저 멀리 푸른 아이에게서 온 인간. 처음 만난 생명.]


위이잉, 목소리가 흐려진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푸른색이 되고싶습니다.]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즐거웠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슬픕니다. 너무 슬픕니다.]

소용돌이치던 붉은 대적반의 눈이, 아래로 흘려내린다. 그것은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나는 멍청하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렌겔, 렌겔. 당신이 좋습니다.]

목소리는 끊어졌다. 후에 흘러나오는 소음도,

전기장도, 자기장도, 그 어떤 센서에도 걸리지 않는다.

눈물이, 오열이 세어나왔다. 어째서, 지금 떠나야만했던 것일까.

녀석은 왜 그토록 생명을 잉태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왜 왜 왜, 의문만이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이제는 내가 질문을 하고,

네가 답해주어야할 차례가 아닌가.

그런데도 벌써 그것을 멈추어 버리다니.

나는, 어느새 녀석을, 그녀로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슬픔이 몰려와, 참을 수가 없다.














4697.





목성이 침묵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쓸대없는 기대를 가지고서 호출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목성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목소리를 듣고싶다. ...목소리? 그런가, 자기장이다.

바보같이, 이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목성의 자기장이 사라졌기에,

나는 이제 구조요청이 가능해졌다.

나는 귀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 바보 녀석, 이걸, 이걸 노린거냐? 하나도 기쁘지 않아,

나는 화를 낼 수 밖에 없다.



4704.

단 여섯번의 시도 끝에, 나는 무전에 성공했다.

현실감이 없다. 12년만에 다른 인간과 대화해 본 것은.

역양이 다른 것을 보아, 타국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걸까.

다른 나라, 다른 인종, 다른 개체를 떠나서,

우리는 모두, 모두가 푸른 별에서 태어난 생명인 것을.

목성은, 지금도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4723.

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나의 생존 자체를 놀라워했다.

표류 당할 당시의 몸무게보다 12킬로그램이나 줄었지만,

내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하지만 그 부분이상으로 그들은 놀라고 있었다.

내 정신이 어떻게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4724.





목성의 침묵은 모든 이들을 다시금 충격에 빠뜨렸다.

생성된 이후로 폭염의 플라즈마를 뿜어내던 행성이 멈춘 것이다.

그 내부는 매우 느린 속도로 천천히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1도를 내리는데에만도 수백, 차니 수천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모두 말했다.

연구원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했지만, 기록된 데이터가 말해준다.

목성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녀석, 아니 그녀는 분명히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공톰점에 기뻐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질투를 느끼는 귀여운 소녀가.




4725.





기록 종료.

사용자 렌겔 하츠의 권한으로 승인 해지.

데이터는 자동으로 베이스에 등록됩니다.














서기는 끝이 났다. 이제 태양계에 인류는 없다.

13억년 전, 그들은 신은하로 떠났다.

과거 백년도 채 살지 못했던 그들의 수명이 2천년 이상으로 늘어감에 따라,

지구라는 보금자리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소식이 없었다. 푸른 여신의 별은 슬픈 듯이 항성 주위를 돌고 있었다.

버림받은 어머니의 별은 이제 천천히 발화할 것이다.

수성은 이미 몇 천년 전 쯤에 묻혀버렸다.

대기는 타오르고, 이제 생물은 살 수 없다.

푸른 별은 몇 백년에 걸쳐 천천히 기온이 오르고 있었다.

미래를 예측한 인류는 그래서 다른 땅으로 향했다.


'이어지길, 끝까지 이어지길. 내가 만든 아이들의 생명이 끝까지 이어지길.'


푸른 별은 마지막까지 그것을 염원했다.


'이제 당신의 차례인가요? 저를 이어 푸른 별이 되어주실 건가요?'





누구도 듣지못하는 목소리가 멀리 울려퍼진다.

태양이 다가온다. 바다가, 대지가 녹아간다.

고온에 뒤섞여가며, 지축은 흔들리고 분쇄되어간다.

59억살의 나이로, 지구는 사라졌다. 앞으로 태양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더 멀리까지 그 빛을 보낼 것이다.

한층 찬란해진 백광이 멀리 뻗어나간다. 그리고는 닿았다.

과거 기체로만 이루어진 적갈색의 행성에게로.

그 대기에 비치는 스팩트럼은, 푸른 빛이다. 태양계는 다시금 생명을 잉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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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b2.ruliweb.daum.net/ruliboard/read.htm?main=cmu&table=cmu_yu02&left=h&db=2&num=831835



이 글을 읽고 나니까 왜 우주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지 알 것 같네요.

참 뭐랄까, 우주의 규모나 다른 행성들의 크기를 보면 새삼 아득함이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허블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아이맥스로 개봉했었다는데 그걸 못 본게 아쉽네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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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왕자
11/07/07 13:18
수정 아이콘
대충 한번 훑었는데, 시간날때 다시 정독해야겠습니다..
아..우주의 아득함이란...

예전 어렸을때 newton이라는 잡지를 보면서 많은 상상을 했었는데,
나이 들고서 바쁘게 사는와중에도,
문득 이런글을 보면 다시 우주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은 욕망이 많아지네요...
11/07/07 13:28
수정 아이콘
이거 뭔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애물? 같은 느낌이 물씬 나네요; 아마 이거 쓰신분 그런 류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분일 듯.
11/07/07 13:28
수정 아이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예전에 피지알에 올라왔던 만화 [호텔]이던가...그 만화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god]휘우
11/07/07 13:28
수정 아이콘
이 엄청나게 큰 우주에 대한 글들을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해서 느끼는 박탈감같은 건 뭘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뗼 수 없었네요.

파피용이라는 책과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네요
설탕가루인형형
11/07/07 13:35
수정 아이콘
이야...정말 너무너무 멋진 글 잘 봤습니다...
스트릭랜드
11/07/07 13:40
수정 아이콘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드네요. 감동해버렸어요.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마치 실제하는 듯 한 묘한 기분. '맨프럼어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경이로움이예요. 빠져들어버리고 말았네요.

혹시 이렇게 혹은 '맨프럼어스'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그 처럼 대화나 이야기만으로 마치 영상을 바라보며 함께 겪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만 한 영화를 알고 계시면 추천해주세요~
11/07/07 13:46
수정 아이콘
일본느낌이긴 한데 충분히 좋네요
유고런
11/07/07 13:48
수정 아이콘
요즘 우주형제라는 만화책 읽고있는데 간만에 또 소름돋네요
공안9과
11/07/07 14:01
수정 아이콘
간만에 우주관련 다큐멘터리가 땡기게 하는 아름다운 글이네요. ^^
녹용젤리
11/07/07 14:02
수정 아이콘
아 언제 들어도 너무 좋은 히라하라 아야카의 쥬피터네요..정말 이노래 하나때문에 앨범을 삿었죠..
11/07/07 14:11
수정 아이콘
와... 괜찮네요.
11/07/07 14:18
수정 아이콘
가이아설인가요. 정말 매력적이네요.
지구와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뭐 단언컨데 "저 요즘 많이 아파요"이런 소리는 안할게 분명할 것 같습니다. 환경오염=지구가 아프다는건 정말 지구 스케일을 무시한 말이죠.
그냥 "요즘 껍데기를 자꾸 파고 드는게 좀 간지러워"정도?
wish burn
11/07/07 14:19
수정 아이콘
목성 모에화인가요?
참새 방앗간
11/07/07 14:25
수정 아이콘
음악도 좋고, 글도 좋고, 고맙습니다.~~
11/07/07 14:32
수정 아이콘
글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가만히 손을 잡으
11/07/07 16:52
수정 아이콘
오, 좋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네요.
케이크류
11/07/07 16:58
수정 아이콘
일본인이 쓴 글을 번역한 느낌이네요.
메밀국수밑힌자와사비
11/07/07 21:01
수정 아이콘
흠... 솔라리스 팬픽 느낌입니다.
씨밀레
11/07/07 22:33
수정 아이콘
뭔가 감동적이면서 뭔가 목성에 애정이 생길것만 같은 글이네요. 흐흐
올빼미
11/07/08 14:14
수정 아이콘
목성 모에화랑 번역체투라서 sf팬들한테 까였던글이죠.
국내 sf팬들은 하드sf아니면 취급안해주는경향잎심해요.
전상돈
11/07/08 15:44
수정 아이콘
너무 잘읽었습니다..
추천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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