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0/11/27 10:54:34
Name 모노크롬
Subject [일반] 별일없이산다

전가족이 20여년 전 이민하였지만, 제 동생은 지금 홀연단신으로 (석달에 한번씩 사귀는 여자사람들이 바뀌는 꼴을 보자니, 솔직히 외로워 보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족이 아무도 가까이 없다는건 좀 안됐죠.) 한국에서 어느정도 기반도 잡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 녀석이지만 그래도 걱정스런 마음으로 전화을 넣어 보았습니다. 남자 형제들간의 대화란 것이 참 재미없게 짧죠. 물론 좋게 해석하자면 거의 암호 수준의 함축적 의미가 교류한다지만, 그 특유한 무뚝뚝함이 어디 안가죠.

"별일 없냐?" (속뜻: 임마 방금 뉴스봤는데 연평도 난리났던데 거기 분위기 좀 어떠냐?)

"아.. 별일 없어." (속뜻: 뉴스 봤구나? 괜찮아, 전쟁은 안나.)

한마디 해주려다가 그냥 참았습니다. 안부 전화였으니 성질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테니. 뭐 제가 동생의 사회적 정치적 불감증을 탓할 자격도 없죠. 제 동생은 미국에서 졸업하자마자, 난 미국 싫어,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 돼 웃기지도 않는 드립까지 쳐가며, 늦은 나이였음에도 영주권 포기,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귀국해서 자진으로 현역까지 풀타임 마친 케이스라, 산너머 마냥 불구경하는 하는듯한 제 모습이 오히려 동생에게는 더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겁니다. 서로 아픈데 건들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랄까. 그런데 미국에 사는 교포들 중 고국에 가족 친구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작 어이 없는 것은, 여기 계신 주위분들 말씀 들어보자면 한국에 전화들 거셔서 듣는 반응들이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 비단 이번 뿐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일이 있을때 마다 그렇습니다.

"별일들 없다는데..?"


이쯤에서 자백을 해야되는데, 저는 스타1 접은지 오래고 스타2 경기들만 좀 보고 아직 못해봤네요. 그런데 떳떳하게도 속칭 열혈 피지알 눈팅회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이슈의 근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곳이 여기죠. 물론 피지알도 한쪽의 성향이 좀 치우친 경향이 있긴하지만, 반론의 목소리 중에서도 새겨 들을만한 것도 있고, 욕을 먹을만한 것은 먹어야죠. 암튼 그나마 건설적인 토론이 벌여지는 곳은 분명합니다. (최근 몇년 들어서는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다들 조금 격해지고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자주 보이긴 하지만.) 괜히 피지알 금단현상이 있는게 아니죠. (아.. 어제 내내 접속안되서... 휴..)

일반 뉴스를 접하기 위해 때때로 네이버 라우팅으로 신문사, 방송사 기사들을 서핑하지만 출처를 막론하고 다 믿지는 않습니다. (오마이나 딴지도 거의 오락수준으로 즐기는 경지?) 왜냐면 뉴스의 출처는 고사하고, 그 출처의 출처마저도 다는 믿지 못하겠으니까요. (주어는 없네요.) 이번 도발 사태때도 인터넷으로 뉴스 접하자마자 TV를 고정시킨 채널은 KBS, MBC 가 아닌 CNN, NBC 였죠. 남의 일에 (꼭 남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얼마나 심도 있게 지금 상황을 분석하는지 보시면 조금 놀라실 겁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정치적 성향 자체가 극과 극을 달리는 곳들이 있지만, 한국 관련 뉴스의 경우에는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제 3국으로서의 입장과 시각 자체가, 상황을 보다 더 차분하게 판단케 하는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언론의 객관성이니 뭐니 하는 것은 여기서 언급할 것이 되지 못하나, 적어도 한국의 메이져 언론들보다는 더 신뢰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쓸데없는 썰이 길었네요.

최루탄 까스때문에 중딩 고딩 시절 버스안에서 친구들과 캑캑되던 제 나이가 이제 퇴물이 되가는건지, 왜 저는 자꾸만 점점 우리나라에 매니아만 있고 나머지는 다 지나가는 행인#1 인듯한 느낌을 받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꼬맹이때부터 미국에서 자란 제 와이프는 북한이 왜 쐈냐고 순진한 얼굴로 제게 묻는데, 그냥 나라가 힘이 없어서.. 중얼거리다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지금이 무슨 일제시대냐고 그러더군요. 하긴 나란 작자부터 하는게 없는데 누굴 탓하리오, 애궂게 와이프에게 잠시 심각하게 역정 아닌 역정을 내었더니 그러더군요. "오빠, pgr인가 뭔가 그거 너무 많이 하지마, 왜 그리 모든게 심각해?" .. 허구헌 날 제 컴터 바탕화면 마냥 떠있는 사이트라 안 가르쳐줘도 아는 모양입니다. "난 눈팅만 하는데.." 말하려다 그것도 관두었습니다. 허탈해서요.

데이트도 할겸 사람구경도 할겸 그리고 '좋은' 일도 할겸 촛불 집회 다녀왔더라는 녀석들의 농담이 몇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가 않네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는 개뿔, 오늘 출근해야죠, 저녁에는 소주한잔 하고, 주말에는 여자도 만나야죠. 암요, 뭐가 더 중요한가는 본인몫이죠. 근데 가슴 한켠이 시리네요, 뭔지 모르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스탠드는 달라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할지언정 손가락 날아다니도록 키워하시는 모든분들을 존중합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먹고 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더 큰것에 대한 열정'이라는게 보이니까요.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11/27 11:39
수정 아이콘
꽤 나이가 되시는군요.
동생분의 결정을 형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고뇌의 일면을 엿보는 듯 합니다.
다만 동생분도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어서...
어짜피 인터넷에서 키워질을 하던 오프라인에서 데이트를 하던 세상이 돌아가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자식을 갖고보니 그 자식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이 너무나 걱정이 되는데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자괴감도
꽤 큽니다.
키워질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면 일 접어치우고 키워질만 하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는 진보가 설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 공간마저 점점 잠식당하는 듯 싶어 안타까울뿐이네요.
분열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는 이 공간은 과연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맞는 건지도 회의적이구요.
이번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진보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확 줄었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천조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니 부러워해야 하는 건가요?
잘 모르겠네요. 일을 해야 하는데 님의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져서 주져리주져리 해 봤습니다.
greensocks
10/11/27 11:52
수정 아이콘
갑자기 장기하 노래가 땡기네요.
나는 별일없이 산다
뱃살토스
10/11/27 13:55
수정 아이콘
담담한 수필 같은 글에는 댓글이 별로 안달리는 것인지,,
오늘 저녁쯤이면 일주일 내내 치인 사람들이 쉬면서 댓글을 달아볼 것인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6683 [일반] 사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8] 맥주귀신4195 10/11/27 4195 0
26682 [일반] 한국 마라톤 아시안게임 8년만에 금메달! [15] 홍마루5249 10/11/27 5249 0
26681 [일반] 다단계... 돈 버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28] 두리바8988 10/11/27 8988 0
26680 [일반] 연평도 사태와 <의형제> [4] 쌈등마잉3932 10/11/27 3932 0
26679 [일반] 한미, 내일 최고수준 연합훈련 돌입 [29] Spring5074 10/11/27 5074 0
26678 [일반] 김관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지명의 이유와 청문회 수월? [13] 코큰아이4645 10/11/27 4645 0
26677 [일반] 내멋대로 2010 메이저리그 투수 시상식 [7] 페가수스3753 10/11/27 3753 0
26675 [일반] 제 친구는 잘 모르는 컴맹이였습니다.. [13] 절세환이4488 10/11/27 4488 0
26674 [일반] 2010 MelOn Music Awards 2차 투표 중간 현황~! (27일 PM 12:10분 현재) CrazY_BoY3769 10/11/27 3769 0
26673 [일반] '유서'를 써본적이 있으십니까?? [16] 부끄러운줄알��4501 10/11/27 4501 2
26672 [일반] 별일없이산다 [3] 모노크롬3996 10/11/27 3996 2
26671 [일반] [야구] 롯데자이언츠 양승호 감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담긴 인터뷰 [10] SoSoHypo4852 10/11/27 4852 0
26670 [일반] 오늘 PGR21 책모임 장소 공지 [1] 내일은3345 10/11/27 3345 0
26668 [일반] Road for hope - 선물- [3] 굿바이키스3276 10/11/27 3276 0
26667 [일반] 동물원 아르바이트와 가짜 유괴범 아저씨. [19] nickyo5406 10/11/27 5406 0
26666 [일반] 겸손함 [13] 파르티타4242 10/11/27 4242 7
26665 [일반] 오늘 면접 두개를 포기했습니다..........잘한일일까요...................... [11] Let's Roll5565 10/11/26 5565 0
26664 [일반] 프로포즈. [7] 헥스밤4902 10/11/26 4902 6
26662 [일반] 국회의원 5.1% 세비(월급)인상 [36] NaYo5023 10/11/26 5023 0
26661 [일반] 연평도 포탄에도 1번이.... [160] 케이윌10139 10/11/26 10139 12
26660 [일반] 김태영 국방부장관님의 '자진사퇴'. [51] 대한민국질럿7197 10/11/26 7197 0
26659 [일반] 중국에서 아주 이례적으로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네요. [8] 땅콩박사5240 10/11/26 5240 0
26658 [일반] [야구] LG만 왜.... [21] 클레멘티아4949 10/11/26 494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