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2/10 23:44:47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10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57. 달 감(甘)에서 파생된 한자들

지난 글에서는 계엄(戒嚴)의 경계할 계(戒)를 다뤘다. 오늘은 계엄의 나머지 한자, 엄할 엄(嚴)을 이야기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嚴은 바위 암(嵒)의 뜻과 감히/구태여 감(敢)의 뜻과 소리를 합한 형성자고, 敢은 논란이 많으나 일단은 돼지 시(豕)와 오른손을 나타낸 또 우(又)의 뜻과 달 감(甘)의 소리를 합한 형성자다. 즉 嚴은 甘의 2차 형성자다.

嚴은 금문에서 그 자원이 드러난다.

675770e985d03.png?imgSeq=39731

왼쪽부터 嚴의 금문 1, 2, 3, 초계 문자, 고문, 소전.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嚴을 “가르치는 명령이 급함이다. 부르짖을 훤(吅)의 뜻을 따르고 험준할 음(厂敢)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한다. 즉 敢의 윗부분을 덮은 부분을 언덕 한(厂)으로 본 건데, 금문에서는 이 한자의 중간이 삐죽하게 솟아 있어 메 산(山)으로 보인다. 그리고 입 구(口)가 2개 있는 게 보통이지만 3개를 쓰기도 한다. 그러므로 敢의 윗부분을 덮고 있는 한자는 입 구(口) 세 개가 겹친 물건 품(品) 밑에 山이 있는 바위 암(嵒)이 된다.

추 시구이의 풀이에 따르면, 嵒은 口가 모여서 대중의 말이 많음을 나타내고, 敢은 허탄할 함()의 초문으로 과장된 말을 뜻한다. 이 둘을 합해서, 원래는 말이 많고 과장된다는 뜻인데, 이에서 말이 장엄하고 엄중하다는 뜻이 인신되었다.

嚴은 금문부터 지금의 뜻인 엄중, 장엄의 뜻으로 쓰였다.


嚴은 소전을 거치면서 와전되었지만 그래도 금문은 분석하기 쉬운 편인데, 敢은 더 어렵다. 우선 갑골문이 지금의 敢의 짜임이 아니다.

6757752389cc6.png?imgSeq=39732

왼쪽부터 敢의 갑골문 1, 2와 2를 해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갑골문에서 敢은 돼지 시(豕)와 그 돼지를 잡는 도구로 되어 있으며, 이 도구를 잡는 손도 보인다. 돼지는 흉포한 짐승을 상징하며, 그 짐승을 도구를 잡고 사로잡으려 하는 모습에서 용감함, 과감함이란 뜻이 나왔다. 감히, 구태여란 뜻은 이에서 다시 인신된 것이다.

67582d084d0b2.png?imgSeq=39770

왼쪽부터 敢의 금문 1, 2, 3, 진(晉)계 문자, 제계 문자, 연계 문자, 초계 문자, 진(秦)계 문자, 고문, 주문, 소전, 예서 1, 2. 출처: 小學堂

금문은 갑골문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 그 구성 요소도 난잡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렵다. 허신은 《설문해자》 소전을 기초로 해서 예 고(古)가 소리를 나타내고 손이 마주보는 ⿱爪又가 뜻을 나타낸다고 설명했고 한국의 한연수 교수도 이 설을 따랐다.

그러나 금문에서 敢이 들어가는 형성자인 嚴의 금문 1처럼 古를 구성하는 口가 아예 없는 한자도 있기 때문에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러 금문에서는 이 부분이 口가 아니라 달 감(甘, 금문 1) 또는 갑골문의 돼지 잡는 도구의 형상(금문 2)을 하고 있기 때문에, 허신이 손톱 조(爪)로 본 부분은 돼지 시(豕)가 일그러진 것이고 돼지 잡는 도구가 변형돼 소리를 나타내는 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무기나 사냥 도구를 본뜬 글자인 홑 단(單) 같이 보이기도 한다.

67583b2f7b240.png?imgSeq=39771

敢의 금문 중 하나. 돼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듯하다. 출처: 小學堂

敢은 전국시대에 들어서도 풍부한 용례가 있어 전국시대의 다섯 계통 한자에 모두 남아 있는데, 금문의 난잡한 모습이 점차 정리되면서 《설문해자》의 고문이나 주문, 소전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

지금의 敢은 소전이 아니라 주문을 이어받았는데, 豕와 甘이 뭉개져서 마치 한글 티읕 밑에 달 월(月)을 받친 듯한 모습이다. 이게 예서에서 더 뭉개져 장인 공(工)과 귀 이(耳)가 합쳐진 듯한 글자가 됐고 又도 변형돼 지금의 모습이 됐다.


敢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달 감(甘)의 자원도 살펴보자.

67583cfa9e5b2.png?imgSeq=39772

왼쪽부터 甘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예서 1, 2. 출처: 小學堂

甘은 갑골문에서부터 나타나는 오래된 한자다. 지금은 입 구(口)와 많이 달라졌지만, 원래는 口 안에 점이나 가로줄을 더한 한자였다. 옛날 口는 네모가 아니라 한글 비읍처럼 생겼다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소전까지도 그 형태를 유지했지만, 예서 2에서부터 입 구(口)의 위쪽 가로 획이 길게 삐져나와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본디 입 안에 무엇을 문다는 것을 나타낸 甘은, 그 문 것의 맛을 본다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에서 달다는 뜻이 나온 지사자다. 미각 중에 제일은 단맛이었나 보다.


달 감(甘, 감미(甘味), 고진감래(苦盡甘來) 등. 어문회 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甘+土(흙 토)=坩(도가니 감): 감과(坩堝: 도가니) 등. 인명용 한자

甘+手(손 수)=拑(입다물 겸): 겸구(箝口/拑口/鉗口), 겸마(箝馬/拑馬) 등. 인명용 한자

甘+豕(돼지 시)+又(또 우)=敢(감히/구태여 감): 감청(敢請), 용감(勇敢) 등. 어문회 4급

甘+木(나무 목)=柑(귤 감): 감귤(柑橘), 밀감(密柑) 등. 어문회 1급

甘+水(물 수)=泔(뜨물 감): 미감(米泔: 쌀뜨물), 미감수(米泔水: 쌀뜨물) 등. 인명용 한자

甘+疒(병들어기댈 녁)=疳(감질 감): 감질(疳疾), 하감(下疳) 등. 어문회 1급

甘+糸(가는실 멱)=紺(감색/연보라 감): 감청(紺靑), 석감청(石紺靑) 등. 어문회 1급

甘+邑(고을 읍)=邯(조나라서울 한|사람이름 감): 한단(邯鄲), 강감찬(姜邯瓚) 등. 어문회 2급

甘+酉(닭 유)=酣(술즐길 감): 감흥(酣興), 반감(半酣) 등. 어문회 특급

甘+金(쇠 금)=鉗(집게 겸): 겸자(鉗子), 곤겸(髡鉗: 머리를 깎고 목에 칼을 씌우는 형벌) 등. 어문회 준특급

甘+黑(검을 흑)=黚(검누를 겸): 인명용 한자

拑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拑+竹(대 죽)=箝(재갈 겸): 겸구(箝口/拑口/鉗口), 겸마(箝馬/拑馬) 등. 어문회 준특급

敢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敢+木(나무 목)=橄(감람나무 감): 감람(橄欖), 감람석(橄欖石) 등. 어문회 준특급

敢+目(눈 목)=瞰(굽어볼 감): 감제고지(瞰制高地), 조감(鳥瞰) 등. 어문회 1급

敢+喦(바위 암)=嚴(엄할 엄): 엄격(嚴格), 계엄(戒嚴) 등. 어문회 4급

敢+門(문 문)=闞(범소리 함, 바라볼 감): 감택(闞澤: 삼국시대 오나라의 학자) 등. 급수 외 한자

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嚴+人(사람 인)=儼(엄연할 엄): 엄연(儼然), 윤엄(尹儼) 등. 어문회 1급

嚴+山(메 산)=巖(바위 암): 암석(巖石), 화강암(花岡巖) 등. 어문회 준3급

嚴+日(날 일)=曮(해다닐 엄): 조엄(趙曮: 조선 시대의 인물로, 일본에서 처음 고구마를 들여옴) 등. 인명용 한자

嚴+犬(개 견)=玁(오랑캐이름 험): 험윤(玁狁/獫狁) 등. 어문회 특급

闞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闞+目(눈 목)=矙(엿볼 감): 특급 한자

67582c09cccc2.png?imgSeq=39769

甘에서 파생된 한자들.

달 감(甘), 감히/구태여 감(敢), 엄할 엄(嚴) 이 세 한자는 뜻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소리는 비슷하다. 혹시라도 이 셋의 뜻 사이에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甘은 달다는 뜻의 원시중국티베트어 *s-klum에 어원을 두며, 머금을 함(含), 달 첨(甛), 귤 감(柑) 등과도 연관된다. 상고한어로는 벡스터-사가르에 따르면 /*[k]ˤ[a]m/으로 발음했다.

敢은 '감히 ...한다'는 뜻의 원시중국티베트어*s/m-wam에 어원을 둔다. 상고한어로는 벡스터-사가르에 따르면 /*[k]ˤamʔ/으로 발음했다.

嚴은 티베트어로 장엄함을 뜻하는 རྔམ་པ་ (rngam pa), 티베트어로 높음을 뜻하는 རྔམས (rngams)와 동계어이며, 발판, 골격을 뜻하는 버마어 ငြမ်း (ngram:)도 동계어일 수 있다. 상고한어로는 벡스터-사가르에 따르면 /*ŋ(r)am/으로 발음했다.

이렇게 상고한어로는 셋의 소리가 비슷해서 甘이 나머지 둘의 소리를 맡게 되었지만, 중국어의 친척 언어들과 비교해 보면 그 전에는 조금 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甘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대부분 단순히 甘의 소리만을 썼지만, 일부는 달다는 뜻을 따랐다.

柑(귤 감)은 木(나무 목)의 뜻을 따르고 甘이 소리를 나타내며, 甘의 뜻을 따라 단 나무 열매인 귤을 뜻한다.

酣(술즐길 감)은 酉(닭 유, 酒(술 주)의 원형)의 뜻을 따르고 甘이 소리를 나타내며, 甘의 뜻을 따라 술을 달게 즐김을 뜻한다.

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엄하다, 크고 높다는 뜻을 따른다.

儼(엄연할 엄)은 人(사람 인)의 뜻을 따르고 嚴이 소리를 나타내며, 嚴의 뜻을 따라 사람이 위엄이 있어 공경할 만함을 뜻한다.

巖(바위 암)은 山(메 산)의 뜻을 따르고 嚴이 소리를 나타내며, 嚴의 뜻을 따라 산의 위엄을 보이는 높은 언덕, 바위를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67584f054a300.png?imgSeq=39773

甘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嚴은 嵒(바위 암)의 뜻과 敢(감히/구태여 감)의 소리를 딴 형성자고, 敢은 豕(돼지 시)와 又(또 우)의 뜻과 甘의 소리를 딴 형성자다. 甘은 입 안에 단 것을 문 모습을 딴 지사자다.

甘에서 坩(도가니 감)·拑(입다물 겸)·敢(감히/구태여 감)·柑(귤 감)·泔(뜨물 감)·疳(감질 감)·紺(감색/연보라 감)·邯(조나라서울 한|사람이름 감)·酣(술즐길 감)·鉗(집게 겸)·黚(검누를 겸)이 파생되었고, 拑에서 箝(재갈 겸)이, 敢에서 橄(감람나무 감)·瞰(굽어볼 감)·嚴(엄할 엄)·闞(범소리 함, 바라볼 감)이 파생되었고, 嚴에서 儼(엄연할 엄)·巖(바위 암)·曮(해다닐 엄)·玁(오랑캐이름 험)이, 闞에서 矙(엿볼 감)이 파생되었다.

甘은 파생된 한자들에 달다는 뜻을, 嚴은 파생된 한자들에 위엄이나 높다는 뜻을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닥터페인
24/12/11 01:23
수정 아이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좋은 날이 오길 바랍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12/13 21:3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고진감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24/12/11 16:27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크크
계층방정
24/12/13 21:3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如是我聞
24/12/11 18:08
수정 아이콘
잘 배우고 갑니다
계층방정
24/12/13 21:37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80930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44427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66125 3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42251 3
103176 [일반] 하나밖에 없던 반려묘 보리를 떠나보내고 [3] 독서상품권1726 24/12/15 1726 12
103172 [일반] "금일"과 "금요일" 모르면 실질적 문맹인가? [29] 허락해주세요3793 24/12/14 3793 10
103167 [일반] <서브스턴스> - 거래와 댓가, 그로테스크 바디 호러.(약스포) [4] aDayInTheLife1062 24/12/14 1062 0
103160 [일반] 대한민국에서 3억이 가지는 의미 [67] 시드마이어9668 24/12/14 9668 13
103159 [일반] 최근 우리나라의 문해력 이슈 [122] 휵스8536 24/12/14 8536 1
103157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58. 홑 단(單)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1802 24/12/13 1802 4
103154 [일반] 영화 '디태치먼트' 후기 [8] 헝그르르3502 24/12/13 3502 2
103142 [일반] 이번 주말에 올해 마지막 유성우가 쏟아집니다. [16] Dowhatyoucan't5309 24/12/12 5309 6
103141 [일반] [일기] 럭키비키 연습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2] 두괴즐1918 24/12/12 1918 6
103139 [일반] 웹툰작가 고랭순대 부고 [9] Myoi Mina 6325 24/12/12 6325 4
103128 [일반] 최근 구매한 유선 이어폰 3개 [19] 김티모2998 24/12/12 2998 1
103100 [일반] [LIVE] 2024 노벨상 시상식 생중계 중입니당! [11] Janzisuka2664 24/12/11 2664 0
103099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57. 달 감(甘)에서 파생된 한자들 [6] 계층방정1166 24/12/10 1166 2
103096 [일반] 2024년 S&P500 회사 중 최악의 패자 TOP 10 [16] 비타에듀5345 24/12/10 5345 0
103080 [일반] 도쿄 아사쿠사, 오오토리 신사의 토리노이치 축제 [3] 及時雨1322 24/12/10 1322 1
103074 [일반] [서평]《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의식과 무의식 모두 나다 [10] 계층방정1106 24/12/10 1106 5
103065 [일반] 나라가 흉흉한 와중에 올려보는 중국 주하이 에어쇼 방문기 -1- (스압/데이터) [18] 한국화약주식회사1258 24/12/09 1258 13
103063 [일반] 저희집 반려묘가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25] 독서상품권3093 24/12/09 3093 28
103018 [일반] 시리아 내전이 13년 만에 반군의 승리로 끝났네요 [21] 군디츠마라5211 24/12/08 5211 1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