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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7/12 14:33:20
Name Hanniabal
Subject 제국, 칸의 초원을 정복하려 들다
  어쩌면 가장 임요환답게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였습니다만, 가장 임요환답지 않게 져버렸습니다.

  초반의 전략성은 대 구성훈, 대 민찬기 전에 비견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임요환의 두뇌, 게임에 대한 열정이 건재함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운영은 아쉬웠습니다. 천하의 임요환이라도 1년 동안 방송경기에 나오지 않으면 긴장을 하게 되나 봅니다. 하지만 헤리티지 매치를 거친 이후라면, 어쩌면 정말로 스타리그로 귀환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나름대로 이번 게임의 두 군데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1. 임요환은 칼을 빼들다 - 박지수는 그를 보려하지 않다

  팩토리로 입구를 막고, 앞마당 미네랄 필드 뒷편의 팩토리 두번째. 1서플라이 이후의 2팩. 마인업-속업 벌쳐를 통한 초중반 고속의 맹습이었습니다.
  구성훈, 민찬기 전의 그것이 아주 멀리 보고 호흡을 천천히 하며 차근차근 장악해나아가는 게임이었다면, 이번 게임은 그야말로 고속의 검무였습니다. 박지수 선수는 정찰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해설자들이 우려를 표했습니다만 저는 차라리 정찰을 안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정찰을 갔다면 입구를 막은 팩토리를 보았겠지요. 스캔을 빨리 달았다면 텅빈 본진을 보았을 것이고, 기가 막힌 위치의 머신샵 페이크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졌을 겁니다.
  임요환도 그것을 노렸을 겁니다. 임요환이란 이름이 동반하는 가장 큰 효과는, '정찰을 강제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10년 간 전략의 대명사로 불리며 아직까지도 완전히 탈 테란화된 기략들을 쏟아내지요. 과거 민찬기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정찰을 했고, 전진 팩토리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임요환은 전진 팩토리를 보여준 뒤 앞마당을 가져가버리죠. 정찰을 강제하고, 정찰을 허용함으로서 속이는 겁니다. 전략가로서의 이미지가 확연하고 그 누구보다 심리전에 강한 오직 임요환만이 가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전략입니다.
  만일 박지수 선수가 정찰 혹은 빠른 스캔을 했고, 머신샵 페이크 혹은 팩토리 페이크에 걸려들었다면 첫 벌쳐 공습 때 이미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소수 탱크로 고속의 마인업 벌쳐를 상대할 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컨트롤입니다. 컨트롤은 심리적인 영향이 특히 크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앞선 페이크에 손발을 허둥대다가 본진으로 벌쳐들이 파고들었다면 단언컨대 게임 끝났을 겁니다. 게다가 벌쳐로 쌈싸먹는 전술 - 주로 프로토스 전에서 보여줬습니다만 - 에 특히나 강한 임요환이기에 대단히 위험했죠.  하지만 결국 박지수는 본진 난입만은 막았습니다. 이후 머신샵을 수리하지 않는 실수 등에서 보이듯, 상당히 놀랐음에도 말이죠.
  팩토리 / 머신샵 페이크를 통한 심리적 타격 + 벌쳐 플레이의 빠른 리듬. 부드럽게 흐르는, 임요환다운 치밀한 계략이었고, 박지수의 컨트롤 실수가 나올 여지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수는 잘 막아냈습니다. 정찰을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든지간에, 이 부분에서 1차로 박지수의 선방이 빛납니다.



  2. 박지수는 살을 주고 뼈를 치다 - 임요환은 망설이다

  하지만 임요환의 맹공은 계속됩니다. 대 구성훈 전에서 보여줬던 아슬아슬한 시즈모드 타이밍을 그대로 재현하며며, 언덕을 사수하죠. 언덕 마인과 시즈모드, 게다가 배럭스를 통한 시야확보까지. 박지수는 본진에 고립됩니다.
  여기서 박지수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바로 투 드랍십을 통한 임요환의 본진 공략입니다. 병력을 빼내어 본진이 위험에 처할지라도, 정공법을 택하면 어차피 패배다. 그렇다면 이판사판으로 임요환의 본진을 친다. 프로토스 전에서 숱한 역전승을 안겨준 박지수 특유의 과감함이 발휘된 부분입니다. 실제로 임요환의 일꾼을 몰살시키는 혁혁한 성과를 거둡니다.
  '임요환 답지 않게 졌다'고 제가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죠. 어쨌거나 박지수의 에드온까지 부쉈고, 박지수의 본진에 있는 병력이라곤 달랑 탱크 한 대. 시즈모드를 풀고 내려왔으면, 전진했으면 이겼을 겁니다. 박지수의 본진을 완전히 장악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은 SCV를 생산할 미네랄까지 남겨두었지요.
  하지만 내려오지 않습니다. 전성기의 칼날 타이밍 러쉬로 유명했고,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수많은 도박수들을 던진, 이스포츠 역사상 가장 과감했던 승부사가 멈칫거립니다. 어떻게든 본진은 막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랬겠죠. 박지수의 벌쳐 네 기가 끝이었다면요. 하지만 박지수는 더욱 더 과감하게, 그 임요환의 멈칫거림을 틈타 탱크와 골리앗을 추가로 드랍합니다.
  그리고 게임 끝.





  소수의 고속 기마대로 순식간에 달려나가 초원을, 전장을 장악하는 것이 탈테란화된 테란, '칸'의 전투방식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과거 임요환이 드랍쉽을 통해 먼저 선보였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방어의 테란, 자리잡는 테란, 영토화된 테란이 아닌 속도의 테란이라는 그 역설. 오늘의 임요환 역시 탈테란화된 테란으로서 그를 보여주려 했으나, 마지막에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그 어긋남, 제가 '임요환답지 않음'이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임요환 선수가 공군 시절에 성적이 하락했을 때는 투아모리를 통한 안정적인 운영을 연습하던 시기였지요. 그 때의 안정성을 추구하던 플레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다 넓은 시야로, 저 멀리 목적지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고속의 검무, 단 한 순간을 노리는 일격필살의 플레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건 임요환답지 않습니다. 선명한 색을 드러내는 플레이야말로 '양산형 테란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에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유일무이한 스타일리스트였던 임요환의 플레이입니다.

  오늘, 절묘한 심리전과 질주하는 벌쳐의 리듬은 분명 올 1년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긴장감과 환희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임요환의 리듬이었죠. 그로써 당신의 기략, 당신의 열정, 그 어느 것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다시 전장에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패배했지만, 이제 방송 무대로 돌아올 겁니다. 그 익숙하고 낯선 무대가 점차 편안해진 다음에는 프로리그에서, 스타리그에서 보여주세요. 2002년의 WCG에서, 2003년의 패러독스에서, 2005년의 So1에서, 그리고 공군에서 보여주었던 그 모든 것들을.
  10년의 시간마저도 붙잡아버린, 끊임없이 진화하는 테란, 무한한 가능성의 소유자인 그 임요환을요.

  그러면 그 때에 다시 만나기로 하지요.
  스타리그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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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레니안
09/07/12 14:35
수정 아이콘
상대가 탱크까지 빼온것을

"아 박지수는 지금 마인으로 도배했나보구나 잘못 들어갔다간 마인에 피해보고 scv+탱크에 막히겠다" 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린것 같습니다

아카데미를 급하게 올린것도 그 이유였던것 같구요

드랍쉽2대 200 + 스타포트100 에드온 50 = 350의 가스를 소비했는데도 마인을 걱정하다니.. 확실히 감각이란면이 정말 중요한것 같네요
민죽이
09/07/12 14:38
수정 아이콘
박지수 판단이 너무 좋았죠.. 어차피 질테니
도박으로 상대 본진에 올인..
하지만 승패의 결과는 임요환선수의 감각 부족인거 같습니다.
애드온도 한차례 깨지고 배럭으로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내려갔으면 게임 끝났죠...-_-
아쉽습니다..ㅜㅜ
09/07/12 14:39
수정 아이콘
신성로마제국의 튜튼기사단이 아무리 잘 달려도 기마병은 역시 몽골산이 최고죠(상관없잖아;).
이녜스타
09/07/12 14:39
수정 아이콘
마인도 마인이지만 박지수가 레이스가 이미 나와있었고 클로킹된 레이스 한기만 있어도 골리앗 두기 잡혀 버리고 게임 끝이니까 스캔을 단거 같습니다. 골리앗 추가도 그것때문에 한거 같구요....수리하면서 버틸 일꾼도 없었죠.
용접봉마냥눈
09/07/12 14:40
수정 아이콘
역시 임요환의 전략....

역시 임요환의 뒷심...
드래곤플라이
09/07/12 14:41
수정 아이콘
그의 전략은 언제나 소름.
푸간지
09/07/12 14:43
수정 아이콘
제목이 마치 삼성 대 SK광안리 결승전을 생각나게만드네요.
그런의미로 박지수선수는 삼성으로...
Hanniabal
09/07/12 14:44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말이지만 정명훈이나 고인규가 오늘 이 전략을 사용했다면 거의 100% 이겼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밀고 들어갔겠죠. 안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결국 경기 감각, 익숙함의 문제라는 말도 됩니다. 황제의 부활은 아직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yonghwans
09/07/12 15:03
수정 아이콘
솔직히 이건 질수가 없는경기였는데...
연습때라면 이겼을텐데..
공식무대 감이 떨어진게 눈에 띄네요.

많은사람이 경험경험을 외치만..
이스포츠에서는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경험보다 몇배는 더 중요합니다.

그런면에서 현재 임요환이 경험면에서 우위를 말할수 없다고 봅니다.

임요환을 비롯 모든올드게이머들이 가장 필요한건..
과거에 경험이 아니라..
현재 방송경기의 출전이라고 보는데..
그런면에서 최강팀 SK에서 임요환이 얼마나 기회를 잡을수 있을지..

포스트시즌이 다전제이기때문에..
광안리 출전이 유력한 임요환이지만..
SK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임요환이란 존재가 참 계륵같은존재인거 같습니다.
낙타입냄새
09/07/12 15:51
수정 아이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09/07/12 16:49
수정 아이콘
그런데 게임 끝나고 리플레이를 보여줄 때 보니깐,
임요환 선수도 몇번이나 내려가려고 하지 않았었나요?-_-;
배럭으로 탱크 한대인걸 보고 시즈를 풀고 내려가려고 햇었습니다.
그런데 박지수 선수가 에씨비 대다수가 동원이 되었고,
거기서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었구요..
그 후에 다시 한번 또 내려갈려고 하자 박지수 선수 에씨비 한부대 정도가
더 나오려는 액션을 취하자 다시 후퇴하면서 컨트롤로 에씨비를 잡았었구요,
이 두 타이밍 동안 박지수 선수 탱크가 한대 한대 추가되어서
그 후에는 임요환 선수가 내려가고 싶어도 못 내려가는 상황이
되었던것 같습니다만..
혹시 리플레이 자세히 보신 분 안계신지요??
azurespace
09/07/12 17:53
수정 아이콘
일단 박지수선수가 scv를 잘 던지면서 시간을 벌었다는건 맞습니다.

근데 임요환선수 방송경기가 오랜만이라 그런지 긴장한 기색이 경기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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