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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3/02 16:26:21
Name happyend
Subject 총사령관이여,승부사가 되어라!
1500년전쯤이겠지요.백제 성왕은,나라의 운명을 건 싸움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성왕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성백제시대가 막을 내린 뒤 웅진시대를 거쳐 사비시대로 넘어가는 혼란기를 평정한 임금입니다.백제는 마한을 근거지로 한 까닭에,이곳과 고구려,부여유민들로 이루어진 대성8족이란 귀족들에 의해 움직이는 귀족연합국가였습니다.신라의 화백제도와 성격이 비슷한 '정사암회의'라고 불리는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는 바위위의 회의,그러나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귀족회의가 로마시대 원로원회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백제의 왕족을 내리눌렀습니다.

성왕은 그들의 근거지인 웅진을 벗어나 사비(부여)에 계획된 신도시를 건설,천도를 단행합니다.예나 지금이나 수도가 옮겨지면 나라를 이끄는 주도세력이 바뀝니다.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목매달았던 사람들은 무언가 지킬게 있었던 셈이지요.

성왕은 귀족들의 반란속에 수도없이 암살당한 이전의 임금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바로 나라를 단결시키는 능력을 가졌던 것입니다.그 방법은 전통적으로 늘 그렇듯이 '전쟁'입니다.이 무결점의 총사령관은 현란한 외교술을 발휘,강성해지는 신라와의 일전을 준비했습니다.신라에 원한이 많은 가야,왜국 등은 기꺼이 연합군이 되어주었고,총 3만의 군대가 신라와의 접경지대인 관산성에 진을 쳤습니다.

신라의 진흥왕은 매우 뚝심이 있었던데다 장수복이 많았습니다.그 중에서도 그에겐 희대의 승부사 '김무력'장군이 있었지요.그는 유명한 김유신장군의 할아버지이며 금관가야의 왕족입니다.금관가야는 나라를 스스로 신라에 바침으로써 신라의 귀족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만,결과는 비참했습니다.성골,진골도 아닌 초라한 귀족의 운명이란 뻔했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김씨일가의 놀라운 출세술이 발휘됩니다.김유신의 아버지도 김유신의 여동생도 모두 신라왕가와 혼인을 통해(설화를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의도적인 접근,노골적인 출세욕을 바탕으로),명가의 반열에 올랐으나 그 기반은 김무력이었던 것이지요.그는 김해를 떠나 청주일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력가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공'을 얻고 싶었습니다.그때 성왕을 만났습니다.

아시다시피 나제동맹을 통해 고구려를 한강에서 몰아낸 다음,김무력은 잽싸게 한강유역을 차지해버립니다.이 놀라운 순발력은 성왕을 자극했던 것입니다.둘은 벼랑끝 승부를 펼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김무력도 재빨리 군사를 몰아 관산성이 마주보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하지만 연합군의 군세가 만만치 않았고,게다가 관산성의 지형도 쉽게 무너뜨릴 형편이 못되었습니다.자칫하다가 이곳을 뚫리면 신라는 허리가 동강나,한강유역은 백제의 차지가 되고,신라의 존망도 위험했습니다.

이 순간.....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것은 무엇일까요?바로 누가 승부사였는가였습니다.성왕은 판을 짜는 능력이나,군사를 집결하고,동맹을 맺는 일,시끌벅적한 귀족들을 제압하는 모든 면에서,무결점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만......그가 상대하는 김무력은 희대의 승부사였습니다.

김무력은 열세를 깨닫고,상황을 뒤집을 묘수를 찾아냅니다.적은 연합군이란점,그리고 성왕의 지휘없이는 그저 단순한 오합지졸이라는 점을 이용했습니다.김무력도 가야왕국사람,그는 밤마다 가야의 옛노래를 부르게했습니다.

관산성안은 조금씩 동요했습니다.가야인끼리 서로 창을 겨누어야 하는 일에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허물어지고,약점이 드러났습니다.때마침,관산성안에는 성왕마저 없었습니다.그는 정치적인 문제와 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비를 드나들었고,성은 그의 아들인 태자 창(위덕왕)이 맡았습니다.

김무력은 첩자를 통해,성왕의 동선을 파악했습니다.끊임없는 스캔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한손에 쥔 그의 정보전은 시대를 앞선것이었던 셈이지만,백제군은 자신의 강성함만 믿고,적의 교활한 술수따윈 비웃었습니다.

어두운 밤,성왕은 밤길을 내쳐 말을 달려 관산성으로 향했습니다.모든 외교적,정치적 준비는 끝났고,캐리어만 띄우면 되었지요.그의 가슴이 벅차올랐을까요?말발굽소리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충청도 옥천,구진벼루라는 곳은 한쪽은 절벽이 휘둘러 처졌고,그아래로 물이 흐르는 백사장길이 펼쳐져있습니다.성왕은 이곳을 지나 사비에서 관산성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그때,번쩍거리는 쇠빛이 달빛에 부딪히며 매복한 김무력의 신하들이 덮쳤습니다.무결점의 총사령관이었던 성왕은 그렇게 허무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관산성의 3만군대는 단 500명만 살아남았으며,김무력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으나,성왕의 아들 태자 창은 일을 그르친 죄책감으로 시달렸고,그 누이동생을 진흥왕의 후처로 보냄으로써 굴욕적인 평화를 샀으나 다시는 한강을 수복하지 못한채 손자인 의자왕때 결국 멸망했습니다.

이때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위해 만든 것이 그 유명한 '금동대향로'입니다.슬픔이 얼마나 컸는지,국립박물관에서 이 향로를 보면 제 가슴이 먹먹해지곤합니다.

그렇습니다.승부를 가른 것은 군세도,능력도 아니었습니다.누가 승부사였고,누가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는가였습니다.
3번의 준우승.
단 한번도 송병구 선수의 패배가 예상된 경기는 없었습니다.그러나 단 한번도 그는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적을 혼란스럽게 하고,매복하여 적장의 목을 따지 못했습니다.그렇게 뻔한 사령관앞에 나선 세명은 만만치 않은,김택용,이제동,이영호 였습니다.그들은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승부사였고요.

그러나,아직 송병구 선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16강 토스의 불명예도 벗어던졌고,지독한 슬럼프도 이겨냈듯이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라 여깁니다.어찌되었든 성왕은 백제 제 2전성기를 만들어냈으니까요.

송병구 선수,힘내세요.일어서서 다시 뛰는 겁니다.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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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드람
08/03/02 16:33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성왕이 단순히 전사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저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아쉬운 왕입니다..
진리탐구자
08/03/02 16:42
수정 아이콘
송병구 선수는 어떤 순간에 도박을 거는 승부사 타입 - 대표적으로는 그분 - 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다시 조바심내지 않는 것이라든지, 자신의 실력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보아서는 낙천파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고, 낙천파가 안 좋게 풀리면 아론자 - 객관적 상황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유형 - 가 됩니다.
08/03/02 17:13
수정 아이콘
탑 커멘더라는 별명엔 이중성이 있는거 같습니다. 장군들은 도박보단 안정된 승리를 원하니까요.
08/03/02 18:02
수정 아이콘
백제군이 패배해서 성왕이 사로잡힌 줄로만 알았는데 저렇게 잡힌 것이었나요?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야사에 나오는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happyend님..
happyend
08/03/02 18:07
수정 아이콘
땡님//삼국사기에 있습니다.내용그대로....
08/03/02 19:34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글은 항상 흥미롭게 잘 보고 있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참 불운한 왕이네요. 그리고 확실히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난하고 예측가능한 전략은 종종 기를 쓰고 달려드는 상대에게 허를 찔리는군요.
non-frics
08/03/02 21:28
수정 아이콘
아~~ 역사관련된 내용이 많이 들어있더라니..역시 happyend님이셨군요 크크 전에 올라왔던 글은 매우재밌게봤습니다^^ 이글도 물론 재밌게봤구요!
이권국
08/03/02 22:57
수정 아이콘
'그분' 의 승부 근성은 정말.... 예전 최연성과 사투를 벌였던 결승전에서 4경기를 보고 정말 피말리는 공방 끝에 승리를 거두는 거 보고 전율했었죠.

예전 올드들이 아직도 인기가 있는 건 예전 경기에서 이런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경기가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대표적으로 강민 선수가 이병민 선수를 상대로 할루시네이션을 이용한 폭탄 리콜 같은 거 말이죠.... 요즘 경기는 한번에 전율을 느끼게 하면서 끝나는 경기보다는 계속되는 난타전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아서 .. 보다가 지칠 때도 좀 있지요
08/03/03 09: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사실 전략가란 관점에서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그대로 유지해서 승리를 따내는 것이 정석이기도 합니다.

다만 절박함이 다르다고 할까요...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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