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망하는가? #6.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 팬의 수 - 3
지난 두 글이 에이스게시판에 등록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부정적인 전망에 대해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건 제가 첫 글에서도 썼듯이 저도 알고 있는 바였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되, 크게 기대는 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댓글 달아주시고 읽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편으로 팬의 수, 수용층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보시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이 글을 처음 보는 분께는 특히, 이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앞선 편, 특히 수용층의 분류를 담고 있는 앞 두 편을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는데,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져서 그렇습니다. 기다리셨던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글이 많이 기니까 참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번 회 보기>
#1. 인사말을 겸한 소개
#2. 현재의 E-sports의 상황
#3. E-sports의 과거와 현재
#4.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1
#5.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2
4) 지겨워하게 될 것인가? - 소극적 수용층의 미래
이전 두 글에서 저는 ‘게이머’층은 신규 진입 유저의 부족과 배틀넷 시스템의 황폐로, 그리고 ‘팬’ 층은 이전 세대 프로게이머가 점차 밀려나고, 그런 선수들에 대한 팬의 지지가 새로운 프로게이머에게 완전히 이전되지 않게 되어, 두 층에 해당하는 수용층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줄어든다는 것은 꼭 ‘이제부터 보지 않겠다’라고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 수용층으로 들어가는 것도 해당될 수 있겠죠.
그리고 ‘소극적 수용층’으로 들어가는 것은 수용하는 것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절대적인 수용자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 편의 댓글에서 밝혔듯이 ‘당장 숫자가 줄어든다’는 현상을 말씀드리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줄어들 조짐이 있다는 점을 보이는데, 그리고 이 조짐이 옳다고 생각되신다면 이에 대해 대비하라는 말도 옳게 생각하실 거라는 데 만족하려고 합니다. 잠시 자기변명이었습니다만, 이번 글에서는 ‘소극적 수용층’이 어떻게 줄어들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1) ‘소극적 수용층’에 대하여
사람의 흥미가 처음에는 적었다가, 왕성한 활동기에는 많이 늘었다가, 점차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경우, 제가 정의한 ‘소극적 수용층’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친구의 소개에 의해서건,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건 처음으로 E-sports를 접하게 되는 경우, 아직 E-sports의 특징들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E-sports만의 재미에 빠지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이러한 ‘소극적 수용층’은 점차 발전하여 ‘게이머’층, ‘팬’층, 또는 더 나아가서 ‘적극적 수용층’의 단계로 넘어가기 쉬우므로, 신규 수용자를 이 층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 경우는 걱정할 단계가 아닙니다. 두 번째가 문제입니다. 바로 기존 층에서 이탈하여 진입한 경우, 즉 점차 흥미가 사그라드는 단계의 수용자입니다. 물론 이 층에서 오랜 기간 유지될 수도 있고, 선수의 부활 등을 계기로 다시 흥미도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 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라고 하겠습니다. 이 층은 E-sports의 근간이 되는 게임, 예를 들면 스타크래프트에도 흥미가 없으며, 또한 딱히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층을 지속시키는 것은 ‘재미있는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가 재미있는 한은 계속 경기를 볼 의사가 있지만, 경기가 재미없을 경우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재미가 없어. 그래서 잘 안봐”라고 말하는 올드 팬들이 여기에 해당하겠네요. 그런데, ‘경기가 재미있다’는 말이 대체 뭘 뜻할까요?
(2) 어떠한 스포츠가 재미있다는 것은
전에 제가 체육학 책을 찾아봤다고 말씀드린바 있죠? 그때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글에 썼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어서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예측 가능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즉 사회의 상당 부분이 확률을 기반으로 하여 움직이게 되죠.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예측 가능한, 다시 말해 ‘뻔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에게 이득입니다. 하지만 이러면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 ‘불확실성’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아록 싶으신 분은 앨리스 캐시모어가 쓴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흔히 야구가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 2사 만루, 카운트는 투-쓰리 풀 카운트입니다. 이 경우에서 몇 가지의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타, 홈런, 볼넷, 삼진 같은 일반적인 가능성을 제외하고라도 스무 가지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야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직접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 그러한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진짜 야구의 매력이겠지요. 축구도 흔히 ‘공은 둥글다’는 얘기를 하듯이, 어떠한 결과가, 어떠한 상황이 나올지 모르는 그러한 점이야말로 축구의 근원적인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논리를 조금 확장시켜서 E-sports에도 이러한 논리를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E-sports의 어떠한 경기가 재미있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고 말입니다. 특히나 우리 나라 E-sports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RTS는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전쟁’이니만큼 전략, 자원관리, 전술이 존재할 것이고, 그러한 점은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RTS는 종족간의 차이와 전장, 즉 맵의 차이에 따라 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이러한 점은 지금까지 E-sports의 ‘재미’를 지탱해 온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3) E-sports, 앞으로도 재미있을 것인가
앞에서 서술한 대로, ‘소극적인 수용층’을 계속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은 ‘재미있는 경기’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재미있다’라는 것은 ‘예측이 힘들다’라는 것을 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E-sports에서는 전략, 전술 등에서의 다양함과, 종족간의 차이와 맵의 차이 등으로 인해 그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미 말씀드린 대로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요건들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가 저에게는 조금 의문입니다. E-sports,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스포츠화’하기 가장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점차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게 되리라는 말인데요, 이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설명하겠습니다.
1. 전략에는 두 가지가 - ‘태양’과 ‘모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환타지 소설 작가인 이영도 님의 소설 <퓨처 워커>에 재미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태양과 모래. 사막에서 더 치명적인 것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
이 아니다. 희게 백열하는 태양열은 언뜻 공포를 야기시키지만 사막
위를 거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래밭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복사열
이다. 자이펀 육군에서 사용하는 태양과 모래는 기만전술과 기습전술
의 은유이다. 무섭게 타오르지만 저녁만 되면 깜쪽같이 사라지는 태양
은 기만전술, 그리고 조용히 깔려있지만 그 위를 걷는 사람을 죽이고
야 마는 모래는 기습전술이다.
쉽게 말해 ‘태양’과 ‘모래’를 E-sports에 대입해 보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태양’은 화려한 전략, 필살기, 통했을 때는 이길 확률이 크지만, 통하지 않았을 때는 질 확률도 커지는 ‘High Risk, High Return’의 전략이고, ‘모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면 ‘지지는 않을’ ‘Low Risk, Low Return’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저 ‘Low Return’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연 ‘Low Return’일까요? 전략의 return은 승리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화려한 승리이건, 재미없는 승리이건 승리는 승리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전략이 낫다고 손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승리는 승리’이니까요.
하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요? 삼국지연의로 말하면, ‘지지 않는’ 전략의 대표격은 다름아닌 사마의입니다. 결국 삼국지 전편의 최후 승자랄까요^^; 연의 최고의 전략가인 제갈량을 맞아 사마의는 ‘지지 않는’ 전략으로 시종일관합니다. 성 한두개쯤 내주더라도, 상대에게 숱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버티면 이긴다’는 마인드로 끝끝내 버티죠. 그리고 실제로 버텨서 이겼고요. 하지만 사람들의 흥미는 어떻습니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제갈량의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봐서, 사람들은 ‘모래’보다는 ‘태양’에 환호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앞에서 쓴 대로 스포츠의 재미는 ‘예측 불가능함’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위험도가 낮은 ‘모래’전략은 대충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흘러갈 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태양’ 전략은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줄 때가 많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 경기는 결승전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이러한 예상치 못한 화려한 전략이 먹혀든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퉁’, 그리고 김동수 (당시) 선수와 강민 선수의 아비터 리콜이 있었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조건 ‘태양’에는 환호하고, ‘모래’는 지겨워하는가? 그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가장 사랑받은 경기 중 하나인 임요환 선수와 도진광 선수의 파라독스 대첩은 끈기있게 버틴 임요환 선수의 승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어찌되었건 사람들은 반복되는 ‘모래’에는 그다지 환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이 글 후반부에 쓴 '신규 수용자'에 관한 부분이 어느 정도 답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 팀 제도의 정착 - 안정적 전략의 선호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는 외국의 형태와 다르다는 것은 제가 전에 E-sports에 관련한 발제를 했을 때 이미 적었습니다. 외국은 아마추어 선수가 후원받는(subsided) 선수가 되었고 여기에서 프로 스포츠가 탄생하였으며, 우리나라는 82년 전두환 정권에서 어느날 ‘만들어’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후 자생적으로 발생한 타 종목의 스포츠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은 ‘팀 자체가 기업’이며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비해 - 물론 기업의 후원을 받기는 하지만, 이는 구장, 유니폼 등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우리나라의 프로 구단은 자체적으로 티켓이나 유니폼을 팔아서 생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모 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며 ‘홍보 효과’를 노리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외국처럼 여러 개의 리그로 나누어 치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단일 리그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팬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팀을 응원해 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적이 낮은 팀은 인기 또한 적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각 팀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공격적인 투자 등을 통해 최대한 승리를 가져오고자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가치가 없’으니까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개인 중심 체제에서 팀 중심 체제로 변경되고, 기업들의 창단 및 후원이 일반화가 된 지금은 E-sports 역시도 저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몇몇 팀들이 성적부진 등으로 인해 일부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를 교체하는 등의 일을 겪었던 것을 봐도 이러한 경향은 명백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점이 ‘전략’의 선택, ‘태양’이냐 ‘모래’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말씀드렸듯이 ‘태양’은 성공하면 이길 확률도 커지고 화려한 승리를 거두지만, 통하지 않을 때는 어이없이 지기 쉽습니다. 또한 선수들의 컨트롤과 대처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이제는 필살기를 쓰더라도 이전처럼 쉽게 승리를 거두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기를 이겨야 할 경우, 이전에 비해서 올인성 필살기의 비율이 줄어들 것입니다. 경기를 준비해 온다고 해도, 그것은 ‘정상 빌드’에 비해 약간 다른 시작을 통해 초반 이득을 얻고, 이를 자원적인 이득으로 환산하여 장기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결국은 ‘모래’에 가까운 전술이 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또한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도박적 운영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앞에서 잠시 말했지만 전략이라는 것은 리스크에 관계없이 return이 ‘승리’이므로, 기왕이면 걸어야 할 위험이 적은 쪽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설사, 간간이 ‘태양’을 통해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나온다고 해도, 결코 ‘태양’의 유행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태양’은 실패할 경우도 분명히 있으며, ‘태양’이 한번이라도 실패하게 되면 도리어 손해본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잠시 후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런 현상, 즉 도박적이고 화려한 전략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지 않는’ 전략이 일반적이 될 경우 벌어지게 되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지지 않는’ 전략과 ‘지지 않는’ 전략이 만나게 된다면, 즉 칼대 칼이 아닌 방패와 방패가 만난다면, 더 두꺼운 쪽,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이러한 실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시청자에게는 분명히 재미없는 쪽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실수하지 않는 쪽이 이긴다’는 것은 유사한 경기양상, 즉 실수를 두려워해서 더더욱 일반적으로 경기하는 양상을 낳게 될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예측가능성을 늘리게 될 것이고, 그래서 흔히 얘기하는 ‘재미’를 줄이게 될 것입니다.
3. ‘나도 좀 먹고 살자!’ - 한정된 자리와 많은 선수들
어느 스포츠나 그렇지만 스타의 자리에 오르는 선수는 몇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술계와 유사하게, 스포츠계에서는 인기와 그에 부합하는 돈은 대부분의 경우 스타의 자리에 오른 몇 선수에게 집중되기 십상입니다. E-sports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현재 KeSPA에 등록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는 265명입니다(협회 홈페이지를 참조하였습니다). 저 중에서 90%가 현재 활동중이라면 대략 240명 가량이 현재 협회에 프로게이머로 등록한 상태일 것입니다. 각 구단의 연습생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며,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아마추어 고수 게이머를 포함할 경우는 천단위로 증가한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저 중에 각 구단의 에이스, 개인리그 상위 입상자, E-sports의 팬이라면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스물에서 서른 남짓이며, 이외의 선수들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아주 낮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프로 스포츠는 시장의 논리와 성적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저것을 비판할 수는 없고, 비판할 의도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역시 전략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있습니다. 엽기 전략을 잘 쓰기로 유명한 삼성칸의 박성훈 선수를 예로 들어봅시다. 박성훈 선수의 엽기 전략은 꽤 강력하고, 다른 선수가 쓰는 것보다 잘 통하기도 합니다. 또는 SKT T1의 김성제 선수의 리버를 생각해봅시다. 이 선수의 리버 견제는 거의 달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태양’ 전략을 잘 쓰는 선수들이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 진출, 또는 예선 통과를 놓고 경기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이 선수들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태양’이냐, ‘모래’이냐. 이 선수들의 ‘태양’은 매우 강력하며 ‘태양’ 자체만으로도 상대를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태양’은 통하지 않게 되면 쉽게 패합니다. 이렇게 쉽게 패할 경우 이 선수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아, 그냥 정석대로 하고 졌으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을텐데’라고. 그렇게 될 경우, 다음번에는 그 전략을 쓰기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 선수를 상대할 다른 선수들이 그러한 전략을 파훼할 전략을 틀림없이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그러한 선수들의 성적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크게 뛰어나지 않거나, 심할 경우 다른 선수들보다 뒤처지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반화되면 다른 선수들도 크게 변수가 없는 ‘모래’ 위주의 전략을 선호하며, 설사 초반 특정한 운용을 통해 이점을 가져갔다 해도 이를 자원의 이득, 그리고 시간의 이득으로 환산해서 결국은 ‘모래’형 전술로 끝을 내는 경기가 일반화될 것입니다. 실제로 스타리그와 프로리그의 많은 경기들이 이러한 양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점차 예측가능성이 커지는 경향으로 갈 것이며, 이는 점차적으로 ‘재미’를 떨어트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정말 문제는, 선수들에게 “좀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달라”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세 자리수 이상의 프로게이머가 기껏해야 서른, 낙관적으로 잡으면 쉰 정도 되는 지위에 오르기 위해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수들에게 ‘이 판 전체를 위해, 너는 질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전략을 써서 재미있는 경기를 해라’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때, 이러한 경향은 뒤집히기 힘들며, ‘모래’에 능한 선수들, 수비력이 강하고 경기를 전체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시대가 오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실제로, 김태형 해설위원도 이와 비슷한 걱정을 어느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4) E-sports의 ‘신규 수용자’를 가로막는 것은
제 논리가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점들 때문에 ‘소극적 수용층’을 계속 붙들어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빠져 나가는 만큼 새로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 되는 것 아니냐”. 즉 수용층이 이탈하더라도, 새로운 수용층이 증가하게 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게이머층이 더 이상 이전같은 확장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지금,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인기 증가는 새로운 수용층의 유입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수용자는 먼저 ‘소극적인 수용층’에 포함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권유로, 또는 어쩌다 지나가다가 보게 된 경기가 재미있어서, 또는 어떤 선수가 멋있어서 계속 보게 되다가, ‘팬’층, ‘게이머’층, 또는 ‘적극적인 수용층’으로 편입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코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 ‘적극적 수용층’이나 ‘팬’으로 출발하는 일이 잘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 ‘멋있다’는 것은 정말 다양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러므로 어떻게 예상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니까 - 신규 수용자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즉 ‘재미있는’ 경기, 손에 땀을 쥘만한 스릴있는 경기를 보여주면 이 신규 수용자의 ‘레벨업’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저는 비관적입니다.
과에서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해서, 결승전을 치를 때였습니다. 저는 같은 학번의 친구 한과 중계를 했는데, 제가 캐스터였고 친구가 해설이었습니다. 로스트 템플에서 빠른 멀티를 시도한 테란이 저그에게 정찰을 허용했는데, 해설하던 친구가 “아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의아해서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저그가 드론을 배를 째게 되기 때문에 뮤탈 견제에 쉽게 당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었고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만, 점차 연습을 통해 전체 게이머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경기의 질적 수준이 올라가게 되면 보는 사람들의 눈도 같이 발달하게 됩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현 나이대의 대부분의 게임리그 수용자가 그 게임을 해 본 사람이고, 그러므로 이 ‘보는 눈’의 발달은 게임 리그 수준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눈’이 없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군요...ㅡㅡ;;)
문제는 이러한 ‘보는 눈’의 문제가 신규 수용자에게 있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점차 경기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요소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꾼이 하나 둘 차이난다든가, 타이밍이 몇 초 차이난다든가, 건물이 한 칸 옆에 지어졌다든가. 이러한 요소를 알지 못하면 “뭐야,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라고 멀뚱멀뚱, 환호하는 친구 옆에서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다른 스포츠에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야구에서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의 선수 교체, 많이 복잡해진 축구나 농구의 룰 등이 적용되는 상황이 나오면 ‘해설자’가 등장합니다. 해설자가 자기 소임을 다하게 되면, 이를 보던 사람들도 당황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러한 스포츠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이를 시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E-sports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점차 게임의 수준이 발달함에 따라 수용자들의 수준 역시 올라가고, 이에 따라 해설자의 수준 역시 올라갑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안 그래도 점점 복잡해지고 넓어지는 전장, 전환이 숨가쁘게 되고, 상황을 중계해주기 바쁩니다. 그렇게 바쁘다보니 어지간한 사람이 다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 ‘어지간한 사람이 다 알고 있으리라는 것들’이 바로 신규 수용자들이 바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어느 스포츠나 그러하듯이 신규로 진입하는 수용자는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른 스포츠의 경우 신규 수용자를 배려해야 할 상황이 많지 않은 반면, E-sports의 경우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수용층과 게이머의 수준이 함께 올라감에 따라 신규 수용자는 도저히 알아먹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던 것이 깨어질 때 신기함을 느끼고 환호하는 것이지, 생판 모르는 것에서 놀라움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위에서 자세히 서술했듯이 점차 ‘태양’보다 ‘모래’를 위주로 하는 전략이 대세를 차지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점점 더 신규 수용자를 불러들이는 것은 쉽지 않아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래’와 ‘모래’가 맞부딪히는 경기에서는 게임을 새로 보기 시작한 사람은 승부의 포인트라든가, 어떤 점이 정말 재미있는 점인지 잘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뭐야, 별로 재미 없잖아’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신규 수용자라 해도 적어도 스타크래프트를 한번쯤 접해 본 사람들이고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프로게임 리그에 대해서 재미를 느끼기 쉬웠지만, ‘게이머’층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지금은 ‘완전 생판 신규 수용자’가 주변의 도움 없이는 리그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기 점차 힘들어진다는 점도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 & 다음회 예고
매우 긴 글이었습니다. 따라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_ _)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수용층을 적극적 수용층, 팬, 게이머, 소극적 수용층의 넷으로 나눌 수 있다.
2. 게이머층은 배틀넷의 붕괴로 인한 이탈자, 수준 상향평준화로 인한 신규 유저 진입 난항으로 인해 점차 소극적 수용층으로 편입될 것이다.
3. 팬층은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함에 따라 기존 선수들이 세대교체되게 되고, 이 선수들의 팬 중 일정숫자가 소극적 수용층으로 편입될 것이다.
4. 소극적 수용층은 선수 및 팀의 전략 선택상의 제한성이 점차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경기가 유사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점차 ‘재미’가 없어짐에 따라 이탈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신규 수용자’가 새로 진입하기가 힘들어진다.
5.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팬은 앞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물론 이는 그저 하나의 부정적인 전망에 불과하며,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는 편이 E-sports의 팬들, 스타크래프트의 팬들에게는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한 전망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와 근거에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리가 있다면 이미 반박이 나오고도 남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이 전망이 불러올 좋지 않은 결과를 대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전망이란 다 ‘대비하라’는 경고성 메시지이니까요.
글이 너무 길어서,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다른 E-sports 종목에 대해서는 다음에 3.5편 격으로 올리겠습니다. 다음 4편은 ‘선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선 편들에서 몇 번 말씀드렸던 내용이 나오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선수들 앞에 놓인 문제는 무엇인지, 또 그 문제들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쓰겠습니다.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