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정말 오랜만에 쓰네요. 몇 년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 그동안 피지알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10년넘게 연례행사처럼 나오던 말인 '요즘 피지알'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뀜에 따라 웹문화도 바뀌게 되고 그에 따라 피지알도 바뀌었습니다. 당장 피지알러들의 연령이 다들 10살이상 늘어났을테고, 새로 유입된 사람들도 많겠죠. 거기다 웹문화자체가 10년간 아주 많이 바뀌었으니, 이런것들을 감안하면 피지알은 그대로일리가 없습니다.

피지알유저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당장 저는 제가 주로 가는 게시판별로 익숙한 닉네임이 10개에서 20개정도 주르륵 떠오르네요. 10년 전에 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떨까요. 당장 게시판을 쭉쭉 뒤로 넘겨서 10년전 게시판을 구경해보세요. 10년전에 피지알을 안하셨다면 7년이나 5년전으로요. 정말 반가운 닉네임들이 넘쳐납니다. 아 이런 사람도 있었지. 없어진지도 몰랐네. 글을 클릭해서 댓글들 분위기를 보면 또 이질감이 느껴지죠. 철지난 유행어도 넘쳐나고, 댓글 다는 방식도 왠지 모르게 지금과는 다르죠.

도대체 그 많던 ‘네임드유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닉네임을 바꿔서 아직도 잘 글을 쓰고 있을까요? 피지알에 염증을 느껴서 그만두고 다른 게시판으로 갔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대부분이 눈팅족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지알 글쓰기를 끊는건 쉽지만 눈팅까지 끊는건 쉽지 않죠.

2) 한번 떡밥이 된 떡밥은 다시 한 번 떡밥이 되기 마련이죠. 몇몇 사안은 피지알에서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서 몇 번이고 논쟁이 되었습니다. 양상은 대부분 비슷하죠. 일반적인 익명게시판에서 일어나는 토론이란건 보통 승리자와 패배자가 없습니다. 두 명의 정신승리자만 있을 뿐이죠. 하지만 그에 비하면 피지알에서의 토론은 꽤 높은 확률로 승패가 결정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바로 도태와 자연선택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제대로 논파된 의견은 1,2년이 지나도 다시 머리를 내밀기 힘듭니다. 그 당시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다시 그 의견을 낼 수도 있죠. 하지만 운이 좋다면 다시 논파 당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의견 취급을 받고 한 두줄의 퉁명스러운 대답정도로 무시당하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남자는 군대가는 대신 여자는 임신하지 않느냐’라는 말 은 이제는 나오지도 않고, 나오더라도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가끔 친절한 키워들이 자상하게 논파해줄 때도 있지만, 그러기엔 현대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이렇게 위대한 선조 피지알 키워들의 업적으로, 대부분의 ‘딱봐도 말도 안되는’ 의견은 더 이상 나오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교양수업시간에 토론주제로 등장할법한 몇몇 어려운 사안들에 대한 대립은 저렇게 쉽게 결정되진 않습니다. 가장 먼저 ‘사형제에 대한 찬반’, ‘동성애결혼 허용해야 하는가’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이 밖에도 보기만해도 댓글수가 눈에 선한 몇 가지 주제들이 있습니다만, 요새는 크게 의견이 대립되지는 않습니다. 보통 한쪽이 한쪽을 논리적으로 압살하는데 그걸 버티고 버티며 댓글을 계속 다는 그림으로 넘어가거나 아예 파이어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승패가 결정되기 어려운 주제들도, 피지알에선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쪽이 한쪽을 논파해왔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의견은 어떤 것들일까요? 국민의 정서와 관습에 부합되는 쪽일까요? 아니면 피지알러 다수가 주장하는 쪽일까요? 둘다 아닙니다. 살아남는 의견은 ‘논파하기 어려운’쪽입니다. 바로 자유주의인 해석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인데, 여기에 논리와 fact까지 포함되게 된다면 피지알이란 링에서 키배로 이것들을 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죠. 그리고 이 경향은 아직 토론횟수가 충분치 않은 새로운 사안에서도 꽤 반영됩니다. 지금까지 유저들이 학습했듯이, 자유주의적 해석은 논파하기가 힘든데다가 그걸 강력하게 구사하는 논객들이 피지알에 살아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피지알의 대단히 큰 장점중에 하나입니다. 피지알에서 살아남은 의견은 대부분 ‘맞는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맞는말’이란건 진리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영원한 진리란 없을 뿐더러 그걸 제가 판단할 능력도 안되죠. 다만 ‘현대철학의 기준으로 봤을 때 하자가 없는’ 정도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꽤 큰 단점도 됩니다. 위에 서술했듯이, 다수의 의견과 대립되거나, 현재 국민정서에 반하는 의견이 이기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데 이 경우에 ‘피지알식 논쟁에서 승리하기 힘든 의견’을 내세우는 쪽은 멘탈이 흔들리게 되죠. 기껏해야 ‘그게 맞는말인건 나도 알지만 현실적으로 인정하기 힘들다’정도로 비기기 마련입니다. 그나마도 이건 굳건한 멘탈과 논리의 소유자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설픈 논리를 펼치다가 처참히 논파되고 피지알에 강한의견반영을 꺼리게 되죠. 특히 개인이 평생 믿고있던 인생관이나 생업이 걸린 문제가 된다면 얘기가 심각해집니다. 다시는 글쓰기도 싫어지죠.

1+2) 피지알유저를 자유게시판에서 토론하는 빈도에 따라 1부터 10까지 나누었을때, 7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위에서 서술한 ‘도태되지 않은 주장을 내세우는’ 키워들입니다. (이부분에서 몇몇 분의 닉네임이 떠오른다면 기분탓이겠죠) 그렇지 않으면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논파되기 힘든 방어적이면서 합리적인 의견을 조심스럽게 주장하는 분들입니다. 소위 네임드유저들이 게시판에서 자취를 감춘건 이와 완전 무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피지알에선 사실 네임드쉴드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데다가 오히려 틀려 보이는 주장을 했을때 더 심하게 어그로를 끌거든요.성향이나 사상자체가 바뀌기는 쉽지 않으니, 경험상 이기기 힘든 의견은 잘 내세우지 않게 되는거죠.

마치며) 딱히 뭐가 맞다 그르다. 장점이다 단점이다. 토론할때 상대를 배려해야된다 말아도된다등의 가치판단을 하기위해 적은 글은 아닙니다. 그냥 요새 드는 생각을 분석해서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