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주도 영원할 수 없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우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빅뱅 0.1초 뒤의 우주야 뭐 스티븐 호킹이나 브라이언 그린 같은 양반들이 아무리 설명해줘 봤자 저 같은 미천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지만, 물질 생성 이후의 우주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열역학 2법칙만 알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역학 2법칙을 수식으로 쓰면 S = ln W 인데, 이걸 일반인 버전으로 풀어쓰자면 대충 이런 겁니다:

기름을 불태우면 일정 수준의 에너지를 (에너지 1) 뿜어낸 뒤 이산화탄소와 물이 된다.
이산화탄소와 물을 기름 상태로 되돌리려면 일정 수준의 에너지를 (에너지 2) 투입해줘서 환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에너지 2 는 에너지 1 보다 작을 수가 없다.

즉, 에너지 관점에서 유용한 것들을 '사용' 해버리면 무용한 것들로 변해버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비가역성이 발생합니다. 고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무용한 것들이 되어버립니다. 세상 만물은 수조 년이 지나면 모두 쓰레기만 남게 되고, 더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열역학적 죽음' 상태가 됩니다.

이 법칙을 발견한 볼츠만은, 그 법칙이 의미하는 철학적인 비극성을 잘 인식했고, 당대 학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겹쳐버리는 바람에 자살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지금도 그가 발견한 열역학 2법칙 S = ln W 가 쓰여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뭔가 좀 울적하지요. 그래서 제가 쓰려는 글은 조금 다른 관점입니다.

2. [비가역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



비가역성이 존재하지 않는 대표적인 시스템는 위 그림에서처럼 스프링 (마찰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스프링) 에 매달려있는 추의 운동입니다. 영원히 왕복 운동을 반복하지요. 물론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스프링에는 마찰력이 존재하고, 그러므로 오랜 시간 진동을 하고 나면 추는 서서히 정지하게 됩니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죽는 거지요. 우와아아앙 내 추가 죽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마찰력 없이 영원히 왕복 운동을 하는 추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도 아니고, 영원히 왕복만 해서 뭐 재미있는 일이 생기겠습니까.



이것은 물리학에서 oscillon 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모래를 접시에 담그고 밑에서 일정 주파수로 진동을 시키면, 진동이 약하면 모래 전체가 상하로 움직일 뿐이지만, 진동이 세 지면 그림에서와같이 접시 속에서 일정 덩어리들이 훨씬 센 강도로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꼭 살아있는 것 같지요? 저런 식으로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서 군체를 형성한 뒤, 기존의 알갱이 하나 분자 하나로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움직임을 보이는 현상을 물리화학에서 emergence 라고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런 emergence 는 비가역 시스템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1. 진동을 가하는 에너지원이 있고, 2. 그 진동을 억제하는 모래 알갱이 간의 마찰력이 있어야만 저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자면, 에너지를 (이 경우에는 진동) 부여하는 공급원과, 그 에너지를 빨리 해소해버리고 열역학적으로 죽어버리려는 모래 간의 경쟁이 존재하고,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의 힘으로는 주어진 에너지를 해소해버릴 수 없으면, 모래 알갱이들이 조금 더 큰 수준의 구조물을 형성해서 주어진 에너지를 해소해버리게 되는 겁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래 시스템에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인데요, 열역학 2법칙에 의하면 저런 emergence 를 구현하기 위한 에너지는 비가역적으로 흩어져버리는 것일 수밖에 없고, 즉 다시 말하면 우주 전체가 죽어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는 죽어가되, 그런 거대한 죽음으로의 행진 속에서 이곳저곳 작은 수준에서의 질서는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emergence theory 의 핵심입니다.

3. [비가역성에서만 존재하는 놀라운 화학 반응]



이것은 화학에서 Oscillating turing pattern 이라고 부르는 화학 반응입니다. 여러분이 화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운 화학 이론에 의하면 주어진 에너지와 초기 상태에서는 최종 평형 상태가 존재한다고 배우셨을 겁니다. 화학자들도 19세기까지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특정 화학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경우, 그 시스템은 A 에서 B로, 그다음에는 다시 B 에서 A 로 돌아가면서 주어진 에너지를 비가역적으로 해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밥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한 영원히 심장이 뛰는 것처럼,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된다면 화학 반응도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생명의 약동을 연상시키는 화학 반응 역시 비가역 시스템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는 별의 시체에서 태어났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우주의 나이를 보통 150억 년 정도로 봅니다. 우리 우주의 남은 나이는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대충 몇백억 ~ 수 조년 정도로 예상하지요. 그런데 왜 우리는 초기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존재하는 것일까요? Neanderthal 님 말씀처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생명은 초기 우주에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초기 우주에는 수소만이 존재했습니다. 그 이유라면, 수소가 이 세상에 원자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물질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기 (수소는 양성자 단 1개로 만들어집니다) 때문이지요. 주기율표에 나오는 92개의 (93개였나요? 뭐 하여튼) 물질은 초기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인 탄소와 산소 (아주 간단히 볼 때, 우리 몸은 탄소와 수소가 적당히 섞여 있는 유기물 + 물이니까요) 는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초기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럼 이 탄소와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탄소는 양성자 6개가 모인 것이고 산소는 양성자 8개가 모인 것입니다. 즉 수소 원자 6 ~8 개가 수백만 도의 고열과 그에 상당하는 고압 상태에 놓여서 강제로 융합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우주에는 그런 융합 반응로가 예전에도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합니다. 별들의 몸 깊은 곳이지요. 우리 태양 정도의 꼬마 별에서는 탄소와 산소, 혹은 실리콘을 (돌과 흙은 이놈이 원료) 조금씩 만들어낼 수 있고, 보다 원자량이 높은 금이나 철 같은 것들은



이런 무지막지하게 큰 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무지막지한 별들이 핵융합 최종 단계인 초신성이 되어서 그간 모아온 융합 폐기물인 탄소와 산소, 철과 실리콘과 금 같은 것들을 우주 공간으로 뱉어내게 되는데, 그 우주 공간에 흩어진 별의 잔해물들이 다음 세대의 별이 태어나는 곳의 중력장에 휘말려 들어갔다가 행성의 형태를 띠게 되어야 비로소 생명의 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5. [생명 역시 비가역적입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갈 길이 많습니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중앙 통제장치에서 제어하는 방식으로는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즉 생명은 아래에서 위로, 작은 수준에서 큰 수준으로, 여러 단계에 거쳐서 emergence 현상이 벌어짐으로써만 만들어낼 수 있지요. 그리고 그런 여러 단계에서의 emergence 는 최소한 개별적인 수준에서는 많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분자 수준, 나노 수준, 마이크로 수준, 거시적인 수준에서 모두 1. 비가역적인 시스템에 2. 외부에서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을 해 줄 경우, 더욱 높은 단계로의 군체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거대한 죽음' 이라는 흐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별들의 시체에서 태어났고, 죽어가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서 진화했으며, 죽어가는 우주 속에서 많은 것을 해 보고 탐구하다가 결국 같이 사라질 운명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약간 울적하기도 하지만, 그런 죽어가는 우주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우리가 존재할 수도 없었던 것이니, 울적하기보다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